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아이디어, "CG, VFX 신기술 도입은 필수입니다." (1)
[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17년 8월 17일, '부산행', '밀정', '판도라' 등 지난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영화의 VFX를 담당했던 디지털아이디어를 찾았다. 디지털아이디어는 1998년부터 국내 영화 후반 VFX를 제작, 총 420여 편의 국내외 영화 VFX 작업에 참여한 영화 시작효과 전문 기업. 영화뿐만 아니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도깨비'의 VFX도 디지털아이디어 작품이다.
특히, 디지털아이디어는 최근 개봉한 '군함도'에 헐리우드를 포함한 전세계 영화 VFX 제작사들이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3D, CG, VFX 기술을 적용해 관심을 끌었다. 타 업체와 달리 경쟁력 확보를 위해 '픽사(Pixar)', 'ILM', '루카스 필름(Lucas film)', 'MPC' 등 해외 유명 제작사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제작 방식을 도입하는 적극적인 R&D 투자 결실을 '군함도'에서 발휘한 것. 이에 디지털아이디어의 손승현 제작총괄 본부장과 고재혁 R&D 센터장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 디지털아이디어 손승현 제작총괄 본부장(좌)과 고재혁 R&D 센터장(우) >
영화 '군함도'의 실제 세트제작은 30%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지난 4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디지털아이디어에서 시각효과 감독과 VFX 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성규 본부장과 IT 기술 팀 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는 임주영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다. 당시 해외에서 시작된 CG, VFX 기술 표준 방식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디지털아이디어가 해당 기술 표준 중 하나를 도입해 영화 군함도를 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승현 본부장(이하 손 본부장): 영화 군함도는 지리적 특성상 실제 현장에서 촬영할 수 없고, 바다 위 섬이기에 주변은 온통 바다로 둘러 쌓여있다. 때문에 모든 공간을 세트로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조선인과 일본인 수천 명을 표현해야 했는데 동원할 수 있는 배우들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 군함도의 세트는 30% 정도만 만들었다. 나머지는 전부 CG로 구현했다. 특히, 탄광 내부 같은 경우는 세트로 구현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했다. 이러한 부분들은 최소의 세트 제작 후 CG로 채웠다. 지형 및 세트를 3D로 스캔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3D 공간을 전부 만들었다. 사실 클로즈업한 인물 외 모든 요소는 CG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바다에 둘러 쌓인 군함도 표현도 관건이었다. 섬이나 바닷가에 세트를 제작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넓은 부지에 세트를 제작하고, 주변 바다 원경은 멀티파노라마리그 장비를 활용, 360도 파노라마 배경 소스 데이터를 확보했다.
< 군함도 세트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손승현 본부장 >
인물 표현 방식의 경우, 위험한 장면은 디지털캐릭터로 표현하면 되지만, 본 작품의 연출 특성상 모든 VFX 작업에 CG가 답은 아니었다. 클로즈업한 군중을 표현할 때, 짧은 기간에 수많은 인물들의 감정을 자세하게 표현해야 했다. 이 경우엔 같은 동선, 같은 장면에 인물을 서로 다른 위치에 배치해서 군중을 만들었다. 좁은 공간에 수천 명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IT동아: 어렵게 표현한, 지난 영화에는 사용하지 않은 기술을 도입했다고 들었다. 파운드리의 카타나를 이용했다고.
손 본부장: 카타나는 헐리우드에서 이미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존 프로그램으로는 파일 용량이 무거워서 몇 시간씩 걸리는 작업을 빠르게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아직 국내에는 적용한 사례가 없었다. 그래서 카타나를 도입하더라도 시간이 좀더 지난 이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와중에 군함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류승완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젝트를 가져왔을 때, 파운드리의 카타나를 적용해보자고 생각했다.
군함도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얻은 해답이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은 어떤 영화를 담당하더라도 매번 같지만(웃음). 문제는 국내에서 아무도 카타나를 사용해 영화 CG, VFX 작업을 진행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도입하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연결된 것이 지금 옆에 앉아있는 고재혁 센터장님이다. 당시 고 센터장은 동서대에서 교수로 역임하고 계셨는데, 카타나를 해외에서 이미 사용한 유경험자였다. 그래서 자문을 구했고, 동서대와 산학협력 등을 진행하면서 인연을 쌓다가, 결국 디지털아이디어로 합류하셨다. 중간에서 카타나를 개발하고 유통하고 있는 파운드리코리아도 많이 도와줬고.
디지털아이디어와 파운드리코리아, 그리고 동서대 등 3개 팀이 모여서 카타나를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하기 위한 과정에 들어갔다.
< 디지털아이디어 손승현 제작총괄 본부장(좌)과 고재혁 R&D 센터장(우) >
IT동아: 동서대에서 교수로 잘 역임하던 분을 모셔온 것인가(웃음).
손 본부장: 하하. 이 업계에 필요한 인력들이 학교로 많이 가 있다. 당장 현장에는 이런 인력이 부족한데 말이다. 사실 고 센터장과의 인연은 군함도 이전 부산행을 작업하면서 이어졌었다. CG, VFX 후반부 작업인 라이팅을 진행했었는데, 랜더링 등 마무리 작업이 (기존 프로그램으로는 워낙) 무거워져서 힘들다고 하소연했었다. 파일 불러오고 실행하는데 시간이 소모되니, 작업 속도가 날 수 없는 구조였다. 이때 고 센터장이 해외에서 적용하고 있는 작업 방식을 알려줬고,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퍼시픽림부터 도입해 사용한 카타나
IT동아: 고 센터장님은 어떻게 디지털아이디어로 합류하신건지.
고재혁 센터장(이하 고 센터장): 한국에 헐리우드나 해외에서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을 많이 알려주고 싶었다. 이에 학생들을 교육하고자 동서대에서 교수로 일했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국내 CG, VFX 업계는 최근 중국이 영화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성장했다. 내수 영화 시장만으로는 지금의 규모로 성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 투자금이 유입되면서, 중국의 영향력과 시장 장악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 현실 여건상 중국 시장에 많이 기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짧으면 3년, 길면 5년 정도면 지금처럼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내 CG, VFX 기술 노하우가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헐리우드다. 헐리우드의 영화 작업에 국내 업체도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아이디어로 오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국내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교육한다 해도, 일할 곳이 국내에 없으니, 배운 기술로 중국이나 인도로 나가야 했다. 이때부터 국내 업계와 연락하고, 많이 만났다.
< 디지털아이디어 고재혁 R&D 센터장 >
IT동아: 동서대 교수로 역임하기 이전에 카타나를 경험하고, 실제로 헐리우드 영화 CG 및 VFX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 센터장: 헐리우드에서 제작하는 블록버스터를 비롯해 대규모 투자로 촬영하는 영화는 많은 CG와 VFX가 활용된다. 때문에 파일 용량은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기존 프로그램으로 이 작업 속도를 만족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카타나는 이렇게 파편화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사용되어 점점 무거워지는 CG, VFX 효과를 보다 가볍고 빠르게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과거 ILM에서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던 '퍼시픽림'에서 카타나를 도입하는 작업에 참여했었다. 당시 준비 과정에만 2년 반 정도 걸렸다. 카타나를 도입하더라도 바로 사용할 수는 없고, 자체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타나 도입 초기에는 좋지 않았다(웃음). 약 30명의 전문 엔지니어들이 카타나를 이용해 자체 솔루션을 개발하면서 기능을 추가했고, 성능을 끌어 올렸다.
당시 랜더러로 아놀드를 사용했었는데(퍼시픽림까지), 카타나를 도입하면서 퍼시픽림 다음 작품부터 이전에 사용했던 렌더맨으로 되돌렸다. 카타나는 현재 파운드리가 개발, 유통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소니 이미지웍스에서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 소니가 제작한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카타나를 사용했다. 스파이더맨이 날아다녔던 도시의 모델링이 정말 무거웠는데, 당시 사용하던 프로그램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다.
정리하자면, 카타나는 소니 이미지웍스에서 2007년부터 개발을 시작했고, 2009년부터 파운드리 R&D팀이 함께 개발에 참여한 프로그램이다.
발전하는 기술, 인력 양성과 함께 대응한다
IT동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것. 말은 쉽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손 본부장: 지금은 200명 이상이 근무하는, 국내 CG, VFX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라고 자부하지만, 디지털아이디어도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곳에 남았던 이유는,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지금 함께하는 직원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단순히 돈만 많이 버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빨간색은 실제 제작한 군함도 세트, 파란색은 모두 CG로 재현했다 >
국내 CG, VFX 시장은 30대를 지나 40대, 50대 이후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젊을 때는 일이 좋아서, 영화가 좋아서 뛰어들지만, 그 이후가 없다. 이러한 국내 현실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지금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 아티스트들이 국내 시장에 정을 못 붙이고, 한때 경험이라 생각하면서, 해외로 나가고 다른 업계로 빠진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오래 일할 수 있는 회사였다. 디지털아이디어가 그 역할을 하고자 한다. 직원들이 창업을 하던, 파트너사를 하던, 그 중심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출과 이익이 중요한데, 여기서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아티스트다.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아티스트를 양성하고, 회사에 다니는 아티스트의 스킬과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국내에 CG, VFX 관련 대학교가 그렇게 많은데, 막상 만나보면 학생들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 똑 같은 과거의 방식으로 배운다. 이건 학생도 시간과 비용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아이디어가 직접)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아카데미가 아니라 제대로 된,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알려주는 아카데미. 이런 생각을 하다가 만난 것이 고재혁 센터장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때문에 누군가는 나서서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고, 알려줘야 한다. 현장에서는 이것이 어렵다. 교육과 R&D를 함께 할 수 없을까 라는 고민에 대해서 고 센터장과 마음이 잘 맞았다. 현재 중국에서 프로젝트를 많이 받아 매출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5년 뒤, 10년 뒤를 고민해야 한다.
< 디지털아이디어 손승현 제작총괄 본부장 >
이번 카타나를 도입이 그 시작이다. 우리 아티스트를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아티스트를 서포트할 수 있는 부서를 고 센터장이 담당한다. 전체 작업방식(파이프라인)을 구성하고, 무거운 데이터를 어떻게 빠르게 작업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직원들이, 아티스트들이 (파일 열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을) 멍하니 보내는 시간을 단축하고자 했다. 1시간을 단축하면, 200명이라고 생각하면, 200시간이다. 10분만 줄여도 200명이면 2,000분이다.
IT동아: 카타나의 장점은 공개된 포맷이라고 들었다.
손 본부장: 카타나뿐만 아니라, 시장에는 괜찮은 프로그램이 많다. 그리고 업계 전체를 보면,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용하는 업체(제작사, 스튜디오 등)는 거의 없다. 애초에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시장에 등장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성능을 따라갈 수 없다. 때문에 어떤 특별한 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아니라, 운영의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필요하다. 카타나는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폐쇄적인 여러 프로그램을 하나로 연결,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인 셈이다.
고 센터장: 현재 디지털아이디어 내 R&D팀은 1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업계에서 새로운 기술 도입과 운영, 투자하는 규모는 최고라고 자부한다. 이는 곧 디지털아이디어의 기업 문화와 연결된다. 아티스트가 행복한 회사를 꿈꾼다. 대학교에서 연구소를 운영할 때, 개인적인 모토도 비슷했다. 학생들이 행복한 연구소를 꿈꿨다.
옮기고 나서 내부 분위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아티스트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 등은 결국 직원들의 복지와 연결된다. 파이프라인의 통합을 통해 만연한 야근과 하염없이 보내야 하는 시간 등 기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물론, 새로운 기술을 아티스트들이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참여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2부에 계속.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