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희귀 난치병 치료와 무보수 10년, 티이바이오스의 인공각막 시장 도전기
"혹시 각막질환이 있으신 분들이요. 고칠 수가 없는 겁니까?"
"가벼운 증상이라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막이 외상이나 질환으로 인해 손상되면 별도리가 없죠."
"치료가 어렵다면...이식받을 수밖에 없겠네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각막을 기증받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아시나요?"
"꽤 오래 걸리나 봅니다. 1년 정도는 기다려야 하나요?"
"아니요. 8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국내 각막이식 평균 대기시간은 2939일이에요."
4월 충북 청주시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의 티이바이오스(TE Bios)를 방문해 정도선 대표와 나눈 이야기 중 일부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만약 선천적 질환이나, 후천적 사고 등으로 각막이 손상되면 다른 사람의 각막을 기증받아 이식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하지만 기증각막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8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티이바이오스는 2009년 6월 30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설립된 바이오(의학 및 약학 연구개발) 전문 벤처 기업입니다. 12년 동안 기증 각막을 기다리는 전 세계 환자를 위해 ‘인공각막’을 개발하고 있죠.
저희 스케일업팀은 티이바이오스를 스케일업 대상 기업으로 선정하면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생소한 바이오, 의학 분야의 벤처기업인 티이바이오스가 현재 봉착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진단하고, 정확한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월과 4월, 티이바이오스를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름의 확신을 갖게됐습니다. 티이바이오스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10년 이상의 긴 연구개발 기간에 티이바이오스가 겪어 온 일은 비단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티이바이오스가 걸어온 발자취는 시장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스타트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들의 선택과 도전이 어떤 성적표를 거둘 수 있을지, 구독자 여러분들도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각막질환의 치료법, 기증각막 이식
티이바이오스를 설립한 정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각막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은 기증각막을 이식하는 것만이 유일하다고. 실제로 각막질환은 백내장에 이어 2번째 실명 원인이다. 질환이 발생하면 양안 모두에 발생할 확률이 높으며, 각막의 혼탁, 염증, 변성 등으로 인해 시력에 이상이 생긴다(원추 각막, 발진 수포성 각막, 이영양증 각막, 각막 혼탁, 스티븐-존슨 증후군 등).
사실 워낙 희소성 질환이라 대다수의 사람은 이러한 질환을 모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은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 시력을 찾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증각막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다. Gain 등이 2015년 미국의학협회 안과학회지(JAMA Ophthalm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각막이식 대기 환자 수는 1270만 명에 달한다. 국내 대기자 수는 약 4만 7천 명(보험심사평가원 2016년 기준)으로, 앞서 언급했듯 8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참고로 이 대기자 수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다. 정 대표는 "각막질환으로 전 세계 병의원에 찾아온 환자 수를 잠정 집계한 결과다. 즉, 더 많은 환자가 존재할 수 있다. 특히, 각막질환은 선진국 대비 후진국, 제3세계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이들 나라는 질환자 통계를 산출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라고 밝혔다.
오랜 기다림의 이유는 무엇일까. 기증각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없어서 못 받는다. 만약 기증각막이 있다 하더라도 양안 모두 안 보이는 환자를 위해 우선순위를 배정해야 한다. 장기이식센터를 통해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데, 국내의 경우 이미 몇 천명이 순서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문제는 각막질환자에게 기증각막 이식도 완전한 치료법은 아니라는 점이다. 각막 이식 후 5년 내 거부반응이 발생할 확률은 약 35%에 달한다(통계청 발표자료, 2013~2014년 통계). 기증각막에 대한 면역부작용 발생 시, 각막 상태는 기증받기 이전보다 더 안 좋아질 수 있다. 면역부작용에 의한 기증각막 이식 실패는 뼈아프다. 그대로 시력 상실, 실명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수술 실패로 각막이 손상된 경우 다시 기증을 받기도 어렵다.
정 대표는 “그게 인공각막을 개발하는 이유다. 다른 사람의 각막을 기증받기도 어렵지만, 이식을 받아도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즉 대체재가, 대체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처음 개발을 시작한 2009년과 지금 2021년의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며 “각막질환자에게 인공각막은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다. 꼭 필요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 세계 인공각막 개발 현황은?
현재 인공각막 상용화를 성공한 사례는 보스턴 케이프로(Boston Kpro)가 유일하다. 2015년 기준 1만 2천 건을 시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보스턴 케이프로는 각막의 '가운데 부분'만 인공각막을 사용하고, 인공각막을 각막질환자 각막에 흡착하기 위해 기증각막을 사용한다. 또한 기증각막을 지지하기 위해 티타늄 구조체를 넣는다. 즉 기증각막을 사용하기 때문에 여전히 면역부작용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보스턴 케이프로 이외에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시도는 꾸준했다. 2014년 호주 멜버른(Melbourne) 대학에서 세포 및 동물실험을 수행했지만 상용화 보고는 없었으며, 2015년 중국재생의학사는 돼지 각막을 소재로 인공각막을 개발했지만 면역부작용으로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이어 2017년 스페인 오비에도(Oviedo) 대학이 실크 기반 인공각막으로 세포 및 동물실험을 수행했지만, 역시 상용화 보고는 없었다. 가장 최근은 영국 뉴캐슬(Newcastle) 대학이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각막줄기세포와 콜라젠 등의 기질을 혼합한 바이오잉크로 돔(dome) 형태 인공각막을 구현했지만, 상용화까지 1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호주의 Lions eye Institute에서 개발한 알파코(AlphaCor) 인공각막이 있었지만, 생체조직에서 떨어지거나 이식 시 염증반응 유발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약 10년간 판매 후 중단됐다.
즉, 현재까지 일부 기증각막을 사용하는 보스턴 케이프로를 제외한 인공각막 상용화는 전무한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에 기반을 둔 보스턴 케이프로를 국내에 그대로 들여와 상용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증각막 자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장기 기증 문화가 그나마 활발한 곳은 보스턴 케이프로를 일부 활용할 수 있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증각막은 부족하다. 실정에 맞지 않는 셈이다.
10년간의 연구 개발, 끝이 보인다
정 대표는 “2019년 4월, 보건복지부 지정 국내 유일 안과질환 T2B 기반구축센터로부터 긍정적인 평가 결과를 받았다. 토끼 15마리에 인공각막을 이식 후 3개월간 관찰, 주변 조직과 융합해 이상 증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어 9월,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실험동물센터에서 ‘영장류 인공각막 이식시험 시행’을 평가받았다. 마카카 원숭이 4마리에 인공각막을 이식 후 6개월간 관찰했는데, 이상 없음을 확인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작년 전임상 실험을 통한 안정성 유효성을 입증한 결과, 티이바이오스의 인공각막은 ‘희소의료기기’와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받기에 이른다. 이어 올해 서울아산병원 등 5개 병원과 함께 단상 임상 시험을 허가받았다. 시험 종료는 내년 하반기 정도로 예상한다.
정 대표는 “단상 임상 시험에 대해 대단히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토끼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진행한 전임상 동물 시험에서 이상 없음을 확인했지만, 실제 각막질환자 대상으로 진행하는 시험 결과는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 똑같은 치료와 똑같은 치료법으로 시험해도, 사람마다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이미 상용화되어 있는 약도 사람마다 효과는 다르지 않나. 그동안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에 기대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 가지 궁금했다. 10년의 연구개발이라는 시간은 결코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 세월이다. 티이바이오스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서 얻었단 말인가.
정 대표는 “가지고 있던 자금은 다 투입했다(웃음). 저와 제 주변, 그리고 지인들에게 부탁했고, 지난 인생을 헛살지는 않은 것 같다. 급할 때 부탁하면 어떻게든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라며 “그분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티이바이오스 투자자로 참여해 주셨고, 지금까지 힘을 보태주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지난 10년 동안 무보수로 일했다. 힘들었지만 지금의 인공각막 하나만을 보며 달려왔다. 그리고 2019년, 기관투자자(VC)로부터 2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라며 “당시 투자 받은 자금으로 지금까지 함께 하는 직원 24명과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아직 단상 임상 시험이라는 과정이 남았지만, 인공각막 개발부터 GMP 인증, 그리고 투자 유치까지,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했듯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바이오 산업에 대한 높은 관심과 티이바이오스의 도전
티이바이오스의 도전은 일견 무모해 보일 수 있다. 부경대학교 공과대학 의공학과 박상혁 부교수는 “인공각막은 전 세계에서도 희소한 분야다. 보스턴 케이프로 인공각막이 글로벌 표준처럼 된 상황이다. 1992년 미국에서 허가한 기술인데 아직까지 이걸 앞서는 기술, 제품은 없는 상황”이라며, “티이바이오스의 인공각막 개발은 그 자체로 도전이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거다. 무모한 시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필요한가’라는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각막질환자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산업은 미래 주요 먹거리 산업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올해 보건복지부 주요 R&D 예산은 7878억 원으로, 전년 대비 2600억 원(49.3%) 증액됐다. 첨단 바이오헬스 기술 육성을 위한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난치 질환 극복 및 미래 바이오경제 시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재생의료 전주기 연구개발 지원 및 임상 연구에 2021년도 46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각막질환은 현재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희귀 난치병이다. 티이바이오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이상의 세월을 투자했다. 그 시간만큼의 노력과 경험은 결코 허투루 대할 수 없지 않을까.
글 / IT 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