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물열전] 디지털 암실을 만들다, 토마스 놀 & 존 놀

이상우 lswoo@itdonga.com

'사진을 보정해 보기 좋게 만든다'는 문장을 아주 짧게 줄이면 무엇이 될까? '포샵 한다'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여기서 포샵이란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 '포토샵'을 뜻한다. 전문가를 위한 유료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용자에게 익숙할 정도로 이미지 편집의 대명사가 됐다.

포토샵 로딩 화면
포토샵 로딩 화면

<포토샵 CC 2015 릴리즈의 로딩 화면. 우측에 여러 개발자 이름이 보이며, 가장 앞에 토마스 놀과 존 놀이 있다>

포토샵은 1987년,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토마스 놀(Thomas Knoll)과 특수효과 감독 존 놀(John Knoll) 형제에 의해 탄생했다. 놀 형제의 아버지 글렌 프레드릭 놀(Glenn Frederick Knoll)은 미시건 대학교에서 원자핵 공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에게는 컴퓨터와 사진, 두 가지 취미생활이 있었다. 사진의 경우 집에 암실을 만들어놓을 정도로 열성적이었으며, 애플2 플러스나 매킨토시 등 당시 최신 컴퓨터를 출시 즉시 구매할 정도의 얼리어답터였다.

놀 가족
놀 가족

<왼쪽부터 글렌 놀, 토마스 놀, 존 놀>

토마스 놀이 11살이 되던 1971년, 아버지가 RF 카메라와 암실을 선물로 주면서 필름을 현상하고 사진을 인화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한, 두 형제는 1979년 아버지가 집에 들인 애플2 플러스를 통해 프로그래밍에 입문한다. 토마스 놀은 인터뷰를 통해 '서로 다른 두 가지 취미를 접하면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란 컴퓨터에게 이미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애플2 플러스
애플2 플러스

<애플2 플러스의 본체>

두 형제는 이러한 환경에 영향을 받은 덕분인지, 인쇄, 컬러 출력, 색 대비 등 사진에 관한 것은 물론,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에 관한 흥미를 가진다. 첫째인 토마스 놀은 이를 학업으로 연결해 1987년 미시건 대학교에서 디지털 이미지 처리에 관한 박사과정을 밟는다. 둘째인 존 놀은 루카스필름의 자회사인 ILM(Industrial Light and Magic)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영화 특수효과를 제작한다.

*ILM은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George Lucas)'가 전문적인 특수효과 및 시각효과 제작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다.

토마스 놀
토마스 놀

<포토샵 출시 25주년을 맞아 토마스 놀이 레딧(Reddit)에 게시한 사진, 출처: http://i.imgur.com/tF6uY4o.jpg>

포토샵의 원형은 1987년 토마스 놀이 박사과정 연구를 진행하다 태어났다. 논문 준비를 위해 매킨토시 플러스를 구매한 토마스 놀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흑백 이미지(그레이스케일) 처리가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프로그램(서브루틴)을 개발한다.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그의 동생 존 놀이었다. 모니터에 이미지를 표시하는 것은 컴퓨터가 명령을 처리해 출력하는 과정으로, 그가 ILM에 근무하면서 접했던 그래픽 전문 기기 픽사 이미지 컴퓨터와 개념이 비슷했다. 토마스 놀과 존 놀은 이 프로그램에 화상을 다른 포맷으로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나 감마 보정 도구 등을 추가해 1988년 이미지프로(ImagePro)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존 놀
존 놀

<존 놀 인터뷰 영상 캡쳐, 출처: Youtube.com>

이후 존 놀은 이미지프로를 상용화하자는 제안을 한다. 그들은 존 워녹(John Edward Warnock)과 찰스 게스케(Charlse Geschke)가 설립한 어도비 시스템즈에 이 소프트웨어를 보여주고, 어도비 시스템즈의 인쇄/출판업 관련 노하우를 접목해 1990년 2월 포토샵 1.0 버전을 출시한다. 단순히 그레이스케일 처리를 위해 개발한 서브루틴이 디지털 이미지 처리의 큰 획을 긋는 소프트웨어로 발전하는 순간이다.

어도비 시스템즈는 당시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등 출판업과 관련한 언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력 사업으로 삼았다. 당시 출판업은 인쇄소의 전용 프린터와 이 프린터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도비가 호환성 높은 프로그래밍 언어 및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면서 개인용 프린터와 컴퓨터로도 출판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탁상 출판(DTP: Desktop Publishing)' 시대가 열린 것이다.

포토샵 1.0
포토샵 1.0

<포토샵 1.0 버전, 출처: computerhistory.org>

어도비 시스템즈가 포토샵을 사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토샵은 초기에 스캐너로 입력한 디지털 이미지를 편집하는 용도로 쓰였다. 이를 통해 고가의 편집 장비나 복잡한 사용방법 대신, 촬영한 사진을 쉽게 디지털 이미지화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포토샵 2.5는 윈도 버전도 함께 출시돼 전문 사용자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작가 등도 널리 쓰기 시작했다.

토마스 놀은 인터뷰에서 '당시 많은 기업에게 우리 소프트웨어를 보여줬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몇몇 기업은 자신들이 진행 중인 비슷한 종류의 프로젝트와 비교해 수준이 낮다고 여겼고, 또 어떤 기업은 자신의 제품군과는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와 달리 어도비 시스템즈는 포토샵의 가능성을 알아봤으며, 주력 사업과도 아주 잘 맞았다.

이렇게 단순했던 소프트웨어는 정교한 색상 보정 기능을 갖추며 사진 보정 소프트웨어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1994년 공개된 포토샵 3.0은 오늘날 포토샵을 상징하는 기능 중 하나인 레이어(투명한 배경에 이미지를 놓고, 이 이미지를 층층이 쌓을 수 있는 기능)가 추가되어 복잡한 디자인을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998년 등장한 포토샵 5.0은 히스토리 팔레트를 통해 실행 취소(Ctrl + Z)를 여러 번 반복(Ctrl + Alt + Z)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기능인 힐링 브러시와 패치 툴(점이나 작은 흉터 같은 잡티를 말끔하게 제거할 수 있는 도구)은 2002년 출시된 포토샵 7.0부터 추가됐다. 포토샵은 오늘날까지 흔들림 보정, 렌즈 왜곡 교정, 안개 제거 등 매 버전마다 획기적인 기능을 꾸준히 추가하고 있다. 토마스 놀은 2008년까지 포토샵 개발에 참여했으며, 포토샵 CS4까지 총 14개 버전의 포토샵을 내놓았으며, 어도비 카메라 로우 등의 플러그인을 개발하기도 했다.

패치 툴을 사용한 모습
패치 툴을 사용한 모습

<패치 툴을 이용해 흉터를 지운 모습>

존 놀은 포토샵 출시 이후 원래 직장인 ILM으로 돌아간다. 그가 시각효과 감독으로 참여한 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3까지 모두 참여했으며, 1980~1990년대 대표작으로는 어비스(1989), 미션 임파서블(1996), 딥 블루 씨(1999), 2000년대에는 캐리비안의 해적 1~3의 시각 효과 감독을 맡았다. 최근 작품으로는 미선 임파서블4와 퍼시픽 림 등이 있다.

포토샵은 매 버전마다 이스터 에그를 숨겨놓았다. 상단 툴바에서 도움말(Help)>>포토샵 정보(About Photoshop)를 컨트롤(OS X에서는 커맨드) 버튼을 누른 상태로 클릭하면 각 버전의 코드명에 맞는 삽화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코드명이 스페이스 몽키인 CS2는 우주복을 입은 원숭이가, 코드명이 화이트 래빗인 CS5는 그림을 그리는 하얀 토끼가 나타난다.

포토샵 CS5의 이스터에그
포토샵 CS5의 이스터에그

<포토샵 CS5의 이스터 에그>

그렇다면 최신 버전인 포토샵 CC 2015 릴리즈에서는 어떤 이스터 에그가 있을까? 코드명을 삽화로 넣은 관례를 깨고 토마스 놀과 존 놀 형제의 일러스트를 담으면서 출시 25주년을 기념했다.

포토샵 25주년 기념 이스터에그
포토샵 25주년 기념 이스터에그

<25주년 기념 이스터 에그에는 '토마스 & 존 놀에게 바친다'는 문구와 함께 형제의 일러스트가 담겨있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IT 인물 열전'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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