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표 최신 PC인데 왜 게임이 잘 안 돌아가?
"최신 PC를 소개합니다!"
"무려 듀얼 코어 CPU 입니다! 성능 2배의 프리미엄을 누려보세요!"
"요즘 게임도 많이 하시죠? 현재 인기순위 1,2,3위 게임들도 쌩쌩 돌아갑니다!"
"대한민국 대표 컴퓨터 기업 XX의 제품입니다! 놀라운 가격 87만원!"
TV 홈쇼핑을 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 그리고 문구들이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까지 많은 홈쇼핑 업체에서 위와 비슷한 홍보 문구를 내세워 유사한 수준의 PC를 다수 판매했다. 그런데 만약 게임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이 PC를 구매해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온', '테라', '스타크래프트2' 같은 최신 고사양 게임을 하려 했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아마도 슬라이드 영상과 같이 뚝뚝 끊기는 화면, 또는 거북이만큼이나 느린 속도 때문에 정상적인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혹시 불량품을 받았거나 홈쇼핑 업체에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해당 PC는 정상 제품이며, 홈쇼핑에서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최신 PC', '듀얼 코어 CPU', '인기 게임 쌩쌩', 이 모든 문구는 사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화려한 광고 문구 속에 생각지도 못한 함정(?)이 숨어있다는 점은 발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단 '최신 PC'라는 문구부터 잘 생각해보자. 같은 시기에 나온 PC라도 분명히 보급형과 중급형, 그리고 고급형 등으로 나뉘어지며 당연히 성능과 가격에서 큰 차이가 난다. 2011년 형 보급형 PC와 2010년 형 고급형 PC가 있다면, 전자가 상대적으로 '최신'이긴 하겠지만 성능은 '구식'인 후자가 더 우수할 것이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2011년 형 '마티즈'와 2010년 형 '에쿠스'의 비교와 같다. 홈쇼핑에서 주로 판매하는 PC, 특히 노트북이 아닌 데스크탑의 경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신형'이긴 하지만 '보급형'에 속하는 모델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듀얼 코어 CPU' 또한 함정이 될 수 있다. CPU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를 의미하며 듀얼 코어 CPU라면 하나의 CPU가 2개의 코어(CPU의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듀얼 코어 CPU는 예전에 쓰던 단일 코어 CPU가 2번에 나눠 할 작업을 한 번에 할 수 있어 처리 효율을 높다. 그런데 문제는 '듀얼 코어' CPU라고 해도 종류가 워낙 많다는 점이다. 게다가 단일 코어 CPU는 요즘 거의 생산되지도 않는다. 2011년 4월 현재의 CPU 단품 값 기준으로 4만 원대에 팔리는 '셀러론 E3400'이나 5만 원대에 팔리는 '펜티엄 E5200'도 듀얼 코어 CPU이며, 25만 원 이상인 '코어 i5 655K'도 듀얼 코어 CPU다. 그 중에 '셀러론', '펜티엄' 등은 홈쇼핑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인기 게임 쌩쌩' 역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게임 구동 능력은 해당 PC에 탑재된 그래픽카드의 성능에 많은 영향을 받는데. 상당수의 보급형 PC는 그래픽카드를 따로 탑재하지 않고 CPU나 메인보드(주기판)에 '덤으로 포함'된 내장형 그래픽 기능을 이용해 화면을 출력한다. 이런 경우는 당연히 게임 구동능력에 한계가 있다. 그런데 홈쇼핑에서 판매 중인 상당수의 PC는 그래픽카드 없이 내장 그래픽 기능을 이용해 구동되는 제품이다.
2011년 4월 현재, '네이버'에서 게임 검색 순위를 살펴보면 1위가 '던전앤파이터', 2위가 '메이플스토리'이며 3위가 '리니지 1'이다. 이 게임들이 인기가 좋은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나온 지 4~5년이 넘은 게임들이라 어지간한 구형 PC, 혹은 내장형 그래픽이 적용된 PC에서도 큰 문제 없이 즐길 수 있다. 때문에 '인기' 게임들이 '쌩쌩' 돌아간다는 홈쇼핑의 홍보 문구가 마냥 거짓말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들을 하기 위해 굳이 새 PC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아이온'이나 '테라', '스타크래프트2' 같은 신작 게임들은 상당한 고성능을 요구한다. 내장 그래픽을 사용하는 PC에서는 당연히 만족스러울 정도로 원활한 플레이가 사실상 쉽지 않다. 이에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550 Ti'나 '지포스 GTX 560 Ti' 등과 같이 3D 게임에 특화된 그래픽카드가 장착되어 있다면 현재 서비스 중인 대부분의 고사양 게임을 거침없이 구동할 수 있을 텐데,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PC 중에서 이런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제품을 보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구성의 PC를 파는 홈쇼핑 업체들이 부도덕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광고에는 언제나 '약간의 과장'이 있기 마련이며, 그들도 나름대로 다양한 서비스(사은품 등)를 제공하여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와중에 등장하는 화려한 홍보문구에 휩쓸려 특정 소비자가 자신의 용도와 목적에 걸맞지 않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따라서 홈쇼핑을 통해 PC를 구매하고자 한다면, 소비자 자신이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그럴싸한 홍보문구, 혹은 필요성이 의문스러운 사은품 보다는 PC 자체의 실질적인 사양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잠시 검색만 해봐도 PC의 주요 부품인 CPU, 메모리, 그래픽카드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난 컴퓨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요?"라며 이러한 약간의 수고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 소비자는 영원한 '호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