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버텨야만 할까요?", "맞습니다"
[판교 경기문화창조허브] (5)
스타트업은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하고, 다윈의 바다를 통과해야 성장할 수 있다. 10여 년 전에는 이 과정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당장의 자금을 해결해줄 수 있는 엔젤투자자가 생겼고, 다양한 방면의 엑셀러레이터가 등장했다. 진심 어린 멘토의 말 한마디와 날카로운 시선은 다음 발걸음의 방향을 정해준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판교 경기문화창조허브는 스타트업을 위한 멘토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아직 해결 못 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고 있는 경험 많은 멘토의 조언을 사례별로 전달한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창업 후 제품 또는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인 뒤, 치열한 경쟁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케일업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IT동아 강덕원 대표의 글을 옮긴다. 그는 “스타트업 성장은 마치 허들 경주와 같다. 장애물 하나를 넘고 나면, 바로 다가오는 장애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초기 스타트업은 창업과 함께 자신의 아이디어를 완성하는 데 집중하지만, 더 큰 장애물은 그 뒤에 찾아온다. 시작(Start-up)이 순조롭다 해도 성장(Scale-up)이 이뤄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라고 말한다.
사례: ‘브래니(VRANI)’
브래니는 패밀리 키즈 에듀테인먼트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콘텐츠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입니다. 현재 귀여운 VR 캐릭터 ‘쿠링(KOORING)’을 중심으로 ‘쿠링과 함께하는 펀타스틱(Funtastic)한 미래교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아이들이 쉽고 즐겁게 참여하는, 재미와 교육을 함께 제공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무엇보다 브래니의 장점은 다양한 채널과 매체를 활용해 VR 콘텐츠를 게임,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쿠링XR 클래스’ 개발입니다. 대표적인 실감미디어 중 하나인 VR을 활용한, 미래 교육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현재 18개의 커리큘럼을 VR로 개발하고 있으며, 미래 교실의 변화된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국내외 VR 시장이 궁금합니다. 국내의 경우, 코로나19 등으로 올해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요.
A. VR 관련 시장부터 한번 짚어보고자 합니다. 2015년 이후 국내 VR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VR 플랫폼, VR 저작도구, VR HMD 등 하드웨어와 콘텐츠 양쪽에서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위기와 함께 오프라인 테마파크에 집중하고 있던 ‘국내 VR 시장은 끝났다’라는 우려도 있었죠.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전화위복처럼, VR은 콘텐츠가 지닌 경쟁력으로 인해 다시 관심받고 있습니다. VR을 활용한 게임, 소셜 플랫폼, 교육 콘텐츠, 문화/예술 콘텐츠 등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데요.
올해 3월 밸브(Valve)가 스팀을 통해 선보인 VR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출시 일주일 만에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 원) 매출을 달성했고, 출시 한 달 뒤에 4,070만 달러(한화 약 480억 원)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출시 두 달 후 거둔 매출은 1억 2,000만 달러, 한화 약 1,410억 원에 달했죠.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자택에 머물기 시작한 사람들의 행동 변화와 기존에 보지 못했던 실감 나는 VR 콘텐츠에 사람들이 매료됐습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VR을 즐기기 위해 구매해야 했던,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의 HMD를 시장 확대에도 기여했습니다. 지난 4월, VR HMD를 보유한 스팀 사용자는 1.29%에서 1.91%로 50% 증가했습니다(약 200만 대).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통해 VR을 접하는 사용자도 빠르게 늘어났죠. 마치 고퀄리티 그래픽 성능을 요구하는 인기 게임 출시와 함께 고성능 그래픽카드, 차세대 프로세서(CPU) 등을 탑재한 PC 판매가 늘어나는 현상과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VR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2019년 5월 21일, 오큘러스가 VR HMD ‘오큘러스 퀘스트’를 출시했는데요. 2019년 말까지 누적 판매량 400만 대를 달성했습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새로운 VR HMD를 이전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바, 시장 파이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오큘러스 퀘스트 출시 이후 VR 스토어 ‘오큘러스 스토어’ 매출은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Digi Capital, 삼성증권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과거 대표적인 VR/AR HMD 출시와 함께 VR에 대한 투자도 크게 늘었습니다. 그만큼 내년 VR 시장 전망은 긍정적입니다.
Q. VR 콘텐츠의 경쟁력을 교육으로 찾고 있습니다. ‘쿠링VR 클래스’, ‘미래교실 프로젝트’ 등 실제 교육 현장에서 테스트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VR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교실의 수업 도구는 약 15년 주기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책상 위에 꼭 책과 공책이 필요할까요? 이제는 PC와 노트북, 태블릿PC 등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분필 가루가 날리는 칠판도 어느새 전자 칠판으로 바뀌고 있죠. 브래니는 넥스트 미디어로 VR을 선택했습니다. 3년 전에 뛰어들었고,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준비만큼은 철저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브래니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 아닙니다. 자체 개발한 VR 엔진과 소스, 교육 커리큘럼을 갖추기 시작했죠.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야 해’라는 단계가 아닙니다. 가족, 영유아라는 명확한 타겟을 찾았고, ‘어떻게 하면 브래니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아이들의 시선에 맞게 녹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단계죠. 실제로 처음 VR을 경험하는 아이와 가족들에게 VR로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콘텐츠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투입한 제작비만 48억 원입니다. 10개의 IP로 구성한, 온/오프라인 통합 프로젝트를 준비했죠. 전세계 7개국에서 2,500명 이상의 아이와 가족등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사용자 테스트도 진행했습니다. 밝은 그래픽과 음성 가이드 등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을 하나씩 추가했고, VR 콘텐츠 제작 경험도 쌓았습니다. 개선되는 IT 인프라와 내부 스킬을 통해 사용자가 느끼는 멀미 현상도 상당부분 감소했죠. 브래니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과 콘텐츠에 집중한다면, 넥스트 미디어로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올 한해입니다. 많은 VR 업체들의 희비가 나뉘는, 안타까운 소식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버텨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버텨야만 하는 걸까요.
A. 맞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상반기에는 전통적인 VR 프렌차이즈 및 대형 유통업체 등의 타격이 상당했습니다. 작년말까지만해도 흔히 볼 수 있던 VR 테마파크의 지금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VR 관련 전체 시장을 보면, 큰 발전도 있었습니다. 3세대 기어(HMD)의 출현으로 PC에서 모바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죠. VR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PC와 유선으로 연결한 기기(HMD)가 있어야 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클라우드 PC 자원과 5G 인프라, 고성능 모바일(스마트폰) 등으로 인해 경험이 바뀌고 있죠.
특히, 에듀케이션 교육 시장, 산업 교육, 화상회의 등 비대면 서비스에서 VR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브래니는 다음 단계로 ‘쿠링 XR 클래스’ 교육 콘텐츠 개발과 함께 기존 콘텐츠를 모바일로 이식하고자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무엇보다 브래니 구성원들은 과거 모바일 콘텐츠를 출시한 경험도 가지고 있죠.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온라인보다 모바일 경험이 많다는 것은 충분한 장점으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총칼이 난무하고, 과도한 폭력으로 점철된 VR 콘텐츠 시장에서 아이와 가족을 위한 VR 콘텐츠에 집중하는 브래니 같은 스타트업이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례: ‘크리켓(Creket)’
크리켓은 크리에이터 마켓의 줄임말입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채널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시청 구독 수익만 아니라 광고, 스폰서쉽 등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플랫폼 서비스입니다. 독창성 있는 크리에이터와 협업할 기회를 찾는 브랜드를 연결하고자 하는 마켓 플레이스입니다.
크리켓은 브랜드와 가장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효과적인 크리에이터를 섭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유럽, 북미, 동남아 등 국가별 매니저들이 현지에서 매칭과 소싱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는데요. 중소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이 크리에이터를 소싱하고, 영문으로 계약할 필요 없이 크리켓 플랫폼에서 협업할 수 있도록 거래를 간소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해외 시장 진출 관점에서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해당 지역 소비자가 상품을 찾고 검색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는 단순 노출 광고 등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에 크리켓은 국내에 맞춰 기획/제작한 상품을 재해석하고, 해외 현지에 맞도록 컨설팅을 제공합니다. 한 예로, 한 중소기업이 국내에서 저가 일회용 메이크업 클렌져로 판매하는 미용용품을 미국 시장 침투 및 상품 포지셔닝 전략으로 변화했습니다. 단순히 소모성 일회용 클렌져가 아니라, 비건, 크루얼티프리(친환경) 클렌져로 차별화해 환경 보호에 예민한 북미 서부 지역의 여성 소비자에게 소개했죠. 결국 아마존에서 국내 가격보다 2-3배로 판매하며, 수백개의 5점 별점 리뷰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크리켓은 출시 3개월만에 현직LPGA 선수 ‘Charley Hull’, 레고 공식 인플루언서 ‘JustJordan33’, 디즈니 Stargirl 출신 배우, 올림픽 출전 체조 선수, 세포라 공식 인플루언서 등 전세계 20여개국의 셀럽, 모델, 배우, 운동선수, 인플루언서를 확보했습니다.
Q. 현재 크리켓은 아이디어 구현 후, 이제 막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스타트업입니다. 그래서 아직 감추고 싶은 아이템이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A. 어려운 주제입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감추고 싶은, ‘대외비’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먼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스타트업 관련 네트워크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면, 공공연한 비밀처럼 아이디어 도용 사례, 불공적 계약 소식 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대기업-스타트업간 불공정 계약'을 주제로 정기포럼을 비공개로 개최한 바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처할 수 있는 불공정 계약 사례를 공유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인데요. ‘비용 후려치기’, ‘제공된 정보의 공동지적재산권 강요’, ‘장기간 저가 제공 강요’, ‘스타트업 아이디어 도용 및 기술 유용 문제’ 등을 나눴습니다.
당시 한국NFC 사례를 스타트업 노하우 및 아이디어 도용 문제로 다뤘습니다. 한국NFC는 신용카드 본인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데, 2016년부터 A 신용평가사와 제휴해 기술 및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A 신용평가사는 계약 이행을 지연시키다 해지하고, 한국NFC를 배제한 채 관련 사업을 개시해 논쟁으로 이어졌던 사례였습니다.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는 상대에 의해 스타트업이 기술을 탈취당하거나 불공정 거래로 묶이는 사례는 암묵적으로 회자됩니다. 하지만, 개별 스타트업은 향후 받을 피해를 우려해 공개적인 문제제기 자체를 꺼려왔죠.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약자입니다. 대기업의 기술 제휴 요청, 투자사의 투자 검토 요청, 정부 기관의 테스트 요청 등에 혹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대기업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제휴나 협력이지만, 사실상 하도급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술유용에 관한 문제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죠. 비단, 국내만의 일이 아닙니다. 해외에서도 이 같은 사례는 금세 발견할 수 있죠.
문제 발생 후 공론화하는 것이 어렵다면, 사전에 보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허 등을 신청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스타트업을 위한 보호 정책도 꾸준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인 지난 10월 30일,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가 창업‧벤처기업의 아이디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아이디어 임치제도'를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창업‧벤처기업의 아이디어를 임치기관에 안전하게 보관하다 분쟁이 생길 경우, 개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인데요.
초기 창업기업 등이 사업계획서, 제안서 등 기술·영업자료를 공모전 출품 또는 거래상대방에게 제안하는 과정에서 유출·탈취되는 사례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입니다. 사업계획서, 제안서 등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임치기관에 무료로 임치하도록 지원하는데요. 아이디어 임치와 더불어 임치기업 대상으로 비밀유지계약 체결 유도 등을 통해 창업 초기부터 기술분쟁 등에 휘말리지 않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글 / 강덕원 멘토
편집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