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C] '엔지니어니까 더 잘한다!' 편견을 깬 가구 브랜드, 움직임 리테일스
[IT동아 강형석 기자] 복면을 쓴 가수들이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주말 TV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가수라도 무조건 가면을 쓰고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부른다. 얼굴이 공개되는 것은 무대를 지켜 본 청중단에게 선택되지 않았을 때에만 허락된다. 청중과 판정단은 오로지 목소리 하나로 가수를 짐작하고 계속 듣고 싶은 가수를 선택한다. 이들은 참가 가수를 맞출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뜻밖의 가수가 나오면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바로 그들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편견'이 깨졌기 때문이다.
우리 삶 속 '편견'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것은 이래야 한다, 저것은 저래야 한다면서 사람이나 사물을 정의하고 단정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편견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지금 소개할 가구 디자인 브랜드 움직임(UMZIKIM)도 편견을 무너뜨린 사람들이다. 흔히 가구라고 하면 장인이나 전공 디자이너들이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을 생각한다. 실제 환경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움직임의 구성원들은 이런 것과 매우 큰 거리감이 있다. 그들은 흔히 '공돌이'라 부르는 공학도들, 즉 엔지니어(Engineer)인 이유에서다.
엔지니어들이 본 공간, 가구 디자인에 대한 철학은 무엇일까?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전시장에서 움직임 리테일스 소속 디자이너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이 제품은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디자인 콘텐츠 분야 예비창업자 및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마련한 'MDC(제조, 디자인, 콘텐츠)'를 통해 제작됐다. MDC 사업은 경기도와 의정부시가 주최하고,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주관했다.
< 인터뷰에 자리한 움직임 관계자들. 좌측부터 김민지, 샘 레바노, 최정용, 강창범. >
디자인을 이해하는 엔지니어이자, 엔지니어를 이해하는 디자이너
현재 직원 6명(강창범, 김민지, 송세진, 샘 레바노, 양재혁, 최정용)으로 구성된 스타트업 가구 브랜드인 움직임. 하지만 구성원이 심상치 않다. 순수 미술을 전공한 김민지 씨를 제외하면 모두 기계공학 전공 엔지니어라고 한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직원도 있었다. 물론 디자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가구 디자인을 도맡는 사원 일부는 공학 수업과 함께 디자인 관련 수업도 병행(복수전공)했다고 한다. 다른 사원은 제작과 마감, 영업과 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약 중이다.
공학도라고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 강창범 디자이너는 "기계를 설계할 때에도 디자인 요소가 있고, 디자인이라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 이는 설계와 같은 의미라 보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디자인이라는 표현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최정용 디자이너도 "엔지니어니까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독특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잘 하는 것을 하는 것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실력은 입증됐다. 2013년에는 밀라노 가구 박람회인 살로니 사텔리테(Saloni Satellite)에 데뷔했고 올해 초에는 엑스포 밀라노(EXPO Milano)의 밀리노 디자인위크 특별전에 아시아 대표 젊은 브랜드로 초청되어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 뿐만 아니라, 그들은 뉴욕 맨하탄의 ABC 홈앤카펫(Home & Carpet), 패션 디자이너로 유명한 로자나 올란디(Rossana Orlandi)의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e),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알려져 있는 봉 마르셰(Bon Marche) 등에 차례로 입점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아 가는 중이다. 특히 봉 마르셰 백화점에 작가가 브랜드로 나서 입점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이렇게 보면 움직임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 보인다. 로자나 올란디와 협업한 상품들만 봐도 그렇다. 이들은 얼핏 보면 상품이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 반면, 국내에서는 생소한 느낌이 강하다. 디자인 가구에 대한 인식도 정형화된 공간이 대부분인 우리 주거 문화로 인해 상류층이나 즐기는 취미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다.
움직임은 이런 편견 또한 깨고 싶어한다. 한국에서 상품을 선보이고 판매하려는 것도 해외에서 얻은 자신감과 믿음 때문이었다. 지난 5월부터 준비한 판매망 확충 부분도 온라인과 국내 오프라인 가구 전문점 및 편집숍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가 디자인 콘텐츠 분야 예비창업자 및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마련한 'MDC(제조, 디자인, 콘텐츠)' 사업에 지원한 것도 국내 인지도를 제고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경기콘텐츠진흥원 주도로 융합 상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돕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경기북부 소재 강소 제조기업들과 공동창작 지원 협약을 체결을 시작으로 제조기업은 스타트업을 통해 양질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스타트업은 제조 기술, 제작, 유통 분야에서 협력하도록 했다.
움직임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위코홀딩스와 협력해 우산꽂이와 후거볼을 개발했다. 그리고 제품 개발에서 멈추지 않고 백화점 영업망이 탄탄한 위코홀딩스와 함께 다양한 판로를 모색할 예정이다.
< 북 스택 같은 소형 디자인 가구가 국내 시장에서 주목 받고 있다고 한다. >
대중과 더 가까이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향후 전시나 전문점 입점을 통해 접점을 꾸준히 늘려 나갈 방침이라 한다. 현재는 서울 강남구 학동로에 위치한 윤현상재 3층에서 관련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오는 12월 12일까지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나, 관심 있는 사람은 한 번 찾아가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실제 기자가 사전에 접한 움직임의 상품의 가격을 보니 조금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정용 디자이너는 단순히 저가 제품과 비교하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재질이 다른 것은 둘째 치더라도 '디자인 가구'의 관점에서 접근해 달라는 것.
특히 디자인을 앞세운 수입 가구들과 비교하면 움직임의 디자인 가구는 경쟁력 있다고 주장했다. 정형화된 우리나라 주거 공간이지만 조금 더 특이하고 개성 있는, 동시에 수입 디자인 가구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왜 금속을 택했나
움직임의 모든 상품은 기본 재질이 금속이다. 테이블도 의자도 우산 꽂이도 모두 금속이다. 심지어 책꽂이도 단단한 금속 재질이다. 다른 재질을 쓸 법도 한데 왜 철을 고집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우리나라 철강 산업이 최고인데다, 타 재료와 다른 매력이 있어 선택했다고. 구성원 대부분이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라는 점도 금속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최정용 디자이너는 "철은 다루기 쉽지는 않죠. 우리도 초기에는 스테인리스 같은 재질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다른 재질을 접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움직임은 현재 가구 디자인에 금속 재질을 주로 쓰지만, 일부 타일이나 다른 재료를 접목하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설명했다. 조만간 색다른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귀띔도 아끼지 않았다.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시장에 내놓기까지 많은 시행착오 과정이 필요하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디자인 작업을 먼저 하고, 의도에 적합한지 모형을 만들어 본 다음에 시제품으로 문제들을 보완하고 최종 마감해 완성하는 구조다. 움직임과 함께 생산하는 공장에 가서 기술자들과 논의를 해보기도 한다고.
이런 과정 속에서도 큰 중점을 두는 부분은 '사용자의 감동'이다. 생각을 살짝 비틀어 '이것을 다르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거나, 조금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 디자인적 요소를 떠나 이건 당연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한 순간의 움직임을 바꾸고 그렇게 매순간의 감동을 모아 더 아름다운 삶을 만들면 모든 순간이 감동적일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순간순간에 초점을 주고 생각에 반영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
움직임은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진행한 바 있는 제조(Manufacture)+디자인(Design)+콘텐츠(Contents) 융합 프로젝트 '경기북부 제조기업과 함께하는 디자인·콘텐츠 아이디어&상품화 공모전/제작지원' 사업에 참여해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사업에서 탄생한 상품은 바로 책 꽂이인 북 스택(Book Stack)과 우산꽂이(Umbrella Stand)다.
두 상품의 탄생 비화를 물었다. 먼저 북 스택은 초기 개발 의도가 몇 가지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책꽂이에 책을 꽂으면 중력 및 책의 특성상(양쪽의 지지력이 낮음) 옆으로 쉽게 쓰러지게 된다. 이런 부분에 착안해 중력을 역으로 이용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이를 디자인에 반영했다.
생김새는 독특하다. 지지대 두 개가 서로 기울어진 형상이다. 기울어진 공간에 책을 꽂으면 된다. 중력에 의해 살짝 눕혀진 형태로 책을 쌓는 식인데, 쌓는다는 것에서 이름도 스택(Stack)이라고 지었다. 기능적인 면과 함께 강한 선을 강조해 미적 요소를 극대화했다. 이 작품은 지난 2014년, 동일한 디자인에 로산나 올란디의 취향을 입힌 콜렉션이 존재한다. 이번에 공개한 것은 약간 보급형(?)이라고 보면 된다.
< 사람이 우산을 말릴 때의 행위에 대한 결과물인 우산꽂이(Umbrella Stand). >
우산꽂이는 먼저 디자인한 펜홀더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를 완성할 당시, 이걸 조금 키워서 우산을 꽂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시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우산을 말릴 때, 우산을 펴 놓는 행위에 대한 관찰의 결과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모든 우산은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 우산꽂이를 사용하면 깔끔하고 멋있게 우산을 보관할 수 있다. 우산을 편 상태에서 우산 끝이 바닥에 닿으면 안되기에 걸이 각도는 가파르게 설정되었는데, 이런 형상이 오히려 독특한 인상을 심어준다.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우리의 색채 보여줄 것
움직임은 세상의 '편견'과 맞서고 있다. 일단 디자이너가 아닌 엔지니어로서의 편견, 해외가 아닌 국내 신진 브랜드라는 편견 등 어려운 주변 여건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정용 디자이너도 틀에 갇힌 편견에 대해 경계하는 모습이다. 그는 지식에 경계가 있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을 6명의 젊은이들이 증명해 내고 있다.
"보통은 기계공학을 얘기하면 엔지니어가 될거라 생각하고 '무슨 기계과가 가구 디자인이냐?'라 말하는 분들도 가끔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잘 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 부분을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디자인을 이해하는 엔지니어이자 엔지니어를 이해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한 움직임. 타 디자인 가구 브랜드와 다른 감동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