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문화의 지평을 넓히다, '서울 보드게임 페스타'
[IT동아 안수영 기자]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보드게임이 점차 가족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20~40대 성인들은 어린 시절 보드게임을 즐겼던 추억을 갖고 있는 세대다. 국내에는 초/중등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족을 동반하고 보드게임을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신이 느꼈던 추억과 즐거움을 자녀에게 나눠주고 싶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보드게임은 사고력, 추리력, 문제해결능력 등을 길러주는 교육적 효과도 갖추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보드게임 문화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일부터 3일까지 서울 도곡동 SETEC에서 열린 '제5회 서울 보드게임 페스타'의 규모는 지난 번보다 약 2배 커졌다. 그 동안 서울 보드게임 페스타는 SETEC에서 1개 관만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1관과 2관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양쪽 관에는 보드게임을 체험하는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건물 로비에는 참가자들이 줄을 서서 이벤트 응모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보드게임 페스타는 건전한 놀이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산업진흥원과 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가 주관했다. 이번 행사에는 코리아보드게임즈, 젬블로, 행복한바오밥, 공간27, 조엔, 에듀카코리아 등 12여개 업체가 참여해 다양한 보드게임을 체험하도록 했다. 특히 파이프를 빠르게 잇는 게임 '파이프워크', 한글 게임 '라온', 공감 커뮤니케이션 게임 '하트하트', 손수건을 접는 게임 '폴드 잇'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날 행사에서 전시된 보드게임을 통해 시장 트렌드도 살펴볼 수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창의교육 전문가 개웅초등학교 박상민 교사는 "과거에는 카드 보드게임이 주류를 이뤘지만, 요즘에는 플라스틱이나 원목 등 입체적인 구성물을 갖춘 보드게임들이 늘었다.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적용한 보드게임도 등장했다. 예를 들면 자석의 음극과 양극을 활용한 게임들이 눈에 띈다. 이러한 보드게임은 재미뿐만 아니라 과학의 원리를 자연스레 습득하도록 도와서, 교육 분야에서 보드게임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도 넓히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사는 "오래 전부터 잘 알려졌던 클래식 게임의 규칙이나 테마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더 나은 아이디어와 결합해 나온 작품도 많다. 창의성의 요소에서 기존에 있는 것을 좀 더 나은 형태로 개선하는 것을 '정교성 분야'라고 한다. 이것이 현재 보드게임의 트렌드 같다. 기존에 나왔던 아이디어를 갈고 닦아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휴일인 만큼 주로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으며, 연령대는 매우 다양했다. 참가자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데 어울려 게임을 즐겼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게임 규칙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친구끼리 참여한 참가자들이 까르르 웃기도 하고, 게임 대회에서 웃고 울기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게임에 몰입했다는 의미이리라.
보드게임 '라온' 대회에 참석한 광문중학교 2학년 차승아 양은 "원래 보드게임을 좋아하고 자주 했다. 주로 가족들과 함께 하고, 집에 있는 보드게임을 학교에 가져가서 친구들과 즐기기도 한다. 게임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즐겨보고 싶어서 대회에 참여했다. 게임의 승패 여부를 떠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이렇게 게임을 할 수도 있구나'라고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라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3일에는 인기 보드게임 '파이프워크' 대회도 펼쳐졌다. 파이프워크는 파이프 공사를 테마로 한 2~4인용 보드게임으로, 4가지 색깔의 파워 스테이션들을 파이프로 빠르게 연결해야 한다. 이날 대회에는 대하초등학교 4학년 정주영 군이 대상을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정 군의 아버지는 "평소 루미큐브와 같은 보드게임을 자주 한다. 아들이 파이프워크, 할리갈리 컵스 등 순발력이 요구되는 게임을 잘 하는 것 같다. 체험도 하고 대회도 참여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추억을 만들고자 찾아왔다"고 말했다.
기존에 보드게임 대회를 하면 어린이, 청소년들이 주로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성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독일이나 미국처럼 보드게임을 자주 즐기는 선진국에서는 조부모, 부모, 자녀 등 연령을 불문하고 3대가 함께 게임을 하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이번 보드게임 페스타를 보니 한국에서도 보드게임 문화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됐다. 가족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부족한 현대 사회, 보드게임을 통해 가족 간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