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T기업, 개발자들에게 천국일까 무덤일까
[IT동아]
가비아 송태형 개발이사가 말하는 IT개발자들이 바라는 기업 문화
IT기업이라면 늘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이를 테면, '자유로운 기업문화와 높은 복지 수준', 혹은 '가혹한 업무 강도' 등이다. 기업 규모와 업태를 막론하고, IT 업종에 관한 전반적인 인식과 그 분위기를 설명하는 말이다.
일반 기업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현저하지만, IT기업에는 그런 방식으로 구분해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문화'가 존재한다. 소규모의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파격적인 대우와 근무환경을 제공하는가 하면, 개발자들도 (그 취직하기 어렵다는) 대기업을 훌훌 내려놓고, 스타트업에 재입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편, 가혹한 업무 강도 때문에 수시로 퇴사하거나 이직하는 것도 IT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자정이 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IT기업 빌딩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었다. IT기업은 이렇게, 개발자의 천국이자 무덤으로 각인되고 있다.
IT인력은 IT업계만이 아닌 모든 산업체에 필요하지만, 그만큼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수한 IT인력을 보유해야 하는 기업들은 치열하게 채용 경쟁을 해야 하는 반면, 실력있는 개발자나 엔지니어 등의 IT인재들은 비교적 쉽게 원하는 기업을 선택할 수 있다.
경기 판교 테크노밸리나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매번 기업문화의 혁신을 선보이거나, 중소기업 또는 스타트업들이 IT업종에서는 대기업 못지않은 기업문화와 복지, 연봉 테이블을 제공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우수한 기업문화를 무기로 실력있는 IT인재를 영입하고, 오래오래 붙잡아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럼 IT업계의 실제 고용 상황과 근무 분위기는 어떨까. IT인력은 각자 중시하는 가치에 따라 기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마냥 대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은 다른 업종에 비해 적은 편이다. 개발자들은 흥미있는 사업 아이템이나 전망을 보고 기업을 선택하기도 하며, 가능성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좋은 대우를 제공하는 곳이라면 스타트업이라도 인재가 모여든다. 이런 IT업계 환경은 실제로 '배달의 민족'이나 '여기 어때' 같은 신생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기업들의 성장 동력이 됐다.
물론 좋은 기업문화와 복지가 IT기업의 전부는 아니다. IT인력 부족은 결국 현업에 종사하는 개개인의 부담으로 돌아가 가혹한 업무 부담을 낳는다. 특히 IT인재를 많이 영입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우, 한두 명의 개발자에게 많은 일이 몰리기도 하며, SI업계에서는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고객사의 무리한 요구 및 일정을 수용함으로써 그 부담을 몇 명의 개발자 몫으로 떠넘기기도 한다.
프로젝트 흥망이 기업 흥망과 직결되는 게임 업계의 경우, 이른 바 '크런치모드(게임 출시를 앞둔 고강도 집중 근무 기간)'로 게임 개발자들을 극한까지 몰아넣는다. 이로 인해 얼마 전에는 게임 개발자들이 연이어 과로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개발자의 무덤인 셈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에서 IT업계만 예외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도 이런 업계 환경 탓이 크다.
IT기업의 근무 강도를 개선하고 좋은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IT인력 육성을 위한 교육을 확대하는 게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당장 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일부 IT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제외하고는 IT인력을 소모품 취급하는 인식이 여전히 만연하다. 그러나, IT중소기업 개발 부서의 리더로서 부서를 운영하며 느낀 것은, 고강도 노동이 반드시 수준 높은 개발과 성과, 서비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단 우수한 개발자 집단을 보유하면, 기업의 서비스 수준과 생산성은 자연히 높아진다. 우수한 개발자는 지금 눈 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 위한 개발이 아니라, 장기적인 변화와 사업적 관점에서 개발할 줄 알기 때문이다. 만약 닥친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해 나중에 다시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기업 입장에서도 큰 피해를 입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개발자를 소모품 취급하는 지금의 환경에서는 절대 스스로 사고하는 개발자가 나올 수 없다.
우수한 개발자를 처음부터 영입할 수 있으면 좋지만,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그러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수한 개발자를 내부에서 육성하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사업에 대한 투자처럼 개발자 육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인력 육성이 곧 수급이 되고, 개발력을 갖춘 개발자 집단은 결국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
인력 육성을 위해 IT기업의 관리자들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개발 부서의 리더는 개발자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부서의 목표와 개발자 개개인의 목표가 합치함을 알려줘야 하고, 기업은 그런 개발 부서가 잠재력을 드러내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개발자가 스스로 발전하려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가비아 개발부서가 과거 공무원 조직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정적인 의미로, 기획자들로부터 전달 받은 것을 자기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일정에 맞춰 처리하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기술 기반의 기업으로서, 기술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지속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때문에 개발부서를 운영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이 없더라도 개발자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직접 해볼 수 있도록 장려했다. 생활코딩 교육 강사를 하거나, 세미나를 진행하거나, 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기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려 노력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 개발자 또는 개발부서를 두고 '공무원 같다'는 말하는 이는 아직까지는 없다.
신입 개발자를 선발할 때는 그 개발자가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최근 신입 직무에 지원하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개발이력,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면접을 진행하면 각 프로젝트를 어떤 생각으로 참여했는지 항상 물어본다. 관심이 있어서 했는지, 혹은 스펙을 쌓으려고 했는지. 이유를 들어보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몰입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려 한다. 무언가를 틀릴 수는 있지만, 틀린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단편적으로 생각 없이 개발하면, 장기적인 변화나 더 넓은 관점에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런 태도 때문에 시간이 지나 다시 수정 개발해야 하는 생기기 쉽다.
개발자가 정말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느껴서 일을 하면, 그래서 자신의 일에 생각을 가지고 몰입하면, 그 개발은 오래갈 수 있다.
월화수목금금금... 개발자들의 한 주 사이클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업문화를 가꿀뿐 아니라실제 노동 강도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평생 갑도 을도 아닌 '병(丙)'으로 일하다가 '병(病)'을 얻었다는 개발자들의 하소연이 들리지 않으려면, 인력 육성에 더 투자함으로써 개발자를 위한 '천국'의 지평을 조금은 더 넓혀야 하겠다.
글 / 가비아 개발실 송태형 이사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