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로 녹아내린 지포스 RTX 4090 단자 논란…소비자 과실? 설계 문제?
[IT동아 권택경 기자] 엔비디아의 최신 고성능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RTX 4090’이 뜻밖의 결함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일부 사용자들 사이에서 전원 공급 단자가 과열로 녹아내리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조사에 나선 엔비디아는 제품 결함보다는 단자를 완전히 결착하지 않은 이용자 과실에 의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을 중심으로 일부 사용자들이 지포스 RTX 4090 이용 중 오작동과 함께 전원 단자가 녹아내린 현상이 발견됐다는 글을 올리면서 불거졌다.
이번 지포스 RTX 4090은 최대 600W로 늘어난 전력 소모를 감당하기 위해 12VHPWR 전원 단자를 채택했다. 12VHPWR 단자는 차세대 파워서플라이 규격인 ATX 3.0에 새롭게 추가된 단자 유형이다.
아직 ATX 3.0 파워서플라이 제품이 많지 않은 만큼 현재 판매 중인 RTX 4090 제품은 기존 단자를 12VHPWR 단자로 전환해주는 어댑터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단자가 녹아내리는 사건이 이어지자 제품 자체나 어댑터에 결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부 소비자들은 엔비디아를 상대로 소송에도 나섰다. 지난 11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 법원에 루카스 제노바라는 원고가 엔비디아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에서 루카스 제노바는 엔비디아가 “결함이 있는 전원 케이블 플러그와 소켓과 함께 제품을 판매해, 소비자의 그래픽카드가 작동하지 않게 하고, 구매자들에게 심각한 전기 및 화재 위험을 초래했다”고 적었다. 법원은 엔비디아 측에 소환장을 발부한 상태다.
논란이 확산하자 엔비디아는 조사에 나섰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50건의 사례가 확인됐다.
아직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한 건 아니지만 엔비디아는 불량이나 설계 결함과는 선을 긋는 모습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18일 고객 지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현재까지 조사에 따르면 공통적인 문제는 단자가 그래픽카드에 완전히 연결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사례들을 들여다본 결과, 단자를 제대로 연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주장이다.
얼핏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태도로도 보이지만, 이같은 결론을 내린 건 엔비디아뿐만은 아니다. PC 하드웨어 매체인 ‘게이머즈넥서스’ 또한 수주 간의 정밀한 테스트를 거친 끝에, 단자가 녹아내리는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단자를 제대로 결착하지 않은 소비자 실책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PC부품 업체 커세어의 파워서플라이 전문가 존 지로우 또한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자체 검증 결과, 단자를 제대로 연결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다만 해당 글은 현재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삭제됐다.
제품의 설계 문제나 어댑터 품질 문제는 아닌 것으로 전문가들 의견이 모이는 분위기지만, 그럼에도 엔비디아가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장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실수를 방지하는 디자인, 이른바 풀프루프(Foolproof) 디자인이 부실한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게이머즈넥서스의 스티브 버크는 “사용자의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실수가 나쁜 디자인 때문에 규칙성을 띠고 나타난다면 사용자 실수와 디자인 실수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단자가 좀 더 단단히 결착될 수 있도록 하는 잠금쇠나 완전 결착 여부를 ‘딸각’ 소리와 같은 분명한 신호로 알려주는 디자인이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한 결착이 완전히 이뤄져야 작동할 수 있도록 센서 핀 디자인을 개선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 전원을 켜기 전에 단자가 제대로 고정되었는지 분명히 하는 추가적 방법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12VHPWR 단자를 비롯한 PCI 관련 규격 표준을 제정하는 업계 컨소시엄인 PCI-SIG 또한 이번 사안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