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TB에 이어 10TB, 하드 디스크의 거침없는 진화
3년 동안 4TB(테라바이트) 용량의 벽에 막혀 있던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가 마침내 한계를 뛰어넘는다. 씨게이트, HGST 등 HDD 제조사가 앞다투어 6~8TB HDD를 양산하기 시작했다고 밝힌 것이다. HDD는 대체 왜 4TB의 벽에 막혀있었던 걸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한 번 자세히 알아보자.
공간과 밀도의 한계
HDD가 왜 4TB의 벽에 부딪쳤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그 구조와 데이터 기록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HDD 속에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플래터(Platter)라는 장치가 들어 있다. 자성 물질로 덮인 플래터를 회전시키고, 그 위에 헤드(Head)를 접근시켜 플래터 표면(트랙)의 자기 배열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읽거나 기록한다. 플래터의 중심에는 플래터를 회전시키기 위한 스핀들 모터(Spindle Motor)가 위치해 있고, 스핀들 모터의 회전 속도(RPM)가 높을수록 보다 빠르게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다.
1980년대까지는 플래터 지름 기준 5.25인치(약 13cm) 규격의 HDD가 시장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PC가 소형화됨에 따라 이에 맞춰 소형 HDD가 나오게 됐다. 2014년 현재,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HDD는 3.5인치(약 9cm) 규격과 2.5인치(약 6.35cm) 규격이다. 데스크톱PC와 서버에는 3.5인치, 노트북과 외장 하드에는 2.5인치 규격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IBM이 1956년 개발한 최초의 HDD는 4.8MB(메가바이트)의 용량과 1200rpm의 속도를 갖추고 있었다. 이후 씨게이트, WD, HGST, 도시바 등 여러 제조사는 플래터의 데이터 기록 밀도를 향상시키며 지속적으로 HDD 용량을 확대했다. 하지만 2011년 등장한 4TB HDD 이후 용량 증가는 멈췄다. 3.5인치 HDD의 내부 공간이 협소해 플래터를 더 이상 집어넣을 수 없었고, 플래터의 데이터 기록 밀도 향상도 한계에 부딪친 탓이다.
3.5인치 HDD 속에는 4~5장의 플래터를 넣을 수 있다. 그 이상을 넣으면 내부 공기가 순환하지 못해 회전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3.5인치 크기의 플래터에는 최대 1TB의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다. 그 이상은 공간이 모자라 기록하지 못한다. 씨게이트는 1TB의 플래터를 4장, HGST는 800GB(기가바이트)의 플래터를 5장 배치해 4TB HDD를 구현했다. (WD나 도시바는 4TB HDD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공개한 적이 없으나, 씨게이트와 유사한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계 탓에 HDD 용량 발전은 정체된 상태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출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 제조사는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신기술 개발을 모색했다. 흥미롭게도 각각의 제조사가 서로 다른 해법을 선택했다. 씨게이트는 플래터의 밀도를 향상시킨다는 결정을 내렸고, HGST는 회전 속도를 유지하면서 플래터를 더 많이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씨게이트는 '기와식 자기 기록(SMR, Shingled Magnetic Recording)'이라는 기술을, HGST는 '헬리오실(Helioseal)'이라는 기술을 자사의 HDD에 적용하는데 성공했다.
기술 혁신으로 밀도의 한계를 뛰어넘다
씨게이트는 4TB의 벽을 넘기 위해 기존의 기록방식인 수직 자기 기록(PMR, Perpendicular Magnetic Recording)을 대체할 기와식 자기 기록 기술을 개발했다. 수직 자기 기록은 읽는 부분(Reader)과 쓰는 부분(Writer)으로 구성된 데이터 트랙을 하나씩 차례대로 적어나가는 방식이다. 예전에는 데이터 트랙 간의 거리(Guard Space)를 좁힘으로써 데이터 기록 밀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쳤다. 트랙 간의 거리가 더이상 좁아질 수 없을 만큼 가까워졌고, 플래터당 1TB라는 제약이 생겨났다.
<수직 자기 기록의 데이터 트랙 형태>
기와식 자기 기록은 이 데이터 트랙을 지붕 위의 기와처럼 차례차례 포개나가는 기술이다. 헤드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미세한 부분만 노출시키고 데이터 트랙을 최대한 쌓아서 데이터 기록 밀도를 25% 향상시는데 성공했다. 다시 말해 3.5인치 플래터에 1.25TB를 기록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기와식 자기 기록의 데이터 트랙 형태>
씨게이트는 SMR 기술을 바탕으로 4TB의 벽을 깬 5TB HDD(1.25TB급 플래터 4장)를 작년 시장에 출시했고, 지난 8월 8TB HDD(1.25TB급 플래터 6장)를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공급(베타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공간 절약의 비결은 헬륨
HGST는 HDD 속에 일반 공기보다 밀도가 작은 헬륨을 채워 플래터 간 거리를 줄일 수 있는 기술 헬리오실을 개발했다. 일반 공기보다 밀도가 약 1/7 작은 헬륨을 HDD에 채워 플래터끼리 근접해도 회전 속도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헬리오실의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3.5인치 HDD 속에 플래터를 7장이나 넣을 수 있게 됐다. 헬리오실을 적용한 HDD는 헬륨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외부가 단단히 밀봉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공기 순환용 구멍까지 막혀있다.
HGST는 헬리오실 기술을 바탕으로 4TB의 벽을 깬 6TB HDD(800GB급 플래터 7장)를 올해 초 시장에 선보였고, 이어 8TB HDD 울트라스타 He8(1TB급 플래터 7장)을 25일 시중에 출시했다.
10TB가 우릴 향해 성큼
그렇다면 기와식 자기 기록과 헬륨 충전 기술을 동시에 적용해 HDD의 용량을 더욱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자도 하는 생각을 제조사들이 못할리 없다. 씨게이트는 HDD에 포함된 플래터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헬륨 충전 기술을 분석하고 있고, HGST는 플래터의 밀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기와식 자기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결실이 내년 시장에 등장할 것 같다. 씨게이트와 HGST, 둘 다 기와식 자기 기록과 헬륨 충전 기술을 채택한 10TB HDD를 내년 초 선보일 계획이기 때문.
다만 실제 제품 구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단 헬륨 충전 기술의 상당수가 HGST의 특허이기 때문에 씨게이트의 8~10TB HDD 출시는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8월부터 베타 테스트 중인 씨게이트의 8TB HDD만 해도 어떤 방식으로 6장의 플래터를 넣을 수 있었는지 씨게이트 측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면 보도자료를 통해 자랑할 법도 하건만 그 어디에도 8TB HDD의 구현 원리는 적혀있지 않았다.
HGST의 10TB HDD도 제때 출시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와식 자기 기록은 분명 수직 자기 기록의 단점을 해결한 획기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어 상용화가 어려웠다. 데이터 트랙끼리 붙어 있기에 상호간섭이 발생한다. 때문에 데이터가 유실되거나 읽어들일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씨게이트는 데이터 트랙을 밴드 단위로 묶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당연히 씨게이트의 특허다. HGST가 이 특허를 피해 어떤 방식으로 기와식 자기 기록을 상용화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슬픈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씨게이트의 제품이든 HGST의 제품이든 6TB 이상의 HDD는 기업의 데이터센터(IDC)를 목표로 하는 엔터프라이즈 제품군이다. SAS 규격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설사 SATA로 제작된 제품이라 해도 일반 사용자가 구매할 수는 없다. 일반 사용자는 내년 말은 되어야 6~10TB HDD를 접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HDD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은 '대용량 데이터 저장 장치의 대명사 -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ard Disk Drive: HDD) - http://it.donga.com/6074/' 기사를 참고하세요.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