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 그래픽의 한계 넘을까? AMD 카베리 A10 7850K
AMD의 CPU는 '가성비(가격대성능비)'가 좋은 제품으로 유명했다. 비슷한 등급의 인텔 CPU에 비해 가격이 더 싸면서 성능이 좀더 우수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초반에 팔리던 애슬론XP, 애슬론64 등의 제품은 인텔의 펜티엄4, 펜티엄D 등을 압도하는 성능을 발휘하면서 가격은 더 싸서 PC매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요즘은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2006년 즈음부터 인텔 CPU의 성능 발전 속도가 AMD의 그것을 압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 팔리는 AMD의 FX 시리즈는 인텔의 코어 i5나 코어 i7 시리즈에 비해 가격이 싼 건 맞지만 '가성비'까지 좋다고 하기엔 다소 애매한 상황이다.
이런 AMD에게 있어 APU(CPU와 GPU의 통합칩)는 프로세서 시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제품이다. 경쟁 제품을 압도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CPU, 5~10만 원대의 그래픽카드와 유사한 성능을 내는 GPU를 함께 조합한 물건을 10~20만 원대의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알뜰파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
4세대로 발전한 APU, 카베리(Kaveri)
신제품 개발도 제법 의욕적이다. 1세대 데스크톱용 APU인 코드명 라노(Llano)가 2011년 말에 나온 이후에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하더니 올해 초에 4세대 제품인 코드명 카베리(Kaveri)를 내놨다. 특히 카베리는 단순히 CPU와 GPU의 집적도를 높이거나 동작 속도를 올리는데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아키텍처(architecture, 시스템이 기반이 되는 설계방식)를 일신해 차세대 컴퓨팅에 대응한 것이 특징이다.
카베리의 CPU 부분에는 AMD의 최신 아키텍처인 스팀롤러(Steamroller)가 적용되었다. 1차 캐시의 용량을 높이고 분기 예측 및 정수연산장치를 강화하는 등의 개선점을 적용한 결과, 기존의 파일드라이버 아키텍처에 비해 약 30%의 성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AMD는 밝힌 바 있다. 본래 스팀롤러 아키텍처는 AMD의 고성능 CPU 제품군인 FX시리즈에 처음 적용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예측을 깨고 APU 시리즈인 카베리에서 첫 선을 보였다.
GPU 부분의 아키텍처 개선은 좀 더 극적이다. 카베리의 GPU에는 작년 하반기에 출시된 최신 외장형 그래픽카드인 라데온 R7 / R9 시리즈와 동일한 GCN(Graphic Core Next) 아키텍처가 적용되었다. 내장된 GPU의 이름도 외장형 그래픽카드와 동일한 '라데온 R7'이다. 다이렉트X 11.2, 맨틀(Mantle)과 같은 최신 그래픽기술을 지원하며, 그 외에 4K(울트라HD) 해상도 지원, AMD 트루오디오 음향 기술 지원 등, 외장형 라데온 R7의 특징들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CPU와 GPU의 본격적인 융합 강조
하지만 이런 새로운 아키텍처의 적용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두 가지 아키텍처의 조합 방법이다. 기존의 CPU-GPU 통합 프로세서는 단순히 두 기능을 하나의 칩으로 만들었을 뿐이지 시너지 효과를 그다지 기대할 수 없었다. 처리경로나 메모리의 이용방법, 명령어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베리는 HSA(Heterogeneous System Architecture, 이기종 시스템 아키텍쳐) 기술을 본격적으로 지원한다.
HSA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카베리의 핵심 기술은 hUMA(heterogeneous Uniform Memory Access)와 hQ(Heterogeneous Queuing)다. 이는 CPU와 GPU가 메모리를 공유하는 한편, 서로의 처리 경로까지 최적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프로그래머들이 이런 구조를 최대한 이용하면 CPU 및 GPU가 각자의 장점을 최적화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제약 없이 고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AMD는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 살펴볼 제품은 카베리 시리즈 중에서도 최상위 모델에 속하는 'A10 7850K' 모델이다. 4개의 코어를 갖춘 CPU(동작속도 3.7~4.0Ghz), 그리고 8개의 코어를 갖춘 라데온 R7 GPU가 조합된 모델로, 2014년 2월 현재 인터넷 최저가는 21만 원 정도다. 참고로 이 모델은 오버클러킹 제한이 풀린 블랙에디션(Black Edition) 제품이므로 사용자의 기술과 하드웨어 환경이 받쳐준다면 비교적 자유롭게 오버클러킹 시도를 할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칩의 전반적인 크기와 디자인은 이전 세대의 APU와 거의 같지만, 메인보드와 결합되는 소켓의 규격은 다르다. 2세대(트리니티) 및 3세대(리치랜드) APU에서 이용하던 FM2 소켓이 아닌 FM2+ 소켓 규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존의 FM2 기반 메인보드에서 호환이 되지 않는다. 기존 APU 기반 PC에서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APU 뿐 아니라 메인보드까지 새로 사야 한다는 의미다. 성능 개선을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아쉬운 점이다. 다만 쿨러(냉각장치)는 이전 규격의 것을 그대로 쓸 수 있다.
인텔 하스웰과의 그래픽 성능 비교
FM2+ 기반의 메인보드인 이엠텍 이스타 Hi-Fi A88W 3D(바이오스타 제조)에 A10 7850K 카베리 APU와 지스킬 PC3-17000 DDR3 메모리 4GB 2개, 그리고 삼성 840 SSD를 꽂고 시스템을 구성, 그래픽 성능 위주의 성능 테스트를 해봤다. 성능을 비교하기 위해 인텔 코어 i7-4770 CPU(하스웰) 기반의 PC를 준비했다. 운영체제는 윈도7 64비트 버전이다.
사실 CPU 성능만 본다면 하스웰 코어 i7-4770은 A10 7850K보다 훨씬 상위급이다. CPU 가격만 30만 원에 이를 정도다. 다만, 내장 GPU의 성능은 A10 7850K에 내장된 라데온 R7보다 떨어지므로 각각의 CPU와 GPU를 종합한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기엔 좋다.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통한 성능 테스트
일단 PASSMARK를 통해 CPU 부분의 기본적인 연산 능력을 확인해 봤다. 이 결과에서 A10 7850K의 CPU 성능은 5,516 점으로 측정, 예상대로 9,931점을 기록한 코어 i7-4770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만 원에 가까운 가격 차이도 고려하더라도 절대적인 성능의 격차는 상당히 크다. 최근 AMD가 단일 CPU 시장에서 인텔과 무리하게 경쟁을 하지 않는 이유가 이해되는 부분이다.
다음으로 해 본 테스트는 PC의 3D그래픽 성능을 측정해 수치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인 '3DMARK'를 이용한 벤치마크다. 기본 옵션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구동했으며 가장 많은 부하를 주는 'FIRE STRIKE' 항목의 점수를 비교해 봤다. 테스트 결과, 이번에는 카베리 시스템이 좀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PU 성능이 크게 뒤지는데도 불구하고 GPU의 성능으로 이를 보완한 덕분이다.
게임 구동 능력 테스트(LOL, 배틀필드4)
다음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구동하며 성능을 테스트 해 봤다. 화면 해상도를 1,920 x 1,080, 그래픽 품질은 모두 '높음'으로 맞췄다. '소환사의 협곡' 맵에서 20여 분 정도 플레이를 해보며 초당 평균 프레임을 측정해 봤다.
테스크 결과, 카베리 시스템은 캐릭터가 많이 나오고 각종 스킬이 시연되는 장면에서는 평균 초당 60프레임 정도, 캐릭터가 적은 장면에서는 70프레임 정도를 유지하며 대단히 원활한 구동이 가능했다. 하스웰 시스템은 45~55 수준의 프레임을 유지했다. 게임 플레이에 지장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카베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다음으로 테스트 해 본 게임은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FPS인 '배틀필드4'다. 이 시리즈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매우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4도 마찬가지다. 그래픽카드의 한계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화면 해상도 1,280 x 720에 모든 그래픽옵션을 '중간'에 둔 상태로 설정한 후 초반 20여분 정도의 평균 프레임을 측정했다.
테스트 결과, 카베리 시스템은 25~30 프레임 수준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진행은 가능한 수준이었으나, 하스웰 시스템에선 15~20 프레임 정도의 낮은 프레임으로 구동되어 원활한 진행이 힘들었다.
참고로 배틀필드4는 AMD APU 전용의 '맨틀(Mantle)' 기술을 지원하는 게임 중 하나다. 이를 적용하면 GCN 기반 AMD 시스템에서 좀 더 나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테스트에서 맨틀을 활성화하니 평소보다 2~3 프레임 정도 나은 성능이 발휘되는 것을 확인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AMD 하드웨어 전용의 기술인 맨틀이 이점을 준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최상의 내장 GPU라는 점은 확인, 앞으로도 노력해야
4세대 APU인 카베리는 역시 CPU+GPU 통합 프로세서 중에서도 최상급의 그래픽 성능을 발휘했다. 역시 아직 이 방면에선 AMD가 경쟁사 대비 좀더 우위에 있다. 그리고 5~10만 원 상당의 보급형 그래픽카드에 근접한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가격적인 이점도 있다. 아키텍처 적으로도 CPU와 GPU의 온전한 통합이 이제야 본 괘도를 타는 것 같다.
다만, 분명 쓸만한 물건이긴 하지만, 이론적으로 낼 수 있는 최대 성능을 100% 발휘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특히 맨틀이나 HSA 기술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소프트웨어가 아직은 부족한 편이다. 또한 DDR3 수준에 마무르고 있는 현행 메모리 역시 카베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외장그래픽카드처럼 GDDR5 메모리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년 즈음이나 본격 출시될 것으로 보이는 DDR4 메모리가 대중화된다면 APU는 한층 더 개선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한편, 경쟁사인 인텔의 내장 GPU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발전한 것도 역시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예전에 인텔의 내장 GPU는 AMD의 그것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진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테스트에선 APU의 거의 60~70% 정도 수준의 그래픽 성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물론 AMD APU의 그래픽 성능 역시 꾸준히 향상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동안은 내장 GPU 부문에선 우위를 지키겠지만 방심하다 따라 잡히는 건 한 순간이다. AMD의 다음 APU는 '상대적으로 우수'가 아닌 '절대적으로 우수'한 제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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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