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 "디자이너를 위한 창업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IT동아 안수영 기자]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것을 실제 상품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상품 제작과 유통 노하우는 있는데, 우리가 제품을 직접 기획, 디자인할 수는 없을까?'
제조 경험과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아이디어 실현에 어려움을 겪고, 기획과 디자인에 대한 니즈는 있지만 여유를 내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려 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다양한 기업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융합을 시도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기업 간 융합을 돕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차원에서 실시된 프로젝트 중 하나가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가 디자인 콘텐츠 분야 예비창업자 및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마련한 'MDC(제조, 디자인, 콘텐츠)' 사업이다. MDC 사업은 경기도와 의정부시가 주최하고,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주관했다.
경기도와 의정부시, 경기콘텐츠진흥원은 융합 상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돕기 위해, 경기북부 소재 강소 제조기업들과 공동창작 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스타트업들을 통해 양질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제조기업들과 제조 기술, 제작, 유통 분야에서 협력하도록 했다. 지난 6월부터 진행된 MDC 사업은 다양한 디자인 가구와 보드게임 등을 제작해내는 결실로 이어졌다. 이번 MDC 사업을 기획한 경기콘텐츠진흥원 의정부 클러스터팀 담당 김경회 팀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는 경기 북부를 새로운 도시로 만들자는 취지로 의정부에 마련된 창업지원 공간입니다. 북부 지역은 경기도에서 비교적 낙후되었는데요, 일자리가 많고 따뜻하고 안전한 도시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분야는 디자인, 이야기산업, 사물인터넷입니다. 경기 북부에는 전통적인 제조기업인 섬유, 가구, 피혁 기업들이 있는데요, 이러한 전통 제조분야와 융합이 가능하면서도 청년들이 선호하는 분야를 육성하고자 디자인, 이야기, 사물인터넷 기술을 선정한 것입니다"
이번에 진행된 'MDC 공동창작 프로젝트'도 경기 북부의 제조기업과 디자인/콘텐츠 스타트업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기획됐다. 김 팀장은 이번 MDC 사업을 기획하고 그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MDC(Manufacturing, Design, Contents) 사업은 경기도와 의정부시가 주최하고,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제조/디자인/콘텐츠 공모전 및 제작지원 프로젝트입니다. 이 사업은 경기 북부의 제조기업과 디자인, 콘텐츠 분야의 스타트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시행됐습니다. 이 계획 속에서 2가지 트랙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했는데요. 첫째는 가구, 조명, 생활용품, 보드게임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가진 디자이너들을 모집하는 공모전을 개최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 풀을 넓히는 작업을 했습니다.
둘째는 스타트업 제작지원 사업이었는데요, 디자인/콘텐츠 분야의 스타트업을 모집해 북부 제조기업과 협력하도록 매칭하고,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실제 상품으로 제작하고 유통, 판매까지 이루어지도록 지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총 5가지 상품이 제작됐는데요. 아이디어는 있지만 제조 역량이 부족했던 스타트업, 기획과 디자인 분야에 욕구가 있었던 제조기업이 서로 협력해 상품을 개발, 판매까지 이루어지도록 했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기존에 유통과 제작에 노하우가 있는 제조기업들이 참여한 만큼, 현장 중심의 제조 방법, 원가 절감, 유통 판로에 대해 실질적인 조언과 관점이 적용된 것도 특징입니다"
이번 MDC 사업에서 탄생한 제품은 퍼즐 보드게임 '파이프워크'(세븐브릭스), 프레임 화병 '네모네모네'(플로라랩),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해 만든 테이블 'C-FUN'(트리), 아이디어 우산꽂이와 디자인 책꽂이(움직임 리테일스) 등이다. 아이디어로 그칠 수 있었던 생각이 제조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실제 판매 가능한 제품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수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공모전의 경우, 개성 있는 아이디어를 선발할 수는 있지만 실제 상품 제작과 판매까지 이어지기가 어려웠다. 이상적인 아이디어와 실제 판매되는 제품은 차이가 있고, 실제 제작까지 이어지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저희는 스타트업들이 실제 상품 제작과 판매에서 겪는 어려움을 살펴보고, 전문 제조기업들과 호흡하도록 했습니다. 스타트업들의 생산 경험치를 올려 향후에도 다른 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제작한 상품을 실제로 시장에 판매해, 수익 창출을 꾀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제품 제작에 양사가 노력을 들인 만큼, 수익성이 따라야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MDC 사업에는 제조기업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심사 및 참여를 했는데요, 아무래도 현업에 계신 만큼 훨씬 더 현장 중심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제품을 만들 때 원가, 제조 가능성, 실제 재료의 낭비가 없도록 하는 방법들을 고민했습니다. 덕분에 원가를 좀 더 낮추면서 디자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통 및 판매를 하면서 고객과의 접점이 있는 만큼, 실질적인 노하우를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사업에 참여한 스타트업들은 상품을 제작할 때 부딪치는 현실적인 문제와 노하우를 깨닫게 되었다. 가령 커피가루 테이블의 경우, 제작 단계에서 무게, 디자인, 안정성, 상품성을 고려해 테이블 다리 모양 등이 변경되었다. 제조기업의 노하우가 적용이 된 셈이다. 이처럼 제조와 디자인의 관점은 다르고, 양사의 협력은 이러한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
"디자인을 하는 것과 현장에서 제작을 하는 환경의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면 책꽂이나 우산꽂이의 경우에도 디자인 단계에서 구상하는 색상과 실제 제조해낼 수 있는 색상에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들을 거쳤습니다"
기획과 디자인 역량에 필요성을 느끼는 제조기업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MDC 사업이 제조기업 측에도 하나의 사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트리'는 커피가루로 테이블을 만들었는데요, 나무를 베지 않고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실제로 커피 브랜드 회사도 이 제품에 관심을 가졌고요, 일부 스타벅스 매장에 납품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양질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시장은 생긴다고 봅니다.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는 디자인, 콘텐츠 분야와 융합할 의사를 지닌 제조기업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으니, 관심 있는 기업들은 연락 바랍니다"
스타트업과 제조기업 간의 융합 사례는 MDC를 넘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업을 통해 만난 트리, 움직임 리테일스, 레어로우(심플라인)은 MDC와 별도로 협력해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하기도 했다. 트리는 나무 소재를, 움직임 리테일스는 디자인을, 레어로우는 실제 제작을 맡으며 함께하고 있다.
"제품 판매의 경우, 트리는 제품을 납품하고 판매한 만큼 수익성을 확보했습니다. 세븐브릭스의 보드게임 ‘파이프워크’는 코리아보드게임즈가 처음에 지원을 했고, 젬블로를 소개했습니다. 젬블로에서 제품을 전체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젬블로 유통채널에서 판매될 예정입니다. 플로라랩의 프레임화병 ‘네모네모네’는 현재 논현동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으며, 염미선 디자이너가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신진 디자이너로 선정됐습니다. 최근 철제 화병 프레임이 인기가 있는 만큼, 일정 부분 판매가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합니다"
다만 이번 사업에서 나온 제품들이 소량 생산을 하다 보니, 일부 제품의 경우 단가가 다소 높은 편이다. 김 팀장도 이러한 고민을 기업들과 함께하고 있다.
"단가를 낮추는 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결국은 국내 제조환경이 원가를 낮추는 방식보다는 디자인 중심으로 가는 방식을 택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현실적으로 중국, 동남아시아 시장과 비교해 국내에서 가격 경쟁력을 가져가기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인 품질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고, 그것이 선진국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이자 고급 브랜드로 거듭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환경이 안정적으로 조성되려면, 국내에도 디자이너와 브랜드에 대해 인정해주는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조기업 중에 조명 전문기업인 필룩스가 참여했지만, 조명의 경우 협력 포인트를 찾기 어려워 제품이 나오지는 않았다. 조명 아이디어를 응모한 스타트업은 있었지만, 아이디어가 단순하거나 포인트가 달라 제조기업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디자인 창업지원을 하면 조명에 대한 아이디어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조명 분야가 사람 간의 인터랙티브 또는 미디어아트 분야로 널리 확장되고 있는데요, 아이디어의 경우 디자인 자체를 중심으로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양한 기능이 요구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경우도 있다 보니, 아무래도 이러한 것은 조명보다는 다른 분야의 기업과 협력하기 적합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는 내년에도 MDC 사업을 진행할 의향이 있다. 내년에는 보다 사업을 확대해, 많은 디자이너들의 창업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사업의 규모를 좀 더 키워서 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상품화하는 경험을 갖도록 지원하고 싶습니다. 보통 제작지원 사업의 경우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디자이너들의 창업을 좀 더 활성화하고자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제작 경험, 판매 경험,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욕구를 실현하도록 지원해주고자 합니다.
내년에는 사업을 3단계로 나누어, 초기 아이디어를 갖고 디자인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 교육을 받으면서 시제품을 만들고 싶은 분들에게 제작을 지원하는 데모데이 사업, 시제품을 만들며 상품 의욕이 있는 분들에게 실제 유통할 제품을 만드는 사업 등으로 창업 생태계를 구성해보고자 합니다. 또한, 마켓 확보와 제품 스토리텔링 부분도 지원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는 디자이너를 위한 맞춤형 교육과 창업 지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김 팀장은 경기 북부 지역을 디자인 중심 창업도시로 육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디자이너를 위한 창업 지원사업이나 브랜드 및 스토리텔링을 지원하는 기관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원, 대전 등 여기서 먼 지역에서도 교육을 들으러 오는 분들이 많은데요.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가 운영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해 메이커, 스토리텔러, 디자이너가 중심이 되는 핫플레이스로 만들고 싶습니다. 좋은 시도를 꾸준히 거듭해 경기 북부를 성장시키고, 청년들이 창업하러 오고 싶어하는 도시로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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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