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온 스마트한 장난감 - 나비태블릿
자녀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요즘 아이들의 IT기기에 대한 적응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물론 이제 막 옹알이를 졸업하고 걸음마를 뗀 무렵에는 누르면 동요가 나오고 불빛이 번쩍거리는 장난감 휴대폰이나 카메라 정도로 달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4~5살 정도만 되어도 아이들은 그런 장난감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진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아이들에게 진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주어 놀게 하기도 껄끄럽다. 이런 스마트기기들은 워낙 고가인데다 섬세한 물건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손에 쥐어줬다가는 고장 날까 불안하다. 게다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들이 스마트기기를 통해 부적절한 콘텐츠를 접하거나 중독이 되어 정신건강에 나쁜 영향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Fuhu사의 '나비(Nabi)' 태블릿은 요즘 같은 세상에 잘 어울리는 스마트한 장난감이다. 기본적으로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이면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는 유아 및 어린이들의 교육 및 놀이를 고려해 설계되었다. 또한 이를 관리하는 부모들을 위한 전용 모드도 준비되어있어 온가족용 스마트기기로 쓸 수도 있다. 스마트시대의 어린이들을 위한 나비태블릿의 면모를 살펴보자.
참고로 Fuhu사는 본 제품 외에도 나비주니어, 나비XD, 나비HD 등의 제품을 미국 시장에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 한국에 출시된 제품은 '나비2'인데, 이 제품만 단독으로 출시한 상태라 그냥 '나비태블릿'이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다. 따라서 본 기사에서도 이 제품을 나비태블릿이라 부르고자 한다.
주 사용자층을 고려한 두툼한 실리콘 케이스 인상적
나비태블릿은 7인치 크기에 1,024 x 600 해상도의 화면을 갖춘 안드로이드 4.0(ICS) 기반의 태블릿PC다. 크기만으로 보면 삼성전자의 갤럭시탭 초기 모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세서는 엔비디아의 쿼드코어 모델인 테그라3를 탑재해 성능을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주 사용자가 어린이라는 것을 고려, 나비태블릿은 실리콘재질의 범퍼 케이스가 장착된 채로 출고된다. 케이스의 두께가 상당해서 본체를 떨어뜨려도 파손될 걱정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또한 케이스의 그립감도 좋아서 쓰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질 우려도 적다. 다만, 제품을 들어보면 무게가 제법 나간다(약 600g). 어른이 들기엔 무리가 없지만 어린이에겐 다소 부담이 될 것 같다.
뒷면까지 아기자기하게 꾸미자
제품 뒷면에는 15개의 네모난 그리드(Grid)가 있다. 여기에는 별도로 판매되는 나비태블릿 전용 액세서리인 키나비(Kinabi)를 달 수 있다. 키나비는 일종의 아이콘으로, 동물모양이나 글자 모양 등이 있으므로 사용자 취향에 따라 키나비를 사서 달아 나비태블릿 뒷면을 꾸밀 수 있다.
제품 측면에는 충전용 어댑터를 꽂는 전원 포트와 PC와 데이터를 교환할 때 쓰는 마이크로 USB 포트(충전은 불가) 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마이크로SD카드 슬롯이 있다. 그리고 나비태블릿의 화면을 TV로 출력할 때 쓰는 미니HDMI 포트도 달려있다(HDMI 케이블은 별도 구매).
최초 기동 시 와이파이와 신용카드를 준비해둬야
나비태블릿을 처음으로 켜면 제품 등록과정이 실행된다. 여기에 사용자(부모)의 개인정보를 입력하게 되는데 이름이나 이메일등 외에도 신용카드 번호를 비롯한 유료 콘텐츠 결제 시에 쓰는 금융 정보도 입력하게 된다.
신용카드 번호 입력은 다소 거슬릴지 모르겠지만 이 과정을 하지 않으면 나비태블릿를 제대로 쓰기 위한 나비(nabi) 계정을 발급받을 수 없으니 그냥 지시에 따르도록 하자. 그리고 인터넷이 되지 않으면 나비 계정 발급을 위한 등록과정을 진행할 수 없으니 꼭 와이파이가 가능한 상태에서 하도록 하자.
부모를 위한 엄마/아빠모드도 탑재
초기 등록이 끝나면 이제부터 나비태블릿을 본격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나비태블릿은 일반적인 안드로이드 태블릿PC와 달리 2개의 홈(Home) 화면을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홈인 ‘나비 모드’가 기동되는데, 아이콘의 크기가 커서 누르기가 편하다. 그리고 부모가 지정한 앱과 교육용 앱만 표시되며 심지어 웹 브라우저도 부모가 지정한 일부 사이트에 한해 접속이 가능한 '키드 세이트(Kid- safe)' 브라우저만 나와있다(물론 부모가 원한다면 일반 웹 브라우저를 꺼내는 것도 가능하다).
때문에 나비 모드 상태에서는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캘린더를 확인하는 등의 일반 작업이 어렵다. 이 경우에는 화면 하단의 메뉴 버튼을 누르고 비밀번호를 입력해 엄마/아빠 모드로 홈을 전환하면 된다. 엄마/아빠 모드에서는 일반적인 태블릿PC처럼 쓸 수 있고 각종 시스템 설정도 할 수 있다. 다만, 구글플레이 스토어를 이용할 수 없으므로 일반 태블릿PC처럼 각종 앱을 설치해 기능을 확장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엄마/아빠 모드에서 이용할 수 있는 나비태블릿 전용의 앱 스토어인 앱존(App Zone)이 있긴 하지만 이곳은 구글플레이 스토어에 있는 교육 및 놀이용 앱 카테고리에 등록된 일부 앱만 모아둔 것이다. 무료 앱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가 유료앱이며, 앱의 가격도 다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서 구글플레이 스토어를 통해 구매하는 것보다 다소 비싼 편이다.
나비 코인 시스템 인상적이지만 유료 결제는 부담
다시 나비 모드로 돌아가보면 기본적으로 30여개의 기본 앱이 설치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앵그리버드'나 '후루츠닌자'와 같은 게임앱, 연필로 그린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펜슬카메라', 색연필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컬러앤드로우', 악기를 연주하는 '드로이드드럼'과 같은 놀이용 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외에 사진을 찍는 카메라 앱이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뮤직 앱 등도 있다.
다만 아쉽게도 기본적으로 설치된 대부분의 앱들이 일반적인 안드로이드기기에서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는 것들이고, 또 상당수의 앱들은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완전한 기능을 쓸 수 있는 데모(Demo) 버전이나 라이트(Lite) 버전인 경우가 많다. 나비 모드에서는 일종의 간이 앱스토어인 '보물함'을 통해 새로운 앱을 내려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나비 코인'이라는 나비태블릿 내에서 쓰는 가상 화폐가 필요하다.
싼 앱은 35코인, 비싼 앱은 175코인 정도의 나비 코인이 드는데, 이는 유료로 구매해야 한다. 나비코인은 최소 150코인 단위로 살 수 있으며, 6,500원을 결제해야 한다. 최대 3,300코인까지 한 번에 살 수도 있는데 이 때는 13만원이든다.
이렇게 구매해 적립한 코인으로 아이에게 곧장 새로운 앱을 사줄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아이에게 과제를 주고 이를 달성할 때마다 일정액의 코인을 주어 스스로 앱을 구매하도록 할 수도 있다. '해야 할일' 앱을 실행해 예를 들어 '인사', '세수' 등의 과제를 설정, 이를 실천에 옮길 때마다 나비 코인이 주어지도록 할 수 있다. 다만, 아이가 과제 달성을 많이 할수록 부모는 그만큼 더 많은 나비 코인을 구매해둬야 하는 한다는 것을 알아두자.
아쉬운 현지화, 영어 못하면 완전한 사용 어려워
이 외에 나비태블릿에는 교육용 앱인 '푸즈 키즈(Fooz Kids)' 시리즈도 탑재되어 있다. 사실 이 푸즈 키즈의 교육용 앱들이 나비태블릿 최대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영어 및 계산, 그림, 과학, 사회 등을 즐기면서 배우는 앱이 준비되어있으며, 아이가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를 쳐서 자신만의 책을 만들 수 있는 앱도 있다. 다만, 각 앱의 타이틀 화면만 한글화가 되어있고 내용은 영어판 그대로라 한국 가정에서 그대로 쓰기엔 다소 어려움도 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인터넷 동영상을 볼 수 있는 비디오(Video) 앱도 있는데, 여기서는 디즈니나 드림웍스, 새서미 스트리트 등에 관련된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다만, 이들 동영상은 모두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며, 한 편을 완전히 담은 것 보다는 짤막한 동영상 클립으로 나뉜 것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한국어 더빙이나 한글 자막 처리가 되어있지 않다.
실제로 아이에게 쓰게 해보니 '방긋'
참고로 기자의 집에는 생후 37개월이 된 딸이 있다. 간단하게나마 의사표현을 할 수 있으며 '뽀로로'와 같은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한창 좋아할 나이다. 이 아이에게 나비태블릿을 쥐어주며 놀게 해봤다. 푸즈 키즈의 교육용 앱을 즐기게 하는 것은 다소 무리인 것 같아 게임이나 악기연주, 그림 그리기 등의 앱을 실행시켜주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어하며 몇 시간이나 붙잡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이가 나비태블릿을 사용하는 도중에 바닥에 떨어뜨렸지만 기본으로 제공되는 실리콘 범퍼케이스 덕분에 파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한참 지나고 보니 아이는 아예 나비태블릿을 바닥에 내려두고 쓰기 시작했다. 제품의 무게가 제법 나가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바닥에 두고 쓸 때도 실리콘 범퍼 케이스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고 안정적인 사용이 가능한 것 같다.
아쉬운 점 제법 있지만 부모의 심정이라면…
나비태블릿은 다른 태블릿PC와 달리 단순히 '가격대비 성능'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제품이다. 아이들의 교육 내지 놀이용으로 개발된 제품인 만큼, 하드웨어 얼마나 쓰기 편하고 튼튼한지, 그리고 제공되는 소프트웨어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유용한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나비태블릿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의미는 아니다. 2013년 6월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서 19만원 내지 20만원 초반 대 정도로 팔리고 있는데 이 정도면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본체가 약간 묵직하긴 하지만 안정감이 있으며, 함께 제공되는 실리콘 범퍼케이스는 제품 보호 외에도 그립감 향상, 그리고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외관까지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소프트웨어 측면은 다소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미국에서 호평을 얻은 콘텐츠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곤 하지만, 현지화가 거의 형식적인 수준이라 영어를 못하면 제대로 활용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유료결제를 하지 않으면 완전한 기능을 쓰지 못하는 콘텐츠가 태반인 점도 마음에 걸린다. 유료 콘텐츠의 이용률이 높은 미국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무료 콘텐츠에 너무나 익숙해진 한국 소비자들에게 이런 방식이 통할지는 다소 의문이다.
다만, 이런 평가는 모든면에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면 그만큼 제품의 점수를 깎아야 한다는 기자 특유의 강박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아이에게 나비태블릿을 쥐어주고 쓰게 해보니 상당히 집중하며 즐기는 것을 실제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이를 방긋거리며 이용할 수 있다면, 최소한 사서 후회할 제품은 아닌 것 같다.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