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규제개혁 사이] 인도, 자전거 도로, 차도... 전동 휠은 어디로 달리나
출퇴근길. 날이 많이 풀린 요즘, 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미동도 없는 건장한 남성의 모습을 자주 만난다. 십중팔구 전동 휠 위에 올라탄 모양새. 외바퀴 또는 두바퀴의 전기 충전 방식 1인용 이동 수단, 이른바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불과 1, 2년 전만 해도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고 지나가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자연스럽다. 간혹 기자는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도 퍼스널 모빌리티를 마주한다. 환승하기 위해 걷는 많은 사람 사이를 귀신처럼 요리조리 피해 가는 모습은 신기할 지경이다.
주요 온라인 오픈마켓의 퍼스널 모빌리티 판매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G마켓의 최근 한달간(3월 18일~4월 17일) 전동 킥보드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 2017년 1분기 전동∙전기 레저 상품 전체 판매량도 전년 대비 113% 늘어났다. 같은 기간 옥션에서도 전동∙전기 레저 상품 판매량은 전년 대비 141% 증가했다. 전동 킥보드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29% 급증했고, 전동 휠 제품 판매량도 158% 증가했다. 오픈마켓 11번가도 마찬가지. 퍼스널 모빌리티 판매량은 전년 대비 110%나 상승했다.
< 샤오미 전동 킥보드, 출처: 샤오미 >
업계는 퍼스널 모빌리티 판매량 증가 배경에 대해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족 증가도 원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능 대비 저렴한 가격의 퍼스널 모빌리티가 시장에 다수 등장하면서, 이전과 달리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충전요금 100원이면 50㎞를 달리는 제품, 30만 원대 전동 휠 등이 종류도 다양하다.
날고 뛰는 제품, 제자리걸음 중인 규제
시장 규모는 늘었지만, 현행법상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는 것은 대부분 불법이다. 아직 관련 법이 없는 수준. 현재 전동 휠과 전동 킥보드는 자전거도로나 인도에서 탈 수 없다. 도로교통법상 퍼스널 모빌리티는 ‘배기량 125cc 이하의 이륜자동차, 정격출력 0.59kw 미만의 원동기를 단 차’에 해당해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타는 것도 단속 대상이다. 서울시, 세종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조례를 통해 한강, 호수공원 등에서 탑승을 금지했다. 서울시 한강공원 보전·이용에 관한 기본조례 17조에는 ‘이륜 이상의 바퀴가 있는 동력 장치를 이용하여 차도 외의 장소에 출입하는 행위’를 금한다고 명시했다. 위반 시 과태료도 내야 한다. 서울시의 경우, 최근 기초질서 단속요원을 한강공원에 배치해 전동 휠 또는 전동 킥보드 탑승을 적극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과태료는 5만 원이다.
< 보호장비 없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있는 어른과 아이, 출처: 동아일보 >
결국, 퍼스널 모빌리티를 탈 수 있는 곳은 차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차도를 달릴 수 있는 퍼스널 모빌리티는 없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차도 위를 달리기 위해서는 제작자가 해당 제품이 안전기준에 적합한지 스스로 인증하고 판매하는 자기인증을 해야 한다. 하지만, 퍼스널 모빌리티는 인증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평균 최고 시속 20km 정도에 불과한 제품이 대부분이며, 백미러·사이드미러, 방향 지시등이 없기 때문에 차도를 달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무엇보다 차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원동기 이상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하기 때문에 16세 미만은 퍼스널 모빌리티 운행 자체가 불법인 셈이다. 실제 사건, 사고도 접수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교통사고, 사용자 부주의 등으로 인한 퍼스널 모빌리티 안전사고는 2013년 3건, 2014년 2건에서 2015년 26건으로 늘어났다.
멈춰 있는 규제, 무법과 불법 사이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규제가 멈춰 있는 동안, 도로와 공원 등은 무법과 불법 사이에서 안전도 위협 받고 있다. 한해 1,000만 명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에는 사방에 퍼스널 모빌리티 온상이다. 전동 휠, 전동 킥보드 위에 올라탄 한복 입은 청소년들의 모습은 아찔하다. 전동 휠을 타고 과속방지턱을 무리하게 넘다가 길가에 넘어진 관광객도 여럿 보인다.
전주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8월 40대 남성이 전주 한옥마을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다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하지만, 이 사고 내용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부정적인 소문이 퍼질 것을 우려한 것. 그 사이 전주 한옥마을에는 지난 1년 동안 20여 개 이상의 퍼스널 모빌리티 대여업체가 들어섰다.
퍼스널 모빌리티는 소리가 나지 않고, 20~40km에 이르는, 비교적 빠른 평균 속도로 운행하기 때문에 타다가 넘어지거나 지나는 행인들과 부딪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전동 휠을 타고 빠르게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은 위협적이다. 한강공원이나 전주 한옥마을 등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나이 어린 어린이도 돌아다니기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미숙하게 전동 휠을 조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주변에서 표정을 굳힌 채 가던 길을 멈추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고라도 났을 경우에는 복잡해진다. 기기 고장이나 부실로 인한 사고는 판매업체에서 제공하거나 가입한 제조물책임보험(PL보험)에 의해 보상을 받을 수는 있지만, 본인의 부주의나 조작 잘못 등으로 발생한 대인·대물 사고는 보상 받을 길이 없다. 만약 보행자와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법적으로 원동기에 해당하므로, ‘보도를 침범한 차’로 분류해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를 바라보는 해외 시선
제자리걸음 중인 국내와 달리 해외는 급성장하고 있는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에 대응하며, 각종 법안과 규제를 준비했다. 미국은 현재 45개 주에서 시속 32㎞ 이하 퍼스널 모빌리티를 저속차량(LSV)으로 규정하고, ‘차도 혹은 골목 진입 시 일시 정지’, ‘자전거도로 이용 시 한 줄 주행’ 등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또한, 보호장비 미착용 시 50달러 이하 벌금 부과 등 안전책도 마련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와 두바이 등도 유사한 조항들을 만들었다.
독일은 2009년부터 퍼스널 모빌리티를 ‘전기보조 이동수단’으로 분류하고 법안을 마련했다. 면허를 따고 반사등과 후미등, 경적 등을 달면 자전거도로 주행을 허용한다. 특별 허가를 받으면 인도에서도 탈 수 있다. 핀란드 교통부는 2015년 시속 25㎞ 이하 제품에 대해 인도로 다닐 수 있도록 허락했으며, 경적과 반사등, 안전모 등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프랑스는 퍼스널 모빌리티를 보행자와 같이 대우한다.
< 전동휠을 타고 순찰을 도는 해외 경찰과 관광을 즐기는 관광객의 모습 >
일본은 2011년 이바라키 현 쓰쿠바 시를 특구로 지정해 자유롭게 퍼스널 모빌리티를 탈 수 있도록 조치했다. 도쿄 빅사이트와 요코하마 가나자와 자연공원 등 주요 공원도 주행 허용 구역으로 지정하며 변화를 꾀했다. 중국은 가솔린 스쿠터 주행을 금지하면서 자연스럽게 퍼스널 모빌리티 구매가 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이 자리 채운다
업계 관계자들은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은 지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후지경제 연구소, KB증권 등에 따르면 2015년 전세계 4,000억 원 규모였던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은 2030년 26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다가올 사회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퍼스널 모빌리티가 필수라는 분석으로, 엄격해지고 있는 환경 규제, 거대 도시 증가, 1~2인 가구 확대 등이 성장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은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 해당 기준을 맞추는 것이 쉬지 않기 때문에 배기가스가 없는 전기차 개발이 활발해지며,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은 지속 성장한다는 것. 또한, 세계 주요 도시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전세계 인구의 60%, 약 45억 명은 도시에서 살 것으로 예상하고,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메가시티는 22개에서 30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르는 교통 문제를 해결할 대안 중 하나가 퍼스널 모빌리티라는 것. 혹자는 기존 교통 시스템에서 새로운 교통 시스템으로 옮겨가는 일종의 과도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 확대는 자동차, 소재, 부품, 2차전지, 화학, 사물인터넷, 친환경 기술 등 다양한 산업의 융합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토종 브랜드를 키워 수출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내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은 이미 중국산 제품으로 잠식되었다는 평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에 따르면 전세계 퍼스널 모빌리티 제품 중 약 80%를 생산하는 중국 기업의 2015년 수출액은 전년 대비 113.5% 증가한 1조 7,800억원(15억 8,700만 달러)에 이른다. 중국 기업 샤오미는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업체로 꼽힌다. 2015년 4월 세그웨이를 인수하고 나인봇에 지분을 투자한 샤오미는 다양한 라인업으로 전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 나인봇 >
실제 퍼스널 모빌리티 제품 판매가 늘어나면서 국내 온라인 오픈마켓이 할인 판매를 내세운 제품도 대부분 해외 제품이다. 중국에서 제조한 퍼스널 모빌리티를 들려오는 단순 유통업이 시장에 만연한 상황이다.
전동 휠은 달리고 싶다
뒤늦게 정부와 국회도 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전기 자전거를 자전거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2017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 개정안은 자전거 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는 전기자전거를 '자전거로서 사람의 힘을 보충하기 위해 전동기를 장착한 것 중 페달과 전동기의 동시 동력으로 움직이고 시속 25㎞ 이상으로 움직일 경우 전동기가 작동하지 아니하며 부착된 장치의 무게를 포함한 자전거 전체 중량이 30㎏ 미만인 것'으로 정의했다. 해당 요건에 맞는 전기자전거는 자전거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개정안은 공포된 날부터 1년 후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내년 3월부터 자전거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전동 휠, 전동 킥보드는 여기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현재 퍼스널 모빌리티는 달릴 수 있는 곳이 없다. 서울 한강공원 등을 비롯한 사람들이 몰리는 지역에는 민간 사업자가 버젓이 대여점을 운영 중이고, 주말이면 탑승자가 넘쳐나지만, 이 모든 것은 여전히 불법이다. 현재 중국에서 제조한 저렴한 전동 휠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아빠와 전동 휠 타는 걸 무지 좋아합니다. 친구들에게도 태워주며, 자랑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동 휠을 탈 곳이 없네요."라고.
- '규제와 규제개혁 사이'는 빠르게 발전하는 ICT 산업과 기존 산업이 융합하며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어떤 방향으로 가는게 바람직한지 고민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새로운 서비스와 콘텐츠를 선사합니다. 다만, 기존 산업의 테두리 안에서 예상 못한 일이 등장합니다. 이에 과거와 현재를 분석해 나아갈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도움을 원하시는 분은 IT동아 앞으로 메일(tornadosn@itdonga.com)을 주시기 바랍니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