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의실] 종이를 닮은 디스플레이 '전자잉크', 다가올 미래는?

정연호 hoho@itdonga.com

본 기사는 지난 2011년 1월 5일 게재한 ‘종이를 닮은 디스플레이 - 전자잉크‘를 2021년 현황에 맞춰 수정 및 보완한 기사입니다.

1975년,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는 PC가 보급되는 미래의 사무실에는 종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빌 게이츠도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 종이 없는 사무실이 실현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라며 반신반의했다. 그중 일부는 “종이 없는 사무실은 종이 없는 화장실과 같다”고 강력하게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종이 소비량은 매년 조금씩 줄고 있다. 비데의 출현으로 종이 없는 화장실이 현실화된 것처럼, 종이 없는 사무실의 등장도 머지않았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종이책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종말을 예언했지만 최근까지 종이책의 위치는 건재했다. 종이책의 휴대성, 장기간 LCD 화면을 쳐다봤을 때의 피로감, 종이에서 느끼는 감수성 등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종이책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전자잉크가 나오면서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에 따르면, 2010년 7월부터 전자잉크를 사용한 전자책의 판매량이 종이책 판매량을 넘어섰다.

전자잉크(=전자종이)란 무엇인가

전자잉크(electronic ink)는 잉크가 아니라 디스플레이의 한 종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E Ink Corporation(이하 e잉크사)에서 개발한 전자종이(electronic paper)의 상품명인 E Ink에서 유래됐다. 따라서 전자잉크를 전자종이라고 불러도 크게 상관은 없다. 일반적인 디스플레이와 달리 어느 정도 구부려도 될 정도로 유연하며, 주로 전자책 리더기, 휴대폰, 시계 등의 휴대용 기기에 사용된다.

전자잉크는 두 개의 전극 층 사이에 머리카락 직경만큼 작은 마이크로캡슐 수백만 개를 넣어 만든 것이다. 이 마이크로캡슐 안에는 투명한 기름과 함께 양전하를 띠는 흰색 입자와 음전하를 띠는 검은색 입자가 들어 있다. 여기에 마이너스 전기를 가하면 흰색 입자는 마이크로캡슐 위쪽으로 이동해 디스플레이에 흰색을 표시하게 된다. 이때 검은색 입자는 아래로 이동해 디스플레이에 표시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에는 검은색 입자가 위로 올라와 디스플레이에 검은색이 표시된다. 이를 통해 흑백 그림이나 글자를 표현할 수 있다.

전자잉크의 장점은 한 번 신호를 받고 입자가 이동하고 나면 전기가 통하지 않아도 화면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이지를 넘길 때 빼고는 배터리가 거의 소모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배터리를 장착한 휴대 기기의 사용량을 시간으로 가늠하는 반면, 전자책 리더기의 사용량을 페이지 수로 표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별도의 광원이 필요하지 않고 일반 종이처럼 빛의 반사를 통해 읽는 방식이라 눈의 피로가 적고, 밝은 야외에서 보기에 편하다. 전자잉크가 종이책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용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일반 LCD 디스플레이에 익숙한 사람들 중 일부는 전자잉크가 너무 어둡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모델은 조명을 탑재하는 경우도 있는데, 덕분에 어두운 곳에서도 전자책을 볼 수 있다. 이 밖에 시야각이 넓어 어느 각도에서나 같은 화상을 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단점이라면 흑백 디스플레이와 정지된 화면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까지 대부분의 전자책은 흑백으로 출력되는 종이책을 그대로 옮겨오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크게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태블릿 PC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면서 전자잉크에도 변화가 필요해졌다. 2009년 후지쯔가 세계 최초로 컬러로 표시되는 전자잉크 디스플레이 ‘플레피아’를 선보이면서, 전자잉크에도 컬러 시대가 도래했다. 다만 컬러를 표시하는 전자잉크는 이제 막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컬러 전자잉크가 널리 보급되면, 웹툰 등을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잉크는 화면 전환 속도가 느리며, 전환 시 잔상이 많이 남아 사진과 동영상을 화면에 표시하는 데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전자책 단말기 중에는 e잉크가 아니라 일반 LCD나 OLED 디스플레이를 채택해 다용도 멀티미디어 기기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잉크의 용도

전자잉크는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는 전자책 리더기다. 아마존닷컴의 킨들(Kindle)을 비롯해 리디북스의 리디페이퍼, 예스24와 알라딘 등의 크레마 시리즈, 교보문고의 SAM이 대표적인 전자책 리더기다.

좌:리디페이퍼, 우:크레마 카르타G
좌:리디페이퍼, 우:크레마 카르타G

전자잉크는 다른 기기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2006년 모토로라는 레이저 후속모델로 모토폰 F3을 출시하면서 전자잉크를 디스플레이로 채택했다. 이 모토폰은 제품 가격이 저렴하고 전력 소비가 적어서 개발도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휴대폰 제조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자잉크를 활용했다. 2009년 삼성전자가 출시한 휴대폰 에일리어스2(SCH-u750)에는 전자잉크를 사용한 쿼티키보드가 탑재됐다.

2008년에는 패션전문지 에스콰이어가 전자잉크를 북미 한정판 커버에 사용했다. 에스콰이어 25주년 기념으로 발매된 이 한정판에는 ‘the 21st century begins now’라는 글자가 주기적으로 깜박인다. 에스콰이어는 단 90일에 불과한 이 표지의 배터리 수명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냉동트럭으로 잡지를 운송했다. 또한, 전자잉크는 POP 광고(point of purchase 광고, 매장 안에 걸어놓는 디스플레이)에도 활용된다.

좌:삼성전자가 출시한 휴대폰 에일리어스2, 우:패션전문지 에스콰이어의 전자잉크로 표현한 한정판 커버
좌:삼성전자가 출시한 휴대폰 에일리어스2, 우:패션전문지 에스콰이어의 전자잉크로 표현한 한정판 커버

전자잉크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스마트폰을 만들어온 중국의 가전 기업 하이센스는 최근 A5C를 발표했다. 전자잉크 디스플레이가 탑재돼 눈 피로감이 덜한 스마트폰이다. A5C는 흑백 전자잉크 디스플레이에 컬러 필터를 더해 다채로운 색상을 표현할 수 있다. 쉽게 생각하면, 스마트폰과 전자책 리더기를 하나로 합친 제품이다.

이외에도 전자잉크 디스플레이 제품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동시 제어를 할 수 있고, LCD에 비해 전력 소모가 적어 경제성이 뛰어나므로, 마트 가격표시 명찰·은행 비밀번호 카드·각종 광고 디스플레이 등에 적용된다.

다만, e잉크사가 전자잉크 패널을 독점적으로 제조하기 때문에, 전자기기 제조사 쪽에서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고 제공 일정을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다른 데선 e잉크사의 기술만큼 품질과 가격이 안 나와서다. e잉크사는 전기장에 맞게 배열이 질서 있게 움직이고, 전원을 꺼도 멈춘 상태를 유지하는 전하 띤 나노입자 잉크를 잘 만드는 기술로 유명하다.

전자잉크의 전망

태블릿 PC가 인기를 끌면서 전자책 리더기 시장은 주춤하는 추세지만, 그렇다고 전자잉크까지 몰락한다고 볼 수는 없다. 광원이 필요 없다는 점, 종이처럼 구부릴 수 있다는 점, 전력 소모가 매우 적다는 점 등은 전자잉크가 가진 분명한 장점이다. 향후 컬러의 완벽한 구현이 가능하면서도 배터리 소모가 적은 전자잉크가 상용화 된다면 교과서, 종이신문 등 지금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서 전자잉크를 만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마침 e잉크사의 2018년에 전자잉크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시장에 진입하는 도전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정리·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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