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신간산책] 예측 불가한 우연한 인생이라 즐겁다! <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
[IT동아]
인생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설계 가능하다고 믿는다. 철저한 계획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 이순간에도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우리를 향해 "아니요! 세상은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가득 차있습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든다. 일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간 <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지식너머>이다.
이 책의 저자 빈스 에버트(Vince Ebert)는 물리학자 출신이다. '출신'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했겠지만, 현재는 학자의 길을 접고 대신 어려운 학문을 대중에게 재미있게 전해주는 학술공연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예측 불가능성'을 주제로 우리에게 우연히 미치는 영향에 관해 다루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풀어내는 우연의 범위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부터 일과 성공, 나아가 인류의 역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확실한 것'에 대한 갈망이 있으며,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한 상태에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복잡한 구조는 다양한 변수가 혼재되어 방향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저자는 인간이 주변 환경 및 사람들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상의 소소한 현상마저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상호작용하기에 작은 부분이라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에 영향을 받으면서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리 예측할 수도, 설정할 수도 없는 여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가거나, 반대로 어떻게든 예측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요소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기록하는 강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저자는 우리가 인생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나 정해진 여건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게 우선이라 말한다. 더불어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의 것을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지극히 안전한 인생을 설계하면서, 인생에 있어 즐거움의 조건이 무엇인지 잊고 살 때가 많다. 실패가 없으면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도 없다. 인생의 참된 기쁨은,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위험을 무릅쓸 때 비로소 맛볼 수 있다. 계획만 붙들고 안절부절 못하다가는 날기도 전에 꼬꾸라져 넘어지고 만다. 그러니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울 준비를 하고 언제든지 변화할 자세를 갖추며 실패를 견디는 일을 배우자는 저자의 말이 와닿는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우리는 다음에 벌어질 일에 불안해하며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지구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거창하고 굵직굵직한 사건 덕분이 아니다. 인간은 땅 위에서 작고 자잘한 문제를 풀어내면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즉 지구 역사에서 한번에 개선되고 발전된 예는 결코 없다. 작은 움직임이 모여 조금씩 변화했을 뿐이다. 만일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우리에게 자유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상상과 공상이 가능했을까? 자유와 진보, 그리고 혁신은 예측 불가능성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은 꾸준히 새로운 상황과 현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매일매일 들려오는 소식을 듣다 보면 암담한 미래만이 놓여있는 것 같지만, 분명 이 세상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 역사가 기록된 이후로 오늘날과 같이 풍요롭고 안정적인 세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수많은 우연 때문에 모든 것이 존재하고 발전해왔다. '인류의 역사는 우연의 역사'라 할 정도로 뜻밖의 사건이 줄지어 일어난다. 무엇 하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무슨 일이든 다 시도해보는 것'이다. 놀이하듯이 즐겁게, 그리고 일시적이고 즉흥적으로 해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좀더 탄력적이고 융통성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아무래도 저자의 조국인 독일에서 출간된 책이다 보니 변화를 두려워하고 지나치게 안정을 추구하는 독일 문화와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기저에 깔려있다. 그럼에도 심리학, 역사, 경영학, 기술, 과학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를 아우르는 넓고도 깊은 저자의 지식과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능력, 그리고 뛰어난 유머감각까지 누구에게나 매력이 넘치는 책이다.
글 / 오서현 (oh-koob@naver.com)
국내 대형서점 최연소 점장 출신으로 오랫동안 현장에서 책과 독자를 직접 만났다. 예리한 시선과 안목으로 책을 통한 다양한 기획과 진열로 주목 받아 이젠 자타공인 서적 전문가가 됐다. 북마스터로서 책으로 표출된 저자의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 '오쿱[Oh!kooB]'이라는 개인 브랜드를 내걸고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관계를 연결하려 한다(www.ohkoob.com). 새로운 형태의 '북네트워크'를 꿈꾸며 북TV, 팟캐스트, 서평, 북콘서트MC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