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반칙' 아닌가? 삼성 SSD 840 EVO
지난 2011년, 세계 4위의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 업체였던 삼성전자는 자사의 HDD 사업부를 씨게이트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HDD 사업을 포기하고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플래시메모리 기반의 저장장치)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HDD 사업부 정리가 마무리될 즈음인 2012년, 삼성전자는 인상적인 신형 SSD를 발표했는데 그것이 바로 840 시리즈다.
참고로 SSD의 성능등급은 핵심부품인 플래시메모리의 저장방식에 따라 구분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의 메모리 셀(저장소자의 단위)에 1비트씩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SLC(Single Level Cell) 방식과 2비트 이상의 데이터를 하나의 셀에 저장하는 MLC(Multi Level Cell) 방식으로 나뉜다. SLC 방식이 MLC 방식에 비해 데이터를 읽거나 쓰는 속도가 빠르고 플래시메모리의 수명도 길다. 다만,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다.
SSD 등장 초기에는 SLC방식과 MLC 방식의 제품이 시장에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개발로 인해 MLC 방식의 성능이 개선되자 가격경쟁력이 없는 SLC 방식의 SSD는 2010년을 즈음해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2012년에 등장한 삼성전자의 840 시리즈는 일반적인 MLC와 달리 하나의 셀에 3비트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TLC(Triple Level Cell) 방식의 플래시메모리를 달고 등장했다(사실 TLC라는 용어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의 셀에 2비트 '이상'의 데이터를 담는 방식이면 모두 MLC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840 시리즈 등장 초기에는 품질에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실제로 사용해본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성능 면에서 기존의 MLC 방식 SSD에 뒤지지 않았으며, 가격 경쟁력도 우수했기 때문이다. HDD 사업을 포기할 정도로 SSD 개발에 매진한 삼성전자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그리고 2013년, 삼성전자는 기존의 840 시리즈를 한층 개선한 '840 EVO(에보)' 시리즈를 새로 내놓았다. TLC 방식의 플래시메모리를 쓴 점은 전작과 마찬가지지만, 새로 개발한 터보라이트(TurboWrite) 기술을 적용해 한층 빠른 속도를 기대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여전히 높은 가격 경쟁력이 840 EVO의 자랑거리다. 향후 삼성전자 SSD 제품군의 주력으로 자리잡을 것이 확실한 840 EVO의 면모를 살펴보자.
새 옷 갈아입은 삼성 SSD
840 EVO의 크기나 두께는 전작과 완전히 동일하다. 2.5인치 HDD와 같은 크기라 일반적인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에 탑재가 가능한 점도 마찬가지다. 전작이 검정색 몸체에 흰색 글씨, 오렌지색 포인트 마크를 갖춘 것에 비해 이번 제품은 회색 몸체에 검정색의 글씨와 포인트 마크를 갖췄다는 점이 눈에 띄는 정도다.
PC 메인보드와 연결되는 인터페이스 역시 전작과 동일한 SATA3(SATA 6Gbps) 방식이다. SATA3 포트는 2011년을 즈음부터 출시된 신형 PC에 탑재되어 있다. 그 이전에 나온 대부분의 PC에는 SATA2(SATA 3Gbps) 포트가 달려있는데, SATA3는 이전 버전의 SATA와 호환되므로 구형 PC 사용자라도 840 EVO의 사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래도 840 EVO 본연의 성능을 이끌어내려면 아무래도 SATA3 지원 PC에 다는 것이 좋을 것이다. SATA3는 SATA2의 2배에 달하는 대역폭(데이터가 지나가는 통로)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전작과 같은 TLC 구조지만 쓰기 속도 2배로 ‘껑충’
840 EVO는 제품 용량에 따라 120GB 모델과 250GB 모델, 그리고 500GB 모델 및 750GB 모델, 마지막으로 1TB 모델의 5가지로 나뉜다. 그 중 현재 주력으로 팔리고 있는 것은 120 / 250GB 모델이다. 인터넷 최저가 기준 120GB 모델은 13만 원, 250GB 모델은 23만 원 정도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 전작에 비해 살짝 비싸고 경쟁사의 MLC 방식 SSD와 비슷한 가격인데, 삼성전자에서는 840 EVO가 경쟁사 MLC 제품 대비 한층 나은 성능을 발휘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에서 밝힌 840 EVO의 사양에 따르면 250GB 모델 기준으로 읽기 속도는 최대 540MB/s 쓰기 속도는 520MB/s에 달한다. 전작의 경우 읽기와 쓰기의 최대 속도가 각각 540MB/s와 250MB/s 였다. 이는 쓰기 속도가 2배 이상 향상되었다는 것이며 MLC 메모리를 탑재한 전세대의 고급형 모델이었던 840 PRO와 동등한 속도다. 쓰기 속도가 향상되면 인터넷 서핑이나 디자인 작업 등을 할 때 매우 빠른 속도를 체감할 수 있다.
이런 성능 향상은 840 EVO에 처음 적용된 터보라이트(TurboWrite) 기술 덕분이라고 한다. 이는 SSD 일부의 공간을 캐시(임시저장공간)으로 지정, 자주 쓰는 데이터를 이곳에 저장해 속도를 높이는 원리다. 본래 840 EVO는 TLC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이 캐시 공간만큼은 SLC 메모리처럼 셀 당 1비트씩 데이터 기록을 하게 된다. 덕분에 SLC 못잖은 속도를 기대할 수 있다는 곳이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쓰기 편한 마이그레이션(복제) 도구 제공도 장점
제품의 전반적인 특징을 살펴봤으니 이제부터는 직접 써보며 성능을 체감해볼 차례다. 테스트에 사용한 모델은 840 EVO 500GB(MZ-7TE500L/KR)이며, 비교 대상은 전작인 840 시리즈 250GB(MZ-7TD250B/KR) 모델이다. SATA3를 지원하는 ESC Z87H3-A2X 메인보드 기반의 4세대 코어 i7-4770K(하스웰) PC에 두 SSD를 꽂고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봤다.
PC관련 지식이 많은 사용자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초보자가 SSD를 구매해 쓰고자 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이전에 쓰던 HDD/SSD에서 새 SSD로 데이터를 복제하는 과정이다. 다행히도 삼성전자에서는 윈도 상에서 간단히 데이터 복제를 할 수 있는 마이그레이션(Migration) 프로그램을 기본 제공한다. 이는 제품 패키지 안에 기본 제공되는 CD를 이용하거나 삼성전자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기존 PC에 840 EVO를 추가로 장착, 부팅해서 삼성 마이그레이션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간단히 기존 HDD/SSD의 데이터와 파티션 구조를 840 EVO로 그대로 복제할 수 있다. 만약 기존 HDD/SSD와 새로 장착한 840 EVO의 용량이 다르다면 파티션 비율을 조정해 복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HDD/SSD를 1개 밖에 달지 못하는 노트북을 갖고 있다면 별도로 판매되는 외장하드 케이스나 하드독에 840 EVO를 꽂아 노트북의 USB 포트에 연결해서 마이그레이션 작업을 하도록 하자. 쓰기 편한 마이크레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840 EVO를 비롯한 삼성 SSD의 장점이다.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이용한 성능 수치 측정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양 비교 제품의 내용을 동일하게 만든 후, 삼성 SSD 전용 프로그램인 '삼성 매지션'을 설치해 '성능 최적화' 모드로 설정해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저장장치의 데이터 전송속도를 측정해 수치적인 성능을 제시하는 HD Tune과 ATTO Disk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반적인 성능을 측정했다.
테스트 결과, 평균 읽기 속도의 경우 840 EVO는 470.1MB/s를 발휘해 451.9MB/s로 기록된 480을 약간 앞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쓰기 속도의 경우, 840 EVO는 458.5MB/s에 달하는 고속을 발휘해 254.8MB/s에 불과한 480을 그야말로 압도했다.
저장장치의 전반적인 민첩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응답시간 역시 840 EVO는 0.034ms을 기록해 0.057ms로 측정된 840보다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HDD의 경우 10~20ms 정도의 응답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보통이니 840도 분명 느린 것은 아니다.
부팅 속도 측정
수치가 잘 나왔다 해도 실제로 체감하는 성능은 다를 수 있다. 다음은 제품을 실제로 활용해 보며 느낄 수 있는 성능을 테스트했다. 우선 완전히 같은 데이터를 탑재한 두 SSD를 이용, PC의 부팅 속도를 측정해 비교했다. 설치된 운영체제는 윈도7 얼티밋 64비트 버전이며, 전원버튼을 누른 후 부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을 측정했다.
측정결과, 부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840 EVO는 17초, 840은 18초가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거의 오차범위 수준이므로 부팅 속도는 두 SSD가 거의 같은 성능을 발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운영체제 부팅은 거의 전적으로 읽기속도에 좌우되므로 앞서 벤치마크 프로그램에서 측정된 결과가 거의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파일 복사 속도 측정
다음은 저장장치 전반의 읽기와 쓰기 성능을 알 수 있는 파일 복사 테스트를 해봤다. 같은 SSD 안에서 10만개 정도의 파일로 이루어진 10GB 용량의 폴더를 복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다.
측정결과, 파일 복사 작업을 마치는데 840 EVO는 3분 5초(185초), 840은 4분 9초(249초)가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읽기 속도 차이가 그다지 없더라도 쓰기 속도에서 큰 차이를 가진 두 저장장치의 특성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수가 더 많고 용량이 큰 파일의 복사작업을 했다면 차이가 좀더 벌어졌을 것이다.
포토샵 속도 측정
마지막으로 해본 테스트는 응용프로그램 구동 속도 측정이다. 어도비사의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을 이용, 총 200개의 이미지 파일을 동시에 여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봤다. 양쪽 테스트 시스템의 CPU나 메모리 성능은 완전히 동일하므로 결과에 차이가 난다면 이는 순전히 저장장치의 성능 차이 때문이다.
측정결과, 작업을 마치는데 840 EVO는 1분 18초(78초), 840은 1분 41초(101초)가 걸리는 것으로 나타나 840 EVO가 좀더 쾌적하게 포토샵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연속적인 작업을 계속할 경우에는 저장속도의 응답시간이 영향을 미치는데, 벤치마크 프로그램 테스트에서 상대적으로 응답시간이 짧은 것으로 나타난 840 EVO의 특성이 포토샵 테스트에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SSD 시장 영향력 공고화될 듯
작년에 기자는 삼성 840의 리뷰를 진행하면서 'SSD를 넘어선 SSD'라고 제품을 호평한 바 있다. 성능이나 가격은 물론이고, 제조사 입장에서 중요한 생산 효율성까지 우수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후속 모델인 840 EVO 역시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TLC 기반의 SSD가 이 정도까지 고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TLC 제품으로선 가격이 생각보다 높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실제 성능을 보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수준이다.
시장 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의 지난 7월 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2년 세계 SSD 시장에서 23%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3년 시장에서는 한층 더 높은 점유율이 예상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특유의 강력한 마케팅이나 홍보 능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데, 여기에 뛰어난 제품 개발능력까지 갖췄다니, 이건 뭔가 '반칙'이 아닌가 싶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