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전자상가에서 혁신을 실천하다 - 이노퍼스트 이희원 대표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서울 용산구의 '용산전자상가'는 1990년 대까지 명실공히 우리나라 전자유통의 핵심이자 메카였다. 물론 현재도 몇몇 상가에서 전자기기 등이 거래되고 있지만, 이전의 호황과 부흥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상가 건물 자체가 없어지거나 많은 상가들이 진작에 문을 닫았다.

컴퓨터 및 부품 등의 가격이 완전 공개, 비교되어 판매 수익이 크게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유지한 구식의 유통 방식을 그대로 고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혁신(innovation)'이 모든 산업 부문에 절실한 시대인 만큼, 용산 전자상가에도 혁신적 유통 방식, 그를 위한 도전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용산전자상가에 몸 담은지 오래된 '용산키드' 중에는 과감한 혁신 변화를 통해 긍정적 결과를 이뤄낸 이들도 더러 있다. 시장 변화를 감지하고 2002년부터 유통 구조의 체질 개선을 단행한 '이노퍼스트' 이희원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노퍼스트 이희원 대표
이노퍼스트 이희원 대표

서울 용산구 원효로 전자상가 일대, 어수선한 주변 분위기와 달리, 잘 정돈된 카페 같은 아담한 건물이 눈에 띈다. 2016년에 신축한 이노퍼스트 사옥이다. 용산 전자상가 내 유통 중소기업으로는 대단히 혁신적인 사례다.

이노퍼스트
사옥
이노퍼스트 사옥

전자상가 유통기업(혹은 매장)은 수익 창출을 위한 판매 활동에만 전념할 수 밖에 없고, 그런 만큼 기업운영 방침이나 수익전략 쇄신, 직원복지 개선 등은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이희원 대표는 이노퍼스트 설립 초기부터 '수익'보다는 '만족'에 뿌리를 두기로 했다. 유통기업이라도 당장 눈 앞에 수익보다는, 그에 가려 뒷전으로 밀리는 개인 만족을 찾고자 했다. '용산바닥'에서는 위험한 시도였다. (어떤 이들은 무모하다고도 여겼을 터다.)

"1998년 용산에 처음 발을 들여 유통시장을 발로 뛰며 체험한 후에, 소비자보다는 용산상가 대상의 딜러 영업에 집중해야 되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당시 등장한 가격비교 서비스(다나와 등)가 큰 인기를 끌면서 유통/판매시장에 기폭제가 됐지만, 머지 않아 소비자 판매 수익에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관련 도메인을 사고 딜러용 쇼핑몰 사이트를 만들면서 다니던 회사를 나왔습니다."

그날 하루 반나절만에 세운 사업계획을 실행하려 다리품을 팔던 중, 길가에 내걸린 한 건설사의 현수막을 보고 회사이름을 결정했다.

'이노베이션(혁신)'이었다. 용산전자상가도 수익보다 혁신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이노퍼스트(inno first)'라 지었다. 그후 '혁신'은 이 대표 자신의 이름보다 더 선명하게 머리에 새겨졌다.

"용산의 전형적인 판매 쇼핑몰 기업이었지만, 어디보다 혁신적이길 바랐습니다. 뜬구름 잡는 혁신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혁신을 찾으려 했고, 그건 다름 아닌 '내 회사'였습니다. 몇 명 안되는 직원이지만, 그들이 만족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 업무 관계자들을 흔쾌히 초대할 만한 자랑스러운 회사이길 원했습니다."

그에게는 '혁신'이었겠지만, 용산 지인들에게는 '무모'로 비쳤다. 용산 내 소규모 유통기업이 근무환경 개선에 적극 투자한다는 건 당시로서는 비현실적 이상에 가까웠다. 실패 사례도 있었다. 실패하면 무모지만, 성공하면 혁신이 된다는 걸 확신했고, 과감하지만 소신 있게 밀어붙혔다.

"예상했던 대로 회사 운영과 자금 흐름에 적잖은 타격이 있었습니다. 얼마 간은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작은 혁신의 결과는 이내 만족할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매출도 서서히 증가했고 적자폭도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용산의 작은 유통회사지만 회사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줄 수 있었습니다."

1억 원 이상을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투자했다. 물론 무리하게 빚까지 얻어 추진한 건 아니다. 수익 중 일정 부분을 지속 재투자했다. 용산의 소규모 유통회사라면 대개 수익 대부분을 임직원 급여로 분배하기 급급하기 마련인데, 이 대표와 이노퍼스트는 '일할 맛 나는 회사 만들기'에 동의하고 하나씩 조금씩 실천했다.

이노퍼스트 사내
이노퍼스트 사내

이노퍼스트 휴게/미팅공간은 3층에 마련돼, 각 층 임직원이 접근하기
편하다
이노퍼스트 휴게/미팅공간은 3층에 마련돼, 각 층 임직원이 접근하기 편하다

"어지럽고 복잡한 공간, 비좁은 업무 환경, 어수선한 분위기를 중점 개선해, 단 10분이라도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외부 관계자를 사내로 초대해 업무를 추진하니 그 결과도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혁신이었습니다."

이노퍼스트는 그 후로 크고 작은 성과를 내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국내외 제조사의 다양한 제품을 유통, 판매했고 매출도 높았다. 회사 운영은 안정세로 접어들었고, 직원 수도 점차 늘어 갔다.

이노퍼스트는 200억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강소 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대표 포함 2명으로 시작해, 현재 40여 명의 임직원이 10여 개 팀으로 나뉘어 근무하고 있고, 별도의 기업부설연구소도 설립, 운영 중이다.

설립 초기에는 생활, 식품, 잡화 등 많은 품목의 제품을 다뤘다. 개선된 업무환경에서 만족할 성과도 거둬, 용산 바닥에서는 제법 성공한 유통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서 이 대표는 또 한번의 혁신을 구상한다.

"회사가 안정 궤도에 오를 무렵, 급작스런 건강 악화로 한달 가량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심각한 간경화가 왔고, 절대 휴식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지금의 이노퍼스트의 모습을 갖추기에 결정적 계기가 된 입원이었습니다."

입원으로 회사 대표가 2주 가량 자리를 비우니 회사 운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장/대표 중심 회사'의 전형적인 맹점이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상에서 다시 노트북을 잡았다. 불안해 하는 직원과 관계자들을 생각하니 마냥 누워있을 수 없었다.

"기본 체력은 갖췄으니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판단했습니다. 이것저것 되는 대로 판매할 게 아니라, 흔히 말하는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IT 중심의 시장 흐름에 따라, 취급 품목을 IT/전자/기술 분야로 정리, 재편하고, '한 우물'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어찌 보면, 운영자/경영자로서 업무환경 개선보다 더 어려운 혁신이다. 문제 없이 잘 판매되는 제품군을 정리하고, 불확실한 시장 가능성을 예상해 주력 제품을 재배치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야 할 언덕이다.

"오히려 병상에 있으면서 꼼꼼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입원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렇게 밤낮으로 고민할 수 없었을 거예요. 우선, 매출 규모에 상관 없이,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하지 않아도 될 일' 등으로 단순하게 구분하고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출이 높다 해도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은 과감히 접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건강을 되찾고 한달 후 퇴원한 이 대표는, 병상에서 세운 '2차 혁신 계획'을 즉시 시도했다. 사업 분야를 IT/전자 관련 하나로 집중하는 대신, 그 안에서 영업 영역을 넓히려 했다. 또한 하드웨어 및 기기 편중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 솔루션, 서비스 관련 영역을 확보해갔다. 소비자용, 기업용, 산업용, 전문용 시장을 아우르는 'IT 전문 유통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이다.

삼성전자, LG전자, HP, 델, 레노버, 에이수스 등 국내외 대형 IT기업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활동하며 인상적인 성과를 거뒀다. 특히 HP 구형 데스크탑 약 1,300대를 단번에 납품, 판매하며, 체질 개선 혁신이 성공적인 시도였음을 증명해냈다.

"물론 사업 운이 있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지만, 시도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운도 따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코 운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후로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노퍼스트는 2016년, 단독 사옥으로 확장 이전하며, 5층 전층을 직원들이 자유롭게, 편안하게 활용토록 했다. 3층 전체를 휴게/미팅/소통공간으로 대형 카페처럼 꾸몄다. 회사의 주인은 사장/대표가 아니라, 직원 자신들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

2018년 현재 이노퍼스트는 디스플레이(디지털 사이니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3D 입체영상 디스플레이다. 3D안경 없이 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기업 홍보나 전문 교육 콘텐츠를 노출한다.

최근 그들이 수입, 공급하고 있는 'zSpace'는 혁신적인 디지털 교육이 가능한 3D 교육 솔루션이다. VR(가상현실) 혹은 AR(증강현실) 솔루션과 유사한데, 전용 글래스와 전용 스타일러스펜을 이용해 가상 물체를 실체와 다름 없이 다룰 수 있다. 기계공학(설계), 건설(디자인), 의료(수술) 분야 등에 최적화된 교육 솔루션으로, 이미 해외에서는 의과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

3D 입체영상으로 가상환경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3D 입체영상으로 가상환경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영화/게임 등)에서 3D 입체영상은 확산에 한계가 있지만, 상업 분야(광고 등)나 교육 분야(건설/기술/의료 등)에서는 활용 범위가 넓고 시장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zSpace는 여러 디스플레이/트래킹/입력 기술이 접목된 세계 최초의 통합형 디스플레이 기기입니다. 국내에는 아직 도입사례가 없는데, 이노퍼스트를 통해 올해부터 확산될 예정입니다."

이처럼 이희원 대표와 이노퍼스트의 다음 혁신은 '제품'이다. 시장에 혁신이 될 제품을 선별해 공급하려 한다. 남들과 같은 전략으로 같은 제품을 취급해서는 '이노퍼스트'라는 이름이 무색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회사 혁신, 업무 혁신을 시도했으니 이제 제품 혁신에 도전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혁신적 제품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교육 분야의 zSpace를 중심으로, 상업 분야에는 신개념 POS(매장용 판매기기)를, 생활 분야에는 스마트 숙면/수면 기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 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야 혁신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은, 결과가 좋아야 혁신으로 받아들인다. 즉 결과가 예측되면 혁신이라 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용산전자상가의 유통 방식은 절대로 그러했다. 수익이 예측돼야 움직였다. 혁신은 있을 수 없었고 지금의 쇠퇴 단계에 이르렀다.

"시도하고 경험해 보니 혁신이 그리 거창하고 화려한 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혁신이라고 말하니 거창하게, 화려하게 보이는 것뿐이라 생각합니다. 결과야 어떻든 작은 것이라도 '시도'하는 그 자체가 혁신이라 믿습니다."

이 대표는 이후, 쇼핑몰 결제 방식의 혁신을 품고 있다. 무엇이 나올지 기대해봄직하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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