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구매자 '멘붕', 내 아이폰이 19만 원짜리 버스폰이 되다니...
굳건한 '가격방어'를 자랑하던 아이폰마저 치열한 고객유치 쟁탈전 앞에 '버스폰(가격이 버스요금만큼 저렴하다는 의미)'으로 전락했다.
지난 13일, 인터넷 휴대폰 판매사이트를 중심으로 아이폰5 16GB 모델이 할부원금 32만 원에 풀리기 시작했다. 특정 요금제를 사용하면 13만 원을 추가로 할인해준다는 내용(프로모션 할인)도 섞여 있었다. 사실상 19만 원에 판매하는 셈이다. 지난해 9월 일어난 '갤럭시S3 17대란'에 버금가는 사태다.
스마트폰의 가격은 이동통신 3사가 '얼마나 보조금을 지급하는지'에 따라 변한다. 출고가에서 이동통신 3사의 보조금을 제외한 가격, 다시 말해 '구매자가 실제로 지급해야 하는 스마트폰의 가격'을 '할부원금'이라 한다. 할부원금은 출시 후 점점 낮아지는 것이 관례다. 이동통신 3사가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보조금을 늘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아이폰4', '아이폰4S'는 발매 당시의 높은 할부원금(가격)을 고스란히 유지(방어)했다. 이러한 현상을 '가격방어를 잘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아이폰5의 할부원금이 폭락함에 따라 이러한 가격방어도 다 옛말이 됐다.
출시한지 고작 한달 만에 할부원금이 81만 4,000원에서 32만 원으로 떨어짐에 따라 미리 예약 구매한 사용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전농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모씨(28)는 “발매 당일 줄 서가며 아이폰5를 구매했는데 가격이 고작 한달 만에 1/3 수준으로 떨어지다니 당황스럽다”며, “아이폰이 가격방어가 잘된다고 하기에 제값 주고 구매했는데 당장 환불하고 싶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처럼 할부원금이 급격히 떨어짐에 따라 다른 스마트폰보다 높았던 아이폰5의 중고가도 하락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휴대폰 중고거래 사이트에 종종 보이던 아이폰5 중고매물이 13일 오후부터 급격히 자취를 감췄다. 판매자들이 가격하락의 추이를 지켜보는 모양새다.
할부원금, 왜 폭락했나?
이번 아이폰5 할부원금 폭락은 SK텔레콤 번호이동 조건에서 발생했다. 이동통신사를 SK텔레콤으로 옮기면 아이폰5를 저렴하게 판매하겠다는 의미다. 신규가입(새로 가입하는 것), 보상기변(이동통신사는 변경하지 않고 휴대폰만 변경하는 것)의 경우 아이폰5를 제값에 판매했다. KT는 어떤 조건으로든 아이폰5를 정상적인 가격에 판매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아이폰5 할부원금 폭락 사태의 원인을 아이폰5 판매 부진과 SK텔레콤의 영업정지에서 찾는다. 1달만에 100만 대 이상 판매될 것으로 예상했던 아이폰5의 실제 판매량이 40만 대 내외에 불과한데다, 오는 1월 31일부터 시작되는 영업정지를 앞두고 타 이동통신사의 가입자를 끌어들이고자 SK텔레콤이 강수를 뒀다는 의미다.
저렴한 가격 속에 숨어있는 함정
아이폰5 할부원금 폭락은 스마트폰을 구매하려는 이들에게 귀가 솔깃한 정보지만, 무턱대고 구매하는 것은 곤란하다. 저렴한 가격 속에 감춰진 자세한 조건들을 하나하나 살펴야 한다.
일단 프로모션 할인을 미끼로 장기간 높은 액수의 요금제 사용을 유도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프로모션 할인을 받으려면 6만 2,000원 이상의 요금제를 사용해야 한다. 그 이하의 요금제를 사용하면 프로모션 할인액이 줄어든다. 때문에 6만 2,000원 요금요금 사용할 때 지불하는 금액이 5만 2,000원 요금제를 사용할 때보다 적다. 얼핏 보면 사용자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이 조건과 할인반환금 제도(위약금3)가 결합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번 아이폰5 번호이동은 모두 할인반환금 적용대상이다. 할인반환금이란 스마트폰을 2년 이상 사용하지 않고 중도에 약정 계약을 해지하면 할인 받은 금액의 일부를 위약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제도다. 할인반환금은 높은 요금제를 사용할수록 늘어난다. 할인 받은 금액이 크기 때문이다. 프로모션 할인 때문에 6만 2,000원 이상 요금제를 사용한 이들은 할인반환금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
아이폰5를 2년 이상 사용할 실사용자들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실, 파손 등 불의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스마트폰 보험 정도는 꼭 가입하는 편이 좋겠다.
가입비(SK텔레콤 3만 6,000원)와 유심비(약 8,000원)도 지출의 일부다. 판매자 가운데 가입비와 유심비를 받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신중하게 조건을 따져야 한다.
과도한 보조금 지급, 왜 문제인가?
과도한 보조금 지급이 왜 문제인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확하게 지적했다. '차별적 보조금 지급에 따른 가입자간의 부당한 차별'이다. 정보를 얼마나 접했는지에 따라 누구는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구매하고, 누구는 출고가를 다 주고 구매한다. 심지어 구매 가격이 수십 만 원씩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14일 일반 휴대폰 매장은 아이폰5를 약 60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인터넷 휴대폰 판매 사이트는 약 30만 원에 판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접하기 힘든 이들은 스마트폰을 비싸게 구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할부원금을 19만 원으로 낮추려면 보조금을 27만 원 초과 지급해야 한다. 27만 원 이하로 보조금을 지급하라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권고가 무색하다.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가지만은 확실하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교훈을 얻은 소비자들은 향후 제값 주고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를 꺼릴 전망이다. 보조금을 지급하기 전까지 신제품 판매가 주춤할 수밖에 없다. 제품 판매량이 제품의 품질이 아닌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지급 여부에 달린 기형적 시장, 우리 이동통신시장의 현주소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그림 / IT동아 김민주(mjkslove@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