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스토리텔링과 ICT의 결합이 세상을 움직일 것"
[IT동아 안수영 기자] 조선시대 후기(18~19세기)에는 '전기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전기수는 고전 소설을 낭독하는 전문 이야기꾼으로, 길거리나 시장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면서 돈을 벌었다. 전기수는 조선시대 거리를 오가는 서민들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이야기를 듣다 감정이 격해진 청중이 칼을 들고 전기수를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이야기가 발휘하는 힘과 몰입감은 상당히 크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화와 드라마를 감상하며 웃고, 울고, 화를 내는 것도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광고나 마케팅이 펼쳐진 것도 이미 오래됐다. 이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들어 상품을 판매하거나 브랜드를 알리는 활동을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 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ICT 기술 분야에도 접목되고 있다. 스마트 워치나 디지털 기기 안에(IT) 좋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면(스토리텔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마케팅).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의 "애플의 DNA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이 녹아 있다"라는 말을 떠올리면, 인문학 영역인 스토리텔링과 IT 기술이 융합하는 것이 어색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ICT 기술과는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스토리텔링 마케팅 전문기업 '브랜드스토리'의 정영선 기획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정 이사는 VR(가상현실)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업 '오브로(OVRO)'의 대표직도 겸하고 있다.
브랜드스토리, 어떻게 탄생했을까
현재 '브랜드스토리'라는 용어는 마케팅 용어인 만큼, 기업명으로 쓸 수 없다. 그렇다면 브랜드스토리라는 회사의 이름은 어떻게 지을 수 있었을까? 이는 브랜드 스토리라는 용어가 생겨나기 이전에 회사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정 이사는 "브랜드란 곧 이야기라 생각해 이렇게 회사명을 지었다"라고 말했다.
정 이사가 스토리텔링과 마케팅에 주목하게 된 데에는 그의 독특한 이력이 영향을 끼쳤다. 그는 대학 학부에서 중국 고대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디지털미디어공학을 전공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방송 작가로 일했다. 오락 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영역을 다룬 만큼,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와 마케팅에 눈길을 주게 됐다.
"특히 드라마 작가로 일하면서 콘텐츠의 상업성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덕분에 스토리텔링과 마케팅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방송 PPL을 이야기에 녹여내고, 기업 매출도 올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좋은 마케팅 효과도 낼 수 있다면 양쪽 모두 긍정적인 것이니까요. 또한, 드라마 작가로 일하면서 오히려 디지털 콘텐츠와 애니메이션에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드라마와 달리 국경과 나이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정 이사는 상업 작가로 일하며 디지털 콘텐츠,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마케팅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사업을 하는 '디지털오즈'라는 회사를 만들기도 했고, 현재는 스토리텔링 마케팅 전문기업 '브랜드스토리'를 운영하게 됐다.
국내 스토리텔링 기업 1호 탄생, 스토리로 문제를 해결하다
브랜드스토리가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고객들의 니즈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오리온, 한국관광공사 등 굵직한 기업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특히 관공서와 많은 일을 하게 됐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이런 것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문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세요'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 장소에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하죠?'라는 식이었어요. 이야기의 힘을 빌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곧 스토리텔링 마케팅이었던 셈이지요"
브랜드스토리가 주어진 문제를 이야기를 통해 해소한 실제 사례는 종로구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이 대표적이다. 윤동주 문학관은 종로구에 방치되어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장소로, 브랜드스토리가 직접 기획했다.
"종로구 청운동 일대에는 청운동으로 흘러가는 물의 수압을 높이기 위한 청운수도가압장이 있었습니다. 청운아파트는 고지대에 위치했기 때문에 물 공급이 어려웠는데요, 그래서 펌프질을 통해 물을 끌어올리는 수도가압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2005년 청운아파트가 철거되면서 청운수도가압장도 쓸모 없는 장소가 됐습니다. 당시 종로구는 이것을 없앨 자금이 부족했고, 그대로 방치했더니 근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이 곳을 모임터로 쓰고 싶다고 해서 허가해 주었지만, 소음과 쓰레기 문제로 민원이 더 빗발치게 됐습니다. 예술가들은 이 장소를 윤동주의 등굣길이라 불렀는데, 윤동주 시인의 유족들은 시인과 관련이 없는 장소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불쾌해했습니다. 결국 이 장소는 상당한 골칫덩이였습니다"
브랜드스토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착수했다. 이 장소를 윤동주 문학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윤동주 문학관의 건축 컨셉을 우물로 잡았습니다. 청운수도가압장에서 물탱크를 발견했는데요, 하나는 상태가 나빠서 뜯어내고 열린 우물로 만들고, 상태가 좋았던 우물은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 독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윤동주 일생을 담은 영상을 재생했습니다.
다만, 유족들이 이 장소와 윤동주 시인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셔서 '영혼의 가압장'이라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비록 이 장소는 윤동주 시인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압장이라는 것은 약한 물살을 힘차게 흐르도록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맑고 청신한 영혼을 길어내는 가압장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영혼의 가압장'이라고 브랜딩을 했더니 유족들이 허가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만들어지고 난 뒤, 민원이 사라지고 근처 식당과 카페의 매출이 올랐습니다. 우범 지대에서 벗어난 효과도 있었습니다"
즉, 윤동주 시인과 영혼의 가압장이라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종로구 청운수도가압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이처럼 브랜드스토리는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를 만들어냈다. 주로 문제가 일어나는 곳이 공간이다 보니, 자연스레 공간 및 도시 재생에 중점을 두게 됐다. 비슷한 사례로 수원에 위치한 '왕이 만든 시장'도 있다.
"수원에는 팔달문 재래시장과 화성 행궁이 있습니다. 행궁에는 관광객이 많은데 시장에는 손님이 없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시장이 죽어가던 당시, 상인들은 행궁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행궁이 없으면 재개발이 될 텐데, 행궁이 문화유산이라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장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행궁과 시장을 이어서 '왕이 만든 시장'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화성 행궁은 정조가 행차할 때 머물었던 임시 거처였습니다. 정조 연구 전문가인 김준혁 박사님의 자문을 받아 자료를 조사해보니, 팔달문 시장을 정조가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정조는 상공업 진흥을 장려하던 왕이었죠. 그래서 이곳을 '왕이 만든 시장'이라 명명하고, 행궁을 방문한 사람들이 시장을 함께 둘러보는 행사를 하고 축제를 마련하는 등 홍보를 했습니다. 그러자 1년 만에 시장의 매출이 30%가 오르는 등 시장이 살아났습니다. 왕이 만든 시장은 현재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100대 관광명소 중 하나입니다"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는 힘, 해답은 '디지털 콘텐츠'
브랜드스토리는 이와 같은 스토리텔링 마케팅과 브랜딩을 하며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왜 그럴까? 정 이사는 "디지털 콘텐츠가 서사를 담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스토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스토리텔링과 ICT 기술을 결합한 융복합 기업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하다 보니, 대중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현재 상당수의 스토리텔링 기업들이 연구소와 같은 형태로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책을 만들고 끝내는 경우가 많고, 그 책을 적극적으로 판매하지도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대중이 쉽게 접근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그러한 방법이 디지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소셜 네트워크 앱이나 디지털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접하고 소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브랜드스토리는 지난 해 서울산업진흥원(SBA)에 아이디어를 채택받아 광화문 AR(증강현실) 앱을 만든 적이 있다. 스마트폰을 리플렛에 비추면 증강현실로 콘텐츠 영상을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광화문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일종의 에듀테인먼트 콘텐츠였다.
"앞으로도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할 때 디지털 콘텐츠를 적극 활용할 계획입니다. 가령 저희가 종로구 지하보도에 콘텐츠를 넣는 일을 담당하게 됐는데요. 장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안내 지도를 연결해 공익적인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주변 장소와 연계해 방문객뿐만 아니라 주변에 위치한 기업과 상권들이 상호 이득을 볼 수 있는 마케팅을 펼치고자 합니다. 디지털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동선도 직접 설계하고 있습니다"
정 이사는 디지털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기획, 제작하고자 지난 해 '오브로(OVRO)'라는 VR 전문기업도 설립했다. 정 이사가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중에서도 VR과 홀로그램에 집중하는 이유는 '체험' 때문이다.
"아직은 초기 기업이다 보니 VR 콘텐츠를 오픈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촬영은 많이 해 둔 상태입니다. 현재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중에 공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형태는 매우 다양한데, VR과 홀로그램에 집중하는 이유는 체험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과 교육 콘텐츠를 가장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법은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 VR을 통해 몸으로 문화를 직접 느낀다면, 그러한 콘텐츠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테니까요"
이어 정 이사는 브랜드스토리와 오브로가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브랜드스토리는 도시, 공간 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계속 키워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한편, 오브로를 통해서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재미를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특히 에듀테인먼트 콘텐츠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다채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교육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인문학과 기술, 더 이상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스토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 이사는 "이야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장소라 할지라도 이야기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볼게요. 현재 종로 도로에는 자동차가 지나다니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이 곳에 전차길이 있었습니다. 그 전차길은 고종이 명성황후의 성묘를 가는 길이었다고 해요. 서사를 모를 때는 평범한 길이지만, 이 이야기를 알고 나면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이 전차길을 놓고 성묘를 하러 가는 애틋한 길'이라고 보게 되죠. 즉, 이야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며, 그것이 곧 문화를 만듭니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ICT라고 봅니다. 저는 스토리텔링은 영혼이고, 기술은 육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스토리텔링)만 있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육체(ICT)를 입으면 생동감 있게 전달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스토리텔링과 ICT를 융복합하는 일에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 이사는 "인문학과 기술은 더 이상 별개의 영역이 아닌, 하나가 되어야 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흔히 인문학과 기술은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는데요, 이제는 그렇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융복합이라는 개념이 차츰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두 영역을 골고루 융합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실현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날 기술기업 위주로 구성된 산업이 인문학 쪽으로 좀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현재는 주로 기술 분야에서 융복합을 이야기하는데, 인문학에서도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많이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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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