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KES] 합체해라, 그러면 편리해지리라
바야흐로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의 시대다. 하나의 디지털 기기가 다른 디지털 기기와 융합하거나 일부 기능을 흡수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한다. 이로 인해 챙겨야 할 물건이 줄어들고, 공간은 효율적으로 탈바꿈한다. 인류 역사상 3번째 대변혁인 디지털 혁명이 본궤도에 진입하면서 디지털 컨버전스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정점은 스마트폰이 찍었다. 이전에도 프린터와 복사기가 결합한 올인원 복합기나 디지털카메라와 무선전화가 결합한 휴대전화 등이 있긴 했지만, 스마트폰처럼 전방위적으로 다른 디지털 기기를 흡수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었다. 스마트폰은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PC, 디지털카메라, GPS 등 수많은 기능을 빨아들이면서 IT 시장에 우뚝 섰다. 심지어 IT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제조, 유통산업까지 손길을 뻗었고 그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종전의 디지털 컨버전스가 IT산업 내 자화수분(self-pollination)이었다면, 작금의 디지털 컨버전스는 다른 형질을 가진 산업과의 이종교배에 가깝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물건과 IT기기가 만나고,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새로운 물건이 탄생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진화가 아닐까.
대표적인 사례가 아디다스의 'LCD슈즈'다. 신발 디자이너 내쉬 머니(Nash Money)가 디자인한 이 컨셉 스니커즈는 측면에 트위터를 할 수 있는 액정화면을 탑재했다. 운동선수와 팬들의 실시간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기상천외한 작품이다. 예를 들면 육상선수가 경기장에 등장하는 순간 팬들은 그에게 트위터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목전에 둔 육상선수는 발을 가볍게 들어올려 메시지를 확인하고 힘을 얻는다. 참으로 멍청하고 비효율적인 제품이라고? 물론 이 제품은 당분간 혹은 영원히 상용화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식과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한 멋진 컨버전스라는 점에서는 박수를 받을만 하다.
이번 2012 전자정보통신산업대전에서도 이처럼 고정관념에 도전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트위터를 주고받는 신발만큼 파격적이지는 않지만, 그보다 훨씬 실용적이다. 전혀 다른 두 물건이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자.
다이아소닉의 화장거울 'DL-100CH'는 LED 조명과 만났다. 둥근 거울 테두리를 따라 작은 LED 조명이 조밀하게 배치됐다. 이 조명들은 간단한 조작만으로 자연광, 형광등, 백열등 3가지 색온도로 변화한다. 화장실 거울에서 가장 예뻐보인다는 단순한 착시효과를 노린 제품이 아니다. 형광등 아래에서 완벽하게 화장을 마친 후 외출을 했다가 햇빛 아래에서 적나라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조명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HNS의 자전거 시뮬레이터 '비헬크'는 비디오게임과 운동의 장점을 유쾌하게 결합한 제품이다. 겉보기에는 일반적인 자전거 모양의 운동기구인데, 앞부분에 실제 지형을 3D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LCD 화면이 달렸다. 화면속 풍경이 오르막길로 변하면 본체의 페달이 무거워지고, 내리막길로 변하면 그 반대가 된다. 더 재미있는 점은 다른 사람들과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것. 마치 온라인게임과도 같다. 게임과 운동의 컨버전스가 얼마나 실용적인지는 이미 닌텐도의 '위(Wii)'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넥트(Kinect)'등 동작인식게임기들의 성공에서 충분히 검증됐다.
아하정보통신의 'ELF'는 세계 최초로 광시야각 모니터와 태블릿모니터를 동시에 지원하는 전자교탁이다. 고작해야 출석부와 교편을 올려놓는 도구에 불과했던 나무교탁 대신 인터넷 강의용 마이크, 노트북, 전자칠판 기능까지 지원하는 최첨단 전자교탁이 들어섰다. 물론 디지털 출석부가 종이 출석부를 완전히 밀어내기 전까지 종이 출석부를 올려놓을 공간은 충분하다.
이담정보통신은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스마트와치 '와치독'과 '폴엑스'를 선보였다. 스마트폰의 전화 발신자 확인, 문자메시지 확인, 음악재생 등의 기능을 손목시계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이로써 스마트폰에 등떠밀려 완전히 갈 곳을 잃었던 디지털시계가 목욕탕이나 수영장 등 스마트폰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프로케어의 'LED 전동칫솔'은 전동칫솔 머리 부분에 기능성 LED 조명을 탑재했다. 구강 내 상처를 살균하고, 치아미백에도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LED 빛의 특정 파장이 인체를 치료하고 재생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에서 착안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컨버전스의 범람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사용자의 선택권이 줄어들고, 새로운 제품의 사용법을 익히기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나 컨버전스의 목적은 기존 제품의 멸종이나 편의성의 퇴화가 아니다. 도태하던 산업에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사용자에게는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무작정 거부감을 표하기보다는 일단 결합을 지켜보자. 그러면 분명히 편리해지리라.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