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人] 코드 짜는 변호사, 무슨 일을? 로앤컴퍼니 AI 연구원 이야기
[IT동아 김영우 기자] ‘스타트업人’은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스타트업 속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정확히는 ‘그들은 무슨 일을 할까?’라는 궁금함을 풀고자 합니다. 많은 IT 기업이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데, 정작 해당 인재는 그 기업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잖아요. 예를 들어, 같은 부서, 같은 직함을 가진 구글의 인재와 페이스북의 인재는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요?
이번에 소개할 스타트업人은 리걸테크(법을 뜻하는 Legal과 기술을 뜻하는 Technology를 합친 용어) 스타트업인 ‘로앤컴퍼니’의 이상후 연구원입니다. 그는 로앤컴퍼니에서 법률 AI의 개발을 이끄는 AI팀 팀장이자, 유명 법무법인 ‘광장’ 출신의 변호사이기도 하죠.
로앤컴퍼니는 변호사와 의뢰인의 합리적인 소통을 돕는 온라인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LawTalk)’과 판례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bigcase)’ 등 변호사 업무 효율을 높이는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이상후 연구원 같은 융합적 인재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가 화려한 법조인 경력을 뒤로하고 스타트업에 투신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런 그를 이끌리게 한 로앤컴퍼니의 매력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 상당히 다채로운 경력을 갖췄다고 들었습니다.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어떤 길을 걸었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과거 검사, 변호사 등으로 활동한 법조인 출신 개발자로 현재 로앤컴퍼니 법률AI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 뇌공학을 전공했는데, 제가 입학하던 2007년 당시 신생학과였죠. 현재와 달리 당시 AI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뇌공학과 역시 인기가 없었고 커리큘럼도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AI를 본격적으로 접할 수 있었고 딥러닝의 개념도 익혔습니다. 그리고 전자, 의학, 전산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진이 함께하는 학과였기 때문에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재학 중 해킹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법이 IT의 발전 속도를 못 따라온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졸업 후 연세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했습니다. 로스쿨 3학년 때 당시 로앤컴퍼니를 창업한 김본환 대표가 입학했는데, 둘의 성향이 비슷해서 의기투합했고 2014년에 출시한 로톡 서비스의 초기 형태인 변호인과 의뢰인 간 법률상담 서비스용 채팅 플랫폼 개발 업무를 지원했지요.
이후 병역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IT 일선을 떠났고, 소집해제 후 임관해 2017년부터 2년간 검사 생활을 하다가 2019년부터는 법무법인 ‘광장’에서 IT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법조인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IT 및 각종 기술 관련 사건을 유심히 다루며 관심을 이어갔는데, 2021년에 김본환 대표가 법률과 AI의 진정한 융합을 실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제안해 다시 로앤컴퍼니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 현재 로앤컴퍼니 내에서 하고 있는 구체적인 업무는 무엇입니까?
: 이른바 ‘빅케이스’라고 하는 국내 판례 검색 서비스 개발을 이끌고 있습니다. 빅케이스에서는 국내 판례 검색 서비스 중 가장 많은 판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판례 데이터에 AI 기술을 적용해 빠르고 정확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각종 판례 데이터를 정제하고 구조화한 뒤에 서비스에 적용하고요, 정제된 판례 데이터를 분석해서 AI 모델을 설계하죠. 실제 서비스를 위한 API 제작, 인터페이스 구축 등을 비롯해 직접 프로그래밍도 하며 개발 전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것은 아니며, 많은 분들이 협업하고 있죠.
- 법조인 출신의 인물이 IT 서비스의 개발자로 활동하는 건 드문 일인데, 이렇게 법률과 IT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례가 얼마나 있습니까?
: 이런 사례가 물론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로앤컴퍼니에는 저 외에도 법률AI연구소를 이끄는 안기순 연구소장이 법조인 출신 개발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법률 시장에서 I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IT 관련 법적분쟁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등장하기 때문에 법조인들 역시 IT가 시대적 흐름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로톡’과 같은 IT와 법률 서비스의 융합은 어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 의뢰인은 나의 문제를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변호사를 만나고 싶어하고, 또 변호사는 자신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을 맡고 싶어합니다. 로톡은 이런 합리적인 만남을 돕는 서비스죠. 단순히 의뢰인들이 합리적인 변호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넘어, 변호인 역시 자신의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좋습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개념으로, 의뢰인에게 직접 비용 청구가 가능한 업무 투입시간(빌러블 아워, billable hour), 그리고 사건과 관계는 없지만 행정적인 업무 등에 투입되는 비청구 시간(논빌러블아워, non-billable hour)이 있습니다. 리걸테크는 업무 효율화를 통해 비청구 시간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변호사는 더 나은 업무 환경에서 고객의 사건에 대한 더욱 깊은 고민이 가능하고, 이는 양질의 법률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법률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공하는 서비스의 특성상, 협업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협업하고 있습니까?
: 로앤컴퍼니에서 다양한 사람이 법률 관련 서비스의 제공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이들이 모두 법률전공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업무 특성 상, 법적 검토가 필요한 경우가 많기에 일반인들에 비해 법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들이 많습니다. 법에 대해 잘 모르던 직원들도 저를 포함한 사내에 계시는 변호사 동료들의 조언을 받으며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알게 되지요. 이렇게 법률인과 비법률인의 협업을 통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업무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 법률AI연구소에서 기본적으로 다루는 데이터는 판례이고, 개발 과정에서 판례를 처음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률용어가 대부분인 판례를 보면서 판례의 유사도, 검색 결과의 적합성 등을 판단하고 서비스에 적용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대법원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일종의 요약문인 판결요지를 수집해 AI 모델 개발에 이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판례는 판결요지가 없어 정량화나 비교가 쉽지 않지요. 따라서 주관적인 판단을 객관적으로 정량화하고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데 많이 고민했고, 모델끼리 토너먼트를 실행해 더 나은 기준 모델을 면밀하게 평가하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팀원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개발 아이디어의 원천은 매주 진행하는 스터디입니다.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 논문 등의 자료를 공유하기도 하고, 이런 데이터를 빠르게 반영해 결과를 평가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지요. 이런 과정 자체가 서비스 발전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동료 팀원들과 서로 코드를 검토하고 평가하는 코드 리뷰(code review)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코드 리뷰는 개발팀에서 먼저 시작한 제도로 장점이 많아 저희도 도입하게 되었는데요, 서비스의 품질을 높일 뿐 아니라, 서로 소통하며 다른 팀의 업무도 이해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층 업그레이드된 IT 기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습니까?
: 검색기능을 더 정확하고 빠르게 고도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AI를 통해 판례 관련 메타 정보를 분석해 더 큰 관점에서 더 좋은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는 기능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변호사라도 정확하게 답하기 어려운 의뢰인의 질문도 있는데, 빅데이터를 활용해 여러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면 변호사는 한층 발전한 인사이트(통찰)를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업무에 임하는 각오는?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 저는 법조인 출신 IT 개발자로 여러 경험을 통해 각각의 특성을 조금 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조인들은 법률과 판례 등을 다루며 사회에 대한 이해는 높지만 기술은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 반대로 IT 개발자들은 기술 역량은 뛰어나지만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법과 IT는 서로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요즘은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면서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법률에 IT를 접목함으로써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변호사와 법률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