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국가로] 도전정신은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확산되는 걸크러시

강일용 zero@itdonga.com

[리스본=IT동아 강일용 기자] 포르투갈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인상 깊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여성 창업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단순 아이디어 창업이나 장사가 아니라 공학 석박사를 받은 고급 인력들이 자신이 연구한 것을 살려 스타트업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안나 타바레스(Ana Tavares) 픽어드밴스트 부사장은 빛을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컨버터를 개발하는 업체인 픽어드밴스트의 공동창업자다. 픽어드밴스트는 유선 네트워크 구축에 이용되는 XFP 송수신기의 크기를 줄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광케이블 네트워크는 초당 2.5GB 정도의 데이터를 보낼 수 있는데, 컨버터의 성능을 끌어올려 초당 40GB의 데이터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포르투갈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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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타바레스 픽어드밴스트 부사장. 광케이블을 전기신호로 더 빠르게 바꿔주는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 연구의 가장 큰 강점은 기존의 광케이블 네트워크는 그대로 두고, 가정에 위치한 송수신기만 교체해도 몇십 배 더 빠르게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출시를 목표로 샘플을 만들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타바레스 부사장은 아베이로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재원이다. 포르투갈의 네트워크 연구소인 알티스랩에서 차세대 수동 광통신망(PON)을 연구하던 도중 지도교수를 만났고, 해당 교수와 함께 창업에 나섰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인가를 연구한다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커서 자연스럽게 공대에 진학하게 되었다"며, "아베이로 대학의 경우 공대임에도 많은 여성들이 재학 중이다. 그녀들이 취업뿐만 아니라 창업에 도전하는 것을 보며 나 역시 창업에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창업 동기를 밝혔다.

루시아 빌로(Lucia Bilro) 왓그리드 최고기술책임자는 유체역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전공을 살려 창업에 나선 사례다. 그녀는 현재 액체의 상태를 모니터링한 기술을 개발한 후 이를 바탕으로 숙성중인 와인의 상태를 중간점검할 수 있는 와인그리드 서비스를 선보였다.

포르투갈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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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빌로 왓그리드 CTO. 와인 숙성 도중 와인의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와인그리드 서비스를 개발해서 유럽 전역으로 수출했다>

와인그리드는 와인이 숙성되는 오크통 내에 센서를 넣어서 와인의 높이, 온도, 밀도 등을 측정해주는 서비스다. 오크통내에 가스가 차서 맛이 변질되는 것을 막고, 와인의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최고의 와인을 만들려면 어떤 숙성 환경을 만들어야하는지 와인 제조 업체들에게 관련 데이터를 제공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감과 경험에 의지하던 와인 생산 과정에 기술과 데이터를 도입하려는 것이다. 현재 20곳이 넘는 포르투갈의 와인 생산 업체들이 와인그리드를 구매해 자사의 숙성 환경을 개선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와인 생산의 주요 거점인 프랑스 보르도시로부터 투자도 받았고, 이탈리아 와인 업체들에게 와인그리드를 수출하는 계약도 맺었다.

빌로 CTO는 대학에서 물리학 연구를 하던 도중 와인그리드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상을 받았다. 지도 교수와 함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창업에 나섰다. 현재는 지도 교수가 대외 활동과 투자 유치를, 빌로 CTO가 기술 개발을 맡고 있다.

포르투갈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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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그리드의 시제품. 지속적은 개량을 거쳐 전 세계 와인 생산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에밀리아 시모에스(Emilia Catarina Oliveira Simoes) 라스트투티겟 최고경영자는 회사를 경영한지 7년이 넘은 베테랑 여성 CEO다. 라스트투티켓은 행사 관련 앱과 소프트웨어를 대신 개발해주는 업체다. 온라인 체크인에 어려움을 겪는 극장이나 공연관이 아무런 부담 없이 온라인 티케팅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유럽 시장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캄보디아에 지사를 설립해 동남아 시장에도 진출했다.

파울로 산토스(Paulo Santos) IPN 인큐베이터 이사는 포르투갈의 여성 창업이 활발한 이유로 포르투갈이 IMF 구제 금융을 받은 이후 창업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고학력 여성이 늘어난 것을 꼽았다. 창업을 위한 기초 여건과 사회 분위기가 맞물려 여성 창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창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취직이나 결혼으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보다 도전함으로써 더 큰 기회를 움켜쥐려는 모험 정신이 포르투갈 젊은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르투갈 2020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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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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