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EO 열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신화를 만들다, 시스코 존 챔버스

이상우 lswoo@itdonga.com

[IT동아 이상우 기자]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컴퓨터 시스템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는 오늘날 IT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터넷은 물론,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클라우드 역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한 곳에 묶였던 정보는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기기로 전달되고, 개인이 사용하는 PC에서 처리할 수 없었던 데이터는 거대한 서버로 전송해 빠르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

네트워크는 서로 떨어진 기기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기반으로, 융합을 중시하는 4차 산업혁명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네트워크는 서로 떨어진 기기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기반으로, 융합을 중시하는 4차 산업혁명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오늘날 만큼 편리하지 못했다. IBM, 애플 등 하드웨어 및 운영체제 사이에 호환성이 떨어져 PC 시스템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1969년, 오늘날 인터넷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아르파넷(ARPA Network)이 개발되면서 원거리 네트워크를 통한 통신이 가능했지만, 가까이 있는 두 근거리 통신망(로컬 네트워크)이 통신하기 위해서도 아르파넷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예를 들면 한 대학교의 서로 다른 학과가 연구자료를 주고받기 위해서 아르파넷을 거쳐야 하는 셈이었다.

시스코 시스템즈를 세운 샌디 러너와 레너드 보삭의 라우터는 이러한 네트워크를 더 간편하고 빠르게 만들었다. 1995년 이후 존 챔버스 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시스코는 본격적인 성장 가도에 들어섰으며,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 분야를 다각화했고, 2016년 현재 라우팅, 원격 회의, 무선 네트워크, 스위칭, 웹 컨퍼런스, 보안 등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2016년 1월 기준)를 차지했다.

호환성 이슈에서 탄생한 시스코

1970년대 말 스탠포드 대학에서 재학 중이던 샌디 러너와 레너드 보삭은 서로 다른 시스템 사이에도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기를 원했다. 이들은 스탠포드 대학 내에 모든 건물에 케이블을 놓고, 로컬 네트워크 사이의 통신 규격을 처리하는 라우터와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코드를 개발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그들은 이를 사업화 하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1984년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를 설립해 네트워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참고로 회사 이름은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회사 로고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에서 따왔다.

시스코를 설립한 샌디 러너(왼쪽)과 레너드
보삭(오른쪽)
시스코를 설립한 샌디 러너(왼쪽)과 레너드 보삭(오른쪽)

시스코 시스템즈는 1987년 벤처 캐피탈의 투자를 받고, 1990년에는 나스닥에 상장했지만 이들 부부는 경영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회사는 전문 경영인을 두고 운영했으며, 1990년 상장 이후에는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모두 정리한 뒤 회사를 떠난다.

난독증이 있는 '소통의 왕'

회사를 본격적인 성장 가도에 올린 인물은 1995년부터 2015년까지 경영을 맡은 존 챔버스 회장이다. 의사 부모 아래 1남 2녀의 맞이로 태어난 그는 난독증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과외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난독증을 극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전해진다. 난독증 때문에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는 모두 서류 대신 머리에 기억하고, 공개 강연도 메모 없이 외워 진행했다. 시스코 관계자에 따르면 서류보다는 구두로 보고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이메일도 텍스트보다는 음성을 더 좋아했다.

시스코를 20여년 간 이끈 존 챔버스 회장
시스코를 20여년 간 이끈 존 챔버스 회장

그는 IBM 세일즈 파트, 왕 연구소(Wang Laboratories) 등을 거쳐 1991년 시스코 수석 부사장으로 합류한다. 그는 당시 시스코 경영을 맡고 있던 존 모그리지에와 함께 시스코의 인수합병 전략 및 장기 목표 수립, 소비자와의 협상 등 주요 사안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으며, 1994년에는 글로벌 생산담당 최고 부사장으로, 1995년에는 CEO로 임명됐다.

존 챔버스 회장은 항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기업 내부 분위기를 바꾸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과거 그가 근무했던 IBM은 관료주의와 내부 경쟁을 통한 승진을 장려했으며, 심지어 중소기업을 등한시하고 대기업을 주로 상대해왔다.

시스코에서는 이와 달리 임직원에게 시너지와 협동 정신을 요구했다. 기업 내 열린 소통을 위해 경영진과 평사원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도록 했으며, 생일을 맞은 직원 전원과 아침 식사를 하는 '생일 아침' 행사를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통해 포춘지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존 챔버스는 일주일에 30시간 이상을 고객 응대에 투자할 정도로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로부터 인사이트를 얻고,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미래를 위해 시스템을 바꿔라

시스코는 이미 1994년부터 멀티 프로토콜 라우터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존 챔버스 회장은 라우터 시장을 넘어 사업 다각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먼저 내부 시스템 개혁을 실시했다. 독립적으로 운영하던 사업 단위를 목표 시장에 맞춰 대기업, 중소기업, 서비스 제공업체 등 세 개의 라인으로 구분해 통합했다. 각 사업부는 사업단위 및 네트워크 관리부, 마케팅 부로 구성했으며 이 중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업단위 관리자를 각 사업부의 팀장으로 임명했다.

존 챔버스 회장은 기존 라우터 시장을 넘어 사업 다각화를 위해
노력했다
존 챔버스 회장은 기존 라우터 시장을 넘어 사업 다각화를 위해 노력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라우터 시장의 80%를 시스코 장비가 차지했으며, 1997년에는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중 322위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미래의 네트워크 환경을 대비해 전화선(구리선) 대신 광(光) 네트워크 전송 기술을 보유한 네트워크 장비 업체 '세렌트'를 70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한다.

존 챔버스 회장은 경직된 회사 분위기를 바꾸고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4단계 경영 전략을 구축하고 기업 권력을 분산했다. 그 1단계는 제품 생산 라인을 확대해 네트워크와 관련한 모든 제품을 다루는 원스톱 쇼핑을 이루고, 2단계에서는 인수합병을 체계화했으며, 3단게에서는 연구개발을 통해 산업 전반에 걸친 네트워킹 소프트웨어 프로토콜을 개발하는 것이었으며, 4단계에서는 적절한 전략적 파트너를 선별하기 위해 권력 분산을 더 활발하게 추진했다.

이후 시스코의 주요 네트워킹 제품군을 중심으로, 5개 사업 단위로 회사를 분화한 뒤 각 사업 단위에 부사장급 임원을 임명했다. 이러한 경영권 분산은 시스코의 유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며, 존 챔버스 회장은 자신과 소비자 사이의 관리 계층을 줄이면서 의사 결정권을 조직 전체에 부여하게 됐다. 결국 소비자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든 셈이다.

성장 전략: 인수합병으로 끊임없는 혁신을 이뤄라

시스코의 인수합병 전략은 세계 여러 경영 대학원에서 우수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존 챔버스 회장은 엄격한 평가기준 및 가치평가 과정, 통함 및 유지전략을 수립했으며, 꼭 필요한 기업이라면 인수를 위해 드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시스코는 개발하고(Build), 사들이고(Buy), 파트너와 협업하고(Partner), 투자하고(Invest), 함께 개발하는(co- develop)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는다. 이 중 사들이는 전략은 시스코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전문가를 흡수하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이다.

존 챔버스 회장은 속도 경영을 중시했으며, 이를 위한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출처: the Legacy Project,
http://thelegacyproject.co.za/)
존 챔버스 회장은 속도 경영을 중시했으며, 이를 위한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출처: the Legacy Project, http://thelegacyproject.co.za/)

존 챔버스 회장은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느린 기업을 언제나 이긴다"며,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한 발전 속도는 내부의 연구개발 보다는 외부의 아이디어를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수합병 핵심 전략을 바탕으로, 시스코는 설립 후 지난 30년 동안 190건 이상의 기업인수를 진행했으며 결과 역시 대부분 성공적이다.

그는 피인수 기업을 선택할 때 대상 기업이 1. 시스코와 같은 비전을 가졌는지, 2. 성숙된 기업문화를 가졌는지, 3. 이 거래의 목적이 무엇인지, 4. 인수를 통한 시스코의 비즈니스 전략이 명확한지 등을 전략적으로 분석한 후 거래를 추진했다.

M&A + R&D = A&D

이러한 인수합병은 단순히 덩치를 키우기 보다는 일종의 '개방성'에 초점을 맞췄다. 시스코는 자신이 지닌 기술이 아니라 소비자가 요구하는 방향에 따라 사업의 전략적 방향을 결정했다. 만약 그들이 소비자에게 필요한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러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언제든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찾아 인수 합병에 나섰다.

존 챔버스 회장의 전략은 연구개발과 인수합병을 결합한 인수개발(A&D, Acquisition & Development) 성격이 강했다. 인수개발은 자사에 부족한 기술이나 인재를 얻기 위한 작업으로, 완성된 기술을 가져오는 인수합병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외부 아이디어와 기업을 사와서 이를 기존 시스코 시스템과 문화에 접목시키는 전략이다. 실제로 최근 많은 기업이 경쟁력을 찾기 위해 인텔리전스(intelligence)가 아닌 익스텔리전스(extelligence)에 주목하고 있다. 인텔리전스가 내부에서 나오는 것인 반면, 익스텔리전스는 외부의 아이디어를 접목했을 때 생긴다.

시스코는 인수합병이 아닌 인수개발 전략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기술을 확보하고 시장에
적응해왔다
시스코는 인수합병이 아닌 인수개발 전략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기술을 확보하고 시장에 적응해왔다

시스코는 기업 문화를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위해 인수 과정 자체를 조직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과거 크레센도 커뮤니케이션즈를 인수할 당시 크레센도 커뮤니케이션즈의 CEO였던 마리오 마졸라와 함께 '마리오 규칙'을 만들었다. 이 규칙은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 CEO 둘의 승인이 모두 있어야만 피인수 기업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스코는 피인수 기업 직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기 때문에 피인수 기업 직원 이직률이 시스코가 직접 고용한 직원 이직률보다 오히려 낮기도 했다.

존 챔버스 회장은 스트라타콤을 인수하며 그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한 번 더 입증했다. 스트라타콤은 당시 시스코가 필요로 하던 WAN과 LAN-to-LAN 네트워킹을 통합하있는 기술을 보유했던 점, 기업 문화가 비슷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인수를 결정했다. 스트라타콤을 인수한 시스코는 고성능 WAN 스위치와 ATM, 프레임 릴레이에 대한 경험을 기반으로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고, 데스크탑에서 중앙 오피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인수 발표 이후에는 주가가 10% 가량 급등하기도 했다.

통신산업 진출 발판을 마련하다

존 챔버스 회장은 스위칭 산업에 집중하면서 통신산업의 진출 토대를 마련했다. 기존 통신은 통화를 연결하는 데 있어 초고속 스위치에만 의존해왔으며, 1996년 이전 시스코의 스위치에 대한 관심은 컴퓨터가 데이터를 전송하는 패킷 네트워크 분야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존 챔버스는 회로 기반 네트워크 통신사업자를 잠재적 소비자로 봤으며, 이를 위한 역량을 강화했다. 시스코는 크레센도, 스트라타콤 등을 인수하면서 스위칭 기술을 확보했고, 대형 통신사업자를 고객으로 맞이할 준비가 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스카이스톤 시스템즈를 인수해 라우터와 스위치를 광섬유로 연결하고, 파이프링크스를 인수해 라우터에 광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통합하는 등 필요한 기업과 기술을 사들이면서 통신 시장 진출을 이어갔으며, 이러한 전략적을 바탕으로 오늘날 시스코가 글로벌 통신 장비 업체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시스코는 인수를 통해 사업 영역을 넓혀왔으며, 현재 네트워크, 무선인터넷, 보안, 사물인터넷, 화상회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시스코는 인수를 통해 사업 영역을 넓혀왔으며, 현재 네트워크, 무선인터넷, 보안, 사물인터넷, 화상회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성장에 힘입어 GE, MS에 이어 주식시장 세 번째로 시가총액 3,000억 달러를 돌파한 기업이 됐으며, 2000년 3월에는 시총이 5,0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세계 최대 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물론 2000년대 들어 미국 IT 벤처 기업의 거품, 이른바 닷컴버블이 무너지면서 시스코도 이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꾸준한 조직 체질 개선 및 인수합병을 통한 시장 확장 등을 통해 시스코는 현재 연 매출 492억 달러(회계연도 2016년 기준), 전세계 380개의 지사, 7만 여명의 직원을 보유하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존 챔버스 회장은 지난 2015년 7월 27일 은퇴하며 시스코 CEO 자리를 척 로빈스에게 넘겨줬다. 시스코는 그의 은퇴를 기념해 13분 정도의 동영상을 제작했는데, 여기서 주위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존 챔버스를 기업의 리더일뿐만 아니라 회사의 기술을 사회와 나누는 사람으로 존경한다'고 평가했으며, 사프라 카츠는 오라클 CEO는 '그는 자신의 직원을 대하는 자세부터 인수합병을 하는 것까지 모든 점에서 배울 게 많으며, 팀이 가장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고의 CEO'라고 평가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R E L A X' 라는 다섯 개의 알파뱃을 통해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마음을 편히 하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지난 20년간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달려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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