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시장, 부흥의 날개 펴다
태블릿PC 열기가 확실히 사그라졌다.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패드'라는 단어가 붙은 제품으로, 애플,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모바일 기기 제조사가 태블릿PC를 생산, 판매에 주력했다. 물론 그들 업체는 현재도 후속 태블릿PC를 출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용자의 반응은 역시 예전만 못하다. 사용자가 태블릿PC에 반짝 열광했던 건 노트북에 비해 작고 가벼운 몸집으로 '휴대가 간편'하다는 이유 하나다(한 가지가 더 있다면, 당시에는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외 키보드/마우스가 없어 생산적 작업이 어렵고, 기본 성능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 이처럼 태블릿PC로 할 수 있는 작업의 한계를 체감하거나, 스마트폰 화면이 커져 태블릿PC가 딱히 필요하지 않은 이들은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러기까지 3년이 걸렸다.
태블릿PC가 노트북 시장을 차츰 잠식하며 머지 않아 완전히 접수하리라는 예상은 빗나갔고, 작년부터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의 노트북이 등장하며 노트북 시장은 차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태블릿PC는 어디까지나 콘텐츠 소비형 기기이고 노트북은 생산형 기기다. 영향은 일부 받았을지언정 더 이상의 시장 잠식은 벌어지지 않았다.
노트북 시장의 건재는 순전히 노트북의 경량화 덕분이다. 무게 2kg 안쪽으로 진입한 지 얼마 안 돼 노트북에게는 '마의 무게'인 1kg 이내에도 무난히 안착했다. 본체만 놓고 보면, 700g 대의 9~10인치 태블릿PC와 체감적 무게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면서 화면도 크고 키보드도 달려 있고(마우스도 쓸 수 있고) 성능도 월등히 좋다. 무게가 태블릿PC와 비슷해진다면 이제는 오히려 노트북이 태블릿PC 시장을 역공할 수 있다. 태블릿PC 사용자의 대부분은 콘텐츠 소비(인터넷 검색, 사진/동영상 재생 등)보다는 콘텐츠 생산 작업(문서 작성/편집, 이메일 작성/발송 등)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태블릿PC 판매량은 서서히 감소하거나 둔화되는 반면, 노트북 판매량은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노트북의 역습'의 결정적 단초는 LG전자의 초경량 노트북, '그램(gram)'이 제공했다. LG전자는 몇 년 전부터 얇고 가벼운 노트북 제품군인 울트라북 시리즈를 꾸준히 출시하며, 태블릿PC에 견줄 수 있는 프리미엄 노트북 라인업을 마련했다. 2013년 초에 출시된 'Z360'은 1.15kg 무게의 13인치 울트라북으로, 암담했던 노트북 시장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노트북 생존을 지탱했다.
이후 LG전자는 노트북 무게 1kg 한계를 극복한 980g의 울트라북, 그램(13인치)을 시장에 내놓았다. 태블릿PC의 성능적, 활용적 제한을 절감한 사용자들은 그램에 조용히 반응했다. 1kg 미만의 MS 윈도 노트북은 안드로이드, iOS 등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는 인텔 5세대 코어 프로세서(코드명: 브로드웰)를 탑재하고 화면 크기를 키운 14인치 그램이 등장했다. 화면 크기는 커졌지만 무게는 여전히 '980g'. 그램 덕에 1kg 이상의 노트북은 '비만 노트북'으로 평가되는 이른 바 '그램 효과'도 나타났다.
이처럼 그램이 태블릿PC의 확실한 버팀목으로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자, 다른 노트북 제조사도 하나 둘 초경량 울트라북을 내놓는다. 삼성전자의 노트북9 시리즈, 레노버의 씽크패드 시리즈, 델 레티튜드 시리즈, 에이서 아스파이어 시리즈 등이 얇고 가볍고 성능 좋은 노트북으로 현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출시된 초경량 울트라북은 인텔 브로드웰 프로세서(i3, i5)에 메모리 4GB 이상, SSD 128GB 이상 등 제법 탄탄한 사양을 갖추고 있어, 성능 면으로나 기능 면으로나 활용도 면으로나 태블릿PC를 제압하고도 남는다(물론 가격은 태블릿pc보다 갑절 이상 비싸다). 특히 그래픽 성능이 대폭 강화된 인텔 브로드웰 프로세서 덕에 '리그오브레전드(LOL)' 등을 비롯한 PC용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데 큰 지장 없다(제 아무리 좋은 태블릿PC라도 LOL은 못한다).
또한 작고 가벼운 노트북은 배터리 사용시간도 짧다는 편견을 잠재우듯, 최신 울트라북은 최대 9~10시간, 평균 6~7시간 연속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우수한 전력 소비 효율을 보인다(단 배터리 사용시간은 사용 환경과 패턴 등에 따른 차이가 있다). CPU, 메모리 등의 주요 부품이 저전력 고성능 제품으로 개선됐고 노트북 제조 기술력도 한층 향상되어, 기존의 노트북보다 얇고 가벼우면서도 성능과 배터리 사용시간은 기존 제품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램이 침체된 노트북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얇고 가벼운 노트북'의 표본으로 인식된 애플 맥북 에어에 대응할 수 있는 외형으로, 순백색의 깔끔한 디자인을 강조했으며, 980g에 불과하면서도 14인치 화면을 적용해 노트북 작업이 한결 수월하다. 여기에 일반적인 노트북 활용에 부족하지 않은 성능까지 갖추면서 윈-텔(윈도+인텔) 기반 노트북의 부흥을 견인하고 있다.
올해에도 국내외 주요 노트북 제조사가 1kg 내외의 주력 노트북을 다양하게 출시할 예정이라 향후 노트북 시장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LG전자는 그램의 호응에 힘입어 지난 해 울트라북 판매량이 전년보다 50% 이상 급증했다. 올해 1~2월 두 달간은 1위를 근소하게 앞서기도 했다. 출시 한 달 만에 1만 대 이상 판매된 그램14만 보더라도, 노트북 시장에는 초경량 울트라북을 계기로 부흥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블릿PC의 성장판은 이제 닫힌 격이지만, 노트북 시장은 봄을 맞아 다시 싹트고 있다. 어떠한 풍파에도 버틸 수 있는 깊고 오래된 뿌리를 가지고 있는 만큼 머지 않아 아름드리나무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