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김찬우 스페이스포트 대표 “빙고는 모두를 잇는 콜드스토리지 플랫폼”
[IT동아 차주경 기자] 생산만큼, 때로는 생산보다 중요한 것이 운반과 보관 등 유통이다. 아무리 상품을 잘 만들어도 운반할때 온도 변화, 충격과 압력을 받으면,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우리 농가가 피땀흘려 만든 농작물은 더더욱 그렇다. 맛과 향, 모양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려면 유통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말은 쉽지만, 유통에 신경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본은 가장 많이 쓰고 유용하다고 일컬어지는 ‘저온 창고(콜드스토리지)’다. 가정용 냉장고 수십대를 합친 크기의 초대형 냉장고를 떠올리면 된다. 콜드스토리지는 내부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면서 구석까지 냉기를 전달하고 유지한다. 그래서 유용하지만, 부피가 크므로 사서 쓰기에는 비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지금은 집도, 차도 무엇이든 빌려쓰는 시대다. 콜드스토리지도 예외는 아니어서 렌탈 서비스가 나왔다. 그냥 콜드스토리지가 아니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스마트 콜드스토리지’다. 렌탈 외에 합리적인 가격에 사서 쓰는것도 된다.
김찬우 대표가 이끄는 스타트업 스페이스포트의 스마트 콜드스토리지 렌탈·판매 서비스 ‘Vingo(빙고)’다. 그 역시 여느 스타트업 대표와 마찬가지로, 직장 생활 중 느낀 불합리를 해소하려다가 창업에 이르렀다.
“삼성SDS 스마트물류사업부에서 일했습니다. 수출용 콘테이너를 쓸 일이 많았는데, 의아한 점이 있었어요. 수출용 콘테이너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고, 투명하게 산정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사후보장(워런티)를 받기도 정말 어려웠어요. 산지 1년쯤 지나면 워런티를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죠.
콘테이너 안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원격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점도 불편했습니다. 이전에 온도에 아주 민감한 상품을 수출용 콘테이너에 실어 보냈는데, 내부 온도가 변해버려서 상품이 모조리 못쓰게 된 일이 있었어요. 선사는 책임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고품질·성능 콘테이너, 일정한 가격에 사거나 빌릴 수 있고 내부 온도를 언제 어디서나 확인 가능한 콘테이너를요. 선사에 이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별로 관심이 없더군요. 그러다 수출용 콘테이너를 개조해 만드는 콜드스토리지에 생각이 닿았어요. 콜드스토리지는 지금도 한국에서만 10만대 이상 운용 중이라고 합니다. 판을 잘 짜서 차별화된, 믿음직한 콜드스토리지를 만들면 새 시장을 만들고 기존 수요까지 대체할 유망한 아이템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찬우 대표는 2020년 2월 아이디어를 바로 현실화했다. 중고 콘테이너를 사 콜드스토리지로 개조했다. 본체에 냉동·냉장 설비를 달고 센서를 장착해 온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도록 설계했다. 설비 전체를 감시하는 또다른 센서도 배치했다. 고장이나 이상이 생기면 이를 분석, 코드로 바꿔 엔지니어에게 전송한다. 그러면 엔지니어는 고장 코드를 참조해 적절한 장비, 부품을 가지고 워런티에 나선다.
일반 콜드스토리지는 워런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디가 어떻게 고장났고 어떤 부품이 필요한지 모르기에 당일 수리가 안되는 경우도 잦았다. 빙고는 다르다. 고장 부위와 수리할 부품을 알고 출동하니 바로 수리 가능하다. 그만큼 이용자의 피해도 줄인다.
판매뿐 아니라 1개월 단위 렌탈도 고려했다. 자금 사정이 여유롭지 않은 농가, 스타트업 등이 손쉽고 부담없이 냉동·냉장 설비를 구축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연구개발 끝에 올해 2월 스마트 콜드스토리지를 완성하고, 서비스명 빙고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선택은 정답이었다. 문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의뢰처도 다양했다. 농축수산업과 식품업은 물론 연구소, 숱한 의약과 화학 기업이 빙고를 주목했다.
“저희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모았어요. 지금까지 스마트 콜드스토리지를 50대 팔거나 렌탈했습니다. 분야도 다양해요. 일단 식음료와 식자재 기업, 스타트업으로부터의 문의가 많습니다. 대형 택배사와 물류사가 빙고에 관심을 나타냈어요.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다루는 스타트업도 빙고를 쓰고 있습니다.
샤인머스켓 포도나 방울토마토 등 잘 물러지는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가도 저희 제품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빙고는 귀리같은 곡물도 보관 가능하고 양식 새우, 고기 등 축산물과 수산물의 선도도 잘 유지하며 보관하도록 도와드립니다.
참, 자랑할 것이 있어요.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이 보급되고 있는데요, 대부분이 일정한 온도로 보관해야 하는 민감한 약품이에요. 온도가 조금만 변해도 백신을 못쓰게 되니 저온창고의 역할이 막중하죠. 호남권역 예방접종센터와 조선대학교병원이 백신을 어떻게 운반하고 보관할까요? 네. 맞습니다. 저희 빙고를 운용하고 계셔요.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을 다루는 스마트 콜드스토리지, 충분히 믿고 쓸만하지 않나요?”
이 부분에서 빙고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빙고는 기존의 냉동·냉장 창고를 대신한다. 냉동·냉장 창고를 만들려면 규모를 정하고 부지를 선정하고 건물을 올린 후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돈이 많이 든다. 더 큰 문제는, 냉동·냉장 창고를 이전해야 할 때나 쓰임새가 없어졌을때다. 해체와 폐자재 처리 비용은 고스란히 부담이 된다.
빙고의 스마트 콜드스토리지는 콘테이너로 만든다. 규모, 부지만 정하고 가져다 쌓기만 하면 된다. 이전 비용만 내면 어디든 설치 가능하고, 쓰임새가 없어지면 수거나 반납 신청하면 된다. 기존 냉동·냉장 창고보다 운용 비용이 싸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급박히 돌아간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확보와 보급전. 빙고를 선택한 병원과 기관은 건물을 세우는 수고 없이, 신뢰할 만한 냉동·냉장 창고를 싼 가격에 확보한 셈이다.
김찬우 대표는 스마트 콜드스토리지로 우리 농가를 돕고 싶다는 이야기를 거듭 되풀이했다. 빙고 렌탈 구조를 만든 것도 이런 이유다. 실제로 빙고 매출 가운데 80%가 렌탈에서 나온다고 한다.
“우리 농가에도 저온저장고가 많이 보급됐어요. 그런데, 규모는 아무래도 한정될수밖에 없죠. 시기에 따라 갑자기 농작물 수확량이 늘어날 때가 있는데, 이러면 농작물을 효율적으로 보관하기 어려워요. 이 때 빙고를 써보세요. 저온저장고보다 크기가 크고, 내부 온도를 언제든 스마트폰으로 확인 가능해요. 농작물이 상할 염려 없이 안심하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최근 신선식품 수요가 늘면서 유통 기업이 산지직송 물량을 늘리고 있다고 해요. 농축수산가 소득으로 이어지니 잘된 일이지요. 한편으로는 수요가 늘면서 저온저장고를 새로 사야 하나 고민하는 농민분도 많다고 해요. 샀다가 나중에 수요가 줄어들면? 저온저장고를 놀리거나 해체해야 하니 고스란히 손해를 보죠. 이런 분들께 빙고 렌탈 서비스를 권합니다. 사는 것보다 빌려쓰면 더 경제적이에요.”
단기간에 성과를 냈다고 하지만, 김찬우 대표는 고민이 많다. 우선은 스타트업 대부분이 겪는 자금 문제다. 빙고의 스마트 콜드스토리지는 수출용 콘테이너를 개조해 만든다. 따라서 콘테이너와 냉동 설비 구입과 엔지니어 운용, 개발 등 비용이 많이 든다. 스마트 콜드스토리지의 기술 문제를 해결하고 성능을 높일 연구개발도 난제다.
“자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스타트업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희도 그렇기에 여러모로 궁리하고 있어요. 스페이스포트와 빙고의 능력을 보이고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 콜드스토리지 렌탈 데이터를 분석해 신뢰성을 높이고, 핀테크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빙고 서비스의 매력을 널리 알릴 예정입니다.
빙고 스마트콜드스토리지의 장점만 말씀드렸는데요,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부피가 큽니다. 콘테이너를 개조해 만드니까 규격도 정해져 있는데요,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콘테이너 옮기고 설치하듯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장점이에요. 그런데, 무조건 콘테이너 하나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단점입니다. 설치 장소에 따라 크기를 조절하기 어려운 거죠. 소음도 최대 70dB(데시벨)쯤으로 꽤 큽니다. 공사장 규제 기준이 70데시벨인데요, 그래서 빙고를 주택가나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는 쓰기 힘들어요.
빙고의 장점은 내부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스마트폰으로 확인 가능한 점이에요. 다만, 온도를 조절하는 것은 아직 어렵습니다. 스페이스포트는 스마트콜드스토리지 버전 2를 개발 중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단점을 상당부분 개선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스마트 콜드스토리지의 미래는 밝다. 기존 냉동·냉장 창고를 대체 가능하고 이동형 창고라는 새로운 분야도 개척한다. 여기에 농축수산물 산지, 지방 거점 배송 기지 역할도 한다. 유통 업계가 주목하는 도심형 마이크로 풀필먼트센터에도 적용하기 알맞다.
김찬우 대표는 농축수산물 저온보관 창고와 수출용 콘테이너 역할을 한번에 해내는 ‘원스톱 서비스’, 지역 내 농가 여러곳의 작물을 한데 모아 수도권 유통사에 배송하는 ‘콜드체인 공동 배송 서비스’, 재난이나 풍수해 발생 시 농작물을 보관하는 ‘긴급 저온보관 서비스’를 바라본다.
나아가 배달 스타트업, 온라인 배송 특화 유통기업과 손을 잡고 유연한 스마트 콜드스토리지 풀필먼트를 구축, 우리나라 곳곳 어디든 신선식품을 배송하는 서비스의 청사진을 그린다.
“콜드스토리지를 포함한 유통, 콜드체인 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신선식품 당일배송이나 새벽배송도 콜드체인 없이는 하기 어렵죠. 그래서 소비자들이 믿고 쓰는 배송 서비스를 뒷받침하는, 믿고 쓰는 콜드체인 기업이 되는 것이 스페이스포트의 목표입니다.
지금은 주로 기업이나 연구소 등 B2B 스마트 콜드스토리지를 공급하는데요, 이 범위를 넓혀 지역별 빙고 센터를 구축하는 그림도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신선식품 당일·새벽배송이 대부분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만 이뤄져요. 저온으로 보관해야 하는 신선식품을 둘 곳이 없기 때문인데요, 빙고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소비자가 원할 때 언제든 저온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스페이스포트와 빙고를 잘 기억해주세요.”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