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것은 마르지 않는 물이다 [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IT동아]
2021년 봄, 대만의 저수지들이 바닥을 드러냈다. 어떤 저수지는 저수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고, 일부는 5퍼센트 아래로 내려갔다. 그해 대만 정부는 일부 지역의 수돗물 공급을 주 이틀 끊었고, 농지에는 물을 대지 않았다. 세계 최첨단 반도체 공장들이 모여 있는 그 섬에서, 팹들은 급수차를 동원해 라인을 지켰다.

대만은 물이 적은 나라가 아니다. 연평균 강수량은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많다. 태풍이 한 해의 물 상당량을 실어다 주는데, 전해에 태풍이 한 번도 상륙하지 않았고 이듬해 비마저 적었을 뿐이다. 평균은 넉넉했지만, 한 해가 무너졌다. 이것이 바로 반도체 용수 문제의 본질이다.
평균값은 공장을 돌리지 않는다
수자원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연간 총량이나 평균 강수량을 본다. 그런데 공장은 연평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공장은 항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물을 평가하는 기준도 "평상시에 얼마나 있는가"가 아니라 "가장 나쁜 해에도 확실히 줄 수 있는 양이 얼마인가"여야 한다.
수자원공학에서는 이것을 보장공급량(firm yield)이라 한다. 계산 방식은 직관적이다. 과거 수십 년의 기록에서 가장 혹독했던 가뭄을 골라내고, 그 조건이 다시 왔을 때 이 수원이 하루도 끊기지 않고 공급할 수 있는 양을 찾는다. 대개 그 값은 평상시 공급량보다 한참 작다.
가정의 수도라면 가뭄에 절수로 대응할 수 있다. 농업용수는 작기를 조정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최첨단 반도체 팹은 다르다. 24시간 연속으로 돌아가는 공정이고, 며칠만 물이 끊겨도 라인 전체가 멈춘다. 그래서 팹의 용수 계약은 사실상 최악의 해를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 하루 몇 톤이 아니라, 최악의 해에도 하루 몇 톤인가.
더한다고 안전해지지 않는다
여기서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수원을 여러 개 확보하면 그만큼 안전해진다는 생각이다.
광주 군공항 자리에 메모리 팹 네 기를 짓겠다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을 살펴보자. 정부가 제시한 초기 필요량은 하루 65만 톤 규모다. 이 물량은 동복댐 30만 톤, 주암댐과 장흥댐 15만 톤, 보성강댐 10만 톤, 나주댐 10만 톤으로 채우는 것이 6월 말 공개된 구성이다. 8월에는 광주 제1하수처리장의 재이용수 30만 톤을 포함해 가뭄에 대비한 확보 가능량이 하루 106만 톤으로 제시됐고, 9월 초에는 2032년까지 하루 133만 톤의 공급능력을 갖추겠다는 목표가 등장했다. 공급 시점도 2028년 말 15만 톤, 2030년 65만 톤, 2032년 133만 톤으로 나뉘었다.
숫자만 보면 여유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발표될 때마다 커지고 있다. 그러나 수원을 합산할 때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수원들은 서로 독립적인가.
댐 세 곳의 물은 결국 같은 하늘에서 온다. 광역적인 가뭄이 들면 동복댐도, 주암댐도, 나주댐도 함께 줄어든다. 주식시장에서 여러 종목에 나누어 투자해도 시황이 무너지면 모두 무너진다. 서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을 여러 개 모으는 것은 분산이 아니다. 수원도 마찬가지다. 강수에 함께 의존하는 수원을 더하면 총량은 늘지만, 최악의 해에 보장되는 양은 기대만큼 늘지 않는다.
환경부가 2023년 펴낸 영산강·섬진강유역 가뭄백서를 보면, 2022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가뭄에서 동복댐 저수율은 19퍼센트대로 14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고 주암댐은 20퍼센트까지 떨어져 준공 이후 처음으로 가뭄 심각 단계에 들어갔다. 장흥댐도 비슷한 시기에 20퍼센트대로 내려갔다. 반도체 산단의 수원으로 거론되는 댐들이 3년 전 같은 시기에 나란히 바닥을 보인 것이다.
133만 톤이라는 숫자는 확보된 안정 공급량이 아니라 명목상의 합계다. 여기에는 비상시에 대비해 남겨두는 예비물량까지 총량에 함께 더해져 있다. 실제로 의미 있는 계산은 각 수원의 보장공급량을 구하고, 그것들이 가뭄에 얼마나 함께 움직이는지까지 반영한 물수지 분석이다.
같은 물을 두 번 쓴다는 것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광주 제1하수처리장과 연계해 하루 30만 톤 규모의 재이용수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하수처리장은 후보지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처리용량은 하루 60만 톤이다. 처음에는 가뭄에 대비하는 추가·대체 수원의 성격이 강했으나, 최근 논의에서는 산업단지에 상시 공급할 주요 용수원으로 위상이 옮겨오고 있다.
이것을 절약이나 친환경의 문제로만 읽으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재이용수의 진짜 가치는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하수는 비가 오지 않아도 발생한다. 도시가 물을 쓰는 한 하수처리장에는 매일 비슷한 양이 들어온다. 극심한 가뭄으로 생활용수가 제한되면 하수량도 뒤따라 줄어들지만, 그 진폭은 타 수원에 비해 훨씬 작다. 즉 재이용수는 강수량과의 상관성이 낮다.
수원 포트폴리오에서 이런 자산은 총량을 늘리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다른 수원들이 동시에 줄어드는 그 순간에도 제 몫을 유지하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의 최악의 해 공급능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린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있다. 바로 받아온 물을 공장 안에서 재사용하는 것이다. TSMC는 2022년 대만 남부과학단지에서 공정 폐수를 생물처리와 역삼투로 되살려 다시 반도체 공정에 넣는 시설을 가동했고, 물이 부족한 애리조나에서도 같은 방식의 재생플랜트를 짓고 있다.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하며, 가동 초기 재활용률 85퍼센트에서 90퍼센트 이상으로 높여 사실상 방류를 없애겠다는 설계다.
하수처리수와 공장 폐수의 재이용이 향하는 곳은 같다. 팹이 비와 댐에 직접 기대는 양을 줄인다는 점이다. 즉 자연취수량을 줄이는 것이다. 하늘에 덜 의존할수록 가장 마른 해에 받는 타격도 작아진다. 호남반도체 하루 취수량 65만 톤도 고정된 값이 아니며, 두 가지 재이용을 어디까지 밀어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반도체 공정에 다양한 용도의 물이 사용되므로, 용도에 맞게 경제성과 효율에 입각하여 적절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팹의 용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초순수다. 미네랄은 물론이고 미생물, 미세입자, 용존 기체까지 거의 완전히 제거한 물이다. 원수의 수질이 계절마다 달라지면 처리 공정도 그때마다 다시 맞춰야 하므로, 물의 양만큼이나 수질의 안정성이 각별히 중요하다.
그리고 잊기 쉬운 쪽이 하나 더 있다. 하루 수십만 톤을 받아들이는 공장은 그에 버금가는 양의 폐수를 내보낸다. 폐수처리시설의 용량이 취수 계획과 같은 속도로 준비되지 않으면, 물이 있어도 공장은 돌아가지 않는다.
평균이 아니라 최악을 관리하는 일
호남의 용수 문제는 이 사업이 처음 발표됐을 때 가장 회의적인 시선을 받던 대목이었다. 지금은 성격이 달라졌다. 다중수원과 대규모 재이용을 전제로 한다면, 이것은 포기해야 할 제약이라기보다 충분한 투자로 풀어야 할 큰 공학 문제에 가까워졌다. 다만 극한가뭄에서의 물수지와 각 수원의 안정 공급량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기후변화는 수량의 평균을 조금씩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최악의 해를 훨씬 자주, 훨씬 깊게 만든다. 대만이 2021년에 겪은 일은 통계의 꼬리에 있던 사건이었지만, 기후변화가 심화되며 그 꼬리가 두꺼워지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산업용수 계획을 볼 때는 총량 뒤에 붙은 숫자 하나를 더 물어야 한다. 가장 마른 해에는 하루 몇 톤인가. 물을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평균이 아니라 최악을 관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의 일부는 2026년 9월 10일 광주MBC 「시사용광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 확보 해법은?' 편에서 서왕진 국회의원, 김종필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 함께 논의한 것이다.
글 /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정석희 박사는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에페트솔루션(EFET Solutions) 창업자 겸 CEO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기반 그린 하·폐수처리 및 에너지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 장학 지원을 받아 해당 분야의 세계적 연구기관인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에너지 분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3년 연속 스탠퍼드대학교 ‘세계 상위 2% 과학자’ 리스트에 선정되었으며, 학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기후·에너지 솔루션 개발에 힘쓰고 있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환경보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6년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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