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사마', '소녀시대' 버금가는 'IT 한류' 일어날까?

김영우 pengo@itdonga.com

최근 ‘소녀시대’, ‘KARA’와 같은 한국 여성 그룹들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일본 언론에서도 이를 주목하여 2000년대 초반의 ‘욘사마’ 배용준으로 대표되는 ‘1세대 한류’에 이은 ‘2세대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할 정도다. 또한, 일본에서 김치나 불고기와 같은 한국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는 등,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은 연예계뿐만 문화 상품 전반으로 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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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문화계를 벗어나면 일본에서 이러한 ‘한류’를 느끼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IT 제품은 일본 시장에서 그야말로 ‘찬밥’ 신세다. 삼성전자는 2007년에 일본 가전제품 시장에서 철수를 발표했으며, LG전자 역시 2008년, 일본 TV 시장에서 철수하고 사업 영역을 최소화하는 등의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로라하는 한국 IT 기업들이 일본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은 일본 내에 IT 기기를 만드는 회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TV 시장만 보더라도 샤프, 파나소닉, 소니,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 등의 자국 기업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데, 이들의 경쟁이 워낙 심하다 보니 외국의 업체들은 미처 끼어들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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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 소비자들 특유의 보수적인 성향도 한몫한다. 이들은 자국 기업에 대한 신뢰가 유달리 강하고, 익숙한 브랜드의 제품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크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해외 시장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이른바 일본 시장 특화 제품을 다수 내놓음으로써 이러한 경향을 더욱 심화시켰다.

때문에 혹자는 이러한 일본 시장을 ‘갈라파고스(Galapagos)’와 같다고도 한다. 갈라파고스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위치한 섬의 이름인데,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진화 형태를 거친 생물들이 많이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일본 시장의 특성 때문에 해외 기업들은 일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은 반면, 일본 기업들은 자국 시장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고, 일본 소비자들 역시 자국 기업들이 제공하는 제품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DVD 플레이어와 TV의 연결 방식은 ‘컴포넌트’ 규격의 단자를 사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유독 일본 시장에서는 컴포넌트를 변형시킨 ‘D 단자’ 규격을 사용한다. 그래서 해외 업체에서 TV나 DVD 플레이어를 일본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서는 연결 부위를 다시 제작해야 한다. 때문에 생산 단가가 높아져 가격 경쟁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낮은 브랜드 인지도까지 더해지니 일본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특성은 일본 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공략할 때는 역효과로 작용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일본 기업들이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자랑했기 때문에 해외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일본식 제품을 구매해 주었지만, 세계적으로 기술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은 눈에 띄게 저하되었다. 때문에 최근에는 일본 내부에서 이러한 자국 시장의 약점을 지적하며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해외 기업의 일본시장 진출에 대해서도 조금씩 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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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와중에 지난 10월 5일, 일본의 이동통신 서비스사인 ‘NTT도코모’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인 ‘갤럭시 S’와 태블릿 PC인 ‘갤럭시 탭’을 각각 10월 말과 11월 초에 일본에 출시한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물론 삼성전자가 직접 판매하는 것은 아니고 NTT도코모를 통한 출시이지만, 일본 최대의 이동통신사가 한국기업에서 전략 상품을 공급받는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행보다,

특히, 이번에 출시될 일본형 갤럭시 S는 오히려 한국형 제품에 비해 일부 기능이 축소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일본판 갤럭시 S는 국내 제품에는 있는 전면 카메라 및 영상 통화 기능이 삭제되었고, 테더링(휴대폰을 무선 공유기처럼 쓰는 기능) 기능도 갖추고 있지 않으며, DMB 기능(일본에서는 ‘원섹’이라고 부름)도 없다. 동일한 휴대폰 모델이라도 수출용이 한국 내수용에 비해 사양이 향상되는 일이 많아서 한국 소비자들이 차별을 당한다는 지적이 종종 있어 왔는데, 이번 일본판 갤럭시 S는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나타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능 축소는 일본 NTT도코모의 요청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만큼 일본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오히려 한국 소비자들보다 낮을 수도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에 어울리는 제품을 자국에서 발견하지 못한 탓에, 다소 기능 축소가 된 제품, 그것도 한국 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을 이렇게 출시해야 하는 일본 이동통신사들의 절박함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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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외의 IT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일본 진출 움직임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9월, LG전자가 철수 2년 만에 다시 일본 TV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이번에는 보급형 제품뿐만 아니라 LED TV, 3D TV 등의 프리미엄급 제품도 라인업에 다수 포진시켜 가격뿐 아니라 품질로도 일본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겠다는 것이 LG전자의 포부다.

한국 IT 기업들의 일본 시장 재진출이 어떠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는 대해서는 섣불리 단정 짓기 어렵다. ‘외국산 가전기기들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일본 소비자들의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높을 뿐 아니라, 예전에 비해 칼날이 다소 무디어졌다고는 하더라도 일본 IT 기업들의 기술력은 여전히 세계 정상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이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 IT 업체들은 이미 일본 시장에서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기에, 재도전을 앞두고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예전과 달리 일본 시장 전반이 뒤늦게나마 세계적인 추세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세계를 무대로 ‘산전수전’을 겪은 한국의 IT 기업들의 경쟁력이 이번에야말로 빛을 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욘사마’나 ‘소녀시대’에 필적하는 ‘IT 한류’가 일어날 수 있을지, 지금부터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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