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업과 정부의 동상이몽, 장애인 의무고용제의 현황과 문제점

강형석 redbk@itdonga.com

[IT동아]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도입된 지 근 30년이 됐다. 장애인을 단순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던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 또한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과연 그 성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2018년 기업체 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300~999명 규모의 기업체가 2.22%의 고용률을 달성했고, 규모가 큰 1,000명 이상의 사업체는 1.95%의 고용률을 보였다. 규모가 큰 기업들이 '고용 의무 이행' 대신 '부담금 납부'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지난 5년 동안 납부한 부담금은 총 501억 원으로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고, SK하이닉스는 235억 원, 대한항공 216억 원 순으로 부담금을 납부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부담금을 납부하는 경향은 해가 지날수록 더욱 심해졌다. 2014년 1,144억 원이었던 부담금은 2018년 1,576억 원까지 증가했다.

늘어가는 부담금 압박에도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 의무를 외면한 채 부담금 납부를 선택하는 속사정은 무엇일까.

장애인도 기업 실무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장애인도 기업 실무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기업들도 장애인을 채용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장애인 직무가 대개 비장애인 직원들을 위한 복지나 단순 업무에 한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의무고용 이행만을 위해 필요 이상의 복지 인력이나 단순 직무를 확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장애인 근로자의 직업 현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장애인 근로자 중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비율이 37.9%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뒤이어 '서비스 종사자'와 '사무 종사자'는 각각 14%와 13.1% 순으로 높게 확인됐다. 실제 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형태를 살펴보면, 장애인의 직무가 단순 노무에 편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SK의 경우 작년 7월 장애인 26명을 직접 고용했지만, 이마저도 모두 사옥 내의 사내 카페에서 근무하는 바리스타에 한정됐고, 2018년 4.8%의 고용률로 장애인고용 우수사업주에 선정된 이랜드월드는 의류/액세서리 분류 작업 등의 단순 직무에 한정해 발달장애인을 채용했다.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한 정부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조차도 이 같은 경향을 보인다. 장애인 고용 포털 '워크투게더(Worktogether)'에서 제공하는 교육훈련정보를 살펴보면, 바리스타, 문서수발, 주차관리, 경비 등과 같은 단순 직무 위주의 훈련들이 대다수다.

장애인 고용과 관련된 숙제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각종 규제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스웨덴 정부는 '삼할(SAMHALL)'이라는 국영 기업을 통해 장애인을 직접 고용한다. 삼할은 지적 장애인을 포함해 최중증 장애인까지 채용하고 있으며, 다수의 민영 기업들로부터 일감을 수주해 개별 장애인에게 적합한 형태의 직무로 치환해낸다. 이를 통해 삼할에 고용된 장애인들은 실제 근로를 통해 민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을 습득하게 된다. 삼할은 고용된 장애인의 정규 노동 시장 진출을 궁극적 목표로 하여 운영되는 곳이다.

국내에도 장애인 고용 환경 조성을 위한 '표준사업장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해당 제도가 대기업들이 고용 의무를 덜어낼 수 있는 제도적 피난처로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이 일정 비율 이상 출자해 표준사업장을 설립하면, 이에 고용된 장애인을 모기업이 직접 고용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제도' 때문이다.

2019년 12월 기준 국내에는 391개의 표준사업장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장애인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고용 불안과 낮은 임금 수준과 같은 열악한 근로 조건도 예나 다름 없다. 이는 정부가 고용률과 같은 양적 확대에만 주목했을 뿐 좋은 일자리, 지속 가능한 근로 관계 등의 질적 확대에는 집중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근로와 관련된 기술은 피상적인 직무 교육에 의해 길러질 수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오롯이 기업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직무를 중심으로 개별 장애인의 근로 능력이 개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박제된 교육이 아닌 직무 수행을 통한 OJT(On the Job Training) 방식의 살아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해외 사례와 같이 정부 또한 개별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직무' 중심' 역량 개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3조 2항은 장애인 고용촉진을 위한 시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선언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실제 기업에 필요한 직무 교육을 통해 장애인을 정규 노동 시장에 안착시킬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는 공공부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단순 기부나 경제적 보조와 같은 일차적 지원을 넘어 장애인을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키고, 이를 통해 사회통합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경제 주체인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와 동조 없이는 결코 달성될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국가가 개별 기업이 처한 현실을 헤아리지 않은 채 규제만을 강화하는 감독관 지위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장애인 의무고용제의 본질인 '사회 통합'은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동상이몽에 불과하다.

글 / 가비아 콘텐츠팀 양희리
정리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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