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물열전] "콘텐츠와 서비스를 팝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
[IT동아 강일용 기자] 지난 1994년,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헤지펀드 데이비드 E 쇼 컴패니에 근무하던 30세의 청년 부사장은 어느 날 잡지를 보다가 인터넷의 규모가 1년 새 2,300배 성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는 바로 인터넷에서 판매하면 적합할 물건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사무용품, 의류, 음반, 책… 그래 책이 적합하겠군. 어디서 구매하든 품질이 동일하고, 배송도 쉽다. 출간된 책의 종류는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데, 이를 모두 갖춘 오프라인 매장은 없지 않은가. 인터넷을 통해 책을 판매하면 대형 물류 창고를 활용해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겠지.’ 청년은 자신의 생각을 바로 실천했다. 사표를 내고, 사업을 함께할 동지를 찾은 다음, 뉴욕(극동)에서 시애틀(극서)로 거점을 옮긴 후 자신의 차고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했다.
그냥 월스트리트의 투자회사만 다녀도 청년의 인생은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다. 사표를 내자 잠시 더 생각해보라며 그를 잡는 사장의 손길을 80살까지의 인생 계획이 있다며 뿌리쳤다. 그는 즉흥적이었지만, 경솔하진 않았다. 1994년 당시 존재하던 상위 20개의 인터넷 쇼핑몰을 꼼꼼히 검토하며 자신의 아이디어가 사업성이 있는지 하나하나 검토했다. 창업을 위해 투자자를 찾았다. 첫 투자자는 그의 부모였다. 노후자금으로 준비해둔 30만 달러를 아들의 사업에 과감히 투자했다.
‘이름은 뭐가 좋을까… 끈질김(Relentless)이 좋겠군. Relentless.com으로 합시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찬성하던 동지들이 이것만은 결사 반대했다. 결국 그는 고집을 꺾고 다른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눈에 띄기 위해 알파벳의 처음인 A로 시작하는 이름을 찾던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술 주문 ‘아브라카다브라’로 쇼핑몰의 이름을 짓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아이디어도 기각 당하고 만다(아마도 도메인 선점의 문제였을 것이다). 결국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고, 수량이 가장 풍부한 강 ‘아마존’에 시선이 꽂힌다. 결국 아마존의 지류와 수량처럼 다양하고 많은 물건을 파는 쇼핑몰이 되자는 의미에서 자신의 인터넷 쇼핑몰을 ‘AMAZON.COM’으로 이름 붙인다. 미국 최대의 인터넷 장터 ‘아마존’이 탄생한 순간이다. 아마존을 창업한 그 청년의 이름은 제프리 프레스턴 베조스(Jeffrey Preston Bezos), 줄여서 제프 베조스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
제프 베조스, 출처: 위키피디아>
베조스는 엑손의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부모님 휘하에서 많은 지원을 받으며 학업에 전념했다. 그는 과학 기술에 큰 흥미를 나타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한다. 처음에는 물리를 배운 후 대학교수를 하려 했지만, 이후 마음을 바꿔 전기 공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인텔 등 유수의 회사의 취업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투자자로 활약한다. 26세의 나이로 데이비드 E 쇼 컴패니의 역대 최연소 부사장이 된 것도 이때쯤이다. 데이비드 E 쇼 컴패니에서 그는 자신의 반려가 될 맥킨지 베조스(Mackenzie Bezos)를 만났고, 둘은 곧 결혼하게 된다.
아마존, 책을 팔던 곳에서 모든 콘텐츠를 파는 곳으로
베조스의 얘기를 하면서 아마존 얘기를 빼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의 인생이 곧 아마존의 역사고, 아마존의 움직임이 바로 그의 뜻이기 때문이다.
베조스는 지인 300명을 초청해 홈페이지의 베타 테스트를 진행한 후 1995년 7월 16일 아마존 홈페이지를 정식으로 공개했다. 서비스는 기대 이상으로 빨리 성장했다. 서비스를 개시하고 2년 만에 아마존은 기존 오프라인 상점의 자리를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98년부터 도서뿐만 아니라 음반, 영상물 등 다양한 미디어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유통망과 계약을 맺어 옷, 전자제품, 장난감 등 사용자가 원하는 모든 콘텐츠와 그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실물 콘텐츠뿐만 아니라 전자책, 앱, 게임 같은 디지털 콘텐츠로 취급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영역을 확대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파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이러한 아마존의 확장 전략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일까. 미국 타임지는 1999년 올해의 인물로 베조스를 선정했다.
아마존과 이베이, 옥션 같은 기존 온라인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뭐가 다른 걸까. 콘텐츠 공급자와 만물상의 차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아마존은 책, 음반, 비디오, 게임, 앱 등 콘텐츠와 비디오 게임기,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를 중점적으로 판매하는 반면 일반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콘텐츠보다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품 위주로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현재는 아마존도 여러 유통망과 계약을 맺다 보니 가구부터 운동화까지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없게 됐고, 일반 전자 상거래 사이트 역시 콘텐츠 판매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어 둘의 차이가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둘 다 사이 좋게 만물상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콘텐츠 공급자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다. 일단 홈페이지 전면에는 언제나 콘텐츠와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만 배치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해 사용자들을 아마존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책 서비스 킨들이다. 지난 2007년 전자책 단말기 킨들과 킨들을 통해 책을 구독하는 서비스를 출시한 후 아마존은 줄곧 미국 전자책 시장 1위를 고수했다. 심지어 2011년부터는 아마존에서 판매된 전자책 수가 종이책을 뛰어넘기까지 했다. 베조스와 아마존은 미국 독자들의 책을 읽는 방식마저 송두리째 바꿨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
경쟁자 반즈앤노블(미국의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애플, 구글 등이 아마존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전자책 시장에서 아마존의 위치는 확고하다. 아마존은 경쟁자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지난해 7월 초강수를 둔다. 월 9.99달러에 70만 권 이상의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구독할 수 있는 킨들 언리미티드 서비스를 출시한 것이다.
읽는 콘텐츠뿐 아니라 음악과 비디오 같은 보고 듣는 콘텐츠 제공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연 99달러에 제품 무료 배송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아마존의 멤버십 서비스)에 가입한 회원들에게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무료로 보여주고 있고, 100만 곡 이상의 음악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음악은 애플 아이튠즈, 비디오는 넷플릭스라는 경쟁자가 꽉 잡고 있지만 언제든지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여담으로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베조스는 Relentless.com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해당 URL로 접속하면 아마존으로 리다이렉팅 된다.)
핵심: 쉽고 저렴하게 원하는 것을
아마존은 정말 매섭게 성장했다. 반즈앤노블, 이베이, 그루폰 등 미국 내 경쟁자들은 아마존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1995년 고작 51만 달러(5억 6,000만 원)에 불과했던 아마존의 매출은 2013년 745억 달러(약 82조 원)로 수직 상승했다.
아마존이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쉽고 저렴하게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게 함으로써 아마존을 이용한 사용자가 다른 곳에서 제품을 구매한다는 상상 자체를 못하게 했다.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마존만의 독특한 시스템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쉬운 결제를 들 수 있겠다. 1999년 아마존은 미국 특허청에 원클릭(1-Click)이라는 이름의 특허를 등록하고, 이를 아마존 홈페이지에 적용했다. 원클릭은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즉시 주문과 결제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아마존 계정에 신용카드 정보만 입력해두면 즉시 원클릭을 이용할 수 있었다. 주문과 결제가 편리해지니 주문은 폭증했고, 그만큼 아마존의 매출도 급성장했다.
아마존은 결제만큼 환불도 쉬웠다. 당시 일반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제품을 반품하려면 구매자와 판매자간의 합의가 필요했다. 아마존은 그런 것이 필요 없었다. 사용자는 제품을 반품하기 위해 판매자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됐다. 배송상자 겉에 적혀있는 주소로 제품을 다시 보내기만 하면 알아서 반품과 환불 처리가 완료됐다. 지금이야 어떤 전자 상거래 사이트든 너무나도 당연한 시스템이지만, 아마존은 예전부터 '묻지마 반품'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무조건 남들보다 더 싸게 파는 박리다매 전략도 주효했다. 온라인 쇼핑몰은 오프라인 상점과 직원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한층 저렴한 판매가 가능하다. 아마존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출혈경쟁을 시작했다. 사용자들은 아마존이 내놓는 밑지고 파는 것 아닌지 의심스러운 제품 패키지에 열광했다(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실제로 밑지고 파는 제품이 맞다). 싼 것을 싫어하는 소비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마존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실제로 실천에 옮긴 것뿐이다.
웹 페이지 캐시를 활용한 제품 미리 보여주기 기능도 인상적이다. 아마존은 사용자의 웹 브라우저에 남아있는 캐시를 활용해 사용자가 과거에 살펴봤던 제품을 리스트 형태로 다시 보여주는 서비스를 전자 상거래 사이트 가운데 최초로 선보였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이 구매를 망설인 제품을 실제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거뒀다.
성장전략: 번 돈을 남김없이 투자하라
아마존은 높은 매출과 달리 영업 이익이 바닥 수준이다. 대부분 그 비율이 1%가 채 되지 않고, 그마저도 적자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영업 이익이 기업의 내실을 판단하는 척도인 점을 감안하면 아마존의 낮은 영업 이익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이는 베조스의 고도의 경영 전략이다. 베조스의 경영 철학은 확고하다.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을 주지 않고, 대신 사용자들에게 보다 저렴하게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지배력을 확보하면 낮은 영업 이익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새로운 사업 영역 개척 및 R&D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한다. 아마존은 투자 대신 벌어들인 현금을 투입해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고 R&D 비용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방침 덕분에 베조스는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베조스는 "성장(Growth)은 낮은 가격구조(Lower Cost Structure)와 낮은 가격(Lower Price)에서 나오고 이는 곧 훌륭한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고객 경험은 곧 홈페이지 트래픽 증가(Traffic)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판매자들(Sellers)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판매자가 늘어난 만큼 고객 경험의 질도 한층 상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베조스가 그린 아마존의 경영전략이다. 그 어디에도 이윤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클라우드 시장을 개척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장사꾼' 베조스와 '전자 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에 대해 알아봤다. 하지만 베조스와 아마존에게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일면이 존재한다.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IT업계에 한 획을 그은 혁신가로서의 일면이.
지난 2002년, 베조스는 아마존 서비스를 구축/유지/관리하는 직원들에게 아마존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모든 서비스 규격을 하나로 통일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할 수 있게 정리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즉시 해고할 것이라는 경고를 함께 담아서. 베조스는 왜 이런 명령을 내린 걸까.
블랙 프라이데이와 사이버 먼데이(미국 추수감사절 다음 금요일과 그 다음 주 월요일)는 4일 동안 기업 연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소비가 이뤄지고, 홈페이지 트래픽도 그만큼 급상승한다. 당연히 아마존에게도 한해 장사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이때 서버가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하고 뻗어버린다면? 그때 발생할 손해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베조스와 아마존은 이러한 대규모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서버 규모를 확장했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아마존의 서버는 블랙 프라이데이의 대규모 트래픽도 감당해냈다. 아마존의 매출도 쑥쑥 늘어났다.
하지만 쇼핑 시즌이 지나자 증설한 서버는 파리만 날리는 잉여 자원이 되어버렸다. 특정 시기에 100만큼의 서버가 필요하다고 해서 110으로 확장했는데, 평소에는 10만큼의 서버만 있어도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100에 가까운 잉여 자원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고 서버를 20으로 다시 낮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결정이다. 베조스는 남아도는 서버를 활용할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하여 '남는 서버를 다른 사업자에게 빌려준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 하드웨어인 서버를 다른 사업자에게 빌려줄 수 있을까. IDC(데이터센터)에 가서 선을 그어놓고 "당신은 이만큼만 사용하세요"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베조스는 먼저 여러 대의 서버를 물리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한 군데에 모아 하나의 거대한 가용자원으로 만들었다. 그 다음 '가상화' 기술을 활용해 다른 사업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서버 자원을 떼어내 빌려주면 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아마존의 다양한 기술을 함께 제공하길 원했다. 막대한 트래픽을 분산 처리하는 기술, 사용자의 유입 경로 및 서비스 이용 패턴을 분석하는 기술, 대용량 이미지를 빠르게 저장하고 전송하는 기술, 방대한 판매 데이터를 분석/정리하는 기술 등… 이미 아마존 내부에는 아마존 홈페이지를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해 유용한 기술이 많이 개발된 상태였다. 다만 성장에 맞춰 중구난방으로 개발하다 보니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베조스의 이메일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메일을 보내고 4년 후, 마침내 시장에 아마존의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한다. '아마존 웹 서비스(Amazon Web Service)', 줄여서 AWS라고 부르는 공용 클라우드 서비스(Public Cloud)를 시작했다.
AWS는 충격적인 서비스였다. 클릭 몇 번만하면 서버를 증설하거나 축소할 수 있었다. 서버 추가에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분 내외였다. 홈페이지 관리자는 트래픽이 증가하는 조짐이 보이면 AWS에 접속해 트래픽에 맞춰 서버 몇 대만 더 증설해주면 됐다. 10만큼의 서버를 유지하다가 특정 상황에만 100으로 확장하는 것도 가능했다. 비용은 딱 사용한 만큼만 지불하면 된다. 기업들은 서버 유지 비용(서버 구매비, 전기세, 유지/보수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서버 증설 = 실제 서버 설치'라고 생각하고 있던 기업 구매 담당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서버 자원을 빌려 쓴다'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때문에 실제 서버를 치우고 자사의 홈페이지와 인터넷 서비스를 모두 AWS로 옮기는 회사마저 생겨나게 된다. 기업 활동의 일대 혁신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베조스와 AWS의 업적은 기업 비용 절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한창인 스타트업(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작하는 벤처 기업) 창업 열풍의 토대가 된 것도 그의 업적이다. 예전에는 홈페이지와 인터넷 서비스/앱/게임을 제공하기 위해 서버를 구매해야 했다.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했다. 모두 고스란히 창업자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창업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AWS를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서버를 임대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창업자들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스마트폰이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을 보여줬다면, 베조스와 AWS는 스타트업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셈이다.
삼성전자, 다음카카오, 게임빌, 빙글 등 많은 국내 기업이 AWS를 이용하고 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서비스가 AWS 위에서 실행되고 있다. 아마존이 한국에 진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미 진출한지 오래고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든 상태다.
콘텐츠 장터로 영역 확장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지난 2011년 베조스는 새로운 킨들 기기를 공개했다. 단순히 전자책만 읽을 수 있던 전자책 리더기에서 벗어나 앱과 게임을 실행할 수 있고, 음악과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태블릿PC였다. 베조스는 아마존이 직접 제작한 이 태블릿PC를 '킨들 파이어'라고 부르며 199달러(약 20만 원)에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존의 태블릿PC 킨들 파이어>
킨들 파이어는 아마존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제품이다. 앞에서 설명한 콘텐츠 공급자와 박리다매 전략을 생각하면 된다. 제품을 원가 수준으로 저렴하게 공급해 시장을 형성하고, 그 다음 아마존의 앱, 게임, 비디오, 음악, 전자책 등을 공급해 수익을 거둔다는 전략이다. 단지 PC가 킨들 파이어로, 아마존 홈페이지가 '아마존 앱스토어(킨들 파이어에 기본 탑재된 아마존의 앱 장터)'로 바뀐 것뿐이다.
기계가 아니라 콘텐츠를 판매해 수익을 거둔다는 베조스와 아마존의 전략은 태블릿PC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애플 아이패드와 경쟁하기 위해 가격조차 아이패드 수준으로 높였던 안드로이드 태블릿PC의 가격 인하를 불러왔고, 구글이 자사의 앱 장터(안드로이드 마켓)를 콘텐츠 장터(플레이 스토어)로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베조스는 태블릿PC로 만족할 수 없었다. 사용자가 콘텐츠를 접하는 모든 영역에 아마존의 콘텐츠를 공급하길 원했다. 파이어TV, 파이어TV 스틱, 파이어폰 등이 이러한 이유로 탄생한 제품이다. 취하고 있는 전략 역시 킨들 파이어와 동일하다. 네 제품의 중심에는 아마존의 콘텐츠 장터 아마존 앱스토어가 존재한다. 킨들 파이어처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제품도 있고 파이어폰처럼 쫄딱 망한 제품도 있지만, 아마존 앱스토어를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 같은 세계적인 콘텐츠 장터로 키우기 위한 베조스의 도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우주로, 블루 오리진 프로젝트
지금까지 베조스와 아마존을 동일한 선상에 놓고 설명했다면, 이제 베조스가 아마존과 별도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알아보자.
베조스는 자신의 사업과 별개로 하나의 꿈을 꾸고 있었다. 인간이 지구에서 벗어나 우주에 진출하는 꿈을. 34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해 세계 18위의 부자가 된 그는 자신의 돈으로 이러한 꿈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지난 2000년 제프 베조스는 자신의 돈을 투입해 '블루 오리진'이라는 민간 로켓 회사를 세운다. NASA같은 정부 기관 주도의 우주 개발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의 우주 개발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 블루 오리진은 다양한 시험용 로켓을 쏘아 올리며 베조스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9월 블루 오리진은 보잉과 록히드 마틴의 합작 기업 '유나이티드 런치 얼라이언스'와 계약을 맺고 로켓 엔진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두 회사는 2016년부터 엔진 테스트를 실시해 2019년에는 실제 로켓을 쏘아 올리겠다는 계획을 함께 공개하기도 했다. 인류를 우주로 보내겠다는 베조스의 꿈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 그의 혁신을 심을 수 있을까
2013년 8월, 전세계 언론사는 큰 충격에 빠진다. 베조스가 1877년 창간되어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워싱턴 포스트를 2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로써 그는 아마존, 블루오리진에 이어 워싱턴 포스트까지 3개에 이르는 회사를 보유하게 됐다.
베조스는 언론사를 구매해 무엇을 하려는 걸까. 급변하는 IT 환경 속에서 언론사가 어떻게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려는 것은 아닐까?
베조스는 언론사가 콘텐츠(기사)를 팔아서 유지되는 것은 너무 낡은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언론사 역시 기술을 파는 IT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와 함께 워싱턴 포스트에서 개발한 콘텐츠 관리 도구(CMS) '메소드'의 라이선스를 다른 기업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꼼꼼한 경영자의 어두운 일면
베조스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아마존 홈페이지 UI(사용자 환경)의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 직접 관여한다.
그의 이메일(jeff@amazon.com)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다. 아마존 사용자 누구나 자신이 아마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을 그에게 적어서 보낼 수 있다. 베조스는 이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본 후 해당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전달한다. 마지막에 '?'라는 단어를 하나 더 추가해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직원을 지정해 직접 명령을 내리는 베조스의 모습은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를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베조스와 잡스는 닮은 부분이 많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심지어 자신의 비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을 즉시 해고하는 것까지 닮았다. 앞에 적어놓은 그가 보낸 이메일의 6번째 문장도 '해고'를 언급하고 있다.
본사의 직원들이 해고의 두려움에 떤다면, 물류와 유통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낮은 임금과 형편없는 근로조건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크리스마스 대목을 앞두고 미국과 독일 아마존 직원들이 임금과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너무 긴 근로시간을 줄여달라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국제노조총연맹은 세계 최악의 CEO로 베조스를 지목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베조스와 아마존이 막강한 콘텐츠 유통능력을 앞세워 콘텐츠 제작사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아셰트 작가연합, 보니어, 워너 브라더스, 월트 디즈니 등 여러 콘텐츠 제작사들과 분쟁을 벌였다.
심지어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마존은 독점적 구매자로서 공급자들에게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고, 그 힘을 남용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베조스와 아마존이 1세대 IT 창업가이자 기업으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혁신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1세대 IT 기업들처럼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아마존은 노동환경까지 열악하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베조스가 진정한 혁신가로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으려면 이렇게 산적한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아마존은 한국에 올까?
베조스와 아마존이 유통업계와 기업 활동을 혁신했다지만, 우리나라 사용자에겐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베조스와 아마존은 우리 나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일단 아마존은 국내에 공식 진출한 상태다. 서울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내고 국내 영업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일반 사용자가 접하긴 쉽지 않다. 아마존의 핵심 사업인 온라인 유통 대신 퍼블릭 클라우드 AWS 사업부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 사용자들이 원하는 온라인 유통 사업부는 언제쯤 국내에 진출할까? 2015년 2월 말 현재까지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직 없다. 다만 온라인 유통 사업부가 곧 국내에 진출할 것이란 소문은 하나 둘씩 들려오고 있다. 지난 2015년 2월 말 동아일보는 아마존이 국내 온라인 유통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직원들을 대거 채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국내 대형 쇼핑몰 업체처럼 물건을 유통하기에는 아직 시기 상조지만, 아마존의 강점인 디지털 콘텐츠(전자책, 음악, 비디오 등) 유통 사업은 국내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아마존의 디지털 콘텐츠 유통 사업 진출이 국내 시장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지 지켜볼 일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IT 인물 열전'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