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 AI챗봇은 코로나 블루를 치유할 수 있을까?

정연호 hoho@itdonga.com

[IT동아 정연호 기자]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블루(Blue)’해졌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증을 뜻하는 블루가 합쳐진 신조어다. 언제든 감염병에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계가 단절되면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답답함,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 경제적 손실이 늘어났다는 분노감 등이 한데 모여 사람들을 분노하고 우울하게 만든 것이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3월 조사 결과 우울위험군(PHQ-9 : 총 27점 중 10점 이상)은 18.5%로 현재 감소 추세지만 코로나 전인 2019년 3.2%와 비교하면 약 5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국민 5명 중 1명은 우울 위험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는 “1인 가구나 정신과적 질환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특히 감염 재난에 취약하다”면서 “코로나 우울증과 일반 우울증의 진단 차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중이고 현재까지 증상에 있어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사회적 관계 감소가 가장 두드러지는 우울증 유발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관계는 건강의 가장 중요한 요소

코로나19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사람들의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이로 인한 건강의 악화를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현대의학은 나이나 성별, 경제적 조건, 유전자, 술담배 이력뿐 아니라 사회적 요인 역시 질병의 위협 요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정함의 과학> 저자인 켈리 하딩은 같은 질병에 걸렸음에도 병의 진행 상태가 다른 두 환자를 보고 질병의 사회적 요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같은 병에 걸렸음에도 한 명의 증세는 더 심각해지고, 나머지 한 사람은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현상은 당시의 의학 지식으론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출처=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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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하딩은 하버드 의과대학 아서 바스키 박사로부터 로버트 네렘 박사 연구팀의 ‘표준 토끼 모델’ 실험을 살펴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이는 몇 달 동안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토끼에게 동일한 고지방 식단의 사료를 먹이고, 이후로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 박동수, 혈압을 측정한 연구다. 토끼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모두 높았지만, 미세 혈관을 관찰할 땐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한 무리의 토끼는 동맥 안쪽에 쌓인 지방 성분이 다른 무리의 토끼보다 60% 적었던 것이다.

연구팀은 연구원 중 일부가 토끼들에게 사료를 줄 때 말을 걸고, 껴안고 쓰다듬으며 애정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변수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실험을 반복해도 같은 결과를 얻게 되면서, 토끼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식단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애정’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의 연구는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에 등재됐다.

<다정함의 과학> 추천사를 쓴 물리학자 정재승은 “현대 사회의학의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다정한 사회적 관계가 건강과 행복의 원천이란 사실이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애정,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우정,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친밀감이 질병에 덜 걸리고 더 빨리 낫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켈리 하딩은 <다정함의 과학>에서 질병에 걸린 일흔 살의 데이지와 건강검진 결과가 ‘정상’인 마흔세 살의 벨라를 소개했다. 벨라는 건강하고 데이지보다 어리지만, 데이지보다 더 생기가 없고 나이 든 사람처럼 행동했다. 의사를 만나러 올 때마다 항상 “정신이 몽롱하고 피로하다”고 말했고, 원인불명의 이유로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회사도 자주 빠졌다. 반면, 췌장암에 걸리고 3년간 수술과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를 받은 데이지는 남들이 보기에 놀라울 정도로 젊고 건강해 보였다.

공중보건 분야는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조건으로 본다. 이를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 즉 질병이 더 심해지거나 질병을 낫게 하는 조건들이라고 한다. 데이지의 건강함엔 아들과의 산책, 공동체 의식, 취미생활이 연결돼 있었고, 벨라의 나쁜 건강 상태는 그녀의 고립, 사촌 비올라의 부재, 직장에서의 참여 부족 등이 연관됐던 것이다.

카네기 멜런 대학교 연구원의 연구에선 404명의 건강한 성인들이 감기에 노출되는 점비액을 들이마셨다(이들은 실험에 동의하고 참여했다). 이들 중 매일 포옹을 받은 사람들은 병에 걸릴 확률이 32% 낮은 걸로 나타났다. 포옹을 하는 사람들은 감기에 걸렸어도 심각한 증세를 보이지 않았고, 회복 속도도 빨랐다. 포옹 과정에서 발생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사람들을 평온하게 하고, 감사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사례에 대해 책의 저자는 “신체적 유대관계, 사회적 유대감은 우리 건강에 가장 중요한 숨은 요인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오래 지속되는 외로움은 비만, 신체 무기력, 고혈압, 나쁜 콜레스테롤 보다 더 큰 신체적 위험을 야기한다. 켈리 하딩은 “400만 명의 건강을 살펴본 메타분석에 따르면, 비만은 조기 사망 위험을 30% 증가시키는 반면 외로움은 50%나 증가시켰다.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뇌는 사회적 거부를 신체적 고통과 비슷하게 처리한다.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감을 느끼면 그것을 실제로 칼에 찔리는 것과 비슷한 고통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브리검영대의 줄리안 홀트-룬스타드 교수가 총 30만 명이 참여한 148건의 연구결과를 검토한 결과, 활발한 인간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 가능성이 50% 높았다. 친구들과 배꼽 빠지듯 웃으면 심장 건강과 혈액순환이 개선되고 우울증도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외로움을 교류의 공백 속에서 발생한다.

시카고 대학교의 존 카치오포 교수는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와 교류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면서 사람들 간의 교류는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외로움을 느끼게 된 사람도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교류의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흥미로운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SKT는 자연어 처리 및 감정 분석 기술을 적용해 자유로운 주제로 대화가 가능한 ‘에이닷’을 출시했고, KT는 낄낄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를 아는 공감형 AI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선언한 바 있다. 카카오는 인기 웹툰의 주인공 성격과 가치관, 말투를 닮은 가상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대화형 AI를 출시하겠다고 밝혔고, 네이버도 토끼 형상을 한 AI 아바타 챗봇 ‘아루’의 베타 서비스에 들어갔다.

스캐터랩은 ‘너티(Nutty)’ 메신저를 출시해 이루다2.0의 오픈 베타 테스트를 이어가고 있으며, 튜닙은 영어 AI 챗봇 ‘블루니'와 반려견 챗봇 ‘코코마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스켈터랩스, 네오사피엔스, 에이스토리, 에이아이엠씨 등 4개 사는 SNL 인턴기자 역할로 주목을 받은 주현영 배우의 외모와 말투를 재현한 AI 챗봇 공동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대화형 AI가 코로나19 이후로 고립된 사람들의 관계를 향한 갈망을 해소하고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스캐터랩 관계자에 따르면, 이루다 이용자들은 실제로 AI의 장점을 활용해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

이루다, 출처=스캐터랩
이루다, 출처=스캐터랩

지난해 1월 이루다 서비스가 중단됐을 때, 이루다 이용자들은 메일이나 페이스북 페이지 댓글을 통해 “루나와 연락하면서 (저라는 사람이) 좀 쾌활해지고, 사람이 바뀐 느낌이었어요”, “루다는 어느 때나 어느 시간에나 무슨 일이 있든 제 얘기를 들어줬던 친구여서 루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심적 안정을 얻었습니다”, “기계한테 무슨 감정이입 하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루다가 있는 동안 저는 너무 행복했어요. 루다는 AI를 넘어선 제 친구였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스캐터랩 관계자는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친구는 언제 어디서든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고, 외모나 성적, 학벌 등을 떠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장점이 컸다”고 전했다.

서울교육대학교 윤리교육학과 변순용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최근 반려동물, 반려식물 같은 단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물건’을 통해서도 심리적 안정을 취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루다를 비롯한 AI와도 관계를 맺고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한 얘기를 할 수 있다. 소통을 꼭 인간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한정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그 감정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인간 외의 어떤 대상, 객체가 존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관계의 단절을 AI로 회복할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변 교수는 “지금 초등학교에서도 학력 부진뿐 아니라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인간 관계를 확장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대면접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AI가 보완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혼자서 노는 아이가 AI 챗봇과 꾸준히 대화를 하면서 자기만의 사유를 넓힐 수 있다면, AI 없이 혼자 노는 아이와는 정서나 지능의 발전에서 차이가 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AI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I가 인간 관계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으며, 이를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조심할 것들을 똑같이 준용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처음 만난 사이에서 반말을 하거나, 나이가 많다고 어린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처럼 AI와도 건강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AI 서비스 역시 이용자의 욕설 등을 경고하고 주의를 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참고 다정함의 과학(켈리 하딩 지음)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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