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흥망사] '한 우물'만 파야 했을까? 90년대 격투게임 지존, 'SNK'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김영우 기자]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라는 속담이 있다. 여러 일을 하는 것 보다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의미다. 이는 물론 좋은 말이지만, 현대 기업환경에선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시장의 트렌드가 바뀌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2001년 도산한 (구)SNK의 로고
2001년 도산한 (구)SNK의 로고

다만, 이 과정에서 적잖은 기업들이 기술력의 부족이나 마케팅의 실패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1990년대 업소용(아케이드) 게임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던 일본의 게임 개발사 'SNK'가 대표적인 사례다.

1970년대 게임 붐을 타고 태어난 SNK

일본 오사카에서 카페 및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카와사키 에이키치(川崎英吉)는 1973년, 고베에 있던 전기회사를 인수해 '신일본기획(Shin Nihon Kikaku)'을 설립했다. 신일본기획은 창업 초기부터 약자인 'SNK'로 불리곤 했는데, 1986년부터는 아예 회사 이름을 SNK로 변경했다.

SNK의 초기 히트작 중 하나인
'이카리(1986)'
SNK의 초기 히트작 중 하나인 '이카리(1986)'

1970년대 후반, 타이토(Taito)사의 '스페이스인베이더'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일본에는 전국적인 게임 붐이 일어났는데, 이 시기의 SNK 역시 업소용 게임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게임 시장 진입 첫 해인 1978년에는 타사의 블록 격파 게임이나 스페이스인베이더 게임을 거의 똑같이 모방한 작품을 출시했으나, 1979년부터 자사의 첫 오리지널 작품인 '오즈마 워즈(Ozma Wars)'를 내놓으며 게임 개발사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SNK는 'ASO(1985년)', '아테나(ATHENA, 1986년)', '이카리(IKARI, 1986년)', '싸이코 솔저(Psycho Soldier, 1987년)'등의 히트작을 다수 내놓으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명작 게임의 고향, '네오지오'의 탄생

다만, 게임 시장이 커지고 업체들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고민도 커졌다. 특히 업소용 게임의 경우, 게임 타이틀마다 각기 다른 독자적인 규격의 기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게임 개발사들은 업소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마다 하드웨어 개발 비용까지 부담해야하는 이중고를 겪곤 했다. 이에 SNK는 범용성이 높은 하드웨어 플랫폼을 개발, 마치 가정용 게임기처럼 소프트웨어 카트리지만 교체해 운용할 수 있는 업소용 게임 기판 플랫폼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바로 1990년에 첫 선을 보인 '네오지오(Neo Geo)'다.

네오지오는 당시로선 고성능을 자랑하던 16비트 CPU 및 화려한 화면을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 칩을 탑재했다. 무엇보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용량이었던 100 메가비트(약 12.5 메가바이트)의 롬 카트리지도 소프트웨어 매체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기판 기반의 게임들에 비해 고품질의 그래픽과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었다.

게임마니아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네오지오 가정용
버전
게임마니아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네오지오 가정용 버전

SNK 외의 게임 개발사에서도 서드파티(Third Party, 외부 생산자) 계약을 맺고 네오지오로 자사의 업소용 게임을 개발, 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규격화된 하드웨어와 롬 카트리지 방식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는 특성을 이용, SNK는 1991년에 가정용 네오지오를 출시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하나의 가격이 어지간한 가정용 게임기 한 대 수준인 3만엔에 달할 정도로 비쌌지만 업소용과 완전히 동일한 품질의 게임을 가정에서 즐길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마니아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SNK 인기 캐릭터들이 총출동, 꿈의 대결을 벌이는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SNK 인기 캐릭터들이 총출동, 꿈의 대결을 벌이는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네오지오 플랫폼은 우수한 게임을 다수 배출했는데, 특히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끈 대전격투액션 장르가 주류를 이뤘다. 당시 SNK의 게임들은 멋진 그래픽과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뛰어난 구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특히 '아랑전설(Fatal Fury, 1991년)' 시리즈나 '용호의 권(Art of Fighting, 1992년)' 시리즈, '사무라이 쇼다운(Samurai Shodown, 1993년)' 시리즈 등은 전세계 게임센터(오락실)를 떠들썩 하게 할 정도로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1994년에는 SNK 인기 게임들의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 꿈의 대결을 펼치는 '더 킹 오브 파이터즈(The King of Fighters)'의 첫 시리즈가 출시되어 큰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욕심만 앞섰던 가정용 게임기 시장 본격진출, 그리고 좌절

출시되는 게임마다 큰 인기를 끌면서 1990년대의 SNK는 그야말로 업소용 게임업계의 지존 중 하나로 등극했다. 하지만 이 무렵의 SNK에서도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SNK는 업소용 게임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긴 했지만 해가 갈수록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가정용 네오지오가 있긴 했지만, 롬 카트리지 기반의 소프트웨어 가격(1990년대 롬팩 하나의 가격은 우리돈으로 30만~40만 원 수준이었다)은 워낙 비싸서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에 그쳤다. 그 외에 외부업체를 통해 자사의 인기 업소용 게임을 닌텐도나 세가의 게임기용으로 이식해 출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정도로 SNK는 만족하지 못했다.

야심작이었던 네오지오 CD는 심하게 느린 로딩 속도 때문에 혹평을
받았다
야심작이었던 네오지오 CD는 심하게 느린 로딩 속도 때문에 혹평을 받았다

이에 SNK는 1994년, CD-ROM을 저장매체로 이용하는 가정용 게임기인 '네오지오 CD(Neo Geo CD-사진)'를 출시했다. 기존의 네오지오처럼 업소용과 동일한 품질로 SNK 게임을 가정에서 즐길 수 있는 데다 저렴한 CD-ROM 규격으로 소프트웨어를 공급했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 것으로 SNK는 기대했다.

하지만 네오지오 CD를 산 소비자들은 제품에 큰 불만을 표했다. 탑재된 CD-ROM 드라이브가 데이터를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정상적인 플레이에 지장을 줄 정도였기 때문이다. 특히 SNK가 주력하던 대전격투액션 게임들은 한 스테이지가 길어야 1~2분, 빠르면 30초 내외에 끝날 정도로 속도감 있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는데, 네오지오 CD로 게임을 하려면 한 스테이지 당 거의 1분 이상 걸리는 로딩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 했다. 1995년에 SNK는 CD-ROM 드라이브의 속도를 2배로 높인 개량 제품인 '네오지오 CDZ'를 출시했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흔들리는 기반, 야심작의 연이은 실패

SNK를 굳게 지탱해주던 업소용 게임 시장에서도 불안요소가 드러났다. SNK는 인기를 끈 게임의 속편을 연이어 출시하곤 했는데, 시리즈가 길어질수록 싫증을 느끼는 게이머들도 많아졌다. 특히 대표작인 '아랑전설'과 '용호의 권' 시리즈의 3편이 게이머들에게 외면 받은 사건은 SNK 입장에서 큰 충격이었다.

용호의권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은 SNK의 야심작이었으나, 게이머들에게 극심한 혹평을
받았다
용호의권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은 SNK의 야심작이었으나, 게이머들에게 극심한 혹평을 받았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게임 시장에서는 기존의 2D 그래픽보다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3D 그래픽 기반의 게임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네오지오는 2D 그래픽 전용 하드웨어인데다 SNK 역시 3D 그래픽 관련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1997년, SNK는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업소용 기판인 '하이퍼 네오지오 64(Hyper Neo Geo 64)'를 선보이고 몇 개의 게임도 출시했지만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역시 이미 높아진 게이머들의 수준을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품질이 부족했다. 결국 하이퍼 네오지오 64는 출시 2년만에 단종된다.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받은 차가운 외면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이어 3D 게임 시장에서도 실패한 SNK는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로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눈을 돌렸다. 당시 휴대용 게임기 시장은 닌텐도의 ‘게임보이(Game Boy)’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에 SNK는 1998년에 '네오지오 포켓(Neo Geo Pocket)'이라는 제품을 출시해 과감하게 도전했다.

네오지오 포켓은 SNK에 큰 손실만 안긴 채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된다
네오지오 포켓은 SNK에 큰 손실만 안긴 채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된다

하지만 네오지오 포켓의 첫 번째 제품은 흑백 화면밖에 표시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닌텐도에서 '게임보이 컬러'를 줄시하면서 네오지오 포켓의 이러한 단점을 더욱 도드라졌다. 이듬해에 SNK는 컬러 화면도 표시할 수 있는 ‘네오지오 포켓 컬러’를 선보였지만, 막강한 소프트웨어 라인업을 갖춘 닌텐도와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네오지오 포켓 역시 시장에서 외면 받게 된다.

누가 SNK를 살릴 것인가?

야심차게 추진한 대형 사업들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SNK는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게 된다. 이미 노쇠한 하드웨어가 된 네오지오를 이용, 롬 카트리지의 용량을 1기가비트 수준까지 높이고, 더 킹 오브 파이터즈의 속편을 매년 출시하는 등,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예전의 인기를 회복할 수는 없었고, 회사는 점차 수렁에 빠져들었다.

2000년, 결국, SNK는 경영권을 잃고 일본의 파칭코 업체인 아루제(현 유니버셜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하지만 SNK가 안고 있는 부채가 워낙 막대했기에 아루제는 SNK를 살리는데 실패, SNK는 2001년 10월에 도산하게 된다. 당시 SNK의 부채 규모는 무려 380억엔에 달했다고 한다.

SNK는 도산 직전에 자사의 일부 게임 제작팀 및 지적재산 관리팀으로 이루어진 '플레이모어(Playmore)'라는 계열사를 설립한 바 있다. SNK 도산 후, 플레이모어는 SNK의 지적재산권을 낙찰 받아 간접적으로 SNK의 계보를 이어가게 된다. 플레이모어는 한국, 홍콩 등의 업체에 일부 재산권을 팔거나 빌려주기도 했으며, 간간히 신작 게임도 출시하며 사업을 이어간다.

플레이모어는 2003년에 'SNK 플레이모어'로 회사이름을 바꾸며 SNK의 계보를 잇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더 킹 오브 파이터즈나 메탈슬러그, 사무라이 쇼다운 등 SNK 시절 유명 시리즈의 신작을 발표하고 파칭코 사업에도 진출하는 등, 나름 활발한 활동을 했으나 예전의 명성을 되살리기엔 게임의 품질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SNK의 계승자임을 강조한 SNK 플레이모어의 로고. 2016년에 회사명을 다시 'SNK'로
바꾼다
SNK의 계승자임을 강조한 SNK 플레이모어의 로고. 2016년에 회사명을 다시 'SNK'로 바꾼다

이렇게 근근하게 명맥을 이어오던 SNK 플레이모어는 2015년에 중국의 37게임즈(37Games)에 인수되었으며, 2016년에는 다시 회사명을 ‘SNK’로 바꾸게 된다. 하지만 새로 태어난 SNK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신생 SNK가 출시한 게임들은 대부분 이미 신선함이 상당부분 퇴색된 과거 SNK 작품들의 후속작이나 이식작, 과거 작품의 캐릭터를 이용한 파생 작품인 경우가 많다.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좀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

장인정신이 명품을 만든다고 흔히들 말한다. 1990년대의 SNK는 2D 대전격투액션 게임 분야의 장인이었고, 그들이 만든 업소용 게임은 명품의 반열에 오를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현대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영원한 명품이나 장인은 없다.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도태된다. 또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무리한 사업 확장 역시 파국을 부를 뿐이다. SNK의 경우가 딱 어울리는 사례다.

한국과 SNK의 인연

여담이지만, SNK는 의외로 한국과도 상당한 인연이 있는 기업이다 (구)SNK가 도산한 후, 한국의 업체인 이오리스(EOLITH)가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의 판권을 구매해, 2001년 버전과 2002년 버전을 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신생 SNK는 2018년 내에 한국 증시에 상장하고 현지 법인도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 게이머들 입장에서도 SNK는 강한 인상을 남긴 기업이다. 과거 SNK의 게임은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대전격투액션 게임 최초의 한국인 캐릭터이자 태권도 캐릭터인 '김갑환'도 SNK의 '아랑전설 2(1992년)'를 통해 데뷔한 바 있다. 1990년대에 한국에서 네오지오를 유통하던 ‘빅콤’사의 대표였던 김갑환 회장이 제공한 아이디어를 통해 탄생한 캐릭터이며, 캐릭터 이름 역시 그에게서 따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8년 2월 24일에 타계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월 30일, 김갑환 회장은 인터비즈 임현석 기자와의 통화(관련 글..더킹오브파이터즈, 아랑전설 김갑환 선생님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대전격투액션 게임 최초의 한국인 캐릭터였던 김갑환은 아랑전설 시리즈를 통해
데뷔했다
대전격투액션 게임 최초의 한국인 캐릭터였던 김갑환은 아랑전설 시리즈를 통해 데뷔했다

"예전에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게임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는 것 보면 보람을 느낀다"

"일평생 태권도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그리고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만들기 위해 정말 노력했다. 각종 관련 협회에 태권도의 우수성을 알리는 영상을 배포하기도 했다. 태권도 캐릭터를 신작에 넣자고 SNK에 제안한 것 역시 그런 마음 때문이었다"

SNK의 김갑환은 꾸준한 인기 캐릭터로, 탄생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신생 SNK의 게임에 단골 손님처럼 출연하고 있다. 상당수 한국 게이머들이 아직도 SNK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것 역시 김갑환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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