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거짓과 속임수의 세계, '페루도'

안수영 syahn@itdonga.com

페루도 (2012)
페루도 (2012)

페루도 (2012) <출처: divedice.com>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 with the universe)"고 말했다. 이 주제에 대해 스티븐 호킹(Steven Hawking)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할 뿐만 아니라, 간혹 주사위를 안 보이는 곳으로 던진다(Not only does God play dice, but he sometimes throws them where they cannot be seen)"라고 답했다. 이처럼 주사위는 운, 운명을 관장하는 도구로서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고대 사회에서 주사위가 점술의 도구로 사용됐던 것에 기인한다.

보드게임에서 주사위는 마찬가지로 게임 내에 운의 요소를 부여해, 뜻밖의 상황을 만들어 대역전극을 기대하게 하는 발판이 된다. 최근의 보드게임 제작 경향은 운을 가급적 줄이고 있지만, 고전으로 통하는 어떤 게임은 운 그 자체를 게임으로 만들어 버려 여전히 큰 사랑 받고 있다. 잉카 문명과 함께 전해진 놀이, 페루도가 그 주인공이다.

게임 방법

페루도는 상대 플레이어를 탈락시켜 최후의 1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든 플레이어는 게임 시작 시 주사위를 5개 받는데, 이 주사위를 모두 잃으면 게임에서 탈락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의 주사위를 잃게 하고, 내 주사위를 최대한 보존해야 한다.

각 플레이어는 컵 하나와 그와 같은 색의 주사위 5개를 가져간다. 주사위를 굴려 시작 플레이어를 정하고, 모두 동시에 컵 안에 주사위를 넣고 흔든다. 주사위가 잘 섞이면 컵을 바닥에 뒤집어 놓고, 컵 안의 주사위 눈을 다른 플레이어 모르게 확인한다.

몰래 주사위 눈을 확인하자
몰래 주사위 눈을 확인하자

몰래 주사위 눈을 확인하자 <출처: divedice.com>

시작 플레이어는 보라색의 표시 주사위를 사용해 "이 테이블 위에 있는 주사위 눈 A는 총 B개 이상이다"라고 선언한다. 표시 주사위의 눈을 A로 맞추고, 게임판의 B칸에 놓으면 된다.

선언을 한 모습. '난 3이 4개 있다고
생각해'
선언을 한 모습. '난 3이 4개 있다고 생각해'

선언을 한 모습. "난 3이 4개 있다고 생각해" <출처: divedice.com>

이후,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차례를 진행한다. 자기 차례에는 선언, 두도(Dudo), 에쏘(Esso) 등 3가지 행동 가운데 1가지 행동을 할 수 있다.

'선언'은 이전 플레이어의 선언이 맞다고 판단되거나 내가 현재 테이블에 있는 주사위 눈을 충분히 예상 가능할 때 하면 된다. 선언을 할 때는 이전 플레이어가 선언한 주사위 눈보다 높게, 혹은 주사위의 숫자가 더 많도록 선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전 플레이어가 "4가 5개는 있어"라고 했다면, "5가 5개는 있어"라고 하며 주사위 눈을 올리거나 "4가 7개는 있어"라며 개수를 늘릴 수 있다. 물론 "5가 8개는 있어"라며 주사위 눈과 개수를 모두 올려도 된다.

다음 사람은 선언할 때, 주사위 눈을 올리거나 개수를 더 많게 해야
한다.
다음 사람은 선언할 때, 주사위 눈을 올리거나 개수를 더 많게 해야 한다.

다음 사람은 선언할 때, 주사위 눈을 올리거나 개수를 더 많게 해야 한다. <출처: divedice.com>

만약 앞 플레이어의 선언이 틀렸거나, 내가 "선언"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된다면, '두도'나 '에쏘'를 고를 수 있다. 앞서 선언한 플레이어가 선언한 주사위의 숫자보다 실제 주사위의 숫자가 더 적을 것 같다면 '두도'를 외치면 된다. 만약 앞서 선언한 주사위 숫자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면 '에쏘'를 외친다. 두도나 에쏘를 외친 경우에는 모든 플레이어가 컵을 들어 자신의 주사위를 공개한다. 그리고 선언한 주사위 눈을 가진 주사위를 모두 센다.

상대방이 선언한 숫자보다 주사위가 적게 있을 것 같을 땐,
두도
상대방이 선언한 숫자보다 주사위가 적게 있을 것 같을 땐, 두도

상대방이 선언한 숫자보다 주사위가 적게 있을 것 같을 땐, 두도 <출처: divedice.com>

두도를 선언했을 때, 이전 플레이어의 선언이 맞다면 내 주사위 중 하나를 제거해 게임판에 놓는다. 만약 이전 플레이어가 틀렸다면, 그 플레이어의 주사위를 1개 제거한다.

에쏘를 외친 경우에는 이전 플레이어의 선언과 주사위 개수가 정확히 같아야 한다. 만약 같다면 앞서 선언한 플레이어는 주사위 1개를 제거하고, 현재 플레이어는 제거된 자신의 주사위 1개를 도로 가져와 컵에 넣을 수 있다. 만약 틀렸다면, 마찬가지로 주사위를 1개 제거하면 된다. 누군가 주사위를 잃었다면, 주사위를 잃은 플레이어가 새로운 시작 플레이어가 되어 게임을 재개한다.

상대방이 선언한 숫자만큼 정확하게 주사위가 있다고 생각되면,
에쏘
상대방이 선언한 숫자만큼 정확하게 주사위가 있다고 생각되면, 에쏘

상대방이 선언한 숫자만큼 정확하게 주사위가 있다고 생각되면, 에쏘 <출처: divedice.com>

재미있는 것은 페루도의 주사위가 2에서 6까지의 숫자 면과 페루도 문양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페루도 문양은 일종의 조커로, 이 문양이 나오면 2에서 6까지의 어떤 수라도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플레이어들의 예상보다 더 많은 주사위가 나올 수 있어, 정확한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게임 판에는 전체 주사위에서 페루도 문양이 나온 주사위가 몇 개인지 확인할 수 있는 칸이 있어, 페루도 문양으로 선언을 할 수도 있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주사위 눈을 올리거나 개수를 더 많게 해야 하므로, 점점 큰 숫자를 불러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그런 만큼 선언이 틀릴 확률도 높아지고, 두도나 에쏘를 외치는 일도 잦아진다. 결국 게임을 진행하며 주사위 수가 줄어들고 승부는 점점 치열해지는데, 이것이 페루도의 묘미다.

추측이 틀리면 점점 자신의 주사위를 잃게 되며, 주사위를 모두 잃으면 게임에서 탈락한다. 게다가 내가 가진 주사위가 적고 상대방의 주사위가 많으면, 내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상대방보다 적어지게 되므로 게임에서 불리해진다. 하지만 상대의 눈을 예측하고 자신의 눈의 결과를 잘 호도할 수 있다면, 역전승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블러핑

블러핑이란, 자신의 패가 상대의 것보다 약하다고 생각될 때 오히려 더 강한 베팅을 하여 상대를 기만하는 행동을 뜻한다. 비단 자신이 상대에 비해 약할 때뿐만 아니라,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될 때도 짐짓 자신 없는 듯 행동해서 상대가 방심한 상태로 승부를 걸어오도록 도발하는 상황 또한 블러핑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자신의 강함을 더 과장해, 상대로 하여금 아예 승부를 포기하도록 해서 자신의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는 상황에서도 블러핑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넓은 의미에서의 블러핑은 상대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이용해 진실을 숨기고,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 이득을 취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페루도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에서도 등장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페루도는 블러핑 게임들 중 가장 유명한 게임이다. 페루도를 단순히 추측, 확률 게임으로 여기고 플레이한다면, 게임은 싱겁고 재미를 잃을 것이다. 게임 전체에서 심리전을 치른다고 생각해야 게임이 재미있어진다. 자신에게 없는 주사위를 짐짓 많은 것처럼 부르거나, 상대방을 부추기는 말, 행동을 곁들이면 게임이 흥미진진해진다.

블러핑은 포커와 같은 도박에서 주로 많이 쓰이는 용어지만, 허장성세(虛張聲勢,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로만 떠벌림)와 같은 고사성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허장성세의 유래는 중국 진나라의 장수, 위주와 선진이 위나라 오록성에 쳐들어갔을 때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선진은 병사들에게 산과 언덕을 지날 때마다 진나라 깃발을 꽂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위주가 궁금해하자, 선진은 약소국인 위나라 백성들에게 위압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 산과 언덕에 진나라의 기치가 펄럭이는 것을 본 위나라 백성들은 겁을 먹고 모두 달아났고, 선진과 위주는 손쉽게 오록성을 함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카르카손 확장판: 상인과
건축가
카르카손 확장판: 상인과 건축가

[카르카손 확장판: 상인과 건축가] 돼지는 등장하지만 블러핑은 없다.

유명한 보드게임인 '카르카손'의 배경이 되었던 프랑스 카르카손 지방에서도 블러핑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이 지역은 사라센족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카를 대제를 중심으로 한 프랑크족이 공격을 해 왔다. 막강한 군사를 앞세운 카를 대제는 수개월 동안 성을 포위하고 항복하기를 기다렸다. 이 때 사라센족의 카르카스 왕비는 성 안에 식량이 다 떨어져가자, 돼지에게 콩을 먹여 성 밖으로 던지게 했다. 이 때 터진 돼지의 배에서 아직 소화되지 않은 콩이 쏟아져 나온 것을 본 카를 대제는 성 안에 아직 식량이 충분히 있는 것으로 생각해 물러가게 되었다.

라이어 다이스, 블러프

페루도는 16세기 남아메리카에서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5-1541)가 스페인으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피사로는 잉카 문명의 수도이자 페루의 수도인 리마를 발견한 사람이다. 현재 페루도로 알려진 게임은 스페인인들이 도착하기 수백 년 전부터 잉카인들이 즐기던 놀이였다.

페루도는 2010년 최고의 비디오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2010)에서 미니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페루도는 2010년 최고의 비디오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2010)에서 미니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페루도는 2010년 최고의 비디오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2010)에서 미니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출처: 게임동아>

이 게임은 다양한 이름을 가졌는데, 스페인어로 '의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두도(Dudo)로 많이 불렸고, 이 외에 처브(Cacho), 리코(Rico), 혹은 다딘호(Dadinho)로도 불렸다. 이 게임은 후에 잉카 문명의 중심이었던 '페루'와 놀이를 뜻하는 라틴어 '루도(ludo)'가 결합해 페루도로 알려지게 됐다.

유럽에 전해진 페루도는 몇 가지 주사위 게임 규칙을 추가해 상업 게임으로 출판됐다. 1974년에 출판된 게임 '라이어스 다이스(Liar's dice, 1974)'가 그 시초다. 라이어스 다이스는 고전 주사위 게임 '야찌(Yahtzee, 1956)'를 디자인한 에드윈 S. 로우(Edwin S. Lowe, 1911 - 1986)가 제작했다. 에드윈 S. 로우는 고전 게임을 재해석해 상업 게임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였는데, 예를 들면 '로 주오코 델 로토 드'이탈리아(Lo Giuoco del Lotto d'Italia, 1530)'가 있다.

이 게임은 4X4, 3X6 게임판에 그림이나 카드를 올려두고, 카드 등을 뽑아 같은 그림을 한 줄로 맞추면 이기는 게임이다. 에드윈 S. 로우는 이 게임에 '빙고(Bingo)'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이 게임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라이어스 다이스 초판
라이어스 다이스 초판

_라이어스 다이스 초판 <출처: boardgamegeek.com> _

한편, '배틀 크라이(Battle Cry, 2000)', '메모아 44(Memoir 44, 2004)', '커맨드 앤 컬러 시리즈(Commands & Colors, 2006)' 등 굵직한 현대 감각의 전쟁 게임을 제작한 보드게임 디자이너 리차드 보그(Richard Borg)는 1983년 게임판과 6인 규칙, 주사위 재굴림 등을 추가하고, 밀튼 브래들리(Mitton Bradlley)사를 통해 '라이어스 다이스'를 출판했다.

그리고 이 게임을 1993년 F.X.슈미트(F.X.schmid)가 '블러프(Bluff)' 혹은 '콜 마이 블러프(Call My Bluff)'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블러프'는 그 해 독일 올해의 게임상(1993 Spiel des Jahres)과 독일 게임상(1993 Deutscher Spiele Preis)을 모두 수상했다.

2001년 라벤스부르거(Ravensburger)가 F.X.슈미트를 인수하면서 이 게임이 재판됐다. 한국에서는 보드게임 카페가 성업하던 2002년에 이 판본의 게임이 많이 유통됐다. 그리고 2012년 페루도가 출시됐다.

블러프
블러프

블러프 <출처: boardgamegeek.com>

페루도와 블러프는 규칙이 조금 다르다. 블러프는 오직 2가지의 선택지만 있다. '선언'하거나 '도전'하거나. 도전하는 것은 주사위를 체크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틀린 플레이어가 선언한 주사위의 숫자와 실제 주사위의 차이만큼 주사위를 제거해야 한다는 점도 다르다. 1개씩 주사위가 없어지는 페루도에 비해 블러핑의 피해 혹은 보상이 큰 셈이다.

선언한 주사위와 같은 숫자의 주사위가 나왔을 때 페루도는 주사위를 다시 되찾아 오지만, 블러프는 그렇지 않다. 블러프에서 도전을 했을 때 페루도의 에쏘처럼 선언이 정확했다면, 선언한 플레이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주사위를 1개씩 버리게 된다. 하지만 주사위가 빠르게 줄어드는 만큼 게임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장점이다.

블러프에는 추가 규칙이 있는데, 이 추가 규칙을 사용하면 플레이어는 자신의 컵에서 원하는 숫자가 나온 주사위를 원하는 만큼 밖으로 빼놓고 주사위를 다시 굴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주사위가 모든 플레이어에게 공개되지만, 위험한 순간을 모면할 수도 있다.

페루도와 블러프는 구성물에도 차이를 보인다. 블러프의 주사위는 1에서 5까지, 그리고 페루도 문양 대신 별 모양으로 구성됐다. 페루도의 주사위는 블러프와 달리 빨강, 파랑, 노랑 등 색깔로 구분되어 있어, 다른 플레이어의 주사위가 몇 개 남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다른 플레이어의 주사위 개수를 알면, 상대방의 블러핑 유무를 보다 쉽게 추리할 수 있다. 반면 블러프의 주사위는 단색으로 제작됐다. 따라서 내 주사위 개수를 다른 플레이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블러핑을 손쉽게 할 수 있다. 두 게임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블러핑의 세계

공개된 정보와 공개되지 않은 정보가 섞여 있는 상태에서 서로 승부를 겨루는 보드게임에서 블러핑이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따라서 생각보다 많은 게임에서 블러핑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여러 게임들 중에서도 블러핑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드게임들을 살펴본다.

바퀴벌레포커 로얄 한국어판
바퀴벌레포커 로얄 한국어판

바퀴벌레포커 로얄 한국어판 <출처: divedice.com>

이 게임은 상대의 베팅을 인정할 것인지, 의심할 것인지 선택하는 행동을 게임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카드에는 바퀴벌레, 파리, 박쥐 등 다양한 비호감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플레이어는 손에서 카드 한 장을 선택해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제시하면서 카드의 정체를 이야기한다. (진실을 말할 수도, 거짓을 말할 수도 있다) 카드를 제시받은 플레이어는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추측해 선언한 뒤 카드를 확인할 수 있다. 추측이 맞으면 상대의 앞에, 추측이 틀리면 자신의 앞에 그 카드가 놓이게 된다.

단순한 카드 예측하기 게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게임은 한 플레이어가 같은 종류의 카드 5장을 모으면 패배한다. 따라서 바퀴벌레 카드 4장이 있는 플레이어에게 "이건 바퀴벌레야" 라고 말하면서 어떤 카드를 넘기는 것과, 바퀴벌레가 몇 장 없는 플레이어에게 넘기는 것은 받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부담의 정도가 상당히 다르다.

바퀴벌레 카드가 4장 있는 플레이어는 설령 이 카드가 바퀴벌레가 아닐 것 같다고 하더라도, 쉽게 아니라고 결정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바퀴벌레가 맞다고 선언했다가 틀리면 단순히 바퀴벌레 이외의 카드 한 장이 더 생기지만, 바퀴벌레가 아니라고 의심했다가 만에 하나 정말로 바퀴벌레라면 바로 게임에서 패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퀴벌레가 맞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편이, 자신의 추측이 틀리더라도 더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상대방이 그런 심리를 파악하고 이 사람에게 계속 대결을 강요해, 손에 있는 카드를 떨어지게 해서 패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페루도가 순서에 따라 주사위 확인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준다면, 이 게임은 그 순서를 원하는대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때문에 페루도는 일대 다수의 게임으로 느껴지는 반면, 바퀴벌레 포커는 일대일의 대결 게임으로 느껴진다.

코요테
코요테

코요테 <출처: divedice.com>

플레이어들은 모두 머리띠를 두르고 카드를 한 장씩 머리띠에 꽂는다. 따라서 페루도와 달리 자신의 카드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카드와 상대방이 예측했던 내 머리의 카드 숫자 등을 바탕으로 해서 모두 몇 명의 인디언이 있는지 추리하는 게임이다.

블러핑을 하고 싶다면, 머리에 0이나 작은 숫자의 카드를 꽂고 있는 플레이어의 앞에서 마치 그 플레이어가 매우 높은 숫자의 인디언 카드를 가진 것처럼 허풍을 떨 수 있다. 그렇게 예측하는 인디언의 숫자를 높여 해당 플레이어를 골탕먹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 상대가 의심을 해서 자신이 당할 수도 있는 즐거운 블러핑 게임이다.

유아 블러핑의 독어판,
쿠한델(Kuhhandel)
유아 블러핑의 독어판, 쿠한델(Kuhhandel)

_유아 블러핑의 독어판, 쿠한델(Kuhhandel) <출처: divedice.com> _

게임 이름에도 블러핑이라는 단어가 있듯이, 이 게임에서 블러핑은 경매와 함께 게임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같은 동물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동물 카드를 넘겨받기 위해 거래를 제안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블러핑의 요소가 빛을 발한다.

거래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먼저, 거래를 제안한 사람이 액수가 보이지 않도록 돈 카드를 몇 장이든 뒤집어서 제시한다. 상대는 이 돈을 받고 동물 카드를 넘겨 줄 것인지, 역으로 돈을 제시해 오히려 상대의 동물 카드를 빼앗아오는 것을 시도할지 선택해야 한다.

만약 역으로 돈을 제시한 경우에는 서로 돈을 교환해, 더 많은 돈을 제시한 쪽이 상대의 동물 카드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상대의 돈 카드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보다 약간만 더 많은 돈을 제시해 상대의 동물 카드를 빼앗아오는 것이 가능하다. (서로 제시한 돈이 교환되므로, 결국 약간의 차액만을 지불한 셈이 된다)

상대가 내가 가진 돈을 다 합한 것보다도 많은 돈을 제시해서 카드를 빼앗기가 불가능하다면, 순순히 돈을 받고 동물 카드를 넘긴 다음 벌어들인 돈으로 다음 거래를 노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오직 상대가 제시한 돈 카드의 장수만을 알 수 있을 뿐, 액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 게임에는 0, 10, 50에서 심지어 500 단위의 돈 카드가 존재한다. 따라서 장수가 많아 보여 돈을 받았지만 확인해보니 0이 여러 장 섞인 푼돈일 수 있고, 한 장이라서 역으로 돈을 제시했는데 상대의 돈이 큰 액수여서 오히려 그 만큼 깎아준 셈이 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에게 거래를 시도하고 몇 장의 돈 카드를 내려 놓은 후 "섭섭하지 않게 넣었어. 그러니 아무 소리 말고 받아 가" 이렇게 말하며 여유 있는 미소를 짓는 상황이 이 게임의 백미다.

스컬
스컬

스컬의 초판은 '스컬 앤 로즈'란 이름으로 출시됐다. <출처: divedice.com>

스컬은 폭주족들의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초판은 '스컬 앤 로즈'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는데, 해골과 장미가 타투에 자주 쓰이는 문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게임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스컬은 원래 술자리에서 맥주 받침으로 즐기던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들은 4장의 카드를 받고, 게임을 시작한다. 카드는 1개의 해골 카드와 3개의 장미 카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작 플레이어부터 돌아가며 이 중 하나를 골라 보이지 않게 내려놓거나 패스를 할 수 있다. (즉, 원하는 카드를 원하는 만큼 내려놓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패스하게 되면, 이제 '도전자'가 되기 위한 경매를 시작한다.

시작 플레이어부터 돌아가며 몇 개의 카드를 펼칠지 숫자를 선언하거나 패스를 한다. 경매에 낙찰된 플레이어는 이제 '도전자'가 되어 자신의 카드 더미를 모두 펼치고, 다른 플레이어의 더미를 한 장씩 펼친다. '도전자'가 자신이 선언한 숫자만큼 카드를 펼치면 그 라운드에서 승리하게 된다.

카드를 펼치면 해골이나 장미가 나올 수 있는데, 해골이 나오면 패배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카드를 골라야 한다. 해골을 펼치지 않고 선언한 카드를 모두 펼치면 그 라운드에서 승리하게 되며, 2번의 라운드를 승리로 이끌면 게임에서 최종 승리한다.

경매와 블러핑이 교묘하게 섞인 이 게임은 처음 카드를 돌아가며 내려놓을 때, 상대방을 위한 함정으로 해골 카드를 내려놓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부분이 핵심이다. 만약 내가 해골을 내려놨다면 상대방이 '도전자'가 되도록 유도해야 하고, 그러려면 상대방이 최대한 많은 숫자를 부르도록 유도해야 한다.

따라서, 숫자를 높게 불러 블러핑을 해야 한다. 물론 너무 크게 선언해 자신이 '도전자'가 되면, 자신이 놓은 함정에 자신이 빠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카드를 선택하는 재미, 경매하는 재미, 도전자를 유인하는 재미 속에 블러핑이 있다.

챠오 챠오
챠오 챠오

챠오 챠오 한국어판. 5인까지 즐길 수 있게 바뀌었다. <출처: divedice.com>

챠오 챠오는 정글 한가운데 위태위태하게 걸려 있는 구름다리를 건너 반대쪽으로 말들을 안전하게 보내야 하는 게임이다. 몇 개의 말과 주사위, 그리고 주사위 통이 구성물의 전부지만, 게임 박스와 함께 조립해서 만드는 입체적인 다리가 특색 있다. 간단하지만 긴장감 넘치는 게임 방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을 받아 온 게임이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블러핑은 플레이어의 선택 사항인 경우가 많은데, 챠오 챠오에서는 플레이어에게 블러핑을 강요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플레이어는 통 안에서 주사위를 굴려 몰래 결과를 확인한 후, 1부터 4까지의 숫자를 말한다. 이 때 말하는 숫자는 거짓이어도 상관없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 숫자를 믿을지, 아니면 가짜라고 의심할지 결정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주사위를 굴린 플레이어는 나온 수만큼 다리 위로 말을 전진시킨다. 만약 다른 플레이어의 의심을 산다면, 주사위 결과를 공개한다. 말한 숫자가 진실이라면 의심한 플레이어의 말은 다리에서 떨어진다. 말한 숫자가 가짜였다면 주사위를 굴린 플레이어의 말이 다리에서 떨어지고, 의심한 플레이어의 말은 가짜 숫자만큼 다리를 건널 수 있다.

이렇게만 게임을 진행하면, 블러핑을 성공했을 때 몇 칸을 더 가는 이득보다 블러핑을 들켰을 때 현재까지 전진한 말을 잃는 손해가 지나치게 커서 블러핑에 소극적일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에게 블러핑을 강요하는 요소를 도입했다.

게임에 사용되는 주사위에는 두 면에 X 문양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 문양은 말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이 문양이 나오면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 긴장한 표정과 떨리는 눈빛을 최대한 숨기고 '의심할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며 다른 플레이어들을 쭉 둘러볼 때의 긴장과 스릴 속에서 블러핑 게임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술자리 게임

애니메이션 심슨(The Simpson)에서 나온 더프 맥주(Duff beer)를 바탕으로 제작된 페루도의 캐릭터
상품
애니메이션 심슨(The Simpson)에서 나온 더프 맥주(Duff beer)를 바탕으로 제작된 페루도의 캐릭터 상품

애니메이션 심슨(The Simpson)에서 나온 더프 맥주(Duff beer)를 바탕으로 제작된 페루도의 캐릭터 상품 <출처: boardgamegeek.com>

페루도는 보통 어른의 게임으로, 음주와 함께하기 적합한 게임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주사위 몇 개와 컵으로 진행할 수 있는 간편함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술자리 분위기를 한껏 돋구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클럽에 방문하면 주사위와 컵을 비치해놓은 곳이 많다. 고대부터 한 사람이 운을 띄우고 다른 사람이 짧은 시간 내에 즉흥 시를 짓는 음주 게임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 놀이와 술은 일반적인 문화다. 따라서 클럽에서도 페루도를 즐기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소음 때문에 페루도를 할 때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는 모습을 보면 이채롭기도 하다.

몇몇 지역에서 페루도의 술자리 게임은 변형된 규칙으로 플레이된다. 멕시칼리(Mexicali)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이 게임은 컵 1개와 주사위 2개로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컵 안에 주사위를 넣고 굴려, 그 결과를 선언할 수 있다. 이 때, 주사위 눈으로 가장 큰 2자리 숫자를 만들면 된다. 예를 들어 3과 4가 나왔다면, 43으로 부르면 된다. 만약 2개의 주사위 눈이 같다면, 이 주사위는 100단위가 된다. 6이 2개 나왔다면 600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가장 큰 숫자는 600일 것 같지만, 이 게임에서는 주사위가 2, 1이 나왔을 때가 가장 큰 숫자가 된다. 이 2, 1 주사위를 바로 '멕시칸'이라 부른다.

자기 차례에 플레이어는 선언과 확인 2가지 중 하나를 할 수 있다. 선언을 하려면 이전 플레이어로부터 주사위와 컵을 가져와 흔들어, 이전 플레이어가 선언한 숫자보다 높은 숫자를 만들면 된다. 물론 블러핑이 가능하다. 이전 플레이어가 블러핑을 했을 것으로 의심된다면, 확인을 하면 된다. 누군가 틀린다면 틀린 사람이 1잔을 들이키면 된다.

재미있는 것은 특수 능력이 있는 주사위가 있다는 것이다. 3과 1은 모든 사람이 술을 마시게 하고, 3과2 주사위 눈은 '반대 방향'으로 게임 순서를 바꾼다. 이 주사위들은 앞서 부른 선언을 취소시키고 새로 게임을 하게 한다. 주사위 2, 1인 멕시칸은 다음 플레이어에게 확인을 선택하게 한다. 확인을 안 하면 무조건 1잔을 마시게 되고, 확인을 하면 틀린 플레이어가 2잔을 마시게 된다. 즉, 잘못 의심하면 2잔을 연거푸 마시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 플레이어가 블러핑을 했다면 그 플레이어에게 2잔을 선사할 수 있으니, 달콤한 유혹임에는 틀림없다.

속임수를 즐기는 법

페루도
페루도

페루도는 블러핑 게임 입문으로 유용하다. <출처: divedice.com>

대부분의 블러핑을 주 요소로 하는 게임들은 속고 속이는 긴장감을 잘 표현하고, 상대와 나의 정보를 플레이어들이 단시간에 파악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단순하고 명확한 게임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보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파티 게임들 중에 블러핑 게임들이 많으며, 보드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다. 또한 긴장과 해소가 게임 중에 계속 반복되며 유쾌한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분위기 전환용 게임으로도 적합한 편이다.

다만, 표정이나 말투에 긴장감이나 조급함이 잘 드러나는 사람들은 쉽게 블러핑이 들통나서 이런 류의 게임들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게임에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너무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서로 배려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김남광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의 세계: 보드게임의 세계(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883&category_id=2883)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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