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란' 이후, 마약처럼 은밀하게 거래되는 '버스폰'

김영우 pengo@itdonga.com

"밀지 마시고 들어오신 순서대로 신청서부터 써 주세요!"

지난 17일, 서울 구로구의 한 자그마한 오피스텔에 수십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 소동의 원인은 다름아닌 스마트폰 개통 때문이었다. 일반 매장에서는 할부원금 기준 60만 원 이상에 판매되는 '옵티머스LTE2'와 '베가R3'를 각각 7만원, 15만원에 개통해 준다는 업자가 모 쇼핑정보 사이트에 출현했기 때문이다. 버스요금만큼이나 싸게 파는 폰이라 하여 이른바 '버스폰'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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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란' 이후, 마약처럼 은밀하게 거래되는 '버스폰' (2)

인터넷 사이트에서 영업을 하는 대부분의 이동통신 판매업자들은 가입에서 개통까지 온라인에서 그대로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굳이 이렇게 현장까지 고객을 불러들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날은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이 업자는 판매 글을 올리면서 "최근 '스나이퍼'가 극성을 부리는 탓에 현장을 내방해서 신분 확인을 해 주시는 분들만 개통해 드립니다. 양해 바랍니다"라는 공지를 함께 올렸다.

여기서 말하는 '스나이퍼'란, 이동통신업체나 방통위에서 정한 가이드(가격도 포함)를 위반한 판매업자를 통신사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신고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단속에 적발된 업자는 일정기간 판매를 할 수 없는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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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란' 이후, 마약처럼 은밀하게 거래되는 '버스폰' (3)

그리고 때로는 서류 상으로는 '정상가'에 개통해 주면서 개통 후 '별'을 준다는 업자도 사이트에 종종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별이란 현금을 뜻한다. '개통 후 다음 달에 별 32개 증정'이라면 현금 32만원을 입금해 준다는 의미다. 이 역시 '스나이퍼'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판매 글들은 자정이나 새벽에 잠시 올라왔다가 일정 수의 가입자 모집이 끝나면 곧장 사라진다.

'갤럭시 대란' 이후, 너무 싸게 팔아도 문제?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물건 값을 매기는 것은 판매자의 재량이다. 게다가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아니고 판매자의 이윤을 줄이면서까지 시중 가격보다 싸게 파는 것이 단속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판매에 관련해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 사이의 이해관계, 그리고 한 푼이라도 싸게 최신 스마트폰을 손에 넣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열망이 어우러진 탓이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방통위의 한계도 있다.

본래 스마트폰 단말기의 출고가는 9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다. 하지만 각 이동통신사에서는 소비자가 일정 기간 이상(대개 2년) 해당 통신사에 가입 상태를 유지하는 약정계약을 맺으면 매달 일정액의 보조금을 지급하여 단말기 할부대금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가입자를 모집하고 있다. 따라서 단말기의 판매 역시 제조사가 아닌 이동통신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각 이동통신사가 가입자와 대리점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 9월 초에는 출고가가 99만 4,000원에 이르는 최신 스마트폰인 삼성전자의 '갤럭시S3'가 할부원금 17만원에 팔리는 이른바 '갤럭시 대란'까지 일어났다.

이로 인해 당시 소비자들은 최신 스마트폰을 싸게 구매할 수 있었지만 부작용도 컸다. 갤럭시S3와 같은 일부 인기 기종을 제외한 타사 단말기들의 판매량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이동통신사들은 보조금 투입에만 신경 쓰는 바람에 서비스 개선과 기술 개발에 투입해야 할 여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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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란 이후, 마약처럼 은밀하게 거래되는 '버스폰' (3)

급기야 방통위에서 이동통신 3사에 과도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할 것을 요구, 갤럭시 대란은 9월 중순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리고 지난 12월 24일,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가 단말기 보조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해 이용자를 부당하게 차별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3사 합계 총 118억 9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내년 1월 7일부터 LG유플러스를 시작으로 차례로 20~24일간 신규 및 번호이동 가입자의 유치를 금지하는 영업정지 처분도 내렸다.

스팟매장, 폐쇄몰 모르는 소비자는 '호구'가 되는 현실

이로 인해 9월 이후 시장에서 공식적인 '버스폰'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갤럭시S3 17만원'에 이미 중독되어버린 소비자들이 정상가에 단말기를 살 리가 만무했다. 전반적인 이동통신 시장이 위축되는 이른바 '빙하기'가 찾아왔으며 '갤럭시 대란' 이후에 나온 LG전자의 옵티머스G, 팬택의 베가R3와 같은 각 사의 야심작들이 판매 부진을 겪는 일이 속출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아주 은밀하고 단발적으로 '버스폰'을 파는 이른바 '스팟매장'이 등장했다. 이들의 특징이라면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대로 미리 신분을 철저하게 확인한 고객만 직접 매장을 방문하게 하여 개통을 시켜주거나 정상가 개통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민 후에 '별'을 따로 지급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는 이런 스팟매장이 비밀스럽게 영업을 하는 '폐쇄몰'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은 이동통신사는 물론 단말기 제조사, 그리고 소비자에게도 가히 좋다고 할 수 없다. 이동통신사는 가격 이외에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기가 힘들고, 단말기 제조사 간의 빈익빈, 부익부는 심해지며, 알뜰파 소비자들은 마치 마약이나 총기를 거래하듯 은밀하게 휴대전화를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을 잘 몰라서 정상가로 휴대전화를 구매한 상당수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호구'가 되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해결방안은 시간?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동통신사가 아닌 제조사가 직접 단말기 판매에 적극 참여하거나 출고가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이동통신 3사 과점구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이동통신 업체의 등장을 바라는 목소리도 크다.

이에 따라 실제로 지난 5월부터 단말기만 따로 구매할 수 있는 '단말기 자급제(블랙리스트제도)'가 실시되었으며, 기존 3사 외에도 독자적으로 영업을 하는 MVNO(이른바 알뜰폰) 통신사업자도 등장했다. 하지만 2012년 현재, 자급제용 단말기의 종류가 제한적인데다 가격도 싼 편이 아니다. 그리고 MVNO의 경우,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뿐더러, 서비스나 통신요금 면에서 기존 이동통신 3사에 비해 이점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라면 '시간'일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의 머릿속에서 '갤럭시S3 17만원'의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현재 스마트폰 시장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업의 노력이나 정부의 제어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 어찌 보면 시간만이 유일한 답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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