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EO 열전] 무너진 전자왕국 소니를 재건한 소니맨, 히라이 가즈오
[IT동아 강형석 기자] 소니(SONY). 1946년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로 시작한 이 기업은 한 때 일본을 대표하는 전기전자 기업이었다. 그들이 선보인 휴대 오디오 플레이어 워크맨(WALKMAN)과 브라운관 텔레비전(TV)인 트리니트론(TRINITRON)은 전 세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파괴력이 있었다. 탄탄한 전자제품의 상승세에 힘입어 소니는 콘텐츠에 눈을 돌렸고 1988년 이후를 기점으로 소니 뮤직(CBS 레코드),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콜롬비아 픽처스) 등을 설립했다. 게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도(SCEI) 뒤이어 설립했다.
<워크맨 신화로 유명한 소니는 디지털화가 본격화된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터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급격한 디지털화는 소니를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시장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어렵게 인수 합병한 기업은 심각한 부채로 되돌아왔으며, 자연스레 그룹 전체의 경쟁력이 약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워크맨과 트리니트론이 구축한 시장은 MP3와 액정 디스플레이(LCD)에 빠르게 잠식되어 사라져버렸다. 콘텐츠 사업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작 그룹의 근간이었던 전자기기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쪼그라들었다.
2003년 일어난 소니 쇼크는 소니의 문제를 고스란히 노출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소니는 1,854억 4,000만 엔의 영업 이익을 기록했지만, 처음 예상 수치에서 1,000억 엔을 미달해 시장에 실망을 안겨 주었다. 이어 다음 분기 영업 이익은 이전 분기 대비 1,300억 엔 낮아질 것으로 예측돼 한 번 더 충격을 주었다. 이 발표 직후 소니의 주식은 주당 1,000엔 가까이 폭락했다.
물론 소니도 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MP3 시장은 워크맨 브랜드로 대응했고, 다른 가전기기 시장에도 브라비아 LCD TV, 바이오(VAIO) 컴퓨터와 노트북, 사이버샷(Cyber-Shot)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브랜드 핸디캠(Handycam)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의 제품 품질과 성능은 상향평준화 되었고,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굳이 소니 브랜드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소니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소니는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2005년 소니가 그룹 최초로 임명한 외국인 최고경영자 하워드 스트링거(Howard Stringer)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미디어 산업의 전문가였을지 몰라도 소니의 근간인 '기술'에 대한 이해는 낮았다. 전자 산업에서의 연구개발은 등한시됐고 오히려 인력감축과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때문에 제품 경쟁력은 약해졌고, 이는 결국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후발주자에게 전자기기 시장 점유율을 뺏기는 결과를 내고만다. 게다가 2008년에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가뜩이나 힘든 소니의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최고경영자>
소니 그룹이 무너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소니를 다시 살려낼 적임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전의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 때문에 누구보다 소니가 어떤 기업인지 이해하고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했다. 그 때 소니 내부에서 한 사람이 적임자로 선택되었다. 바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를 이끌던 히라이 가즈오(Hirai Kazuo)였다.
소니 뮤직의 사원에서 게임기 판매 담당 최고책임자로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난 히라이 가즈오는 1984년 국제 기독교 대학(ICU)을 졸업하고 소니 뮤직의 전신인 CBS 레코드에 입사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매우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히라이 가즈오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 캐나다, 일본 전역을 자주 오갔으며, 1973년에는 토론토에서 중등 교육을 받기도 했다. 비록 여행이었지만 그는 이 경험들이 지금의 대륙간 사업의 성공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해외에서 오래 살았던 경험 덕분에 히라이 가즈오는 일본인 최고경영자임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매우 유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CBS 레코드에 입사한 히라이 가즈오가 담당한 업무는 마케팅이었다. 이후 몇 년간 경험을 쌓고 미국 뉴욕에 위치한 소니 뮤직(1991년 개명)의 국제 업무 부서장에 임명된다. 그는 미국에서 소니 뮤직 내 일본 아티스트들의 마케팅을 이끌었다.
1995년,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미국지부(SCEA)에 합류하게 된다. 그곳에서 소니와 함께할 개발사 발굴과 차세대 게임기의 발매 준비를 이끌었다. 그는 미국 시장 내 플레이스테이션의 영향력을 더 확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00년, 미국 내에 플레이스테이션2가 발매된 이후 영입한 개발사를 앞세워 다수의 게임 타이틀을 내놓을 수 있게 된 것도 그가 다방면으로 활약한 덕분이었다. 때문에 SCEA는 꾸준히 높은 수익을 이어갈 수 있었다.
<히라이 가즈오는 플레이스테이션, 나아가 비디오 게임기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 사람 중 하나다>
미국에서의 공로를 인정 받은 그는 2006년 7월,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I)의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기업 경영 일부를 책임지게 되었다. 이 때에도 플레이스테이션은 매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마침 몇 개월 뒤에는 플레이스테이션2의 뒤를 이을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가 출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플레이스테이션3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니는 당시 SCEI 사장이었던 쿠다라기 켄(Kutaragi Ken)을 경질하고 히라이 가즈오를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대표에 선임했다. 그가 부사장에 임명된지 4개월 만이다. 이 후 그룹이 재편됨에 따라 2009년, 소니 네트워크 제품 및 서비스 그룹(NPSG)의 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여기에서 바이오 컴퓨터, 워크맨, 엑스페리아(스마트폰) 등 PC 및 모바일 기기의 개발, 생산, 마케팅 활동에 관여했다.
위기의 소니를 살려라
히라이 가즈오가 소니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2012년 4월이다. 그가 CEO에 오르자 일본 신문들은 '샐러리맨 신화', '소니 역사상 최연소 최고경영자'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기업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이전까지 지휘봉을 잡았던 하워드 스트링거가 엄청난 영업 손실과 조직간의 갈등만을 남기고 소니를 떠났기 때문이다.
<히라이 가즈오가 회장을 맡았을 당시(2012년)의 소니는 내외부 모두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취임 당시 소니의 2012-2013 회계연도 지표는 끔찍했다. 2012년 2분기 실적만 보더라도 155억 엔 영업 손실로 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룹의 핵심 사업인 모바일, 디스플레이, 디지털 카메라 이미징 센서 등은 수익이 미미하거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한 적자를 영화, 음악, 금융 사업으로 간신히 메꾸는 기이한 운영이 지속됐다.
<소니의 2013 회계연도 지표. 영업이익을 보면 금융과 일부 사업부를 제외하면 모두 수익이 악화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와 모바일의 적자가 치명적이었다>
반등의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모바일과 디스플레이 분야는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경쟁사와 경쟁하기가 민망한 수준이었고, 영화와 음악 사업도 실패에 따른 손해가 컸다. 히라이 가즈오의 장기인 게임 분야도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등 경쟁사와 겨루자니 힘에 부쳤다. 결국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소니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인 BB-로 3단계 강등하기도 했다. 주식은 곤두박질쳤다. 결국 주당 1,400엔 수준으로 폭락하고 만다.
히라이 가즈오는 먼저 자금을 확보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우선 비용 절감을 시도했다. 미국 맨해튼에 있는 미국 법인 건물을 11억 달러에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도쿄 사옥 중 하나인 소니 시티 오사키도 1,110억 엔에 매각했다. 자사 건물을 매각하고 이를 임대해서 운영비를 절감하고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것이다.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가 보유한 건물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 대상은 소니 시티 오사키(좌)와 소니 미국
법인이 보유한 빌딩(우)이었다>
이어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가 소니가 나아가야 할 길에 필요하지 않은 사업부는 과감히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즉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브라비아 사업부(TV 사업부)를 70% 가까이 축소시키고 성장에 필요한 분야만 남겨뒀다. 브라비아 사업부 축소는 당시 소니 내부와 주주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TV는 전자왕국 소니를 상징하는 핵심 사업부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라이 가즈오는 "영원한 사업은 없다"며 주주와 사원들을 꾸준히 설득했고, 결국 사업 축소 동의를 얻어냈다.
컴퓨터 사업부인 바이오를 매각한 것도 불필요한 사업부를 정리한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오는 혁신적인 제품이었을지 몰라도, 소니의 영업이익과 미래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PC 사업 자체가 사양세였던 점도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줬다. 결국 상표권만을 남긴 채 모든 사업분야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에는 워크맨을 포함한 모든 오디오 사업부를 분사처리하고 독립 상표로 관리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히라이 가즈오는 사양 산업인데다가 소니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바이오 PC 사업부를 과감히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모바일 사업부의 체질 변화도 이어졌다. 히라이 가즈오는 최고경영자 취임과 함께 에릭슨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당시 모바일 사업부의 이름은 소니와 에릭슨이 공동 투자한 소니에릭슨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해당 브랜드로 출시된 스마트폰은 모두 시장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때문에 소니 독자 브랜드만으로 모바일 시장을 공략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고 기업의 미래를 책임질 미래 먹거리 투자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디지털 이미징 사업부에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단행했다. 특히 이미징 센서에 관한 투자를 더욱 확대했다. 이 결정은 후에 소니에게 큰 이익을 안겨주게 된다.
이렇게 히라이 가즈오는 정리와 집중을 통해 소니의 내실을 다졌고 이는 자연스레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2014 회계연도에는 8조 2,159억 엔의 매출과 685억 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015 회계연도에는 8조 1,057억 엔의 매출과 2,942억 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6 회계연도에는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의 영향으로 작년보다는 조금 축소됐지만 7조 6,033억 엔의 매출과 2,887억 엔의 영업이익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다양하지만 하나된 소니를 향해
히라이 가즈오가 침체된 소니를 본격적으로 되살리기 위해 진행한 것이 성장 동력 분석이다. 소니의 사업부서를 디바이스, 게임&네트워크, 영화, 음악 등으로 나누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어 사업 포트폴리오 내 위치에 따라 성장 동력과 안정적 수익 창출원, 중점적 변동성 관리 영역으로 구분했다. 각 사업은 소니 그룹의 자기자본이익률(ROE – Return Of Equity)과 연계해 투하자본순수익률(ROIC – Return on Invested Capital) 목표가 설정되고 철저히 수익성에 중점을 둬 관리하도록 했다.
먼저 디바이스 부문은 생산력 증대와 연구개발 강화를 위해 과감한 투자가 결정됐다. 특히 이미지 센서 분야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다. 게임&네트워크 부문은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과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의 사용자 기반 확대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영화는 시청률과 채널 수 증대와 미디어 네트워크 사업 고객 확충 그리고 이익 개선이라는 목표가 세워졌다. 음악도 스트리밍 시장에서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이 진행됐다.
<히라이 가즈오는 주요 사업부를 개편하는 것과 동시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그룹에서 분사시켰다>
그 다음은 고부가가치 사업의 재편이다. 히라이 가즈오는 자회사로 분리된 이미징과 비디오&사운드 부문에 주목했다. 두 영역은 기술적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최적화된 고정비와 재고관리를 통해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디스플레이와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사업은 위험을 줄이고 수익 확보에 우선순위를 뒀다. 이를 위해 소니 내부의 보유 기술과 부품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필요하면 외부와의 협업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새로운 사업인 의료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올림푸스와 손을 잡은 소니 올림푸스 메디컬 솔루션(Sony Olympus Medical Solutions Inc.)이 외부와 협업을 진행한 대표적인 사례다.
장인정신도 주문했다. 그는 ‘기술의 소니’라는 가치 아래 기술 중심의 문화를 재건하고자 노력했다. 과거 소니 그룹 내부에는 기술 중심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전임 최고경영자는 내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 사업부를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만 몰아 넣었다. 나름 이유는 있었다. 혁신과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서 내 기술자들의 아이디어는 고갈됐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하드웨어에 너무 집착한 것이 패인이다. 과거에는 이것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변화가 빠른 지금 시대에서는 그들이 내놓은 제품에는 특징이 없었다. 자사 생태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도입한 소니 자체 규격들은 표준규격에 밀려 시장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각 부서간 기술 교류가 이뤄지지 않으니 자연스레 제품군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심지어 소위 '팀 킬(Team Kill, 아군 오인 사격)'이라 할 법한 제품도 여럿 출시되었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소니의 제품을 두고 혼란에 빠졌다. 히라이 가즈오가 협업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역할'과 '책임' 앞세운 히라이 가즈오의 리더십
히라이 가즈오 최고경영자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뼛속까지 소니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소니 계열사인 CBS 레코드를 시작으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와 소니 통합사업부의 부사장 등을 거치면서 소니의 핵심 제품군과 서비스를 관리한 경험을 쌓았다. 때문에 소니의 구조와 분위기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소니는 기술자들의 천국이다. 이것이 과거 소니의 영광을 만드는데 도움을 줬을지 몰라도, 현재는 소니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 소니의 기술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는 최고의 전문가였지만, 교류와 협력에 인색했다. 그들에게 비용 절감은 창조젝인 제품을 만드는데 방행 요소일 뿐이었다. 이들을 어떻게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끌어들일지가 히라이 가즈오에게 주어진 큰 숙제였다. 전임 최고경영자인 하워드 스트링거도 이 임무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역할과 책임이다. 단순히 사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이 아니라 그룹이 제시한 임무에 대한 역할과 책임이다.
<히라이 가즈오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그에 따른 역할과 책임을 부여했다>
먼저 경험과 자율적 관리 능력을 갖춘 임직원을 요직에 발탁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새로운 임원과 함께 경영 구조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각 사업 단위와 본사 운영에 대한 임무를 뚜렷하게 정의하고 그에 따른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가 고수익 기업으로 변하는 것을 꿈꿨다. 그 꿈에 기업의 규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재정 안정화와 향후 기업을 이끌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각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시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기업의 규모를 줄여서,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각 사업부의 임직원은 더 큰 자율성과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
이런 변화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단순한 의사결정 구조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고, 각 사업부가 경쟁이 아닌 교류와 협력을 하기 시작했다. 각 사업부와 기술자들이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인 수익 달성을 위해 이에 맞는 최적의 상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규모를 버리고, 내실을 다지다
히라이 가즈오 최고경영자는 취임 후 진행한 첫 컨퍼런스에서 기업의 슬로건을 "감동이 됩니다(BE MOVED)"로 정했다. 또한 성장 전략을 기업의 단일화와 집중을 의미하는 '하나의 소니(ONE SONY)'를 내세웠다. 이는 소니가 하나로 뭉쳐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주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후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니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필요 없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했고, 주요 사업은 대부분 자회사 형태로 분사시켜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 가능하도록 개편했다. 이제 성과를 내는 일만 남았다.
<소니는 일부 사업부를 제외하면 안정적인 흑자 구조를 이어나가고 있다>
소니의 실적 개선은 2015년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디지털 이미징과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거둔 높은 실적이 오디오와 디스플레이 사업에도 영향을 줬다. 2015년 10월 분사한 자회사 소니 비디오 및 사운드 프로덕트(Sony Video & Sound Products Inc.)는 프리미엄 헤드폰과 이어폰은 물론이고 고해상 음원(Hi-Res Audio) 라인업을 확충하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디스플레이도 UHD와 OLED 등 특화된 제품군에 집중함으로써 최근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16년 영업 성과는 영업이익을 우선시하는 히라이 가즈오의 경영 철학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매출 자체는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게임&네트워크 부문의 영업이익은 887억 엔에서 1,356억 엔으로, 홈엔터테인먼트&사운드는 506억 엔에서 585억 엔으로 상승했다.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부문도 614억 엔 적자에서 102억 엔 흑자로 돌아섰다. 대신 반도체와 이미징 사업의 영업이익은 조금 하락했다. 지진에 의한 설비 피해가 영향을 줬다. 영상 사업도 805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히라이 가즈오는 취임 당시 3년 후 안정적인 흑자 전환 구조를 다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조금 늦었지만 그 약속은 착실히 지켜지고 있다>
그는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후 “내실을 다져 2015년에는 흑자 전환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약속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조금 늦어졌지만 착실히 이행되고 있다. 소니는 2017 회계연도의 매출 목표를 8조 엔, 영업이익을 5,000억 엔으로 설정해 놓은 상태다. 매출을 작년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영업이익만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고수익 체제를 본격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무너진 전자왕국 일본이 본받아야 할 모범사례
회사의 규모에 신경쓰지 않고 내실만 착실히 다진 히라이 가즈오와 소니는 분식회계, 수익성 악화 등으로 무너진 전자왕국 일본에서 본받아야 할 모범사례가 되었다. 도시바, 샤프 등 한때 소니보다 거대했던 일본 기업들은 결국 막대한 적자와 분식회계만을 남기고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반면 소니는 히라이 가즈오의 지휘 아래 다시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으로 반등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소니는 히라이 가즈오의 지휘 아래 두 가지 미래 먹거리에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위시한 게임&네트워크 사업이다. 소니의 비디오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4는 한때 기업의 수익을 책임졌던 플레이스테이션2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판매되며 전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을 장악했다. 천하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닌텐도도 소니에게 밀려 2위와 3위로 내려앉게 되었다.
소니는 최근 이러한 플레이스테이션4의 선전을 바탕으로 차세대 콘텐츠인 VR(가상현실)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쥐려고 하고 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VR은 가장 먼저 100만 대를 판매하며, 경쟁사인 페이스북과 밸브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있다.
두 번째는 이미징 센서를 앞세운 반도제와 이미징 센서 사업이다. 소니는 현재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이미징 센서 시장에서 45% 내외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2016년 시장조사기관 IHS 조사 기준) 시장점유율 1위의 사업자다. 고가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선 경쟁사인 캐논의 부진으로 거의 반독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고, 스마트폰 카메라 시장에선 삼성전자와 LG이노텍과 경쟁하고 있다. 소니의 이미징 센서는 자사의 스마트폰, 애플 아이폰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갤럭시에도 탑재되고 있다.
글 / IT동아 강형석(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