[르포] '반 세기 걸친 혁신의 역사 한 눈에···' 인텔 본사 박물관 가보니
[IT동아 남시현 기자] 인텔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 9월 19일에서 20일 양일간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에서 인텔의 연례 개발자 행사인 인텔 이노베이션 2023을 개최했다. 인텔 이노베이션은 인텔의 주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소개하는 행사며, 과거 진행됐던 인텔 개발자 포럼(IDF)을 계승하는 행사다. 공동 취재단은 행사에 앞서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의 인텔 본사에 위치한 인텔 박물관을 견학했다.
인텔 박물관은 인텔이 설립된 1968년부터 지금 현재까지의 발자취를 남기는 자리로, 인텔의 초기 하드웨어부터 오늘날의 혁신 제품 중에서도 기념비적인 제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은 코로나로 인해 일시 폐쇄됐다가 올해는 누구나 무료로 참관할 수 있다. 인텔 박물관을 거닐며 50여 년간 인텔이 걸어온 발자취, 그리고 혁신의 모습을 직접 살펴보았다.
인텔 박물관은 인텔 본사 1층에 위치한 작은 박물관으로, 빠르면 약 20~30분 정도면 제품 소개와 반도체 공장 체험까지 빠르게 볼 수 있다. 현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 2시간 가량의 투어 및 견학도 진행하며, 입구 우측에 있는 스토어도 볼거리다. 우선 박물관을 들어서면 박물관 로비와 안내 데스크를 바로 접할 수 있고, 1968년 인텔이 창업한 배경과 창업주에 대한 설명부터 접할 수 있다.
인텔은 1968년 로버트 노이스(Robert N. Noyce)와 고든 무어(Gorden E. Moore)가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 뷰에서 창업한 기업이다. 두 사람은 1956년부터 실리콘 밸리에서 일했고, 트랜지스터를 최초로 상용화한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나중에 이들은 8명의 동료 그룹과 함께 회사를 빠져나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했고, 1968년에는 두 사람이 독립해 인텔을 설립한다.
인텔의 사명은 흔히 지식(Intelligent)의 줄임말인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통합을 뜻하는 Integrated와 전자 장치인 Electronics의 혼성어다. 처음에 두 사람의 이름을 따 무어 노이즈라는 이름을 쓰려했으나, '더 많은 노이즈'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인텔로 이름을 지었다.
인텔이 처음 제조한 반도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반도체와 거의 비슷하다. 단 첨단 반도체 공장에서 제조한 것이 아닌 손으로 만들었다는 게 차이다. 1970년 인텔이 출시한 '인텔 1103 D램 메모리'는 구성 요소를 한땀한땀 손으로 구성해서 만든 물건이었다. 당시 컴퓨터 메모리는 크고 비쌌지만, 이들이 공개한 제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저렴하며,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1972년, 자기 방식의 메모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반도체로 기록되었다.
"처음 반도체 연구와 컴퓨터를 시작한 이유는 기계식 계산기를 보조하기 위한 용도였다" 고든 무어는 인텔 4004를 출시하기 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텔 4004는 1971년 11월 15일에 출시된 인텔의 4비트 CPU로, 시장에 출시된 최초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다. 원래는 전자계산기에 탑재될 제품이었지만, 기존 논리 회로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되어 계산기용 장치가 아닌 CPU로 출시된다. 이후 네 번째로 출시된 인텔 8080은 최초로 8비트 프로세서였으며, 79년 출시된 인텔 8088은 IBM PC에 장착되며 마이크로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끌게 된다.
고든 무어는 1965년 4월 19일,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에 'Cramming more components onto intergrated circuits'이라는 이름의 논문을 기재하며, 뒤에 서 있는 페이지가 바로 그 내용이다. 이 논문은 '부품 제조 비용이 최소가 되는 복잡함은 해마다 대략 2배의 비율로 증가한다. 단기적으로는 이 증가율이 올라가지 않아도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확실하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오늘날 '무어의 법칙'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고든 무어는 이를 법칙이라고 규정하진 않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 그리고 파이오니아의 실업가 카버 미드가 법칙이라고 지칭하면서 지금까지 법칙으로 굳어지고 있다.
인텔 박물관에서는 인텔의 역사를 증명하는 제품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주목을 끄는 부분은 기자가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부터의 제품들이다. 해당 케이스에는 인텔 386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비롯해 2006년 출시된 최초의 쿼드 코어 프로세서인 요크타운, 2007년 출시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울프데일, 인텔의 가장 작은 프로세서인 아톰 프로세서, 인텔 코어 시리즈의 전성기를 연 인텔 코어 i7-2500K, 코드명 샌디브릿지 프로세서도 전시돼있다.
아울러 인텔의 첫 마이크로컨트롤러인 인텔 8048, 컴퓨터에 칩 형태로 처음 연결된 인텔 8748 마이크로컨트롤러같은 부품이나 삭제 가능한 롬(EPROM), 플래시 메모리 및 낸드 플래시, 통신용 칩 등 그간 인텔이 만들어온 다양한 반도체들이 설명과 함께 전시돼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50Gbps 실리콘 포토닉스는 인텔의 기술 연구 조직인 인탤 랩스에서 개발하고 있는 제품 중 하나다. 인탤 랩스는 혁신적인 기술 연구에 집중하는 사내 개발 조직으로, 전 세계 700여 명의 인력이 현재 30여 개의 주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양자 컴퓨터, 생체 컴퓨터인 뉴로모픽 컴퓨터, 동형 암호화까지 인텔 랩스의 4대 핵심 연구 중 하나로, 광단자를 이용해 전송 속도의 물리적 한계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는다. 전시된 제품 역시 얇은 실 하나로 썬더볼트 4보다 더 빠른 50Gbps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인텔 박물관에는 방문자가 직접 버튼을 누르거나 상호작용하는 등의 체험 요소도 있다. 사진에서는 한 관람객이 본인의 이름을 바이너리 코드로 코드로 짜는 법을 시도해보고 있다. 바이너리 코드는 컴퓨터와 전기 통신에서 0과 1로 문자를 배열하는 인코딩 방식이다. 이 방식을 팔진법, 십진법, 십육진법으로 구현해 코드를 만들 수 있고, 수많은 문자 집합 등을 형성한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의 반도체 혁신과 철학을 관통하는 단어다. 모든 반도체 기업이 무어의 법칙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중심에 인텔이 있음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무어의 법칙은 메모리 용량이나 CPU 속도가 18개월에서 24개월마다 두 배씩 향상된다는 말이다. 고든 무어는 24개월이라고 했지만, 기술 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18개월마다 적용되면서 18개월로 통용되고 있다. 특히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오르고, 가격은 절반씩 떨어진다는 게 핵심이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왜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16GB USB의 가격이 3만 원에 육박했지만, 지금은 동일 용량의 메모리가 3천원도 하지않는다. 현재 3만 원을 주면 512GB를 살 수 있다. 지난 10년 간 18개월마다 메모리 용량은 두 배씩 오르고 가격은 반으로 떨어진 결과다. 물론 최근에는 무어의 법칙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지만, 인텔은 이노베이션 2023에서 2030년까지 유지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실리콘은 지구에서 산소 다음으로 많이 존재하는 원소다. 우리 주변에서는 흔히 점토나 모래, 석영 등의 형태로 산출되며, 반도체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다. 인텔 박물관에는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순수한 규소 덩어리, 그리고 이를 가공한 형태의 덩어리, 그리고 얇게 잘라낸 웨이퍼가 각각 전시돼있다.
전시된 대형 규소 덩어리는 순도가 99.999999%에 달하며, 지름 300mm에 무게는 122kg에 달한다. 실제로 만져본 표면은 유리를 만지듯 매끄러웠다. 그리고 얇게 잘라낸 다음, 반도체 장비를 사용해 웨이퍼 위에 회로도를 그려내면 반도체로 동작하게 된다. 모래에서 반도체를 만든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체감할 수 있다.
반도체 기업은 반도체 칩을 설계하고 판매하는 것에 전문화한 팹리스, 그리고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기업으로 나뉜다. AMD나 Arm 등 반도체를 직접 만들지 않고 설계만 하는 기업이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이고, TSMC나 글로벌 파운드리 등 위탁 제조만 하는 기업들이 파운드리 기업이다.
인텔의 경우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팹과 제조하는 파운드리를 모두 보유해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분류된다. 현재 인텔은 미국 오레건주, 이스라엘,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등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두고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같은 물질이 정해진 전기적 특성을 갖추면서 대량생산하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 아주 작은 불순물만으로도 반도체의 성질이 크게 변하기 떄문이고, 반도체의 회로를 그려넣는 선폭은 나노미터를 넘어 옴스트롬에 진입할 정도다. 따라서 반도체 제조 시설은 필연적으로 극단적인 무결성을 유지해야 하고, 향수나 스킨을 바르면 출입이 불허될 정도로 운영되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반도체에 회로를 그려넣는 식각(에칭), 패턴화된 표면을 만드는 포토리소그래피(노광공정), 금속 증착 및 웨이퍼 정렬 등 주요 제조 단계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직원들이 '토끼 정장(버니 피플)'이라고 부르는 클린룸 의류도 직접 입어볼 수 있다. 방문자는 인텔의 버니 피플을 직접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관계자를 통해 자세한 설명도 들어볼 수 있다.
지난 2018년,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대를 연 인텔 8086 프로세서의 출시 40주년을 기념해 최신 공정의 인텔 코어 i7-8086K 프로세서를 출시했다. 8086은 3천 나노미터 상당의 2만 9000개의 트랜지스터를 장착했지만, 인텔 코어 i7-8086K는 14나노미터 공정으로 제조됐고, 제곱밀도당 2014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갖고 있다. 이는 8086 프로세서와 비교해 2만 2905배 높은 밀도다. 그럼에도 가격은 당시 86달러(2018년 물가로 330달러), i7-8086K는 425달러로 출시됐다. 40여 년에 걸친 인텔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이벤트였다.
인텔 박물관에는 인텔이 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유산을 어떻게지켜나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인텔의 역사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컴퓨터의 역사와 첨단 기술의 변화를 한 눈에 접할 수 있다. 인텔 박물관은 코로나 19로 장기간 휴장한 이후 재개장했으며, 현지시간으로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비용은 무료다. 실리콘 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베이 에어리어(Bay Area)를 방문할 기회가 있고, 컴퓨터에 관심이 많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자.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