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이슈산'책'] 불신과 차별,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미국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전 세계인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분노는 그동안 자행되어 온 갖가지 차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편을 나누고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분노 바이러스로 확대되는 모양이다. 인종 차별에 대한 시위는 어느새 무차별 약탈과 폭동으로 번지고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도 모를 만큼 억눌렸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코로나19 영향인 걸까? 전 세계는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사회적 ‘분열과 증오’라는 전례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모두가 격리되고 대규모 실업과 경제난도 잇따르면서 좌절감과 불안감이 사람들을 예민하게 만들고, 예민함은 생존을 위한 폭력성을 드러나게 한다.

연일 힘든 요즘이다. 세상에 온통 싸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익명이라는 무기를 등에 업고 입에 쉽게 담지 못할 날 선 말을 퍼붓고 나라 안팎으로는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챙기려는 권력가들의 머리싸움이 한창이다. 부정적인 뉴스를 계속 접하게 되면 심리도 전염된다. 불신과 단절, 혐오와 차별은 코로나19가 만든 후유증일까? 우리는 어쩌다가 서로를 죽일 듯 괴롭히고 가해하고 짓밟게 되었을까? 아니면 발전을 위한 다양성의 목소리이자 건강한 조정일까?

카롤린 엠케의 혐오사회
카롤린 엠케의 혐오사회

사회에 만연한 연쇄적 갈등의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전 세계 분쟁지역을 취재해 온 독일 출신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다산초당」을 통해 혐오와 증오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하는지 쫓는다. 저자는 유럽에서 발생되는 난민 문제를 비롯한 인종과 성 소수자 문제를 다루지만, ‘차별’의 관점에서 보자면 동시대적이자 광범위한 문제다. 저자는 현대에 문제시되는 각종 혐오는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라 말한다. 따라서 혐오와 증오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차이를 본질인 양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관점’에 맞서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증오는 만들어지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되는 것이기에 사회적 구조도 함께 고찰해야 하며, 증오를 이루는 성분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맥락 상 어디서 발생하는지 인지해야 왜곡된 인식 틀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인식과 시야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틀에 따라 형성되고 교육된 것이라서다. 개념 안에서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를 대표하는 특정 표상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 개인의 정체성과 별도로 국적과 인종과 같은 부수적인 사실에 따라 무방비 상태로 증오와 멸시를 당한다. 이는 그 누구라도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 해를 입을 수 있다. 혐오와 멸시가 계속 심화하고 확대되면 결국 모두가 해를 입는다. 바로 그것이 증오가 가진 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수에 속하는, 일반적으로 평범하다고 일컫는 사람들은 차이와 차별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 소수자인 저자는 사회적으로 인지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우리’에도 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인지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은 감정도 요구도 권리의 표출 기회조차 없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사람이라는 글자 앞뒤로 어떠한 조건도 붙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권리가 있다. 자신의 주관적 존엄, 그것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모두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접근으로 우리는 포용적 공존을 이뤄나갈 수 있다고 정리한다. 반복되고 확산되는 혐오의 사슬을 끊고 배제된 담론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허용적인 열린 사회는 구성원에게 건강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개방성은 되려 사회의 결속력을 높인다.

데릭 젠슨의 문명과 혐오
데릭 젠슨의 문명과 혐오

사실 만연해있는 차별과 혐오 문제가 직접적인 자신(자국)의 문제가 아니라면 무관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무관심이야말로 공격자들을 돕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공격자는 방관을 자신에 대한 긍정으로 인식해 더 힘을 얻는다. 그사이 피해자들은 철저히 사회에서 고립된다. 우리도 아시아인으로서 어느 정도 국제 사회에서 무시를 당한다고 하지만 흑인만큼 인류의 역사에서 서글픈 인종이 있을까? 생명이 아닌 물건, 즉 사유재산으로 오랫동안 취급받았던 그들. 사회변혁 운동가인 데릭 젠슨은 「문명과 혐오/아고라」를 통해 미국 사회의 역사, 문화에 뿌리 깊은 혐오를 경제와의 관계를 통해 풀어 놓는다.

저자는 오늘날 경제라는 이름으로 많은 잔학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도 노예제와 그 외 강제 노동은 언제나 문명이 기반 역할을 해왔으며 모든 생명에 대한 혐오, 멸시, 무시가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라 꼬집는다. 자본주의는 경쟁에 기초하기 때문에 혐오, 위험, 공포를 낳는다. 심해지는 경쟁은 경쟁자들에 대한 혐오를 무한으로 키운다. 생명보다 생산을 높이 평가하는 것, 사람을 도구로 보는 것, 소수를 위한 다수의 착취에 기초하는 시스템 안에서 사회는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이윤 극대화는 반윤리적인 행위를 유발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혐오 집단을 만들고 갈등을 촉발한다. 전쟁과 독점은 경제에 가장 효과적이다.

미디어는 사회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전파한다. 아이들은 왜곡된 이미지를 흡수해 편파적인 가치관을 가진다. 혐오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뿌리는 깊어지게 되며, 언제부턴가 그것은 혐오로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는 세상은 늘 변하지만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권력은 명칭과 얼굴만 바뀌어 왔을 뿐, 경쟁 사회에서 적절치 않은 대상에게 표출되는 분노는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가하는 잔학 행위를 멈추고 싶다면, 그것을 일으키는 사회 경제적 조건을 이해하고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성 회복, 그 방편으로 저자는 우리 체제의 결함을 일깨워주는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전한다. 반면에 부정의, 불합리에 저항하고 항의하는 정통또한 강력하게 존재해 왔으며 진실을 말하고 다양성을 회복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야 한다고 독려한다. 오래도록 세상을 인식해온 하나의 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옮겨가는 사이의 불협화음은 당연하다는 것.

철학자 한병철의 '폭력의 위상학'
철학자 한병철의 '폭력의 위상학'

스티븐 핑거 교수의 말대로 인류의 역사에는 언제나 폭력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인간은 야만적인 본성을 억누르며 점차 평화적이고 문명화된 세상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오늘날의 폭력성이, 혐오와 갈등이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철학자 한병철은 「폭력의 위상학/김영사」을 통해 폭력의 시대적 변천을 위상학적 변화로 설명한다. 그도 사회적 구도에 따라 양상만 달라질 뿐 폭력은 늘 존재해 왔다고 말한다. 특히 오늘날의 폭력은 익명화되고 탈 주체화된 시스템적 모습으로 사회와 하나가 되어버렸다고 분석한다.

현대의 문제는 심리적 폭력이다. 투명성의 강박은 감시와 착취를 자행하고 과잉 정보와 과잉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그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결국 서로를 물고 뜯는 심리적 상처가 된다. 저자는 본질적인 문제를 자기 착취의 성과 사회로 지적한다. 성과 주체는 최대 성과를 향해 스스로를 착취하며 자유가 있으나 강제와 하나 된다. 이를 긍정성의 폭력이라 표현하며 이러한 내부화 된 시스템적 폭력이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질병을 양산하고 좌절과 분노를 안기고 있다고 전한다.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본주의 경쟁은 더욱 가속되고 있으며, 경쟁에 기반한 성과주의 사회에서 AI와 로봇의 출현은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불안감의 근원은 스스로를 시스템의 생산 도구이자 소비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외부의 선택을 갈구하는 데 있다. 한병철 저자는 오늘날의 전쟁은 자기 자신과의 전쟁이며 자기 관계적이라 말한다. 자기 착취는 내부 파열적 폭력이기에 승리하는 자가 동시에 패배한다. 가해자는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며 희생자가 동시에 시스템의 공모자가 된다. 계속 이 길을 가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중요한 과도기에 서 있다. 몇 세기에 걸친 익숙한 관습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물질의 풍요와 부를 안겨주었지만, 이면에 많은 것들을 앗아가기도 했다. 외부적 발전은 이루었으나 정신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이제 인간은 다시 고민한다. 오늘날의 연쇄적 갈등은 상처가 곪아 터진 것은 아닐까? 상처는 염증을 깨끗이 도려내고 치료하면 다시 새살이 돋는다. 현대인은 속도를 줄이고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 갈등이 있어야 발전도 있다. 문제를 공유하고 집단 지성으로 건강한 성장의 기회로 삼으면 된다. 지금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변혁의 마찰음이 울려 퍼지는 시기이다. 부디 지혜로운 선택으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나아가길!

글 / 오서현 (oh-koob@naver.com)

오서현
오서현
국내 대형서점 최연소 점장 출신으로 오랫동안 현장에서 책과 독자를 직접 만났다. 예리한 시선과 안목으로 책을 통한 다양한 기획과 진열로 주목 받아 이젠 자타공인 서적 전문가가 됐다. 북큐레이터로서 책으로 표출된 저자의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 '오쿱[Oh!kooB]'이라는 개인 브랜드를 내걸고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관계를 연결하려 한다(oh-koob@naver.com). 새로운 형태의 '북-네트워크'를 꿈꾸며 서평, 도서 추천, 북클럽 운영, 북 콘서트MC, 서재(공간) 기획, 출간 기획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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