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46년째 웰메이드로 승부' 제이피아이헬스케어 안산 공장, 그리드 생산 현장 가보니
[IT동아 박귀임 기자] 경기 안산에 위치한 토탈 이미징 솔루션 기업 제이피아이헬스케어의 공장. 지난 9월 강연신 제이피아이헬스케어 생산본부 이사의 안내에 따라 안산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설비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설비들은 정교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이 설비들이 만들어 내는 것은 엑스레이 장비의 핵심 부품인 '그리드(Grid)'다.

엑스레이 영상의 선명도는 검출기(디텍터)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환자의 몸을 통과하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산란선을 걸러내는 얇은 부품 그리드가 영상 품질을 좌우한다. 겉보기엔 얇은 판에 불과하지만, 그리드 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수십 단계의 공정과 숙련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제이피아이헬스케어는 이 부품을 46년째 만들어 왔다.
국산화 성공, 해외 주요 규격 도입
1980년 설립된 제이피아이헬스케어 안산 공장은 과거 일본과 유럽 기업이 독점하던 그리드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제이피아이헬스케어에 따르면 현재 GE, 지멘스, 필립스 등 300여 개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에 납품하며 그리드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2008년에는 '세계일류상품'으로도 선정된 바 있다. 세계일류상품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선정하는 정부 공식 인증 제도로, 세계 시장 점유율과 경쟁력 등이 높은 제품에 주어진다.
안산 공장에서 생산하는 그리드 모델은 두 가지다. 주력 모델 '그리드 1000(Grid 1000)'은 연간 7만 장을 생산하는 양산형이고, 하이엔드 모델 '그리드 2100(Grid 2100)'은 연간 6500장을 생산하는 고사양 제품이다. 여기에 크기부터 모양까지 맞춤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품질 관리는 해외 주요 규격을 기반으로 한다. ISO 13485(국제)를 비롯해 EU MDR(유럽), KGMP(국내), FDA QMSR(미국) 등 주요 규격을 도입했다. 이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고객사의 요구 수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그리드는 특유의 고도화된 정교함과 정확성을 기반으로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제이피아이헬스케어는 모든 작업 공정에 엄격한 자체 품질 기준을 반영해 불량률을 관리 중이다. 강연신 이사는 "100% 완벽한 제품이 아닐 경우 전량 불량 처리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설비 자동화와 숙련자 수작업으로 품질력 높여
제이피아이헬스케어에 따르면 안산 공장의 전체 공정 기준 자동화율이 50% 이상이다. 정밀도와 직결되는 핵심 공정에는 대부분 자동화 설비를 갖췄고,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한 구간은 반자동 설비로 보완한다. 다만 그리드 제조는 구조상 숙련 작업자의 정밀 수작업이 필수이며, 최종 영상 품질 검사는 지금도 육안으로 한다. 영상 품질 이중 검사는 물론 QC 담당자가 현장에 상주하며 샘플을 전수 검사하는 것 역시 품질력을 높이는 대목이다.

안산 공장에서는 1팀이 그리드 1000을, 2팀이 그리드 2100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그리드 1000은 기초 접착 공정에서 최종 포장까지 약 30단계를 거친다. 그리드의 라인이 균일하고 정확한 각도로 만들어지는지가 영상 해상도를 가르는데, 이 균일성과 각도가 확정되는 '샤링(Shearing)'과 '조립' 공정이 가장 까다로운 구간이다.
그리드 2100의 경우 원자재를 직접 깎는 '소잉(Sawing)' 공정이 중심이고, 공정은 약 20단계로 그리드 1000보다 짧다. 단계가 줄어드는 대신 한 단계의 정밀도 요구가 높아진다. 가공 날 두께는 평균 27마이크로미터(㎛)로 머리카락(80~100㎛)보다 가늘다. 피치·깊이·각도는 프로그램으로 설정해 반복 가공한다. 강연신 이사는 "반도체 웨이퍼 가공 방식을 적용해 1000분의 1mm 수준의 초정밀도로 라인을 가공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자동화 설비는 제이피아이헬스케어가 자체 개발했다. 40년 이상의 그리드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이에 2팀은 고도의 숙련도를 갖춘 전문 인력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생산 체계를 확립해 높은 수익성을 실현하고 있다.
안전부터 직원 만족까지 '시스템 최적화'
안전, 경쟁력, 직원 만족이 안산 공장 운영의 3대 철칙이다. 현장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공정 혁신으로 적정 원가를 달성하며, 임직원이 보람을 느끼는 근로 환경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결과 근속 연수가 높은 직원이 대부분이다. 강연신 이사 역시 입사 30년을 앞두고 있다.

또 안산 공장에서는 '기록하지 않은 것은 실행하지 않은 것'을 원칙으로 한다. 모든 공정에 바코드를 비치한 것도 이 일환이다. 제품이 다른 공정으로 넘어갈 때마다 바코드로 이력을 남기고, 어느 단계에서 누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가 데이터로 쌓인다. 생산 과정 전체가 기록으로 남는 구조라 업무 정확도 역시 높아졌다. 기록 방식도 종이에서 전산으로 옮겼다. 공정 데이터와 품질 기록을 전산으로 관리하면서 손으로 적고 옮기는 과정에서 생기던 누락과 오기를 줄였다. 필요한 기록을 바로 찾아볼 수 있으니 외부 인증기관의 정기 심사나 고객사의 현장 평가에도 대응하기 쉽다.
기자가 안산 공장을 돌아보는 내내 기대 이상으로 쾌적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모든 공정마다 설치돼 있는 항온·항습기 덕분이었다. 강연신 이사는 "정밀 가공이 필수적인 만큼 공장 내 온·습도의 엄격한 통제는 그리드 제조의 핵심 요소"라면서 "24시간 항온·항습기를 가동해 항상 최적의 작업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 영역 확장···스마트 팩토리 구축 계획
제이피아이헬스케어는 기존 의료기기 분야를 넘어 산업용 비파괴검사(NDT) 및 보안 장비 등 고부가가치 시장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비파괴검사는 제품을 파손하지 않고 엑스레이 등으로 내부 결함을 확인하는 기술로, 항공·자동차·배터리 등 산업 현장에서 쓰인다. 보안 장비의 경우 수하물을 열지 않고 엑스선으로 내부를 확인할 수 있다. 제이피아이헬스케어에 따르면 글로벌 대형 수하물 보안 장비 기업과 핵심 부품 공급을 위한 비즈니스 논의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의료기기 부품 제조사를 넘어 전 산업군을 아우르는 글로벌 토탈 이미징 솔루션 선도기업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지속적인 연구개발 역시 이어간다. 제이피아이헬스케어는 자사 기술연구소가 개발한 AI 기반 품질 검사 프로그램을 점진적으로 적용해 평가 중이다. 로보틱스를 활용한 공장 자동화를 확대하고, 지능형 AI 검사 기술도 고도화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스마트 팩토리 구축도 실현할 뜻을 드러냈다. 강연신 이사는 "자사가 보유한 초정밀 제조 기술에 AI와 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을 적극 융합해 기존 제품과 공정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면서 "국내 우수한 제조 기술력이 글로벌 무대에서 혁신을 선도하고 산업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십 단계를 거치는 공정과 숙련자의 정밀 수작업,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관리 체계, 완벽하지 않으면 불량으로 처리하는 원칙, 그리고 자체 개발한 설비가 만드는 정밀도까지. 이것이 제이피아이헬스케어의 그리드가 '웰메이드'를 내세울 수 있는 이유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