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른 이어폰을 '오징어'로 만드는 젠하이저 IE800
[IT동아 강일용 기자] 오늘은 '뒷북(많이 늦은)' 리뷰를 하려고 한다. 젠하이저 IE800. 출시된지 2년 정도 지난 젠하이저의 '플래그십(최고급)' 이어폰이다. 출시된지 2년이나 지난 제품을 왜 이제와서 리뷰하냐고 궁금증을 갖는 독자도 많을 거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어폰 기술이 정체된 상태이다 보니 2년 전 제품을 지금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119만 원이라는 황당한 가격이 많이 현실화 되었기 때문이다.
출시 2년 만에 반값으로
IE800은 젠하이저의 플래그십 이어폰 답게 최고급 음향 기술을 아낌 없이 투입했다. 5 ~ 46,500Hz에 이르는 매우 넓은 음역폭(일반 이어폰의 경우 보통 12 ~ 24,000Hz), 헤드폰용 트랜스듀서(신호를 소리로 바꿔주는 전환장치)를 이어폰에 맞게 지름 7mm로 축소한 엑스트라 와이드밴드 드라이버(XWB), 구리로 만든 선 위에 코팅을 더해 줄 꼬임과 치찰음(줄이 마찰해서 발생하는 소음) 그리고 단선을 방지하는 전용 케이블 등 이어폰에 대해 잘 모르는 사용자가 봐도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단번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가격 정책에 '개념'이 없었다. IE800은 미국에서 799달러(약 81만 원)에 발매됐다. 다른 나라도 이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만 119만 원이라는 매우 높은 가격에 발매됐다. 국내 가격 정책에 대한 사용자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나라보다 30만 원 이상의 웃돈을 줘야 구매할 수 있었으니.
출시된지 2년이 지난 지금 '개념 없던' 가격이 많이 현실화되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60만 원 중반에 구매할 수 있다. 결국 이렇게 판매할 거 왜 그리 비싸게 판매하려 했는지 의문이다.
반값 덕분에 가성비(?) 왕
IE800은 60만 원대 이어폰 가운데 최상의 선택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이어폰 가운데 최상의 음질을 들려준다. 100만 원대 이어폰이 60만 원까지 치고 내려왔으니 당연한 결과다.
IE800을 통해 들려오는 음은 시원하고 청량감있다. 귀에 삽입하는 커널형 이어폰이라 드라이버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음에도 불구하고 저음을 제대로 표현한다. 사소한 화이트 노이즈도 들리지 않는다.
IE800은 음에 자신만의 특징을 더하는 제품이 아니다. 그것보단 원음을 최대한 정확히 재현하려는 제품에 더 가깝다. 때문에 처음 IE800을 통해 음악을 들으면 "애걔, 고작 이 정도야? 전에 쓰던 이어폰과 다를 게 없는데"라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IE800을 하루 이상 사용하면 달라진다. 전에는 들리지 않던 숨어 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신물나게 들었던 음악이 새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기존 이어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기자가 그랬다. 기존 이어폰을 잠깐 사용해보니 음악 대신 '깡통 두드리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요약하자면 IE800은 원음 재생이라는 이어폰의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수준이 떨어지는 다른 이어폰을 '오징어(비교 대상보다 모든 면에서 열등한 것을 일컫는 인터넷유행어)'로 만드는 제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무손실 압축 음원(24비트 FLAC)을 자주 감상하는 사용자라면 원음을 보다 또렷하게 들려주는 IE800을 주목하자. 구매 후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뛰어난 제품 완성도, 분실이 잦은 이어팁은 아쉬워
IE800은 음질뿐만 아니라 제품 완성도 역시 뛰어나다. 특히 케이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구리선 위에 코팅을 더해 만든 이 전용 케이블은 얇고 튼튼하며 치찰음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머니속에 아무렇게나 넣어놔도 선이 꼬이지 않는다. 가히 케이블계의 혁신이라 부를 만하다. 단가 때문에 어렵겠지만, 모든 이어폰에 이 전용 케이블이 도입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마트폰이나 MP3 플레이어에 연결하는 커넥터도 'ㄱ' 형태로 휘어 있어 단선을 방지한다.
케이블 중간에는 통화용 마이크(별매)를 연결할 수 있도록 분리 단자가 준비되어 있다. 음악용 이어폰이지만, 편의성을 놓치지 않은 것.
커널형 이어폰인 만큼 네 가지 크기의 이어팁을 함께 제공한다. 사용자는 자신의 귓구멍 크기에 맞춰 이어팁을 선택할 수 있다. 이어팁에 먼지(사실은 귀지)가 낀 것을 빼낼 수 있도록 청소도구도 함께 제공한다.
그런데 이 이어팁이 너무 쉽게 빠지는 단점이 있다. 이어팁 연결 부위가 다른 커널형 이어폰보다 짧기 때문. IE800을 끼고 격렬히 움직이거나, 주머니 속에서 꺼내다 보면 이어팁을 분실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 역시 실제로 분실했다. 이어팁을 신경써서 관리해야 한다.
또, A/S 정책도 사용자를 당황스럽게 할 가능성이 높다. 분실한 이어팁을 구매하기 위해 젠하이저측에 문의해보니 전용 이어팁의 가격이 5만 원(!)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시중에선 유사한 형태의 이어팁을 2천 원 내외에 구매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 전용 이어팁을 5만 원을 주고 구매할 사용자가 있을지 의문. 제품은 참 좋은데 가격과 A/S 정책이 그 장점을 다 깎아먹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