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 팬택을 뒤흔든 3대 성공작과 실패작
자금난에 시달리던 국내 3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이 결국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상태에 들어갔다. 5일, 산업은행을 비롯한 팬택의 채권단은 이날 오후 3시, 논의 끝에 팬택의 워크아웃을 결정했다. 이후 채권단은 팬택의 워크아웃을 위한 자금 지원 및 구조조정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팬택의 이번 워크아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6년 12월에도 팬택은 워크아웃에 돌입한 바 있으며 5년 후인 2011년 12월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하지만 불과 2년 2개월 만에 두 번째 워크아웃을 맞이함에 따라 팬택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상황이다.
굳이 2번의 워크아웃을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팬택의 역사는 충분히 드라마틱했다. 팬택은 1991년에 삐삐(휴대용 무선호출기) 제조사로 처음 설립된 업체로, 1990년대의 이른바 벤처 붐을 상장하는 아이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당시 설립된 수많은 통신 관련 벤처기업 중 상당수가 2000년대 들어 문을 닫았으며 현대전자나 해태전자 같은 대기업들도 끝내 사업을 포기하곤 했다. 이런 와중에도 팬택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라 초반의 팬택은 내수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수출에만 주력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팬택은 기존 기업을 인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팬택은 2001년에 현대전자의 계열사인 현대큐리텔을, 2005년에는 SK텔레콤의 산하의 SK텔레텍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보급형 휴대전화 시장의 '큐리텔'과 고급형 휴대전화 시장의 '스카이'의 양대 브랜드를 갖추는 등 서서히 회사가 본 괘도에 오르는 듯 했다.
기술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최초' 타이틀을 단 제품도 제법 내놨다. 2002년에 33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한 카메라폰을 처음으로 국내 출시했고 2003년에는 3D 듀얼 사운드 기능을 갖춘 제품을 출시했다. 그 외에 2005년에는 블루투스 기능을 갖춘 DMB폰을 최초로 출시하기도 하는 등, 상당히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회사가 가진 기초 체력에 비해 기업 인수와 기술 개발에 과도한 투자를 했고, 이로 인해 팬택은 유동성 위기에 빠져 결국 2006년에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다. 이로 인해 팬택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게 된다.
'베가'와 '베가X', 그리고 '베가레이서'의 연속 흥행
이런 팬택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2010년을 전후해 열풍처럼 몰아 닥친 스마트폰 붐이었다. 2007년까지 연 20만대 수준이었던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불과 3년 후인 2010년에 960만대, 2011년에는 1천 750만대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이 시기 팬택은 스마트폰 개발에 전력투구를 했고, 2010년에 출시한 '베가'와 '베가X', 그리고 2011년에 출시한 '베가레이서'가 인기를 끌었다. 특히 베가레이서와 같은 경우는 누적 판매량 180만대를 기록할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했다. 이로 인해 팬택은 2010년과 2011년 사이에 LG전자를 누르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2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으며 2011년 12월에 성공적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기대에 못 미친 '베가LTE'와 '베가레이서2', 그리고 '베가아이언'
다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2012년 후반부터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었다. 또한, 국내 시장에서 2위 경쟁을 하던 LG전자가 초반의 부진을 극복하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자금력이 약한 팬택은 결국 2012년부터 다시 국내 3위로 밀려났다.
수출로 이를 극복하는 것도 무리였다. 해외시장에서는 삼성전자나 LG전자 외에도 애플, 소니, HTC, 모토로라를 비롯한 기존 강호들과 정면 승부를 해야 했고, 하웨이나 ZTE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팬택은 이리저리 치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출시된 팬택의 전략제품들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둔 것도 아쉬웠다. 2011년에 출시된 팬택의 첫 번째 LTE폰이었던 '베가LTE'는 배터리 소모가 심한데다 DMB 안테나를 따로 꽂아줘야 하는 등 편의성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12년에 출시된 '베가레이서2'도 논란이 있었다. 경쟁모델이었던 삼성전자의 갤럭시S3, LG전자의 옵티머스LTE2 등에 비해 프로세서나 메모리를 비롯한 하드웨어 사양 면에서 뒤떨어진다는 약점이 지적 받았으며, 이유 없이 동작이 느려지는 버그가 일부 초기 펌웨어 제품에서 발생하는 등의 이슈도 있었다. 뒤이어 출시된 베가R3, 베가No.6 등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이미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2013년에 내놓은 야심작인 ‘베가아이언’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이 팬택에게는 치명타였다. 이 제품은 고급 금속제질 테두리를 통짜로 본체주변에 두르고, 상황에 따라 화려하게 점멸하는 LED를 탑재하는 등 디자인 면에서 완성도가 높았다. 다만, 당시 모바일 시장의 화두로 등장한 LTE-A 통신기능을 지원하지 않은데다 화면도 풀HD급이 아닌 HD급에 머무르는 등의 몇 가지 약점 때문에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 외에 지난해부터 정부가 강력하게 시행한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단속도 팬택의 매출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팬택은 2012년 하반기부터 다시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작년 3분기에 1,900억원 가량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유동성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로 인해 팬택은 오늘, 2번째 워크아웃에 돌입하게 되었다.
'오뚝이' 팬택, 재기의 가능성은?
그렇다면 앞으로 팬택은 어떻게 되는것일까? 작년 하반기에 출시한 '베가시크릿노트' 등의 제품이 나름 선방한 덕분에 올 1월에 다시 흑자를 기록하는 등, 긍정적인 소식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된 상태라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다. 스마트폰을 내놓기만 하면 무섭게 팔리던 2010년의 상황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의미다.
더욱이, 이미 2번이나 큰 위기를 겪은 회사의 제품을 소비자들이 마음 편하게 구매해 줄 것인지도 의문이다. 팬택도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있는지, 서비스센터의 토요일 운영 시간을 연장하고, 이마트 입점 서비스센터를 추가로 여는 등 사후서비스 강화에 힘쓴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오늘 배포 했다. ‘베가시크릿업’의 킷캣 업그레이드를 실시하는 등, 운영체제 지원도 변함없이 이루어진다는 발표도 있었다.
팬택이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채권단이 기업 정리가 아닌 워크아웃을 선언했다는 것은 그나마 재기의 가능성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의미다. 팬택의 재기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는 상태지만, '삐삐벤처'와 '오뚝이'의 신화가 이대로 공중분해 되는 것은 아무도 바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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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