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글로벌넷 윤희현 대표, “스타트업이 걸어갈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물이 반이나 차있네.”
“물이 반밖에 없네.”
[IT동아 권명관 기자] 같은 양의 물을 담은 물잔이 있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사람의 태도와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이 테스트는, 이제는 워낙 유명한 문구다. 대부분 반밖에 없다는 생각을 부정적이라 말하고, 반이나 있다는 생각을 긍정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정답은 없다. 만약 허물어져가는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전히 ‘반이나 있다!’는 긍정적 태도는 곧 물 속으로 침몰하는 배와 같다. 각 상황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은 매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맺고 끊음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물론 스타트업에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정진하는 태도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주변을 살피고,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도 필요하다. 눈 양 옆을 가리는 경주마는, 고삐를 쥐고 있는 기수가 있어 달릴 수 있다. 무턱대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는, 빠르게 달릴지언정 옆에서 다가오는 장애물을 피하지 못한다.
창업 후 성장을 돕는 엠디글로벌넷 윤희현 대표가 스타트업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윤 대표는 약 20년 전, 뼈저린 실패를 경험했다. 통장 조차 만들지 못하는 신용불량자로도 살아봤다. 그래서 안타깝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당시의 경험을, 후배들이, 지금의 스타트업이 겪지 않기를 희망한다.
제품을 판매한다, 유통을 한다는 의미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먼저 소개를 부탁한다.
윤희현 대표(이하 윤 대표): 엠디글로벌넷은 스타트업 유통판로를 지원하는 전문 기업이다. 스타트업이 유통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데 집중하고 있다. 완성한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에게 판로를 열어주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궁극적으로 스타트업 각자에 맞는 사업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IT동아: 마치 준비한듯한 답변이다. 길어도 좋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웃음).
윤 대표: 하하. 알겠다. 지난 2014년 설립한 엠디글로벌넷은 초기에 유통판로를 확대할 수 있도록 컨설팅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유통 환경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과 모바일로 변화하고 있던 시기였다.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예를 들어보자. 만약 지금 2021년, 당장 어떤 제품을 판매하고자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쿠팡, 티켓몬스터,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와 이베이, 11번가, 옥션 등 오픈마켓에 제품을 등록해 판매하려고 할 것이다. 와디즈와 같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선택할 수도 있고, 네이버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해 네이버라는 포털에서 판매할 수도 있다. 아마존을 이용하면 해외 수출도 어렵지 않다. 아, 물론 그래도 준비할 것이 많긴 하지만 말이다(웃음).
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필드 그러니까 오프라인과 온라인(모바일 포함)이 혼재된 상황이었다. 직접 발로 뛰며 제품을 판매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그게 도매상일 수도 있고, 소매상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통 중심지에 뛰어들어가야 했다. 일종의 네트워크다. 휴대폰 케이스를 1만개 판매하려면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것만큼) 오프라인 채널에서 전시하며 판매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중요했다.
IT동아: 제품을 소개하고, 이를 최종 소비자에게 유통해줄 사람 또는 업체가 필요했다는 뜻인가.
윤 대표: 맞다. 지난 10년, 아니 20년간 변화한 유통의 변화 흐름이다. 수출 박람회가 뭔가. 해외 수출을 원하는 국내 기업들의 제품을 모아 전시하면, 해외에 제품을 수출하는 유통사가 모이는 자리다. 그게 유통판로 지원이고, 해외판로 개척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과거와 비교해 온라인, 모바일 유통이 간편하고 편리하며 빨라졌다. 상황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가 필요한데, 바로 이게 엠디글로벌넷이 지닌 스킬이다.
IT동아: 설명을 더 듣고 싶다.
윤 대표: 유통을 쉽게 말하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에게 제품을 잘 판매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곧 제품 기획과도 같다. 수많은 고민과 선택이 필요한 영역이다. 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은 수십, 수백, 수만 가지다. 포장을 잘 해야 하나? 제품 설명을 자세하게 해야 하나? 남들과 다른 핵심 기능을 부각해야 하나? 제품 주 타겟층을 파악해야 하나? 가격을 저렴하게 해야 하나? 온라인으로 판매해야 하나? TV에 광고를 해야 하나? 등등. 이건 정말 풀리지 않는 난제다. 매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한 업체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TV홈쇼핑을 선택했다고 예로 들어보자. TV홈쇼핑은 대부분 판매 목표를 설정한다. 대부분 업체와 사전에 만나 미팅하고 협의하면서 목표액을 설정한다. 이어서 홍보 포인트는 무엇이고, 제품 장점은 무엇이고, 어떤 점을 더 부가할 것인지 등을 논의한다. 만약 1억 원이라는 판매 목표액을 정했다고 가정하자. 그럼 제품 판매 업체는 1억 2,000만 원 정도의 제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주문 받고 한달이나 두달 뒤에 제품을 배송한다면 어떤 소비자가 좋아하겠는가.
문제는 꼭 다 완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주문물량이 예상을 초과한다면 업체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겠지만, 다 판매하지 못했을 때 남는 재고 부담도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TV홈쇼핑 하나에도 고민하고 준비할 것이 산더미다. 그런데, 경험이 없는 스타트업이, 중소기업이 이를 잘 대처하며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아니다. 계속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을 해결하면서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엠디글로벌넷인 이유
IT동아: 이해했다. 엠디글로벌넷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인가.
윤 대표: 시장성 조사도 필요하다. 그런데 시장성 조사에도 여러 방식이 있다. 대부분은 ‘소비자 설문 조사’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시장성 조사라고 꼭 최종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해야 할까? 제품에 따라 설문 대상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제품 생산 업체가 꼭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이 정답일까. 경우에 따라 대형 유통업체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 이 유통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머천다이저(merchandiser)다. 바로 MD다(웃음).
IT동아: 아, 그래서 업체명이 ‘MD’글로벌넷인 것인가.
윤 대표: 하하. 맞다. 전세계 MD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그걸 지향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경우 대형 유통 현업 MD 230명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외에도 해외 비즈니스 파트너와 연계해 유통채널 진출 다각화를 통한 판로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5년,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과 함께 공공조달 판로 지원을 시작으로 중소기업, 스타트업에 판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운영사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중소기업진흥공단과 함께 판로지원 프로그램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함께 사회적 기업을 위한 판로 지원 프로그램을, 2017년 재도전 성공패키지 마케팅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최근 3년간 스타트업 교육 및 코칭 중심으로 1,241개 기업 대상으로 1,474회를, 유통판로 중심으로 2,570건을 지원했다.
IT동아: 기억나는 사례는 없었는지.
유 대표: 음…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했던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 국내 스타트업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청년창업사관학교’ 졸업 기업을 위한 판로 지원이었다. 당시 졸업 기업의 제품을 KBS의 인터넷/모바일 스트리밍 앱 ‘myK’에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을 열어 운영했었다. 지금은 많은 업체가 운영하는 미디어커머스라고 할 수 있다. 많게는 40여 스타트업과 함께 제품을 소개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스타트업인가
IT동아: 궁금한 것이 있다. 왜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윤 대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 엠디글로벌넷 설립 전, 2003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블루투스 동글을 휴대폰에 꽂으면 주변 사람들과 문자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제품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업체를 창업했었다. 이동통신사 중 한 곳과 사전에 협의해 납품하기로 약속하고, 열심히 개발했다. 당시에는 문자도 건당 30원 정도 했었다. 지금은 카카오톡이 있지만 말이다(웃음).
일종의 데이터 공유기였다. 블루투스 거리를 벗어나면 사용할 수 없었지만, 나름 혁신적이었다. 꼭 문자만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 게임은 테트리스처럼 간단한 아케이드 게임들이 많았는데, 해당 데이터를 공유해 대전할 수 있도록 이용할 수도 있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꼭 개발자였던 것처럼 들린다)
하하. 맞다. 개발자였다. 전자공학을 전공해 7년동안 회로판을 만졌었다. 그 이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코딩도 7년 동안 공부했었고. 창업 전에는 SI 업체에서 개발자로 일했었고.
그렇게 블루투스 동글 개발 업체를 창업했는데, 속된 말로 망했다. 너무 오래 집착했다. 욕심이 생겼었다. 계속 기능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처음에 손톱만했던 제품 크기가 주먹만해지고, 소프트웨어도 그만큼 무거워졌다. 그러면서 시간이 걸렸고, 납품하기로 했던 이동통신사 실무진이 바뀌면서 계획이 흐지부지됐다. 만약 당시에 빠르게 데이터를 공유하는 핵심 기능만 담아서 출시했다면, 분명 성공했을텐데….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 때 가족들의 모든 통장에 2만 원이 남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IT동아: 실패… 바닥을 경험했던 셈이다.
윤 대표: 맞다.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지만, 정말 아픈 경험이다. 그렇게 창업을 실패한 뒤 2009년, 해외에 나갈 일이 생겼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관세청의 영상관제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당시 콩고 국경에서 이뤄지는 관세 심사를 CCTV 카메라 등으로 감시하면서 이상행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사업이었다. 영상 장비, 소프트웨어 등 관련 장비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프로젝트 전반을 맡으면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직원 4명과 함께 약 3년간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초기 1년은 한국과 콩고를 왔다갔다 하면서 참여했고, 이후 2년은 가족들과 함께 콩고 현지에서 거주하면서 개발했다. 아프리카를 비록해 일본과 미국 등을 다니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었고. 그리고 2013년 첫 실패를 극복하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IT동아: 그렇게 돌아와서 설립한 것이 엠디글로벌넷인가.
윤 대표: 한국에 돌아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유통이었다. 대한민국의 좋은 제품을 해외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통해 소개해보면 어떨까. 먼저 콩고에 있을 때 관계를 맺었던 현지 대형마트업체와 연계해 ‘한국-콩고 수교 60주년 행사’를 진행하려고 했다. 국내 유통사와 제조사, 판매사를 찾아가 보낼 수 있는 제품을 찾았고, 현지에서 판매하는 기획. 어찌보면 첫 해외판로 개척인 셈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왔다(웃음).
실패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IT동아: 20년간의 경험이 곧 장점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윤 대표: 스스로의 경험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싶지 않다. ‘오래해봤으니까 잘 합니다’라는 말보다 스타트업이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 창업을 실패했던, 당시의 경험이 너무 뼈아프다. 다른 누군가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스타트업은 앞을 보고 정진해야 한다. 옆이나 뒤를 돌아볼 시간은 부족하다. 그렇다고 앞만 보다 실패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창업자에게 스타트업 대표에게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것만이 아닌 차선책을 마련해주고 싶다. 플랜 A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플랜 B를 준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고자 한다. 실패는.. 아프다. 뼈아프다. 떨어질 곳 없는 곳까지 떨어지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누군가 그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병원을 가야한다(웃음).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지만,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은 하나다. 그 하나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앞으로도 우리 엠디글로벌넷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