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코어 i7(블룸필드) 들여다 보기
큰맘 먹고 코어 i7이 탑재된 컴퓨터를 지르기로 한 당신은 이미 '강심장'이다. 코어 i7이 출시 된지 1년이 넘었지만(2010년 초 현재), 아직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코어 i7 컴퓨터를 구입한다면 ‘현존 CPU 중 최고의 사양을 손에 넣었다’는 자부심이 강하게 생길 것이다.
대부분의 컴퓨터 사용자는 PC의 성능을 CPU보다는 그래픽카드나 메모리가 더 깊게 관여하는 줄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픽 카드가 3D 그래픽 성능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메모리가 부팅 속도나 기타 여러 작업을 빨라지게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컴퓨터의 전반적인 성능을 좌우하는 건 누가 뭐래도 CPU다.
왼쪽부터 코어 i7 920, 940, 965EE
'누구나 갈 수 있었다면 나는 해병대에 지원하지 않았다'라는 자신들만의 끈끈한 '프라이드'로 그토록 모질고 험한 훈련을 이겨내고 당당히 제대하는 해병 특전대 대원처럼,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CPU'가 아니기에 코어 i7은 사용자로 하여금 강한 자긍심을 갖게 한다.
지금까지 발표된 코어 i7은 출시시기에 따라 2분류로 나눠볼 수 있는데, 초기에 나온 965EE, 940, 920, 860과 나중에 나온 975EE, 950, 930(출시예정), 870 등이다. 이 분류는 처음 선보인 라인업 제품과 그 후속 제품의 연결선으로 보면 된다.
짝을 지어 보자면, 965EE-975EE, 940-950, 920-930(출시 예정), 860-870 순이다. 여기서 마지막에 말한 860-870은 이번 기사에서 빼도록 하겠다. 같은 코어 i7에 속한 CPU이지만 코드명 블룸필드가 아닌 코드명 린필드 제품으로 엄밀히 말하면 같은 영역의 CPU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출시된 코어 i7의 공통적인 사양은 45nm 공정으로 제작되었으며, 쿼드(4개)코어에 하이퍼 쓰레딩 기술로 8개의 쓰레드를 가지고 있다. L2캐시는 이전의 CPU보다 줄었지만(256KB x 4의 용량에 불과하다), 대용량의 L3캐시가 있어 전체적인 성능은 더욱 향상되었다. 더불어 메모리 컨트롤러의 성능 향상으로 3개의 채널(트리플 채널)을 구현, 보다 빠른 처리 속도를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코어 i7 920과 후속 제품인 975EE, 그리고 950 모델만 설명하겠다. 940과 965EE는 후속 제품(950과 975EE)이 출시됨으로 인해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930은 아직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제외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먼저 코어 i7 제품 군의 맏형인 975EE를 한번 보자. 'EE'는 '익스트림 에디션(Extreme Edition)'의 약자로, '익스트림'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게 인텔 프로세서 개발/제조 기술 중 성능 좋은 제품만 속한다.
코어 i 시리즈 이전에도 익스트림 에디션은 존재했다
위 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세 모델은 클럭 속도와 QPI(Quick Path Interconnect) 속도로 구분되고 있다. 클럭 속도야 소수점 단위의 차이라 큰 의미 없어 보이지만, QPI 속도는 920, 950, 975EE모델별로 향상되는 비율이 실제 구입가격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 이 'QPI 속도'가 과연 뭐길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워낙 설명할 내용이 많은 기술이니 그림을 보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기존 인텔 CPU의 데이터 전송 구조
위 그림은 코어 i7 이전의 인텔 컴퓨터 시스템 구조이다. 그림에는 CPU(Processor)가 2개이니 코어2 듀오 이상의 모델이라 생각하면 된다. CPU는 데이터 처리를 위해 메모리와 항상 통신해야 하는데, 이때 통신 중계를 '메모리 컨트롤러'라는 장치가 담당했다. 이러한 CPU-메모리간 통신 경로를 우리는 그 동안 FSB(Front-Side Bus)라고 불렀다. 따라서 이 FSB라는 통신 경로가 넓으면 넓을수록 CPU는 메모리와 보다 원활하게 통신할 수 있게 되어, 결국 전체적인 데이터 처리 성능이 높아졌다. 즉, 코어 i7 이전의 인텔 시스템은 이렇게 CPU와 메모리 컨트롤러가 따로 존재했었다(참고로 그림 하단의 I/O 컨트롤러는 그래픽 카드 등의 각종 주변기기와의 통신 중계를 담당한다).
코어 i7의 데이터 전송 구조
그러다가 코어 i7이 출시되면서 인텔 시스템의 CPU-메모리간 데이터 전송 방식이 크게 변했다. 즉, 기존에 독립되어있던 메모리 컨트롤러가 CPU 안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데이터 이동 경로가 줄어들어 그만큼 성능 향상과 병목현상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을 얻게 된다. 현재 가장 빠른 CPU의 FSB가 1,333MHz임에 비한다면, 975EE는 이론적으로 12.8GHz로 약 10배 정도 빠른 CPU인 셈이다. 이러한 코어 i7의 전송 기술을 '퀵패스 인터커넥트' 즉 QPI라 한다(1GHz = 2GT/s이다).
코어 i7의 모델별 가격차이가 QPI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위 표에서도 볼 수 있지만, 920 모델은 2.5GT/s, 950 모델은 4.8GT/s, 965EE 모델은 6.4GT/s의 QPI 전송 속도를 제공하고 있어, 기존의 인텔 시스템보다 월등히 향상된 성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이러한 전송 기술은 인텔의 QPI가 시초는 아니다. AMD는 이미 이전부터 '하이퍼 트랜스포트'라는 개념으로 자사 CPU 제품군에 적용해오고 있었다. 기술 개념으로 본다면 양사의 두 기술은 쌍둥이라 할만큼 유사하다. 따라서 AMD의 전송 기술을 인텔이 그대로 차용했다는 비아냥 섞인 소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AMD의 데이터 전송 기술인 '하이퍼 트랜스포트'
참고로, 위 그림에서 메모리 컨트롤러가 포함된 칩을 통상 노스-브릿지(North-bridge) 칩으로, I/O 컨트롤러를 사우스- 브릿지(South-bridge) 칩으로 규정하고, 이 두 개의 칩을 묶어 '칩셋'이라고 부르고 있다.
코어 i7에는 QPI 전송 기술 외에도 새로운 처리 기술이 적용되었는데, '터보 부스트 모드'라는 각 코어의 성능을 분산/집중시키는 기술이 그것이다. 이렇듯 코어 i7은 그 동안 CPU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기술을 필두로 괄목할 만한 성능 향상을 이루었다. 사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은 ‘핵심적인 부분’만 다룬 것이다. 아직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아무리 신기술이라 해도 역시 100만원이 넘는 가격(코어 i7 975EE)은 일반 사용자에게 어마어마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구입하겠다고 결정했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구입하라. 서두에도 말 했듯이, 모두가 갈망하지만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CPU가 바로 인텔 코어 i7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 코어 i7을 뒷받침할 칩셋 'X58'
앞서 설명한 코어 i7이 지닌 새로운 데이터 전송기술, 터보 부스트 모드 등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칩셋이 필요하다. 항상 CPU와 칩셋은 '실과 바늘'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X58 칩셋만 구입하는 건 아니고, 아래 사진과 같이 X58 칩셋이 탑재된 메인보드를 준비해야 한다.
메인보드 생김새는 기존 컴퓨터 메인보드와 다를 바 없고, 현재 인텔을 비롯해 아수스, MSI 등의 제조사에서 X58 칩셋 메인보드를 제작, 판매하고 있다. 역시 코어 i7과 마찬가지로 일반 기존 컴퓨터 메인보드와는 가격 비교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고가이다.
일반적인 컴퓨터 메인보드가 대부분 10만원 내외임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돈의 값어치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일반 사용자에겐 비싼 제품이다. 가장 비싼 '아수스'의 '램피지2 익스트림'의 경우, 제품 자체에서 부티가 철철 넘칠 정도로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메모리도 바꿔 바꿔~ DDR3 SDRAM 메모리의 본격 가동
코어 i7 시스템에서는 메모리도 기존 DDR2 제품이 아닌 DDR3 SDRAM을 사용해야 한다. 겉모양은 기존 컴퓨터 메모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DDR2 메모리와 핀수는 240개로 동일하지만 아래 그림과 같이 핀 중간 홈의 위치가 다르다. 따라서 구입 시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DDR3 메모리는 현재 다양한 제조사에서 여러 모델로 출시, 시판되어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코어 i7 출시되던 즈음에는 가격이 높았지만 현재는 많이 안정되어 구입해도 큰 무리가 없다(되려 DDR2의 가격이 DDR3보다 높은 기현상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전문 그래픽 작업용이 아니라면 2GB 정도의 메모리로도 부족함이 없으니 무턱대고 그 이상을 구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코어 i7은 '트리플 채널'을 제공하니 메모리 3개를 한 쌍으로 장착해야 제대로 성능을 만끽할 수 있다.
그 밖에...
CPU와 메인보드, 메모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은 기존 형태를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 그래픽 카드 역시 상당한 비용 지출의 '원흉(?)'이기도 한데, 코어 i7 성능에 알맞은 그래픽 카드를 고르다 보면 더욱 그러하겠다. 일부 메인보드 중에는 그래픽 카드 슬롯이 여러 개 있는 제품도 있는데, 여기에 두 개 이상의 그래픽 카드를 장착하면 그만큼 성능을 높일 수 있다(X58 메인보드도 그 중 하나다).
이런 고성능 그래픽 카드의 가격 역시 개당 20~30만원 선에 형성되고 있어, 사용자의 부담을 더하고 있다.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렇듯 기존 CPU와 차별화되는 기술들이 다수 투입된 코어 i7이지만, 그 성능을 완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수준의 주변기기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코어 i7을 쉽게 ‘지를’ 수 없는 것은 이러한 부담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이 정도의 성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이래저래 코어 i7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하지만 이는 최신형 CPU들이 나올 때마다 겪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코어 i7이 대량으로 보급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앞으로 나올 CPU들은 고급형이나 보급형을 막론하고 분명 코어 i7에 사용된 기술 및 노하우들이 조금씩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코어 i7은 이러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두주자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현재 일반인들이 널리 쓰고 있는 10~20만 원짜리 코어2 듀오나 코어2 쿼드 같은 CPU들은 10여 년 전에 100만원 이상에 팔리던 펜티엄 2나 펜티엄 3의 최고급형보다도 훨씬 높은 성능을 낸다. 코어 i7 역시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코어 i7의 동생이라 할 수 있는 코어 i5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예상은 벌써 현실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글 / IT동아 이문규(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