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DONGA

[IT CEO 열전] 하버드 중퇴한 MS 개발자, 게임 유통의 거장으로 - 게이브 뉴웰

이상우

[IT동아 이상우 기자] 여느 산업에서든 마찬가지겠지만 게임 인더스트리에서 소프트웨어(게임) 유통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제대로 된 유통망이 없다면 원하는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없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유명한 PC 게임 역시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국내에 있는 대형 유통사들을 이용했다. 이는 PC 게임뿐만 아니라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체적으로 서버를 운영하거나 판로를 확보하기 어려운 개발사들은 넥슨, 넷마블, 카카오 등 대형 퍼블리셔 사업자들과 손잡고 자사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여담이지만 과거에는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 사용에 대한 죄의식이 약해 유저 상당수가 ‘와레즈’ 등의 불법 공유 사이트라는 유통 채널을 통해 PC 게임을 내려받았다. 용산 상가와 같은 대형마트, 동네 소규모 게임방에서도 PC 게임의 구매는 가능했는데 이는 소수의 게임 애호가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게이브 뉴웰(Gabe Logan Newell)이 설립한 밸브 코퍼레이션의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 덕분에 PC 게임 유통 방식은 크게 바뀌게 되었다. 스팀은 쉽게 말해 앱 장터다. 안드로이드의 구글 플레이 스토어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한국에서도 50만 명의 유저가 사용 중일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게이머들은 스팀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PC 게임을 검색하고, 구매해서 자신의 PC에 설치할 수 있다. 대규모 퍼블리셔와 손잡지 않아도 스팀을 통해 전 세계 사용자에게 소프트웨어를 배포할 수 있기 때문에 인디 게임 개발자를 중심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게이브 뉴웰
<밸브 코퍼레이션을 세운 게이브 뉴웰>

게이브 뉴웰은 밸브 코퍼레이션의 설립자이자 현 최고경영자(CEO)다. 41억 달러(4조6813억 원) 내외의 자산을 보유해 포브스 기준 미국 부자 순위 134위(2016년 10월 기준)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약 4억 달러(4567억 원)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파멸(Doom) 속에서 가능성을 보다

게이브 뉴웰은 하버드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던 중 MS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아 일을 하던 도중인 1983년 학교를 중퇴했다. MS에 입사해서 지낸 3개월 동안 배운 것이 하버드대에서 3년 동안 배운 것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 자퇴의 배경이었다. 이후 13년 동안 윈도 운영체제(OS)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윈도 1.01, 윈도 1.02, 윈도 1.03 등 다양한 PC용 OS 개발에 참여했다.

이렇게 OS 개발에 집중하던 게이브 뉴웰은 이드 소프트웨어의 FPS(1인칭 시점) 게임 '둠(Doom)'과 '퀘이크(QUAKE)'를 통해 비디오 게임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한 때 둠이 MS의 OS보다 더 잘 팔렸던 것이다. 게이브 뉴웰 입장에서는 또 한 번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버드대에서 배운 것보다 MS에서 배운 것이 많아 OS 개발자로 전업해 학업까지 포기했는데, MS의 OS보다 더 뜨거운 것이 바로 게임 소프트웨어였던 것이다.

학업을 포기할 정도인데, OS에서 게임 개발로 전향하는 것쯤이야 어려울까. 둠과 퀘이크의 성공을 지켜본 게이브 뉴웰은 향후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비디오 게임이 이끌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만의 게임 개발사를 세우기 위해 1996년 친구인 마이크 해링턴과 함께 MS를 퇴사한 후 밸브 코퍼레이션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둠
<이드 소프트웨어가 개발한 둠은 FPS라는 장르를 개척한 게임이다>

FPS 게임을 새롭게 정의한 '하프라이프' 시리즈

게이브 뉴웰이 밸브 코퍼레이션을 세우고 가장 처음 내놓은 작품은 1998년 출시한 하프라이프다. 하프라이프는 발매 당시 여러 게임 전문 매체가 선정하는 올해의 게임상(GOTY, Game of the Year)을 수상했고,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 등 게임 전시회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프 라이프
<게이브 뉴웰과 밸브 코퍼레이션의 첫 작품인 하프라이프는 스토리를 게임 내에 잘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출처=스팀)>

하프라이프는 기존의 게임과 달리 스토리를 연결하는 '컷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둠의 경우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텍스트로 배경 스토리를 설명해주었다. 요즘 게임 역시 이러한 방식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반면 하프라이프 시리즈는 게임 속 주인공이 NPC를 만나 대화하며 스토리를 이어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게임 스토리를 게임 진행 중에 적절히 녹여낸 것이다. 단순히 게임의 배경 스토리를 설명해주는 수준이 아니라, 사용자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주인공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으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게이브 뉴웰과 밸브 코퍼레이션은 하프라이프를 개발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초로 병과와 역할 군 시스템을 도입한 FPS 게임 ‘팀포트리스’와 밀리터리 FPS 게임의 대표작인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중견 게임 개발사로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팀포트리스가 도입한 역할군 시스템은 오늘날 블리자드의 ‘오버워치’까지 이어지며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경우 하프라이프의 *모드(MOD) 가운데 하나였던 것을 정식 게임으로 출시한다는 결정을 내려 큰 성공을 거뒀고, 지금까지 꾸준히 후속작을 개발하고 있다. MOD란 Game Modification을 뜻하는 말로, 원작 게임의 각종 요소를 사용자가 직접 변형하거나 추가해 새롭게 제작한 2차 창작 게임을 의미한다. 이후 밸브 코퍼레이션은 포털, 레프트 4 데드, 도타 2(Dota 2) 등 다양한 게임을 출시해서 성공시키며 입지를 다졌다.

밸브 코퍼레이션이 개발한 게임은 e스포츠에서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국내에선 블리자드의 게임이 e스포츠로 각광받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선 밸브 코퍼레이션이 개발한 카운터 스트라이크나 도타 등이 블리자드가 개발한 게임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소프트웨어 유통망에 혁신을 가져온 '스팀'

2004년 게이브 뉴웰과 밸브 코퍼레이션은 게임 유통 플랫폼인 스팀을 시장에 선보였다. 원래 스팀은 밸브 코퍼레이션이 출시한 게임들을 통합 관리하고, 게임 업데이트시 서버에 걸리는 부하를 줄이기 위해 개발한 서비스다.

하지만 2005년 처음으로 타사의 인디 게임인 '다위니아'를 스팀을 통해 유통하기 시작하면서 게임 유통 플랫폼으로 전환을 꾀하기 시작했다. 2008년 179개, 2009년 336개, 2010년 264개의 신작 게임을 유통했다. 게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이다. PC 오프라인 유통망의 붕괴로 갈 곳을 잃은 PC 게임들이 스팀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 해에만 1750여 개의 게임이 출시됐다. 사실상 유통망 독점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게이브 뉴웰과 밸브 코퍼레이션은 지속적으로 유통하는 게임을 확충해 12년이 지난 현재 1만6000여개의 게임을 유통하고 있다.

스팀

현재 액티비전블리자드, 일렉트로닉 아츠(EA) 등 자체 게임 유통 플랫폼을 보유한 대형 개발사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의 모든 PC 게임이 스팀 플랫폼을 통해 유통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는 게이브 뉴웰이 만든 스팀에 대해 '이 디지털 배포 플랫폼(스팀)은 비디오 게임 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유통 채널'이라고 평가했다.

스팀의 성공 요인은 뭘까. 일단 사용자 편의성을 들 수 있겠다. 과거 게임 전문 쇼핑몰에서 CD를 구매해 PC에 설치하던 방식과 달리 스팀은 한 플랫폼 내에서 통해 게임을 찾고 바로 구매해 설치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렇게 구매한 게임은 언제 어떤 PC에서든 스팀을 통해 다시 설치하고 일부 게임의 경우 저장했던 게임 플레이까지 모두 불러와 사용할 수 있다.

결제 편의성 역시 이런 성장을 도왔다. 신용카드를 미리 등록해두면 클릭 몇 번 만으로 쉽게 결제할 수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국내에서 정식 서비스를 출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지원하거나 문화상품권 결제를 지원하는 등 소비자의 패키지 게임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출시한지 몇 년 지난 게임의 경우 게임 전문 판매점에서도 구하기 힘든 반면 스팀에서는 과거에 출시된 게임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이 덕에 게임 개발사는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또, 수시로 이뤄지는 할인 행사 역시 특징으로, 이런 할인 때문에 게이머들은 게이브 뉴웰에게 '연쇄 할인마'라는 별명까지 붙여주기도 했다.

환불 정책 역시 색다르다. 게임을 구매한지 2주일 이내, 게임 총 플레이 시간이 2시간 미만이라면 게임 구매를 철회하는 환불도 가능하다. 즉 '해보니 재미가 없다'는 이유도 환불 사유가 된다. 구매 철회 요청 역시 전용 메뉴를 두어 쉽게 진행할 수 있다.

스팀의 이러한 성공을 벤치마킹 해서 블리자드의 배틀넷(Battle.net) 앱, EA의 오리진 등 기존의 게임 개발/유통사도 다양한 전자 소프트웨어 배급(ESD, 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플랫폼을 갖추었으나, 스팀과 비교해 결제 편의성, 커뮤니티 등의 부가 기능에서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특히 EA의 경우 '지나친 할인은 게임의 가치를 떨어트린다'며 밸브 코퍼레이션의 할인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곧 자신도 최대 75%에 이르는 할인 이벤트나 고전 게임을 무료로 배포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밸브 코퍼레이션의 수평적 기업 문화

이러한 파격적인 정책은 게이브 뉴웰 자신이 회사의 주인인 비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밸브를 오늘날 위치에 있게 해준 하프라이프는 게이브 뉴웰 자신이 MS에 근무하며 모았던 돈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후에도 외부 간섭을 막기 위해 게이브 뉴웰은 외부 투자를 전혀 받지 않고 밸브 코퍼레이션을 운영했다.

기업 문화 역시 독특하다. 설립 초기에는 일반적인 게임 개발사와 유사했으나, 게임 유통 플랫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구조가 점차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회사에는 경영진이 없으며 직원은 부서나 팀을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

게이브 뉴웰은 직원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한편, 그들이 개발한 게임이나 운영 상의 실수에 대해서도 확실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모든 직원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밸브 코퍼레이션에서 하드웨어 개발을 담당했던 제리 엘스워스는 수백 명이 넘는 기업에서 수평 구조는 의사소통의 부재를 초래하고, 자율적인 문화는 직원이 어려운 일을 피하고 더 쉬운 일만 찾게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게이브 뉴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게이머들 사이에서 게이브 뉴웰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모드의 유료화 정책을 시도했던 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드는 기존 게임의 소스를 조금 고쳐, 원작에는 없던 스토리나 게임 진행 방식을 도입한 2차 창작물이다. 게이브 뉴웰은 2015년, 스팀을 통해 유통하던 게임 중 모드 개발이 활발한 '엘더스크롤5 : 스카이림'의 모드에 유료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카이림의 모드를 개발한 사용자에게 수익의 25%를 나눠주고, 나머지 75%를 개발사인 베데스다와 유통사 밸브 코퍼레이션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상당히 합리적인 제안인 것처럼 보였으나, 취미 영역이었던 모드의 유료화, 초보 모드 개발자의 진입 장벽 상승, 타 게임의 소스 도용 문제 등을 이유로 많은모드 개발자와 사용자의 반발을 샀다. 결국 게이브 뉴웰은 사흘 만에 모드 유료화 정책을 철회했지만, 밸브 코퍼레이션에 대한 게이머의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이에 대해 게이브 뉴웰은 '돈은 커뮤니티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며 사용자를 설득하려 했지만, 한 유저가 그에 대한 반박으로 '모드 커뮤니티가 10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선의만으로 성공적인 모드를 만들어왔는데, 거기에 당신이 끼어든 것이다'고 반박했다.

물론 게이브 뉴웰의 의도는 좋았을 것이다. 모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개발사가 원작 게임에 대한 몰딩(변형 작업)을 허용해줘야 하며, 원작에 새로운 옷을 입힌다는 개념이다. 즉 원작이 존재하지 않으면 모드는 존재할 수 없는 만큼, 모드에서 발생한 수익을 개발사가 나눠 갖는 것이 합당하다. 또, 모드 개발자가 수익을 얻으면 이러한 모드 개발 문화가 더 활성화 되면서 제2의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게임도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용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인 정책 도입을 한 탓에 게이브 뉴웰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돈만 밝히는 '자본주의의 돼지'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대형 퍼블리셔 없이도 해외 진출이 가능한 플랫폼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팀은 여전히 대표적인 게임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유명 패키지 게임뿐만 아니라 인디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 역시 스팀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스팀을 활용하면 대형 퍼블리셔의 도움 없이도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국내의 경우 펄어비스가 개발한 온라인 게임 '검은사막'이 스팀을 통해 북미 지역에 진출한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또, 블루홀의 서바이벌 TPS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는 정식 출시 버전이 아닌, 유로 베타 테스트 버전(앞서 해보기, Early Access) 만으로 현재 전 세계 700만 장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를 다루는 게임 방송은 인터넷 게임 방송 서비스 ‘트위치’를 기준으로 동시 시청자 수가 35만 명에 이를 정도다. 배틀그라운드는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개발사가 특별한 퍼블리셔 없이도 스팀을 통해 전 세계 게이머에게 알려진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배틀 그라운드
<밸브를 통해 유통돼 전 세계 700만 장이 팔린 배틀그라운드>

게이브 뉴웰이 차세대 먹거리로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가상현실 게임이다. 이를 위해 밸브 코퍼레이션은 HTC와 협력해 '바이브'라는 가상현실 기기를 선보이고 스팀을 통해 가상현실 게임 유통을 시작했다.

게이브 뉴웰은 "가상현실이라는 분야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이며, 이는 가상현실 개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자 두려워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강력하고 새로운 미디어를 시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성장하며, 새로운 미디어를 정의하는 일은 스릴 있는 도전이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