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무어의 법칙 대체할 '와트당 성능' 제안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남시현 기자] 1965년 인텔의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는 논문을 통해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5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제안했다. 무어의 법칙은 ▲ 반도체 메모리 칩의 성능, 즉 메모리의 용량이나 CPU 속도가 24개월마다 2배씩 향상된다 ▲ 컴퓨팅 성능은 24개월마다 2배씩 향상된다 ▲ 컴퓨터 가격은 24개월마다 반으로 떨어진다는 세 가지 조건으로 구성되며, 2010년 이전까지는 성립해왔다.

하지만 20nm 이하 공정부터 성능 향상의 폭과 가격이 무어의 법칙에서 어긋나기 시작했고, 2010년 중반부터는 사실상 무어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고 있다. 무어의 법칙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24개월마다 성능이 두 배로 향상하거나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제 반도체 업계는 무어의 법칙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로운 법칙이 필요한 상황이다.

앞으로의 법칙, 성능뿐만 아니라 에너지도 고려해야

출처=Arm
출처=Arm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업계의 눈부신 성장을 주도했고, 지금의 디지털 사회를 구현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컴퓨터가 소비하는 에너지와 성능의 상관관계까지 고려된 법칙은 아니었고, 그 결과 성능 향상을 위해 에너지를 꾸준히 투입하는 구조가 됐다. 그렇게 50여년이 지난 지금, 반도체로 인한 발열과 소비전력이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은 전 세계적으로 200TWh 이상이며, 이중 반도체 발열을 해소하기 위한 냉방에 50%, 장비가 35%, 손실 전력이 15%에 달한다. 전체 총량은 전 세계 전력 사용량의 1%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37억 명의 사람들이 디지털 기술에 완전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 센터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컴퓨터가 소비하는 에너지를 효율화하지 않는다면 더이상 지속 가능한 발전은 무리인 상황이다. 해당 분야의 선두주자인 Arm이 더 이상 무어의 법칙이 아닌 와트당 성능(Performance per Watt)을 기준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다.

와트당 성능은 반도체의 ‘투입 대비 산출량’

와트당 성능은 간단히 말해 반도체가 소비한 전력으로 얼마만큼의 연산을 처리했는가를 뜻하는데, 정확하게는 18개월마다 특정 연산을 처리하는 에너지의 양이 50%씩 줄어드는 ‘쿠미의 법칙(Koomey’s law)’를 의미한다. 쿠미의 법칙은 스탠퍼드 대학의 조나단 쿠미(Jonathan Koomey) 교수가 명명한 법칙으로, 이 공식대로 했을 때 1945년부터 2020년까지는 18개월마다 2배의 전력 소모량 대비 효율이, 그 이후에는 2.6년마다 2배의 전력 소모량 대비 효율을 보인다.

1946년부터 2009년까지 kWh당 계산 효율성을 비교한 그래프. 출처=Jonathan G. Koomey 블로그
1946년부터 2009년까지 kWh당 계산 효율성을 비교한 그래프. 출처=Jonathan G. Koomey 블로그

이 법칙대로 계산하면 1945년부터 2000년대까지는 계산 효율성이 10년마다 100배씩 증가했고, 2000년 이후부터는 10년당 16배씩 계산 효율성이 향상되고 있다. 고정된 연산을 처리한다고 했을 때 필요한 전력 소모량도 과거에는 10년 마다 100배, 지금은 10년마다 16배씩 개선되고 있다는 의미다.

스마트폰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초소형 컴퓨터인 스마트폰이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반도체의 전력 소모량 대비 계산 효율성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계산 효율성이 증가하지 않았다면 배터리가 매우 커야해서 들고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애플리케이션들이 갈수록 더 많은 연산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발전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순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갈수록 더 얇고 가볍고 배터리가 오래가고, 더 작은 컴퓨터인 스마트 워치가 등장하는 이유가 다 와트당 성능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쿠미의 법칙, 환경 보호를 위해 필요해

쿠미의 법칙은 오늘날 소비자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기업들이 기술 로드맵을 구성하는 방식에 더 많이 영향을 미쳐야 한다. 에너지 소비량을 외면한 채 최고의 성능을 추구하는 게 아닌, 에너지 소비량에 따른 효율성이 높은 장치가 등장하도록 해야 한다. 와트당 성능이 개선되면 배터리 효율성도 증가하므로 희토류 채굴이나 전자 폐기물로 인한 환경 파괴가 줄어든다. 데이터 센터의 막대한 발열과 전력 소모량도 와트당 성능이 개선되면 지금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RFID 태그, 전파를 이용해 원거리에서 정보를 인식하는데 필요한 장치다. 출처=셔터스톡
RFID 태그, 전파를 이용해 원거리에서 정보를 인식하는데 필요한 장치다. 출처=셔터스톡

Arm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 트리피드(Triffid)로 그린 미래상은 더 진보된 기술을 그리고 있다. 프로젝트 트리피드는 무선으로 전력과 데이터를 전송받는 RFID 태그에 초저전력 컴퓨터를 내장해 CRFID(Computational RFID)로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CRFID는 전자기파로 전력을 받고, 이 전력으로 연산을 처리해 무선으로 보내는 것이 가능해지므로 전 세계 수백억 개의 센서 및 관리 시스템이 무선화된다. 배터리가 필요없으니 그만큼 채굴이나 전자 폐기물이 줄어드는 한편, 데이터는 훨씬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다.

물론 프로젝트 트리피드의 CRFID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1uW(마이크로와트)로도 원하는 수준의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초고효율의 와트당 성능을 가진 칩이 필요하고, 또 작업을 유지하기 위한 비휘발성 메모리도 함께 개발돼야 하므로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다.

Arm의 제안, 새로운 패러다임 되길

출처=Arm
출처=Arm

쿠미의 법칙은 에너지 소비의 이론적인 하한과 관련된 란다우어의 원리(Landauer’s principle)와 열역학 제 2 법칙으로 인해 지속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 컴퓨팅의 에너지 효율이 1.57년마다 계속 두 배로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2048년에는 효율성의 한계에 부딪힌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이 그랬듯, 법칙의 한계에 연연하기보다는 법칙을 계기로 방향을 설정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쿠미의 법칙은 지금의 기후 변화와 환경을 보호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내기에 적합하다. Arm이 제안한 ‘와트당 성능’이 앞으로 출시될 컴퓨터 성능의 새로운 기준이 되기를 희망한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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