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거장 김중만,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 서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디지털 기술의 최종목표는 아날로그의 완벽한 재현이라고 한다. 이는 특히 카메라나 AV(영상음향) 관련 기술의 발전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0과 1의 조합만으로 자연의 오묘한 아름다움, 인간의 따뜻한 마음 등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특히 많은 영향을 받은 직종이 바로 사진작가다. 그들은 필름과 인화지 기반의 아날로그 사진, 그리고 이미지센서와 모니터 기반의 디지털 사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당수의 사진작가가 디지털로 갈아탔지만, 또 일부는 아날로그 세계에 남았다.
하지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확립한 거장이라면 이러한 고민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사진작가인 '김중만' 역시 그렇게 말했다. 사진을 찍거나 보는 수단 보다는 작품에 담긴 작가의 진심에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지난 11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벨벳언더그라운드'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나봤다.
서양화 전공 경험이 오히려 걸림돌, 긴 방황의 시작
IT동아: 선생님은 본래 서양화를 전공했던 분입니다. 사진 업계로 본격 진출하면서 과거 서양화를 공부했던 경험이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김중만: 제가 사진의 세계로 뛰어든 것이 벌써 40여년 정도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서양화 관련 지식이 좋은 사진을 찍는데도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그림과 사진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알고 보니 양쪽은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오히려 서양화에서 배운 지식이 좋은 사진을 찍는데 방해가 되어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 처음에는 거의 10년 이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방황을 했습니다. 20년 정도는 지나니 이제야 겨우 저의 인생과 철학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더군요.
IT동아: 오랜 방황 끝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김중만: 그게 참 이상했습니다. 편견 때문인지 오히려 인정 못해준다는 반응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한국 화랑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기존의 개념과 타협하며 이미지 관리를 하는 작가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죠. 유명 해외전에 초대조차 못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런 와중에 오히려 동지가 많아진 건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디지털이 대세지만 '필름의 역습' 역시 주목할 만
IT동아: 기존의 편견이라고 한다면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진의 사이의 선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메라 시장에서 디지털이 대세가 된 지 제법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아날로그 사진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작가도 제법 있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중만: 사실 저도 아직 아날로그를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작업 자체는 디지털로 더 많이 해요. 굳이 비율로 따지면 디지털이 6, 아날로그가 4 정도 됩니다. 예전에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가보니 거기 전시된 작품의 80% 정도가 디지털로 뽑아낸 작품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암실에 잘 들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IT동아: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이젠 아날로그를 앞서게 되었다는 의미일까요?
김중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이를테면 어두운 곳에서 촬영할 때는 디지털 카메라가, 빛이 많은 곳에선 필름 카메라가 더 유리하다고 봐요. 그리고 디지털 사진의 픽셀과는 다른, 필름 입자 특유의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최근 폴라로이드가 동구권에서 재생산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었고요. 필름의 역습이라고 해야할까요? 이런 걸 볼 때 아날로그 사진 역시 명맥은 계속 유지하리라 생각합니다.
디지털 후보정도 인정, 중요한 건 작가의 진심
IT동아: 디지털 사진의 특징 중 하나라면 촬영 후, 모니터로 결과물을 확인하면서 후보정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김중만: 후보정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사진을 만든다는 건 찍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자기가 의도하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려고 후보정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너무 심해서 왜곡이 되어버린다면 문제가 되겠죠. 이를테면 전쟁터를 찍었는데, 흐르는 피를 지워 버린다면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전할 수 없겠죠. 후보정 여부보다 더 중요한 건 찍는 사람의 진심을 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일회용 카메라 조차도 우습게 보지 않는다
IT동아: 현재 주로 이용하는 촬영 장비가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좋을까요?
김중만: 지금 주로 이용하는 건 스위스의 자이츠(Seitz)사에서 나온 1억 6천만 화소 카메라입니다만, 가벼운 마음으로 찍을 때는 캐논 제품을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종이로 포장된 일회용 카메라로 종종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 이런 일회용 카메라는 국내에서 그다지 팔지 않아서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오기도 하죠.
IT동아: 다양한 가격과 포지션의 장비를 이용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요?
김중만: 각 장비마다 표현할 수 있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일회용 카메라 특유의 거친 필름 입자가 오히려 독특한 느낌을 주기도 하죠. 스마트폰 카메라 역시 의외로 괜찮은 결과물을 낼 때가 있더군요.
화면 예쁜 모니터 보다는 왜곡 없는 모니터
IT동아: 디지털 사진 작업을 할 때는 카메라 외에도 결과물을 확인하거나 편집할 때 쓰는 모니터 역시 중요할 듯 합니다. 사진 작업에 유용한 모니터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김중만: 제가 사실 IT기기와 아주 친숙하지는 않습니다. 문자를 주고 받을 때도 단문으로만 할 정도이니까요. 다만, 우리 스튜디오의 스탭들이 편집 작업을 할 때 저도 모니터를 같이 지켜보며 지시를 하긴 합니다. 좋은 모니터라는 건 역시 원본의 컬러와 디테일을 왜곡없이 선명하게 표현하는 제품이겠죠. 단지 이미지가 예쁘게 표현되는 모니터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진은 예술이 될 수 있다
IT동아: 마지막으로,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서 묻고자 합니다. 그리고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김중만: 그보다는 차라리 상업사진과 가족사진(일상사진)으로 구분을 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상업사진의 경우, 정말로 많은 스탭이 참여해서 만들 결과물이죠. 이 경우, 사진작가는 단순히 셔터 버튼만 누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장르의 사진이건, 시간을 두고 다시 봤을 때 아주 좋은 느낌을 주는 사진이 분명 있습니다. 이런 게 예술사진이 될 수도 있겠죠. 시기에 관계 없이 언제 봐도 좋은 사진, 이게 바로 이상적인 사진이 아닌가 싶습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라
인터뷰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김중만 작가는 정말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기존 사진 업계에 자리잡은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한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그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기회였다.
한편, 이날 확인한 그의 보유 기기는 다음과 같다. 그 외에 아이맥과 맥북 등도 눈에 띄었다.
자이츠 6x17 Digital panorama camera
스위스 자이츠(Seitz) 에서 2006년에 발표한 1억 6,000만화소 제품으로, 7,500 x 21,250의 픽셀을 표현할 수 있는 디지털 파노라마 카메라다. 판매 가격은 3만 6,000달러(약 4000만원)에 이른다. 참고로 김중만 작가는 정확한 모델명을 말하지 않은채 '스위스 자이츠의 1억 6천만 화소 카메라'라고만 이야기했는데, 이에 해당하는 제품은 위 모델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캐논 EOS 1D Mark II
2004년에 나온 캐논(Canon)의 플래그십급 DSLR 카메라로 820만화소의 이미지센서와 초당 8.5매의 연사 성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자매품인 1Ds Mark II에 비해 이미지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대신, 빠른 연사능력을 갖추고 있어 순간 포착에 유리하다. 김중만 작가의 말에 따르면 '컴팩트 카메라를 쓰듯 가벼운 기분으로 찍을 때 쓰는 카메라'다.
벤큐 SW2700PT Eye-Care
최근 출시된 벤큐(BenQ)의 사진 전문가용 모니터다. 어도비 RGB 99% 색상 영역 및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을 지원하며, 정밀한 색 보정을 위한 차광 후드도 기본 제공된다. WQHD급 2,560 x 1,440 해상도의 AHVA(IPS) 패널을 통해 선명한 이미지 표현이 가능하다. 이 모니터에 대한 김중만 작가의 평가는 '좋네' 딱 한 마디였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