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만성 질환 해결 열쇠 ‘의료데이터 통합’ 시대 개막
[IT동아 차주경 기자] 세계 선진국의 의료 기관과 기업이 의료데이터 관련 기술을 주목한다. 환자나 질병별 맞춤형 진단·진료, 고령화 시대 의료 수요 대비와 사람들의 수명 연장, 만성 질환·암 등 난치병의 치료를 가능케 할 기술로 각광 받는 덕분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의료데이터 시장 진흥 정책을 내놨다. 업계는 의료데이터 수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분석과 활용, 결과물의 가치 산정 등 순환 생태계를 만들고 효용을 키워야 경쟁에서 앞선다고 강조한다.
의료데이터 수집과 분석, 활용은 세계 각국이 집중 육성 중인 유망 산업이다. 환자 개개인의 특성이나 질병의 유형에 맞춘 '맞춤형 진단·치료', 사람의 유전체 정보와 성장 환경 특성을 반영한 '정밀의료'를 돕는 덕분이다. 의료데이터는 고령화 시대에 사람의 기대 수명을 늘리고, 불치병으로 알려진 암과 만성 질환의 치료 효과를 높일 것으로도 기대한다.
시장조사기업 테크나비오는 세계 의료 빅데이터 시장의 연평균성장률을 12.21%로 내다본다. 이에 따라 시장 규모는 2026년까지 89억 3,000만 달러(약 11조 3,410억 원)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선진국의 의료 기관은 의료데이터의 수집과 분석, 활용 방안을 속속 마련한다. 미국 ‘올 오브 어스(All of US)’ 프로그램은 다양한 인종의 미국인 100만 명 분의 보건의료데이터를 모으는 사업이다. 영국도 2006년부터 중장년층 국민 50만 명의 의료데이터를 수집하는 '바이오 뱅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도 '차세대 의료기반법'을 제정해 의료데이터를 모으고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육성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정부도 여기에 발맞춰 의료데이터를 활용할 정책을 속속 수립, 공개했다. 보건복지부의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고도화 방안’이 대표다. 이 방안에는 100만 명 규모의 바이오 빅데이터(개인의 건강·임상·유전체 정보)를 수집, 국민이 동의 시 이를 의료 기관이나 기업에 제공하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이 포함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암 공공 데이터와 표준화된 임상 데이터를 결합, 보건의료데이터 개방과 활용 모델을 만드는 ‘K-Cure(케이-큐어)’ 사업도 한다. 정부는 연구용 보건의료데이터의 공유·활용을 중개하는 ‘보건의료 특화 데이터 중개플랫폼’도 만든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의료데이터에 더 쉽게 접근, 활용하도록 심의 절차도 간소화한다.
이 가운데 의료데이터 산업계는 데이터 수집 범위를 민간과 공공, 웨어러블 기기 등으로까지 넓히고 이를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의료데이터 수집뿐만 아니라 분석과 가치 산정 기술도 진작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느 데이터가 그렇듯, 의료데이터도 잘 쓰려면 양이 풍부하고 질이 좋아야 한다. 의료데이터의 양을 늘리려면 민간 병원이 쌓은 것,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건강보험공단같은 공공 기관이 기록한 것, 웨어러블 기기로 개인이 만드는 것을 모두 수집하고 통합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면 자연스레 개인의 의료데이터의 질도 좋아진다. 최근 케이-큐어와 같은 우리나라 정부의 의료데이터 진흥 사업도 이 추세를 따른다.
이렇게 모은 방대한 의료데이터를 잘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파편화된 의료데이터를 한데 모아 분석해야 비로소 진료와 치료의 품질을 높일 새로운 기술이 된다.
예를 들어 고혈압이나 당뇨 등 사람의 건강·수명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령화·만성 질환’은 지금까지 연구 방법이 제한적이었다. 특정 질환에만 초점을 맞춰 연구했고, 설문조사나 역학조사 등 제한된 방법으로만 의료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나마도 수집한 데이터는 한 데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나 기관별로 따로 관리했다.
개인의 의료데이터를 통합 수집, 관리하면 데이터의 양과 질을 함께 확보한다. 이를 활용하면 나이나 질환, 신체 특성과 생활 환경 등 풍부한 정보를 활용해서 개인 맞춤형 진료가 가능하다. 물론, 개인별 질환 유무와 치료 과정 등의 정보를 토대로 고령화·만성 질환별로 가장 알맞은 치료 기술을 연구하는 것도 된다.
그래서 국내외 데이터 기업은 속속 의료데이터의 분석 기술을 고도화한다. 중국 광둥성 인민병원은 환자의 개별 데이터와 병원의 의료데이터를 통합 분석했다. 환자의 발병률과 입원률, 행동 양식과 심리 상태를 분석해 병실을 배치한 결과 병동의 공실률을 5% 줄이는 성과를 냈다. 구글도 최근 의료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기술을 공개했다. 의료 영상 데이터를 분석하는 이 기술은 자궁경부암 진단 기술의 개선, 전립선암 전이 예측 모델 제작에 큰 힘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타트업 메디플렉서스가 의료데이터 분석 플랫폼 ‘올리(AllRe)’를 서비스 중이다. 이들은 연구용 고밀도 데이터베이스 구축 후 의료데이터의 분석과 활용, 나아가 의료데이터 분석 결과물의 가치 산정 기법도 연구 중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임상학회와 지자체도 요양기관종별 병원간의 의료데이터 연계, 개인건강기록 데이터의 통합 구축·분석을 시도한다. 의료데이터 통합이 고령자 대상 분산형 임상시험 연구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도입할 목적에서다. 서울경제진흥원(SBA)도 ICT 융·복합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노인환자 대상 진료근거 생성 및 치료제 연구개발 지원을 위한 솔루션 개발’을 진행 중이다.
위 사업에 참여한 신진영 건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료데이터 통합 관리·분석은 이미 여러 임상과 실험 연구에서 효용을 발휘했다. 의료데이터를 활용해 임상 정확도를 높이고 진행 시간·비용을 줄이면 환자의 안전을 높일 여러 치료 기술과 약품을 만들 수 있다. 민간과 기관의 의료데이터를 통합, 표준화하고 다양한 개인 데이터들과 접목한다면 성과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