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시작해 베이징으로 끝난 IFA2020··· 코로나 19 기회 삼는 중국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남시현 기자]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CES 2020(소비자 가전 전시회)이 마지막 국제 행사가 될거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미국에서 주의해야 할 질병은 독감이었고, 중국발 바이러스는 신경쓸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명명된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 여파로 2월 말 바르셀로나에서 진행되는 MWC 2020이 취소되었다. 보통 MWC 규모의 국제 행사는 1년 전부터 모집이 끝나는 만큼 MWC측도 개최를 강행할 분위기였지만, 스페인의 코로나 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참가 거부 의사를 밝힌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취소되었다. 이미 내년도 CES는 일찌감치 온라인 개최를 확정지은 만큼, 내년에도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5일 폐막한 독일 IFA 2020은 온·오프라인 전시를 동시에 개최했다. 하지만 올해는 전 세계 3대 가전 전시회이자, 유럽 최대의 IT 산업 박람회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규모로 개최됐다. 아니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참가국이 문제다. IFA 2019 당시 전세계 52개국에서 1,840여 개 기업이 참가 신청을 했는데, 이 중 40%가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독일이 아닌 중국 현지에서 진행한 것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유럽 전시회인 IFA2020, 온라인 참가는 93%가 중국기업,

IFA 비주얼 마켓 플레이스를 통해 IFA2020 참가기업 및 국가를 분석한 결과, 올해 IFA는 20개 국가가 참가하고, 참가 기업은 1,448개로 확인된다. 그중 온라인이 1,350개, 오프라인 부스나 오프라인 콘퍼런스를 추진한 기업은 98개 기업에 불과했다. 오프라인 부스를 마련한 기업은 독일이 45개로 가장 많았고, 한국과 프랑스가 8개로 2위, 영국과 중국이 6개로 3위, 나머지 국가는 모두 1~2개를 기록했다. 물론 현대차나 코트라(KOTRA)가 독일 현지에서 참가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오프라인 참여는 2위다.

하이얼 그룹은 이탈리아 국적으로 참가했다. 전체 온라인에서 중국계 비중을 합치면 93%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출처=IT동아
하이얼 그룹은 이탈리아 국적으로 참가했다. 전체 온라인에서 중국계 비중을 합치면 93%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출처=IT동아

문제는 디지털이다. 올해 온라인으로 참가한 기업이 1,350개인데, 그중 1,257개가 중국기업으로 확인된다. 오프라인에서도 티피링크가가 독일 법인으로, 하이얼이 이탈리아 법인으로 참가하는 식으로 국적을 바꾼 것까지 감안한다면 실질적인 중국 참여 비중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퍼센트로 계산하면 93%의 디지털 참가 기업이 중국 국적이인데, 이미 작년만 해도 40%가 직간접적으로 중국과 연관돼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독점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중국 TCL이 공개한 TCL 무브타임, 베젤 디자인이나 UI가 애플워치와 흡사하다. 출처=TCL
중국 TCL이 공개한 TCL 무브타임, 베젤 디자인이나 UI가 애플워치와 흡사하다. 출처=TCL

콘퍼런스 역시 중국 비중이 높은데, 내용도 문제다. 미국 퀄컴(Qualcomm)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사장이 기조연설을 진행하고, LG전자와 독일 BSH 홈어플라이언스가 콘퍼런스를 연 이후 TCL과 화웨이, 하이얼 등이 제품을 선보였다. TCL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애플 제품을 따라 하는 전략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이미 삼성이 키운 QLED 브랜드를 자사의 TV 마케팅에 쓰고 있고, 스마트폰 펀치 홀 모양이나 측면 전원버튼 지문 인식, 티비 스탠드까지 베끼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애플워치나 에어팟, 갤럭시 S10e를 본뜬 제품을 공개했는데,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자체 기술력으로 제조한 풀 컬러 전자잉크 ‘NXTPaper’도 함께 공개했다. 이 제품은 자연광을 재사용해 컬러를 구현한 전자잉크 화면이라는데, 자세한 기술이나 실증에 대해선 소개하지 못해 한계를 드러냈다.

화웨이 IFA2020 키노트에서, 유럽 7개 국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출처=화웨이
화웨이 IFA2020 키노트에서, 유럽 7개 국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출처=화웨이

화웨이도 구글 플레이스토어 폐쇄에 대항하는 자체 앱 시장, 앱 갤러리를 공개하겠다며 반격에 나섰다. 특히 이미 2019년 유럽에서만 22만 3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음을 알리며, 향후 유럽에서 8개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42개의 체험형 매장을 열겠다는 뜻을 밝혔다. 화웨이가 이처럼 유럽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유럽 시장밖엔 답이 없어서다.

화웨이가 공개한 2019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 매출의 59%는 중국에서, 24%가 유럽 및 아프리카 시장에서 창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2018년 대비 -13.9% 떨어졌고, 북미 지역은 소폭 올랐으나 2020년엔 감소할 전망이다. 화웨이가 사활을 걸고 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는 이유다. 아울러 오는 9월 15일부터 미국 상무부의 화웨이 추가 제재로 인한 화웨이의 반도체 수입이 금지됨에 따른 활로를 찾기 위한 목적도 엿볼 수 있다.

참가없이 자체 행사 가진 삼성, 온라인 참가한 LG전자

LG전자는 유니티 엔진을 활용한 가상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출처=LG전자
LG전자는 유니티 엔진을 활용한 가상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출처=LG전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IFA에 꾸준히 참가해온 삼성전자는 아예 IFA에 참가하지 않았고, LG전자 는 유니티 기반의 3D 가상 전시관을 운영해 볼거리를 제공했다. 지난 1일부터 ‘새로운 공간에서 경험하는 LG의 혁신’을 슬로건으로 내건 LG 가상전시관은 LG 마이크로사이트를 통해 접속할 수 있고, 2015년부터 전시관을 꾸며온 메세 베를린(Messe Berlin) 18홀을 그대로 구현했다. 고객이 접속한 시간에 맞춰 낮과 밤을 구현하는 것은 물론, 전시공간을 돌아다니며 제품에 관한 설명을 확인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멈추지 않는 삶’을 주제로 1시간가량의 가상 기자회견을 열고 ▲프리미엄 프로젝터 ‘더 프리미어(The Premiere)’ ▲커브드 게이밍 모니터 ‘오디세이 G5’ ▲‘비스포크’ 냉장고와 ‘그랑데 AI’ 기능을 대거 채용한 세탁기·건조기 신제품 ▲갤럭시 Z 폴드2 등 하반기 주요 신제품을 소개했다. IFA 2020에 참가하지 않고도 올해 출시할 신제품은 모두 소개한 것이다.

IFA2020 : 주최 : 베를린 / 개최 : 베이징

코로나 19 여파로 IFA2020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출처=IFA
코로나 19 여파로 IFA2020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출처=IFA

매년 1월 미국에서 개최되는 CES가 1년 로드맵과 상반기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라면, 베를린 IFA는 내년 시장의 활로와 하반기 제품을 소개하는 행사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독일 기업을 중심으로 조촐하게 열렸지만, 온라인에서의 중국 비중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점은 대단히 경계해야 한다. 특히 중국 기업이 발표하는 내용도 기술력 확보나 비전 제시보다는, 유럽 내 중국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지가 앞선다.

아울러 IFA에 큰 비중을 두고 있던 삼성전자가 이탈해 자체 행사를 열고, LG전자도 온라인 행사로 대체한 점은 이미 예견되었던 현상이다. 기존 IFA를 지탱하던 주력 기업들이 하나 둘씩 자체 행사나 온라인 개최로 바뀌고, 그 자리를 중국 기업이 차지하면서 국제 가전 박람회라는 IFA의 취지도 반감된다. 비단 IFA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CES가 온라인 개최로 선회했고, 다른 국제 행사들도 앞으로 몇 년은 온라인으로 개최될지도 모른다. 중국은 집요하게 이 부분을 파고들어 자국의 영향력 확대에만 몰두할 것이다. IFA처럼 차이나 머니의 유입에 안주하기만 한다면, 명망 있는 국제 행사들도 그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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