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된 공유 킥보드…시장은 질주하는데, 정책은 갈팡질팡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지난 몇 년 사이 킥보드가 세워져 있는 길가는 흔한 일상 풍경이 됐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서 필요할 때만 전동킥보드를 빌려 타는 서비스인 공유 킥보드가 등장하면서 생긴 변화다.

공유 킥보드는 지난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창업한 '버드'를 시작으로 '라임', '빔' 등 후발주자들이 뛰어들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국내에는 지난 2018년 9월 런칭한 킥고잉을 시작으로 여러 업체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길가에 공유 킥보드가 세워진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길가에 공유 킥보드가 세워진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부담 없이 빌려 탈 수 있고, 요금도 저렴해 혼잡한 도시에 적합한 이동수단으로 주목받았다. 코로나19로 대중교통을 기피하는 경향도 공유 킥보드 인기에 한몫했다. 서울특별시의회 송재혁 의원에 따르면, 공유 킥보드 운영대수는 지난해 5월 1만 6,500대에서 같은 해 8월 말 3만 5,800대까지 늘어났다. 불과 3개월 만에 2배가 됐다.

앱 활성 이용자 증가 폭도 가파르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월간 활성이용자는 지난해 4월 21만 4451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6배 증가한 수치다.

성장세가 이렇게 가파르다 보니까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약 20여 개 업체가 공유 킥보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의 지난달 활성 이용자 수 통계 기준으로, 국내에서는 '지쿠터', '씽씽', '라임', '킥고잉', '알파카', '빔'이 상위 6개 업체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이 중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지쿠터'가 1위 자리를 굳히자 '라임'은 이달부터 요금을 내리며 맞대응했다. '씽씽'도 5월부터 요금을 내릴 예정이다.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출혈경쟁까지 마다하지 않는 형국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퍼스널 모빌리티 현황 및 쟁점사항’을 보면, 전동킥보드를 포함한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개인형 이동수단) 수요는 2024년에는 40만 대 이상으로 늘 것으로 예측됐다. 여기에 관련 법·제도까지 마련된다면 증가폭은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출처=서울시)
(출처=서울시)

그러나 관련 법이나 제도 논의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국회는 킥보드 안전사고 증가로 인한 우려가 한창이던 지난 해 12월, 전동킥보드 이용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가 졸속 입법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당시 개정안은 전동킥보드 등 ‘원동기장치자전거’ 중 최고속도 25km/h 미만, 총중량 30kg 미만을 개인형 이동장치로 따로 분류했다. 이 개정으로 전동킥보드도 자전거처럼 자전거 도로를 통행할 수 있게 됐다.

위험한 차도 대신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게 했으니 안전해질 것이라는 발상이다. 그런데 운전면허가 없어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헬멧 의무화 조항을 없애면서 오히려 안전사고 우려만 더 키웠다. 만 16세 이상에서 만 13세 이상으로 낮춘 것도 반발을 샀다.

부랴부랴 다시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오는 5월 13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날 이후로는 전동킥보드를 운전하려면 면허가 있어야 하고, 헬멧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안전 규제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당장 이번 재개정안도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018년 자전거 헬멧 착용이 의무화됐을 당시, 서울시가 공공자전거 ‘따릉이’ 헬멧 무료 대여 서비스를 시범 운영한 결과 이용률은 3%에 불과했다. 자전거는 헬멧 미착용에 대한 단속이나 처벌 규정도 없어 유명무실화됐지만, 킥보드의 경우는 최대 20만 원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이용자들이 킥보드 이용 자체를 기피할 게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헬멧을 탑재한 뉴런 모빌리티의 킥보드 (출처=뉴런 모빌리티)
헬멧을 탑재한 뉴런 모빌리티의 킥보드 (출처=뉴런 모빌리티)

공유 킥보드 업계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 3월 국내에 진출한 '뉴런 모빌리티'처럼 킥보드 자체에 헬멧을 비치하는 방안도 있지만, 다른 업체들은 방역이나 위생, 분실 문제가 있는 공용 헬멧 도입은 기피하는 분위기다. 대신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헬멧 착용 캠페인을 벌인다거나, 저렴한 가격에 헬멧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전동킥보드 이용에 다시 운전면허가 필요하게 된 것도 업계 입장에는 걱정거리다. 한 킥보드 업계 관계자는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중소업체들은 면허가 없는 대학생 이용자가 비중이 크다. 이런 업체들은 이번 개정안으로 인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운전면허는 자동차나 원동기에 적용되는 것이라, 전동킥보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전동킥보드 전용 면허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경찰청은 지난해 12월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수단 전용 운전면허를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약 1년간 실무 검토를 거친 뒤 관련 법령을 마련할 계획이라, 당장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전망이다.

안전하게 전동킥보드를 운행할 수 있는 여건 조성도 중요하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자전거 도로는 일반도로의 1/10에 불과하며, 80% 가량이 자전거 보행자 겸용도로다. 관련 법령만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적극적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글 / IT동아 권택경(tk@itdonga.com)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