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에 신음하는 웹툰 웹소설 시장, 이제 구글까지 숟가락 얹네
[IT동아 정연호 기자]
구글이 오는 10월부터 인앱결제 적용 범위를 웹툰과 웹소설, 음악 등 콘텐츠로 확대한다. 인앱결제는 소비자가 유료 앱이나 콘텐츠를 구매할 때 구글이 자체개발한 결제시스템을 이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지금까지 구글은 게임이 아니라면 인앱결제 대신 해당 앱의 결제 시스템을 쓰는 걸 허용했지만, 앞으론 앱 내부에서 결제 시 반드시 구글플레이의 결제 수단만 이용해야 한다.
지난해 9월 구글이 웹툰/음원 및 비게임 분야에도 인앱결제 의무와 30% 수수료 정책을 적용하겠다고 밝히자,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구글은 매출 100만 달러(원화 약 11억 원)이하 개발사를 대상으로 인앱결제 수수료를 기존의 절반인 15%로 낮추는 상생방안을 내놓으며 한발 물러섰다.
이후로 창작자들의 반발과 구글 정책에 제동을 걸려는 국회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면서, 구글은 23일 콘텐츠 사업자를 대상으로 매출과 관계없이 인앱결제 수수료를 15%로 인하하는 '구글 플레이 미디어 경험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특정 기간 동안 웹툰이나 웹소설, 영상, 오디오 등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수수료를 기존 30%에서 15%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콘텐츠 업계는 결제 수단을 강제하는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수수료 인하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국내 앱 마켓 시장의 점유율 70%를 기록한 구글이 시장 지배적 위치를 악용해 결제 수단을 강제하는 것이 핵심인데, 수수료가 높아서 문제라는 식으로 논점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창작자는 거래액의 15%를 수수료로 내야 하니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인앱결제 강제 정책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창작자가 가져갈 몫은 줄어들고 소비자가 지불할 가격은 높아지기 때문에, 국내 콘텐츠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는 14일 성명서를 통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 시리즈, 리디북스, 교보문고, 예스24 등 전자책 유통사들을 대상으로 구글 인앱결제가 미칠 영향을 조사한 결과, 최저 20%에서 최고 40%까지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출협은 "일부 앱들은 유통을 중지할 수밖에 없으며, 특히 중소형 웹소설·웹툰·전자책 유통사들이 받을 타격은 극심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적자 혹은 소폭 흑자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산업 성장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구글 인앱결제 수수료 인상으로 출판업계가 대거 전자책 가격을 올릴 경우,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었던 전자책이 종이책 가격을 앞지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서정가제 적용 등 전자책 대여 관련 정책개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전자책 가격은 종이책의 약 70~80%에서 책정된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종이책의 50~60% 정도이다. 국민소득은 우리가 훨씬 더 낮은데, 전자책 가격은 비슷하거나 국내가 더 비싼 상황이다. 구글 플레이 미디어 경험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수수료 인상에 따라 전자책 가격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웹툰과 웹소설 생태계 파괴
출협은 “한국 전자책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의 '킨들(아마존이 판매하는 전자책 기기)' 중심이 아니라 스마트폰 기반의 시장이다 보니, 구글 인앱결제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구글 인앱결제 강제화가 시작되면 최종적으로 파급영향이 창작자에게 미칠 것은 뻔하다. 콘텐츠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 부담은 늘어나고, 결국 전체 생태계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창작자연대는 ‘출판협회와 플랫폼의 갑질을 막아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을 게재하고, 3만 8,000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11년 전 애플 앱스토어에서 인앱결제 의무 기능을 도입한 뒤, 출판사들은 전자책 가격을 더욱 높이려고 하고 있다"며 “한국에서만 전자책 가격을 종이책의 80%로 법으로 고정해 소비자 후생을 하락시키고 전자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고 호소했다.
또한, 그들은 “플랫폼들이 작가와 출판사에 45~50%까지 수수료를 부과시키고 애플(현재 시행 중)과 구글(차후 시행 예정)이 플랫폼들에 부과시키는 수수료를 출판사와 작가에게 떠넘기는 것을 정부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할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있습니다”며 현 상황을 비판했다.
특히, 열악한 창작환경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웹소설, 웹툰 창작자에게 갈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웹소설은 진입장벽이 낮지만, 공급도 폭발적이라 일부 극소수의 작가를 제외하곤 대부분 최저임금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플랫폼 노동 종사자 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웹소설 작가들은 하루 평균 9.8시간 일하며 월수입은 약 180만 원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웹툰도 에이전시가 중간 과정에 끼어들면서, 최근 5~6년 사이에 에이전시가 플랫폼과 간접 계약을 유도하는 구조가 정착했다. 웹툰 작가들은 에이전시가 수수료를 많게는 50%까지 요구하며 작품 계약 시 저작권까지 갈취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구글의 가세로 웹콘텐츠 수익구조가 ‘구글-플랫폼-에이전시-창작자’로 재편되면, 창작자가 최종적으로 가져가는 몫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웹툰과 웹소설이 다양한 분야의 원천 IP(지식재산권)으로 활용되면서, 그만큼 글로벌시장에서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우수한 IP는 다양한 콘텐츠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콘텐츠 창작 생태계를 위협하는 변화엔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