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써서 난관을 극복하라 - 어드벤처 게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는 방법이 있고 머리를 써서 실마리를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 영화로 치면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가 전자, 서태윤 형사(김상경 분)가 후자에 해당된다. 게임으로 치면 전자는 액션게임이 되겠고, 후자는 어드벤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치고받는 난투대신 논리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이 바로 어드벤처 게임의 핵심이다.
어드벤처 게임은 주어진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사용자는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퍼즐을 푼다. 이 때 전투를 비롯한 액션은 보통 배제된다. ‘바이오하자드(Biohazard, 영문판 레지던트이블)’ 시리즈의 경우 초기에는 어드벤처 장르에 속했지만, 속편으로 갈수록 전투에 초점을 맞추면서 TPS로 변질됐다.
어드벤처 게임과 RPG(롤플레잉게임)를 혼동하는 사람도 있다. 사용자가 이야기를 자유롭게 주도할 수 있는 RPG와는 달리,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일부 분기점이 나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제한을 받는다. 또한 등장 인물의 능력치를 선택적으로 성장시킬 수 없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게임과도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다른 게임 장르와 마찬가지로 장르 구분이 어려운 게임들도 많다. ‘젤다의 전설(The Legend of Zelda)’ 시리즈는 어드벤처와 RPG를 혼합한 게임이고,‘페르시아 왕자(Prince of Persia)’나 ‘툼레이더(Tomb Raider)’ 시리즈는 어드벤처와 액션을 혼합한 게임이다. 이 게임들은 어드벤처냐 아니냐를 놓고 많은 논란을 빚기도 했다.
어드벤처 게임의 특징
이야기
어드벤처 게임에서 이야기는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사실 이야기가 그 어드벤처 게임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마치 소설이나 영화와도 비슷하다. 사용자는 게임 개발사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게 되고, 게임 개발사가 의도한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어드벤처 게임은 1인용 게임에 적합하며, 다수의 사용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으로 개발되기 어렵다. 또 이야기가 중요한만큼 언어의 장벽이 높다. 해당 게임에 사용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이 때문에 어드벤처 게임은 다른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게임 장르가 되었다.
퍼즐 풀기
퍼즐과 수수께끼 역시 어드벤처 게임의 주요 요소다. NPC가 등장할 때마다 말을 걸어 정보를 얻고, 화면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뒤져서 물건을 획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구한 물건과 단서를 이용해 퍼즐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고,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게임이 그대로 끝나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일부 게임들은 퍼즐의 난이도를 너무 높여 사용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게임에 따라 이야기에 더 중점을 두는 경우도 있고, 퍼즐에 더 중점을 두는 경우도 있다. 대체적으로 ‘그림 판당고(Grim Fandanggo)’와 같은 3인칭 시점의 게임들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고, ‘미스트(Myst)’나 ‘포탈(Portal)’과 같은 1인칭 시점의 게임들은 퍼즐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드벤처 게임의 역사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은 1975년 등장한 ‘어드벤처(Adventure)’다. 원래 이름은 ‘어드벤트(ADVENT)’인데, 이는 당시 운영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6글자까지만 입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셔널 파크에 있는 동굴을 그대로 묘사했다고 하여 동굴의 이름을 딴 ‘콜러셀케이브(Clossal Cave)’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이 게임은 그래픽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순수한 문자만으로 구성된 게임이지만 초기 PC 사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퍼즐 요소, 판타지 배경 등은 이후 비슷한 구조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들에 그대로 사용되며 장르 확립에 기여했다.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말 자체가 이 게임에서 따왔을 정도다.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몇 년 뒤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으로 발전했다. 평범한 주부였던 로베르타 윌리암스(Roberta Williams)는 콜러셀케이브에 영감을 받아 1980년 최초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인 ‘미스터리 하우스(Mystery House)’를 출시했다. 이 게임은 뜻밖의 대성공을 거뒀고, 윌리암스는 시에라 온라인(Sierra On-Line)라는 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윌리암스가 만든 ‘킹스퀘스트(King’s Quest)’는 시에라의 대표 게임이자 최초의 3인칭 시점 어드벤처 게임이다. 시에라 온라인은 이 게임의 성공에 힘입어 ‘폴리스 퀘스트(Police Quest)’, ‘스페이스 퀘스트(Space Quest)’, ‘레저 슈트래리(Leisure Suit Larry)’ 등의 게임을 잇따라 내놓으며 어드벤처 게임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시에라 온라인과 더불어 어드벤처 게임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루카스아츠(LucasArts)는 색다른 컨셉의 게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7년의 ‘매니악 맨션(Maniac Mansion)’, 1990년의 ‘원숭이 섬의 비밀(The Secret of Monkey Island)’ 등이 대표적이다. 특유의 유머가 담긴 ‘원숭이 섬의 비밀’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후속작들 역시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1998년의 ‘그림 판당고(Grim Fandango)’는 ‘스타크래프트’를 누르고 올해의 게임에 선정될 정도로 높은 게임성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어드벤처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사운드 노벨 또는 비주얼 노벨이라고 불리는 변형 어드벤처 게임이 주류를 이루었다. ‘제절초’, ‘카마이타치의 밤’, ‘투하트(To Heart)’ 등이 대표적이다. 이 게임들은 퍼즐 요소를 줄이고 사용자의 개입을 극도로 절제한 대신 다양한 분기점을 통해 멀티엔딩을 제공한다.
한국에서도 ‘오성과 한음’, ‘디어사이드’, ‘가이스터즈’ 등의 게임이 등장했지만 당시 일본식 RPG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화이트데이’는 사용자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지만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한 때 맹위를 떨쳤던 어드벤처 게임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한 쇠퇴기를 맞았다. 이로 인해 시에라 온라인이 문을 닫았고 정통 어드벤처 게임은 자취를 감췄다.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되었고, 어드벤처 게임은 PC 시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여모바일 시장과 플래시 게임 시장에 둥지를 틀었다. 다른 장르와 결합한 퓨전 어드벤처 게임이 일부 선전하고 있긴 하지만 정통 어드벤처 게임이 다시 주류로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나마 일본에서 ‘역전 재판’과 같은 법정 어드벤처 게임들이 인기를 끌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